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깨진 균형의 천칭, 고장 난 시간여행자의 회중시계, 강태공의 부러진 낚싯대, 천마의 피 묻은 무복까지.
탑에서 나오는 모든 골동품의 사용방법과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나는 물건을 소유했던 이의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헌터니까.
《1화》
1.
서울 강동구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감정소.
이곳은 김신이 2년간 헌터로서 괴수를 토벌하며 번 돈으로 얻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가게이자, 최후의 보루다.
딸랑!
가게 문의 종소리와 함께 들어온 사내.
고개를 들어 손님을 바라 본 김신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또 왔네.”
최근 김신의 가게에 자주 들리는 손님이자, 항상 싸가지 없는 태도의 B급 헌터 한창현.
그는 한숨을 내쉬는 김신에게 다가가 계산대에 물건을 툭 내던지며 입을 열었다.
“김신아, 형님이 글쎄 오늘 탑 2층에서 말이야. 너는 꿈도 못 꿀 괴수를 잡았는데 그놈이 뭘 내뱉더라고, 그래서 마, 형님이 너 밥값이라도 쥐어줄라고 여기 왔다. 고맙지?”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냥 감정스킬 배우기 싫어서 여기 온 거면서.’
속마음은 이랬지만, 겉으로는 웃으며 한창현의 말에 답했다.
“아, 예. 형님. 매번 감사하죠.”
“그래, 당연히 감사해야지. 이런 낡아빠진 가게 찾아오는 것도 힘든데 말이야.”
“먼 걸음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김신은 한창현의 말에 대충 답하며 펜처럼 생긴 아티펙트로 눈을 옮겼다.
[아티펙트를 감정합니다.]
10년 전 터진 퍼스트 게이트와 동시에 태평양 한 가운데 솟아난 거대한 탑은 괴수를 토벌하는 각성자들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주는 아티펙트를 주었다.
탑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아티펙트를 얻기 위해서는 각 층에 존재하는 괴수와 그 끝에 있는 보스를 잡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했지만, 각성자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더욱 강력한 힘을 손에 넣기 위해 탑을 올랐다.
하지만 탑은 인간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티펙트를 사용하려면 그 사용 방법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기에.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아티펙트의 사용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감정이라는 스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이 필요하다면 모두가 감정을 배우려고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
그렇게 각성자들은 습득한 아티펙트를 감정하기 위해서 감정을 배우려 했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아티펙트를 감정할 수 있는 아티펙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티펙트를 감정하는 아티펙트의 등장에도 물론 사람들은 감정을 배우려고 했었다.
하지만 감정은 습득하기가 까다롭다는 것과 숙련도가 잘 오르지 않는다는 탓에 점차 비주류 스킬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결국 각성자인생의 마지막 기로에서 먹고 살기위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스킬이 되어 천시를 받았다.
‘그런 이유를 떠나서 높은 숙련도의 감정사가 하나만 있어도 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지. 어차피 전설등급만 감정하면 되니까.’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감정은 일단은 뭐라도 먹고 살아야하기에 배우는 스킬이 되어버렸다.
[레어등급 아티펙트를 감정하였습니다.]
감정완료와 함께 사용방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뇌리에 직접 각인됐다.
펜촉을 반 바퀴 돌리고, 펜대를 검을 잡는 것처럼 강하게 쥔다.
파칭!
머릿속에 떠오른 것과 똑같이 행동하자, 아티펙트가 짧은 숏소드인 본래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오, 빠른데?”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서 등급은? 구라치다 걸리면 알지?”
“당연하죠. 저희 가게 단골이신데. 신용이 우선인거 알잖습니까?”
“그렇지? 우리 동생은 자기 주제를 잘 알아서 참 좋아.”
맘 같아선 사기를 치고 싶지만, 레어 등급은 일곱 단계의 아티펙트 등급 중에서도 아래에서 두 번째인 위치였고, 사용 방법 또한 생각보다 간단했기에 김신은 한창현에게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등급은 레어고, 사용방법은 보신 것처럼 펜촉을 반 바퀴 돌린 다음 펜대를 꽉 쥐시면 됩니다. 그리고 감정료는 20만원입니다.”
