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4 (31) 박인방증(博引旁證) =========================================================================
심방의 뜻은 어쩌면 개인이 아니라 백성의 목소리가 아닌가 짐작된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뜻에 공감했기에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어쩌면 미래에도, 동분서주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심방도 강보도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고려사, 아니 동아시아 역사와 어쩌면 세계 역사까지도 비틀 수 있는 요나라 원정이 시작되었다. 본 역사에서 1107년, 여진을 정벌하기 위해 향했어야 할 고려군은 17만 정도라고 했지만, 예종과 곽여의 기세에 눌린 귀족과 토호들은 앞다투어 병력과 물자를 내놓았고 그 수가 30만에 이르렀다.
첫 여정은 윤관이 여진의 추장들을 접대하는 자리를 만든 일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연회에 모인 400명의 여진 추장은 술에 취했고 복병을 동원한 윤관의 기습공격에 모조리 죽고 만다. 초기에 고려군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부메랑처럼 다가와 필사적으로 여진이 저항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애써 쌓은 동북 9성을 돌려주게 되고 윤관 자신도 탄핵당하게 된다.
이번의 자리는 말 그대로 우호의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만난 아구다는 흩어진 여진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공을 들였고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30만의 고려군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과연 일국의 창건자다운 풍모라고 할까?
나와 아구다는 고려와 여진의 유력 지휘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맹약을 맺었다. 이미 영토 문제는 합의되어 있었지만, 재차 강조의 의미이며 모든 일이 끝난 후 서로 공격하지 말자는 신의의 약속임을 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그것은 이 자리가 비단 고려와 여진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전에 내가 포섭했던 고구려 유민 세력 백산부나 고영창을 위시한 발해인들도 함께 했기에 그 의미는 컸다. 공통의 적인 거란을 향해 힘을 합치면서 해묵은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동관이었다.
휘종의 친서를 가지고 왔다는 그를 박대할 수 없어 자리를 내주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적대적이었지만 이내 자리가 자리인 만큼 금세 웃음을 보이며 본론을 꺼냈다.
“고려와 여진이 천하 대적(大敵)인 요나라를 치기 위해 수십만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천자께옵선 정기(正氣)를 바로 잡는 일에 제국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을 대소신료 앞에서 확고히 하셨습니다. 하여 제국 역시 군을 일으켜 대의를 세우고자 합니다.”
친서를 보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역력했다. 장강 이남이 송의 품을 떠나게 된 계기가 나인 만큼, 나를 어떤 식으로든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려와 여진 연합군은 중경과 동경을 공격하고 송은 남경을 공격한다. 그렇게 요를 멸망시킨 후 고려와 여진은 송과 만리장성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고 장성 이남의 영토, 연운 16주는 본래 송의 영토였으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장성 이북의 영토에 대해서는 송은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고려와 여진의 합의를 인정한다.
송은 지금까지 요나라에 보냈던 세공(歲貢, 공물)을 고려와 여진에 동맹에 대한 우호로 양국에 고스란히 보내기로 한다. 분배는 양국의 합의에 따른다.
입조(入朝)를 하는 조건으로 장강 이남의 오월과 양, 대리 왕부를 실록에 남기고 자유로운 이동과 상거래를 보장한다. 서하의 군사적 위협에도 공동으로 대응한다.
한동안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말을 꺼내지 못했을 정도의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니 송으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제안을 한 것처럼 여겨졌다.
이유는 내가 일으킨 나비 효과 때문이다.
시작은 수호전의 원본이 되는 송강의 난과 방랍의 난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찻잔 속의 소요로 끝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자겸이 오월을 세우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본래 역사에선 금나라와 해상의 맹약을 맺고 연운 16주를 회복하기 위해 동관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북진해야 하지만 연이어 대규모 민란이 터지면서 지연되었다. 바뀐 역사도 북진이 지연되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상황이 달랐다.
오월과 양, 대리가 생존을 위해 일찌감치 연합 전선을 구축하면서 동관의 대군은 갈 곳을 잃었고 때마침 서하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대군은 북상했다.
옥기린 노준의가 그런 송군을 깜짝 지원하면서 서하를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패퇴시키자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목표를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 고민을 꽤 했을 것이다.
장강 이남을 넘자니 이미 수군 세력은 열세로 바뀐 지가 오래라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릴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고려와 여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어떤 경로로든 알게 되었다면?
남송 때부터 장강 이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중원이라 부르는 황하 일대의 경제력을 뛰어넘는다. 그렇다는 말은 아직은 중원의 가치가 더 높다는 말로 통한다. 요나라가 다섯 수도 중 서경, 남경 두 곳을 연운 16주에 둘 정도이니 말이다. 과거로 돌아가면 내가 민 제국의 황제였을 때, 연한의 영역이기도 했다.
강남 교역의 중심지였던 항주를 잃은 것이 뼈아프지만, 교역만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면 항주를 대체할 수 있는 도시는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가정하고 연운 16주의 가치를 더 우위에 두었다면 지금과 같은 제안이 가능하다.
