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동품으로 먼치킨-3화 (3/116)

《3화》

1.

김상덕이 창고에 들어오기 전.

김신은 창고 구석에 앉아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을 복기하고 있었다.

-마법은 마나를 느끼고, 체내에 마나로드는 만드는 것이 그 시작이다.

‘각성을 하면서 마나를 느끼고, 마나로드를 만들었으니, 이건 일단 건너뛰고.’

블라이어라는 아티펙트의 전 주인은 평범한 재능의 범재였지만, 노력이 엄청난 케이스였다.

-그 다음은 바로 각각의 속성을 느끼는 것이지.

자연에 존재하는 4대 원소.

블라이어의 스승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김신은 기억 속의 블라이어가 하는 대로 자연의 속성을 하나씩 몸에 익혔다.

‘범재였던 만큼, 평범한 이의 시선에서 마법이라는 학문을 배우려 노력했기에 처음 접하는 나도 쫓아가기 쉽구나.’

-그렇게 자연의 속성을 모두 깨우치는 것이 1서클이다.

기억이기에 빠르게 되돌려 본다는 이점.

김신은 그 이점을 이용해 순식간에 1서클을 달성했던 것이었다.

***

엄청난 아티펙트를 손에 넣은 김신은 밝은 얼굴로 김상덕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 이만 가볼게요.”

꾸벅 인사를 하고 뒤로 돌아선 김신.

김상덕은 다리를 절지 않고 걸어가는 그를 향해 망설였던 질문을 했다.

“신아, 다리는...괜찮은 거냐?”

“예, 운이 좋았죠.”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별 다른 말없이 자기의 일인 것 마냥 좋아하는 김상덕의 모습에 김신은 절망에 빠졌던 과거의 자신을 구해줬던 것이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제 다리를 고쳐주신 거나 다름없어요.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

집으로 돌아온 김신은 빠르게 샤워를 하고, 아티펙트를 집어 방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블라이어의 기억을 복기하자, 창고에서 사용했던 마법이라는 기적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능력 헌터들이 사용하는 스킬보다 더 강력하고, 더 다양하다.’

하나의 속성이라는 범위 안에서 스킬을 쓰는 이능력 헌터들의 힘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이 가능한 마법이라는 힘.

김신은 마법을 수련하는 재미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나를 사용하는 더 정교한 방법을.

마법을 사용하는 더욱 빠른 방법을.

아이러니하게도 김신이 하는 마법 수련은 그의 사고와 성장의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가속’이라는 특성과 합쳐져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수인을 맺어 마나를 변환해 사용하는 게 바로 마법이다.

그렇게 김신은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마법 수련에 전념했다.

자연의 원소를 다루는 1서클.

생활에 도움이 되는 보조마법과 기본적인 방어마법이 주가 되는 2서클.

살상력 있는 공격 마법을 배우는 3서클까지.

김신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만에 3서클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2.

4서클의 초입부터 눈에 띄게 수련이 늦어지기 시작한 김신은 마법 수련에만 집중하던 것을 줄였다.

‘이제 다시 헌터일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몸도 회복됐고, 충분한 능력도 얻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헌터로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끝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 일을 끝내기 위해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뚜르르르-

짧은 통화 대기음이 끝나고, 핸드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웬일로 오빠가 먼저 전화를 했네?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송인아.

김신은 별다른 말없이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인아야, 뭣 좀 알려줄게 있어서 그런데 언제 시간돼?”

평소엔 보자고 해도 보기 힘들던 김신이 먼저 약속을 잡는 모습에 송인아는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어, 어? 오빠가 시간 나냐고 물어보면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서 내야지! 잠깐만, 일정 좀 살펴볼게. 전화 끊지 마!

“응.”

핸드폰 너머에서 달력으로 생각되는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송인아의 말이 이어졌다.

-주말에 시간 비네.

“주말에 약속 없어?”

-응, 주변에 남자가 있어야 주말에 약속을 잡든 하지. 오빠는 보자고 해도 안 나오잖아.

“흠, 그랬나?”

-어이없네.

평소 송인아에게 부담을 줄까봐 만남을 피하긴 했었지만, 당사자인 그녀가 저렇게 말할 정도로 피한다고는 생각한적 없었는데.

