《4화》
1.
한설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빌런이 김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김신은 빌런과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이런!’
짧게 끝내야 했던 사인이 길어진 것이 화근이었던 걸까.
“이런 개새끼들이! 지금 니들 작당모의 했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인질이야 또 구하면 되는 거야! 니들 땜에 이년이 죽는 거다!”
“살려주세요!”
빌런이 손에 든 단검을 역수로 쥐어 잡고, 비명을 지르는 인질의 목을 향해 단검을 내리찍는 그 순간, 마치 슬로우 모션을 킨 것처럼 김신의 세상이 느려졌다.
-마법은 마나라는 무형의 힘을 수인이라는 행동을 통해 특정한 속성으로 변화, 응집시킨 후 강력한 의지를 담아 현실에 구현시키는 것이다.
일주일간 수도 없이 돌려본 블라이어의 기억.
가속으로 강화된 김신은 수백 번을 넘게 연습했던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사용하려는 마법은 3서클 공격마법 윈드커터.
빠르게 허공을 수놓는 김신의 손길을 따라 무형의 마나가 조형되며 바람이라는 속성으로 바뀌었고, 형태 없는 바람은 곧바로 칼날의 모양으로 변화되었다.
김신은 찰나의 시간 만에 모든 과정을 거쳐 나타난 바람의 칼날을 칼을 쥐고 있는 빌런의 손을 향해 지체 없이 날려 보냈다.
휘이이익! 서걱! 챙그랑!
날카로운 절삭음과 동시에 들리는 쇳소리.
그 뒤를 따라오는 건.
“끄아아아악!”
칼을 쥔 손등이 깊게 베여 칼을 떨어뜨리는 모습과 빌런이 내뱉는 고통에 찬 비명소리였다.
‘늦지 않았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본능적으로 사용한 마법이었지만, 무수히 많은 연습으로 실수 없이 사용했다.
““와!!!!!””
유혈사태 없는 완벽한 제압에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김신은 엄청난 마법의 위력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마주치고 있는 한설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수고하세요.
마치 축제 분위기처럼 변한 현장에서 김신은 한설이 빌런을 제압하려고 달려가는 것을 본 뒤에 인파의 틈을 헤치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아티펙트의 기억이 남긴 힘을 직접 체감한 김신은 역으로 가는 한적한 골목길을 걸으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기억이 담긴 아티펙트를 찾는 것. 그리고 마법의 경지를 높이는 것. 두 가지 모두 소홀히 할 수 없어.’
기억이 온전히 남아있는 아티펙트가 흔하지는 않았지만, 어렵사리 얻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지금 가지고 있는 이 감정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티펙트를 찾으려면 아티펙트가 모이는 곳으로 가야하는 법.
그중 김신은 이미 감정을 끝낸 자신의 가게와 김상덕 할아버지의 가게를 제외한 곳 중에서 가장 많은 아티펙트와 골동품이 모이는 곳이라고 불리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타워 엔티크.’
계획에 대한 고민을 끝마친 김신이 지하철역에 들어가기 직전, 그의 귓가에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신 씨! 잠깐만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설.
김신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멈춰선 한설을 마주보며 말했다.
“볼일 있나요?”
“당연하죠!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휙 말도 없이 가버릴 수가 있나요. 감사인사도 못했는데!”
“딱히 뭘 바라고 도와드린 게 아니라서...”
정말이었다.
그저 아는 사람이었기에 도와줄 것이 있나 싶어서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고, 돌발 상황이 일어난 순간엔 말보다 행동이 먼저 나간 것뿐이니까.
옆머리를 긁적이며 답하는 김신의 모습에 한설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답했다.
“감사인사요! 감사인사! 사람이 왜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어요?”
“아...”
“그리고 어디까지나 빌런을 제압하신 건 김신 씨니까, 보상은 수호길드 차원에서 따로 나갈 거예요.”
“뭐, 주시는 거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김신에게 마주 고개를 숙인 한설은 그냥 이렇게 가기도 뭐했기에 본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을 그에게 했다.
“그나저나, 길드레이드에 참가하시는 걸 못 본거 같아서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요?”
“못 들으셨어요?”
“네. 제가 불사길드에 있는 사람들이랑 막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사실, 그나마 인사하던 사람이 김신 씨였는데 안보이니까 궁금하긴 하더라고요.”
김신은 정말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설에게 짧게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사람 구하다가 다리를 다쳤고, 헌터 일을 못하게 됐다고 방출 당했어요.”
“네?”
김신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짓던 한설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불사길드가 진짜 그랬다고요?”
“네.”
김신의 대답에 잠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한설이 그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리 멀쩡하시잖아요.”
“그렇죠. 운 좋게도 멀쩡해졌네요.”
“그러면 지금은 길드에서 나온 상태에요?”
응? 저건 왜 묻는 거지?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새는 것 같았지만, 오랜만에 얘기하는 사람이었던 탓에 김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흐음...”
묘한 미소를 지으며 김신을 바라보는 한설의 모습에 김신은 용건이 끝났다 생각했다.
“뭐,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바쁜 일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고, 지하철 역 입구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 김신에게 한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전했다.
