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1.
해리엇은 의사이자, 연금술사였다.
그는 사랑하는 이의 불치병을 치료하고자 수많은 시간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벨라, 연구가 거의 다 되었어.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줘.”
“...”
평생을 사랑했고, 사랑할 여자.
하지만, 지금은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채, 침대에 누워있다.
해리엇은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어떻게든 오늘 안에 끝을 내야해.”
오랜 시간 마법적 도구로 쓰인 목각인형.
타인에게 저주를 걸때도, 자신에게 씌인 저주를 대신 받게 할 때도 자주 쓰이는 그 목각인형을 이용해서 육체의 병을 전이시킨다는 방법.
마법적인 주술에 대해 해리엇이 장장 7년간 연구한 최후의 방법이 결실을 맺을 때 쯤, 사랑하던 아내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 해리엇은 그 충격의 여파로 미쳐버렸고, 마나의 뒤틀림과 인과에 손을 댄 탓에 괴수로 변했다.
***
물건에 담긴 기억을 모두 보자, 알림이 떠올랐다.
[유니크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생생하게 전해지는 타인의 감정 때문에 한동안 목각인형을 잡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슬프네.”
“응?”
“아니야.”
처음 보는 감정스킬의 숨겨진 기능.
타인의 기억을 엿보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목각인형을 이용하면 내 몸을 치료할 수 있다.’
평범한 감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쓰지 못할 아티펙트였지만, 물건을 만든 사람인 해리엇의 기억을 엿본 김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아티펙트였다.
가슴 아픈 사랑을 했던 해리엇의 기억을 본 탓이었을까, 김신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본 송인아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왜 그래?”
“아니, 그냥 좀 슬퍼져서.”
“아무런 기능이 없는 목각인형들고 뻘짓하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 진거야? 괜찮다니까? 그거 오빠 가져, 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이야기에 핀트가 엇나간 대화 탓에 어이가 없어진 김신은 가볍게 웃으며 송인아에게 말했다.
“어쨌든 고맙다. 내 생각 해주는 건 너밖에 없어. 진짜 인아 네가 없었다면 나는 더 힘들었을 거야. 진짜 고마워.”
평소 감정표현이 뜸했던 김신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자, 당황한 송인아가 손사래를 쳤다.
“뭐래, 갑자기...부끄럽게.”
“조만간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너한테 알려줄게.”
“당연하지. 그럼 이제 나 간다?”
“잘 가. 차 조심하고.”
“차 조심하라고? 차가 날 박으면 차가 박살날 텐데?”
“어쨌든.”
“알았어, 다음에 봐.”
딸랑.
김신은 짧은 종소리를 남기고 밖으로 나간 송인아의 뒷모습을 보다가 손에 쥔 목각인형을 꽉 붙잡았다.
“다시 해보는 거야.”
그토록 바래왔던 기회를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고, 김신은 다짐했다.
2.
아티펙트는 헌터들에게 엄청난 힘을 제공한다.
다만, 사용방법을 알지 못해 그 힘을 못 끌어낼 뿐.
지금 김신의 손에 들린 목각인형 또한 그와 비슷했다.
목각인형에 자신과 똑같은 마나로드를 만들고, 마나를 불어넣어 사용자의 신체와 동일하게 만든다.
우우웅.
정확한 사용방법에 따라 마나를 운용하자, 목각인형이 김신의 모습을 본뜬 것처럼 비슷하게 변해갔다.
매끌매끌했던 얼굴에 이목구비가 생기고, 머리카락이 자랐다.
빛나던 목각인형에서 빛이 사라지자, 김신에 손에는 그와 똑 닮은 목각인형이 쥐어져 있었다.
“이제, 빌면 되는 건가.”
마법사이지만, 주술적인 부분을 차용하여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해리엇의 목각인형 사용방법은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제 다친 다리를 낫게 해주세요.”
김신의 손에 쥐인 목각인형은 그의 목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꾸드드드득!
검게 물들며 말라가는 목각인형의 오른 다리.