“뭐? 이십? 레어면 팔아도 끽해봤자 이백인데?”
“네, 표준 감정료 십 퍼센트요.”
“야, 그냥 십 만원 해.”
“아니, 그래도-”
“이 새끼가 또 이러네. 그냥 줄 때 감사합니다. 하고 좀 쳐 받아. 와주는 것도 감사해야지. 어딜 주제를 모르고 기어올라 병신새끼가.”
말과 함께 한창현의 품에서 정확히 십 만원이 튀어나와 계산대 위에 던져졌다.
딸랑.
곧바로 가게 밖으로 나가버린 한창현의 뒷모습을 보며 김신은 이를 질끈 깨물었다.
“씨발, 진짜 기분 좆같네.”
한창현은 몇 없는 손님 중의 하나.
낮은 등급의 아티펙트는 감정 자체가 엄청 어려운 것은 아니기에 다른 감정소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 타격이 크다.
‘몸만 멀쩡했어도...’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에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감정해야 했다.
“하아...”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유망주라 불리는 헌터였지만, 다리를 다친 후로 모든 게 변했다.
주위 사람들은 떠나갔고, 길드는 등을 돌렸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각성자의 주위엔 항상 돈을 보고 달려드는 사람들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삶.
출동해서 토벌에 성공하면 영웅이 되고, 실패하면 그저 개죽음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 생각 한 것은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죽어라 비주류스킬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감정스킬을 배웠고, 결국 이렇게 더러운 꼴을 보면서도 입에 풀칠을 하며 사는 거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었다.
몸이 멀쩡했다면 대우가 달라졌을까?
내가 더 높은 랭크의 헌터가 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그렇게 다시 헌터로서의 삶을 살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며 참담한 현실로 돌아갔다.
딸랑!
다시 한 번 울리는 종소리에 김신은 우울한 표정을 지우고 밝게 웃으며 문을 바라봤다.
“어서오세...요?”
“오빠! 오랜만이야!”
새로 들어온 손님은 강제로 내쫓겨진 전 길드에서 알게 된 동료이자, 현재까지 연락을 하며 지내는 유일한 인맥인 송인아 였다.
“어, 그래. 근데 인아 너 C랭크로 승급한지 얼마 안 되서 엄청 바쁘지 않아?”
“맞아. 안 그래도 그것 땜에 미치겠어.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미개척지역 들려서 레이드에 참가하고, 괜히 승급한 기분이라니까.”
그렇게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 후에 김신은 송인아에게 본론을 물었다.
“바쁘단 걸 자랑하러 온 건 아니겠고, 웬일이야?”
“칫, 말하는 거만 보면 오빠가 나보다 더 바빠 보인다? 가끔 이렇게 나랑 평범한 이야기 좀 하면서 있으면 안 돼?”
볼을 부풀리며 귀엽게 투정부리는 송인아의 모습에 김신은 가볍게 웃었다.
“알겠어, 근데 진짜 오빠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래. 알잖아, 일적인 부분 말고는 개인적으로 날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걸.”
“그건...미안해.”
“괜찮아. 다 옛날 일인걸. 그리고 네가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씁쓸한 표정을 짓는 김신의 얼굴을 조용히 쳐다보던 송인아는 원래 전달해주려던 물건을 꺼내서 그가 앉아있는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이게 내 오늘 용건이야.”
“응? 평범한데?”
송인아가 내려놓은 물건.
그것은 평범하게 생긴 목각인형이었다.
“그렇지? 근데 그게 6층 보스를 잡고 나온 물건이란 게 문제지.”
“보스를 잡고 나온 아티펙트라고?”
“응, 길드소속 전문 감정사가 감정했는데 뭐 뜨는 게 없다고 해서 결국 골동품 취급받는 걸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거야.”