“조만간 또 봬요!”
또 보자고? 왜?
김신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설의 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
불사길드의 팀장실.
환하게 켜진 밝은 조명과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꾸며진 그곳에 김신의 옛 상사이자, 현재는 팀장이 된 곽명한은 부하직원이 가져다 준 CCTV영상을 돌려 보고 있었다.
“흠...”
사건당시, 동시에 출동했었던 수호길드의 한설에 대한 보상과 정확한 사건처리에 관한 문제 때문에 영상을 보고 있었지만,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한설은 능력을 아무리 잠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머리가 파랗게 물들어야 하는데, 영상에선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단 말이지.”
그리고 무언가에 크게 손을 베여 무기를 떨어뜨리는 빌런의 모습을 봐도 이상했다.
“더군다나, 뭐에 당했는지 보이지도 않고 말이야.”
그렇게 한참동안 CCTV를 계속해서 살펴보던 곽명한은 영상의 어느 한 부분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찍혀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화면을 자세히 보기위해 의자를 끌어 모니터 앞으로 바짝 붙었다.
“응?”
손을 이용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하던 행동을 멈추자, 빌런이 쓰러진다.
정지와 재생을 반복해서 하던 곽명한은 흐릿했던 화면이 비교적 선명하게 찍힌 장면에서 나온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그의 정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신?”
2.
다음날.
김신은 미리 계획해둔대로 또 다른 아티펙트를 찾기 위해 ‘타워 엔티크’로 향했다.
모든 아티펙트와 골동품을 거래하는 장소인 타워 엔티크.
10층으로 지어진 건물은 아티펙트를 얻을 수 있는 탑을 모티브로 지어진 만큼, 그 크기가 다른 건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그리고, 돈이 되는 아티펙트가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이니만큼 씀씀이도 헤퍼지기 마련.
“어서오십쇼!”
깔끔한 턱시도 차림의 웨이터가 눈앞을 지나다니는 이곳은 사치와 도박의 중심인 카지노이기도 했다.
‘내가 여길 아티펙트를 사려고 방문할 줄이야.’
김신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 타워 엔티크에서 감정이 되지 않거나, 등급에 비해 그 기능이 형편없는 골동품을 취급하는 6층으로 향했다.
“고객님, 몇 층으로 가시겠습니까?”
“6층이요.”
“예, 알겠습니다.”
6층이란 말에 김신을 위아래로 훑는 엘리베이터 걸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6층에 도착한 김신은 입구에서부터 진열되어 있는 아티펙트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헬멧부터 겉보기에도 무기처럼 보이는 검이나 창까지.
아티펙트는 그 사용방법 자체가 비밀에 쌓여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겉보기만 보고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김신은 감정스킬을 이용해서 진열되어있는 아티펙트들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감정스킬을 통해 본 것은 짧은 기억부터 한 사람의 인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기억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들이 평범했던 만큼, 아티펙트 자체의 등급과 기능도 대부분이 평범했다.
‘블라이어의 기억이 담긴 스태프를 할아버지의 가게에서 구한 건 어떻게 보면 천운이었네.’
생각해보면 모든 아티펙트의 전 사용자가 어떤 한 분야에 통달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결국, 6층을 다 돌 동안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한 김신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던 입구로 돌아왔다.
‘역시 욕심이었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날로 먹으려고 했다.
마법의 경지를 아직 초입부분인 3서클 까지 밖에 끌어올리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새로운 힘을 바라다니.
‘그냥 마법이나 수련하자.’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김신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다시 1층을 향해 내려가던 중, 먼저 타 있었던 남녀가 하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오빠, 오빠도 감정사라면서 왜 그건 제대로 감정 못해?”
분홍색 밍크코트를 입고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달고 있는 여자가 5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교태가 섞인 목소리로 묻자, 여자의 질문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남자는 화를 내며 답했다.
“아니, 그건 누가와도 감정 못한다니까? 그냥 사기야 사기!”
남자의 화난 모습에 당황한 여자는 급하게 표정을 가다듬고, 몸을 최대한 밀착시키며 교태 섞인 목소리로 남자에게 속삭였다.
“오빠가 그렇게 화내는 걸 보면 진짜 사기가 맞나봐.”
“당연하지! 내가 이래봬도 전국 1위 감정소의 간판 감정사인데!”
“맞아. 오빠가 최고야! 그런데 오빠, 오늘 2층에 들어온 신상 피부미용 아티펙트가 있다던데...”
여자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손으로 남자의 엉덩이를 쓰윽 훑자, 남자는 언제 화가 났냐는 듯이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피부미용? 까짓 거 하면 얼마나 한다고. 사고 싶은 거 다 사줄게!”
남자의 말에 교태를 부리며 엉겨 붙는 여자.
김신은 보기 불편한 그들의 모습보다 그들이 한 대화를 곱씹었다.
‘누가와도 감정을 못해?’
감정이란 아티펙트의 사용방법을 알아내는 것.
그런 의미에서 김신은 어떤 아티펙트든 사용자의 기억을 읽기에 사용방법을 알아내는 건 문제가 없다.
‘뭔지 궁금하네.’
김신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고, 다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