그와 동시에 김신의 다친 다리가 빛을 내며 펴지기 시작했다.
“...!”
뼈와 살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간다.
필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따듯한 느낌만이 다리에서 느껴졌다.
빛이 사그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원래대로 돌아온 다리만이 남아있었다.
너무 놀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김신은 말라붙은 목각인형의 다리와 자신의 다리를 몇 번이나 훑어보고야 목각인형이 가진 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아티펙트의 힘.”
김신은 다리가 검게 물든 목각인형을 부드럽게 쥐어 잡았다.
3.
다리부분이 검게 변한 목각인형을 쥔 김신은 곧바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골동품을 모아놓은 창고로 향했다.
“어렵게 되찾은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물건을 찾아야해.”
7년 전에나 유망주였지, 지금은 아니다.
몸을 다쳐서 절망을 느꼈던 만큼, 다치는 일 없이 착실하게 노력해서 더욱 강해져야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전투에 관련된 스킬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킬은 전문적인 장인들에게 배워야하고 드는 돈이 엄청난 만큼 그 가능성이 희박했기에 아티펙트에 담긴 전 사용자의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된 지금 김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손때가 묻은 아티펙트였다.
‘혹시나 했는데...없네.’
가게에 기억이 담긴 아티펙트는 있었지만, 전투와 관련 된 것은 없었다.
‘손때가 묻은 아티펙트가 흔한 게 더이상하긴 하지. 하지만 여기 없다면 다른 곳에서 찾으면 되잖아? 어디가 좋을까...’
고민을 하던 김신의 머릿속에 좋은 장소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가보는구나. 잘 계시려나.’
***
[골동품 매매소]
김신은 간판의 이름을 보고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하고 종소리가 울리자, 고개를 슬쩍 들어 김신을 쳐다본 가게 주인이 다시 골동품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신이냐?”
“예, 할아버지.”
김신이 들어간 가게의 주인인 김상덕 할아버지는 그에게 감정을 알려준 스승.
김상덕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난 그냥 네가 별 소식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무슨 일이냐.”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골동품 좀 보려 구요.”
골동품에는 관심이 없던 김신이 내비치는 평소와 다른 행동에 김상덕은 들고 있던 골동품에서 시선을 떼며 김신을 바라봤다.
“네가 골동품을?”
“요즘 좀 관심이 생겨서요.”
꽤 오랜 시간동안 말없이 김신을 바라보던 김상덕은 고개를 한번 갸웃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뭔 바람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네가 골동품에도 관심이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겠지. 큼, 따라와라.”
앞서가는 김상덕의 뒤를 따라서 간 곳은 골동품이 잘 정리된 상태로 놓여있는 창고.
김신은 손때 묻은 아티펙트가 쌓여있는 창고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했다.
‘이걸 모으시느라 얼마나 걸렸을까.’
겉보기부터 평범하지 않아 보이는 무기부터 낡아서 옷자락이 모두 헤져버린 옷까지.
그 모든 것들을 김상덕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소중하게 만지며 김신을 향해 말했다.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은 각자의 사연이 담겨 있겠지.”
“그렇겠죠.”
“가끔 나는 골동품 감정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한다. 이것들의 가치를 모두가 알 수 있게 단순히 등급을 알려주는 감정이 아닌, 사연을 읽을 줄 아는 감정을 성공하고 싶다고.”
아티펙트에 깃든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된 지금, 김신은 김상덕이 하는 말에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물건엔 그에 맞는 쓰임새가 있도록 만들어졌을 테니까요. 아무도 그 쓰임새를 모른다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이겠죠.”
김신의 답변이 마음에 들은 김상덕은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답했다.
“이제야 감정의 의미를 깨달았구나. 천천히 둘러 보거라, 나는 나가있을 테니.”
김상덕은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겨 창고의 밖으로 나갔다.
김상덕의 모습이 사라지자, 김신은 신중한 표정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티펙트를 하나 집어 들어 그에 깃든 이야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하나의 물건을 감정할 때마다 마치 주마등처럼 뇌리에 재생되는 타인의 기억.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는 아티펙트의 기억 중, 유독 김신의 손을 잡아 끈 하나의 기억이 있었다.