“미안해. 앞으로는 자주보자.”

-뭐야? 왜 그래. 지금 오빠 좀 이상해. 괜찮아? 내가 갈까?

계속해서 어디 아픈 사람 취급하는 송인아의 말에 김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오빠 멀쩡해. 주말에 보자.”

송인아를 만나는 건 다리가 멀쩡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김신은 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했다.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송인아를 만나기로 한 당일.

김신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약속장소인 강남의 번화가에 도착했다.

‘너무 대충입고 왔나.’

바짓단을 말아 올린 청바지에 터틀넥과 블레이저 걸친 옷차림을 보며 고민하는 사이에 멀리에서 송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꽃무늬가 들어간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온 송인아가 사뿐히 걸어왔다.

“왔어? 가자.”

“어딜?”

“밥 먹어야지. 예약해놨어.”

“오, 생각보다 센스 있는데~”

“뭘, 이런 거가지고.”

목각인형을 구해준 보답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용건만 말하고 돌려보내기에는 너무 미안했다.

송인아를 데리고 예약을 해둔 레스토랑으로 향하려 발을 땐 순간.

“어...근데, 오빠 다리가...”

평소와는 다른 김신의 멀쩡한 걸음걸이에 놀란 송인아의 떨리는 목소리에 김신은 옅게 미소 지으며 다리를 두드렸다.

“아, 사실 오늘 만나자고 한 게 이것 때문이거든.”

“이제 괜, 괜찮은 거야?”

“응, 사실 전화로 알려주려 했는데, 그러면 너무 무성의 한 거 같아서.”

송인아가 항상 김신의 앞에서 밝은 척했지만, 그가 그 웃음 속에 담긴 미안한 감정을 못 느낀 건 아니었다.

멋쩍은 분위기 탓에 뒷머리를 긁적이는 김신의 모습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은 송인아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김신의 어깨를 때리며 화를 냈다.

“이 바보야! 그런 건, 전화로 알려주고 튀어왔어야지!”

***

“···그렇게 된 거야.”

목각인형을 감정한 것부터, 다리가 나은 것까지.

해리엇의 기억을 본 부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들은 송인아는 김신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풀린 탓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한 줄 알아?”

“알지.”

다리를 다쳤을 때부터 길드에서 강제로 퇴출 되고 나서 지금까지, 쭉 곁에 남아준 건 송인아 뿐이었다.

그이유가 마음속의 부채의식이든 아니었든 별로 상관없다.

결국, 김신은 감정에 북받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만 송인아를 한참동안 달랜 후에야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3.

밖으로 나와 길을 걷던 중, 송인아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오빠 잠깐만.”

심각한 표정으로 문자를 보던 송인아가 돌아보며 말했다.

“나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 급한 출동이 생겨가지고.”

“그래? 무슨 일인데?”

“근처에서 D급 빌런이 나타났다고, 지원 좀 해달라고해서.”

“어쩔 수 없겠네. 조심해.”

“응, 미안. 다음에 봐.”

김신은 급하게 달려가는 송인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집으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빌런이라...’

각성자가 깨우친 특성을 범죄에 사용하면 빌런이 된다.

김신이 한때 빌런도 잡고,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을 점령한 괴수들을 레이드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걸어가던 중,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춰 섰다.

비명소리와 그 속에서 간간이 들리는 고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방향을 바라보니, 복면을 쓴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설마.’

송인아가 말한 사건이 근처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그렇지, 여기까지 빌런이 올 줄이야.

송인아에게 들었던 대로, 빌런의 랭크는 D급.

김신의 헌터 랭크가 E급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여기서 가장 좋은 선택은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헌터로서의 랭크는 고작 한 단계지만, 그 힘은 최소 두 배 이상 차이나기 때문에.

그러나, 김신은 달려오는 빌런을 못 본채 하고 지나칠 수 없었다.

“꺄악!”

헌터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뒤쫓기던 빌런이 추격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근처에 있던 여성을 인질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꺼져! 더이상 다가오면 죽인다!”

비명을 지르는 여성의 목에 빌런이 날카로운 단검을 가져다 대자, 그를 따라가던 헌터가 자리에서 멈춰 섰다.

“일단, 진정해.”