가끔 이런 물건들이 있다.
탑에서 나온 아티펙트 중에 감정을 해도 별다른 정보가 뜨지 않거나 일부만 감정이 되는 물건.
그리고 그 물건을 헌터들은 ‘골동품’이라고 부르며 쓰레기 취급을 한다.
“그거 감정하려고 가져온 거야?”
“아니, 그냥 오빠 주려고 온 건데? 오빠 이런 거에 관심 많아서 맨 날 골동품 사 모으고 다니잖아. 그리고 6층 보스가 회복 관련 스킬을 써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거야. 혹시 몰라, 그 목각인형에 숨어있는 기능이라도 있을지?”
탑에 출몰하는 보스는 항상 그와 관련된 아티펙트를 내뱉는다.
가령 냉기를 내뿜는 괴수라면 냉기 스킬과 관련된 효과를 가진 아티펙트를 준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김신은 자신을 신경 써주는 송인아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고맙네, 그래도 이렇게 신경써주고 말이야.”
“내가 왜 불사길드에 들어 간지 알아? 오빠 때문이라고. 오빠가 날 구해준 그때부터 나도 몸을 던져서 남을 지켜주는 저런 헌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거든.”
그렇게 말하며 밝게 미소 짓는 송인아의 모습에 김신은 씁쓸한 기분을 감추기 위해 장난스럽게 주먹을 쥐며 답했다.
“그래, 인아가 날 생각해서 가져왔다는 데 까짓 거 온 힘을 다해 감정해야지!”
남들에겐 숨기고 있었지만, 사실 김신의 감정 스킬은 이미 최고 숙련도 상태였다.
그리고 그를 이용해서 뭔가 알 수 없이 끌리는 아티펙트나, 가진 기능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 매겨진 아티펙트를 사 모으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대부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감정이 되지 않았다.
‘혹시 모르지, 진짜 내 다리를 낫게 해줄 가능성이 있을지도.’
그게 아니더라도 꾸준히 찾아와주는 송인아를 봐서라도 진심으로 감정해주는 게 옳은 행동일 터.
[아티펙트를 감정합니다.]
목각인형을 손에 들어 요리조리 둘러보기 시작하자, 자동으로 스킬이 활성화됐다는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다.
“흠...”
알림이 떠오르는 것으로 봐서는 이 목각인형은 아티펙트가 맞다.
다르게 설명하자면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 도 있지만, 반대로 너무 높은 수준의 감정스킬로만 감정이 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기가 생겼다.
‘감정스킬 숙련도 쌓아 올리느라 5년간 고생했는데, 감정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돼?’
김신은 돋보기를 집어 목각인형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또옥.
과도한 집중에 의해 이마에 맺힌 땀이 턱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 아티펙트를 만든 이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의도로 만들어 졌을지,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인지.’
감정이란, 고고학에서 보이는 고대 상형문자의 해석이나, 물품의 쓰임새를 알아내는 것처럼 다양한 상상력과 추리,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감정사들이 거의 없긴 했지만.
그렇게 10분.
목각인형에 마나를 불어 넣어가며 말없이 뚫어지라 쳐다보던 김신은 문득 알 수 없는 느낌을 느꼈다.
마치, 아티펙트를 만든 사람이 되는 듯 한 그런 느낌을.
그리고 그런 느낌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파고든 순간, 아티펙트의 감정을 알리는 알림이 아닌 다른 알림이 눈앞에 떠올랐다.
[감정스킬의 히든 조건을 해금하여 숨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숨은 기능?’
처음으로 보는 알림에 놀라기도 잠시, 이어서 떠오르는 새로운 알림과 함께 보이는 누군가의 기억 때문에 김신은 눈을 질끈 감아야만 했다.
[사용자의 염(念)을 엿봅니다.]
처음으로 마주한 물건에 담긴 누군가의 기억.
그 기억의 첫 장면은 사방이 목각인형으로 가득 차 있는 방, 그 안에서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