***
블라이어는 프레인 제국의 황성마법단장이자, 7서클 대마법사였다.
그는 황제의 최측근인 만큼 어디를 가든 어디로 가든 모두 따라다녔다.
프레인 제국의 황제는 몸이 병약했기에 그의 자리를 노리는 이들이 많았고, 그러한 이유로 황성마법사단은 근위기사단과 함께 예민한 감각을 유지한 채, 황제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한손으로 여러 손을 막기는 불가능 한 법.
제국의 탐욕스러운 귀족들은 쏟아지는 몬스터로 혼란스러운 제국의 분위기를 틈타, 정치를 통해 병력을 모으고 황권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블라이어는 제국 최강의 마법사였지만, 정치는 모르는 이였기에 반역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황제는 백성을 버렸다!”
이러한 슬로건을 앞세운 귀족파의 병력이 반역을 일으켰고, 블라이어는 끝까지 그들을 막아 세웠지만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짐의 무능으로 일어난 희생. 미안하다 나의 병사여.”
끝까지 자신의 주군의 곁을 지킨 마법사 블라이어는 근위기사단장과 함께 황제의 발치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
[전설등급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김신의 손을 잡아 끈 이유는 등급의 이유도 있었지만, 아티펙트의 사용자가 마법이라는 처음 보는 힘을 썼기 때문이다.
스태프라는 아티펙트 자체의 기능은 마력을 증폭 시키는 것.
끝이 뭉툭한 굵은 나뭇가지의 모습인 이 아티펙트에서 김신은 가능성을 엿봤다.
‘사용자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만큼, 도전해 볼만해.’
바로, 마법이라는 생소한 능력을 사용한다는 가능성을.
김신은 곧바로 창고에 주저앉아 아티펙트에 담긴 기억을 반복해서 보기 시작했다.
***
골동품 매매소의 주인인 김상덕은 평소와 달랐던 김신의 태도가 바뀐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고놈, 감정 스킬을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는데.”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찾아온 3년 전의 김신은 미친놈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그런 모습이었었다.
-스킬 좀 전수해주십쇼. 마지막 남은 희망입니다. 그것마저 배우지 못한다면 전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사람은 다 제각각의 쓰임새가 있는 법! 사람이 어찌 그리 비관적이더냐!
-제 다리를 보십쇼. 헌터로서의 삶을 모두 잃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 서있다는 것이 확실히 보이는 김신을 저버릴 수 없었던 김상덕.
-···네놈이 네놈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우친다면 그때, 스킬을 전수해 주겠다.
그는 결국, 김신에게 감정이라는 스킬을 전수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가게에 들어올 때 신이가 다리를 절었었나?’
문득 김상덕은 김신의 다리가 멀쩡해진 것이 궁금해 그가 있는 창고의 문을 슬쩍 열어 안을 살펴봤다.
‘흠, 뭘 하는 거지.’
창고의 구석에서 골동품 하나를 손에 잡은 채, 눈을 감고 있는 김신의 모습에 김상덕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신아.”
“...”
“신아.”
“...”
“이눔아! 골동품 잡고 자냐?!”
김상덕의 호통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난 김신은 눈을 껌뻑이며 김상덕을 바라봤다.
“아, 아뇨. 잠깐 명상 좀 했는데요. 그런데 왜 부르셨어요?”
“자는 것 같아서 불렀다. 잘려면 집에 가서 자라고 말하려고. 근데, 손에 꽉 쥔 그 아티펙트는 어째 놓을 생각을 안 하는구나?”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이거 저한테 팔아주세요 할아버지.”
“그건 감정도 제대로 안돼서 제값도 못 받고 팔 텐데, 무엇에 쓰려고?”
김신은 김상덕의 말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티펙트는 제각각 쓰임새가 있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제가 그 쓰임새를 찾아낸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는 김신의 등 뒤로 숨긴 손에서는 마법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