“진정이고 자시고! 꺼지라고!”

김신은 서로 대치한 채, 말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중 헌터의 얼굴을 보고는 정체를 알아챘다.

‘한설?’

길드랭킹 2위인 수호길드의 최연소 팀장이자, B급 헌터.

김신이 그녀를 알아 볼 수 있었던 건, 한때 했던 길드 레이드에서 몇 번 마주치며 인사하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기묘한 인연을 만난 순간이 영 좋진 않았지만,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김신은 혹시라도 도와줘야 할 상황이 생길 것을 염두하며 한설과 빌런의 대치를 조용히 쳐다봤다.

***

들고 있는 작은 물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눈앞의 빌런.

그에 반해 한설은 그보다 훨씬 강하고 범용성 넓은 특성인 빙결능력을 가졌지만, 눈앞에 벌어진 사태에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힘을 쓰는 순간, 여자가 죽을 수 있어.’

바로, 특성을 사용하는 순간 머리가 파랗게 물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평범한 시민들조차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었다.

‘망할 놈에 길드 홍보영상. 이런 일을 할 때는 하나도 쓸모가 없다니까.’

그러한 이유로 한설은 어쩔 수 없이 빌런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도망칠 곳은 없어. 너도 알잖아?”

“시발! 그걸 아니까 이년을 붙잡고 길 열라고 협박하는 거 아니냐고! 이해 못하겠어? 다시 말해줘? 지금 길 안 열면 이년 모가지에 구멍 뚫어버린다!”

사태가 길어짐에 따라서 주위에 모여드는 시민들이 많아진다.

‘하, 진짜 골치 아프네. 이래서 빌런은 싫은데.’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서툴렀기에 평소에도 괴수를 잡으러 다녔지만, 하필 당직이 걸린 날에 비상이 터질 줄이야.

뭔가 주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나 싶어 주변을 살펴보던 한설의 시선에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누구였더라? 김성? 김준? 아, 김신이었다!’

수호길드의 최대 라이벌 길드인 불사길드의 유망주.

몇 년 전, 서로가 유망주 시절에 몇 번 얼굴을 마주친 적 있었던 사이였다.

‘뭔가 사건이 있었다고 했었는데...일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가 헌터라는 점이다.

“뭐해? 빨리 말 안 해? 길 열라고! 그리고 현장에서 잡힌 우리 애들 풀어줘. 빨리!”

“아니,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 일단 기다려봐.”

간헐적으로 발작하는 빌런의 모습에 한설은 고개를 돌려 입을 가리고는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김신을 향해 입을 뻥긋거리며 말했다.

-도와줄 수 있어요?

한설의 입모양을 본 김신이 손가락을 들어 자기 자신을 찍었다.

-그래요, 당신이요.

잠시 멈칫하던 김신이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며 입을 벙긋했다.

-도와드려요?

-예, 부탁할게요.

무책임한 말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거리도 너무나 떨어져 있었고, 특성을 사용하는 순간 인질이 위험해 지니까.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김신과 대화를 했던 탓일까?

“야! 지금 뭐하는 거야?!”

인질을 잡고 있던 빌런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김신이 있던 곳을 정확히 쳐다봤다.

“이런 개새끼들이! 지금 니들 작당모의 했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인질이야 또 구하면 되는 거야! 니들 땜에 이년이 죽는 거다!”

“살려주세요!”

손에 쥔 칼날을 역수로 고쳐 잡고, 여자의 목을 향해 단검을 찌르는 빌런과 눈을 감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

‘아, 다 끝났다.’

인질도 구하지 못하고, 사건도 종결시키지 못했다.

급한 대로 마나를 끌어올렸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

‘...최악이야.’

한설이 인질의 죽음과 동시에 들려올 시민들의 비명소리를 듣기 힘들어 미리 눈을 질끈 감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아닌 환호소리였다.

‘왜?’

사람이 죽었는데 환호를 한다고?

상황에 맞지 않는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눈을 떠 바라본 사건의 현장에는 목이 찔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멀쩡히 살아있었고.

“끄아아아악!”

칼을 찔렀을 것이라 생각했던 빌런이 피가 쏟아지는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며.

-수고하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김신이 어째서인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환호를 지르고 있는 시민들의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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