요의 중흥에는 한인들이 상당한 활약을 했고 그들의 대부분은 연운 16주 출신이다. 자원의 보고이자 인재의 보고이기도 한 것이다. 보통 중국이 두 쪽으로 갈라졌을 때 보통 패권을 잡는 국가는 중원에 기반을 둔 국가였던 것을 고려하면 연운 16주를 차지하여 국력을 회복한 후 완전한 통일을 이루겠다는 순서로 가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진한 교체기에 강남에 소국이 생겼다가 점차 흡수되었다는 선례를 떠올렸다면 연운 16주를 얻은 이후의 송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란 확신을 했을 수도 있다. 오대십국 시절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물론 나는 그렇게 둘 마음이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현재로써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치 금나라 말기에 고려와 송, 몽골이 힘을 합쳤던 때 같다고나 할까? 연합을 허락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려나 여진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동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합의 선물로 은 20만 냥과 비단 30만 필, 군량 20만 석, 차 100만 관을 준비하였습니다.”
다들 입을 떡 벌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고려가 송에 조공을 바치고 희사품으로 얻는 물품이 대략 비단 1만 필 정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송이 군사적으로 과소평가를 당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경제력으로는 당시 세계의 모든 나라를 합쳐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송이 요에 매년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지급했고, 서하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은 5만 냥, 비단 13만 필, 차 2만 근을 지급했다. 어마어마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천자가 치르는 봉선 의식이 한 번이라도 열리면 요에 보낸 금액의 60배를 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북송이 함락되고 남송이 금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매해 은 25만 냥에 비단 25만 필을 주기로 했다. 요와 서하에 주던 것을 몰아서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하의 침략을 받을 일은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남송 조정에서조차 전체 예산에서 공물은 몇 퍼센트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소소한 금액이었다.
그야말로 노는 물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초원 부족들의 흥망을 보면 그런 엄청난 부를 노리고 중원을 정복하지만, 오히려 그 부에 잠식되어 망하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니 역사의 교훈도 소용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주는 선물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로써 송이 장강을 넘을 일은 없으니 나라가 더욱 안정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그렇게 연합이 결성되니 마치 동양판 십자군 전쟁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이쪽이 수십 배나 더 크다.
“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동관이 손짓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밖에서 궤짝 하나가 들어왔다. 궤짝을 열자 그곳엔 미처 예상할 수 없었던 물품이 들어 있었다. 물품은 수십 권의 책이었다.
“민국실록?”
아구다가 탐이 난다는 듯 궤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도 전설의 신봉자였던 것일까? 민국실록을 가진 자가 이민족의 왕이 된다는 전설 말이다. 더불어 중원의 지배자로서 정통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까지.
“이 물건의 가치를 여러분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그 진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물건이니까요. 천자께선 평화를 원하십니다. 이 물건의 주인이 그것을 약속해주길 원하시지요. 이 물건의 주인은 누구나 인정하는 영웅이어야 합니다. 그러하니 지금 이 물건의 주인을 가리기보다 전공으로 갈음함이 옳을 것입니다.”
“전공으로?”
아구다가 반문했다. 송이 선물로 주겠다는 은전(殷奠)엔 관심이 없었던 그가 민국실록에 눈이 돌아간 것은 여진을 하나로 통합하고 국가를 형성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의 장수들도 약간의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이민족이란 범주에서 자신들은 예외라고 생각했는지, 학술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창선 사고에 민국실록이 있는 것을 아는 고위 관료라면 아예 관심 밖일 것이다.
동관은 일종의 미끼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국실록이란 것은 명분을 줄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는 힘이 있지만, 명분까지 있으면 더욱 좋은 경우다. 아구다와 내가 해당한다. 북방과 남방 이민족을 대표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요를 정벌한 후 나와 아구다가 다툰다면 송은 또 하나의 기회를 잡는다고 할 수 있다.
동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몇몇 관심 있는 자들과 함께 민국실록을 들춰보았다. 진본이 아닌 사본이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볼 기회는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죽고 난 후 제국이 어떤 식으로 흘렀는지 세세하게 알게 된 것은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미시적인 부분의 확충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다 읽은 민국실록을 궤짝 채로 아구다에게 내밀었다. 아구다는 기뻐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이 물건의 가치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두 가지만 약속하세.”
“무엇을 말인가?”
“첫 번째는 여진족의 글자를 만들게.”
“글자?”
예상치 못했던 제안에 아구다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건 당연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도 아구다는 금나라를 세우고 나서 여진 문자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유목민이 한족의 문화에 동화되어 그 말로가 좋지 않았던 이유가 독자적인 문자의 부재에서 출발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진단에 동의하는 바이다.
독자적인 문자 체계가 널리 퍼질수록 서로 다른 나라, 민족이라는 의식이 싹트게 된다. 동화도 어렵다. 양나라가 베네치아와 제노바인들을 끌어들여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면 북방 유목 민족의 자립은 문자에 달렸다고 보았다. 그러한 문제 인식은 사실 요나라도 가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나라 붕괴의 서막이기도 하다.
송이 신법과 구법으로 싸웠다면 요는 전통을 지키자는 국수파와 한족의 우수성을 받아들여 통치 체제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는 한화파의 당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수한 관료를 확보하기 위해 한인을 많이 고용하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일부 한인 입장에서도 요가 중원의 역대 왕조와 다를 바 없게 변한다면 나약한 송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여진만의 문화를, 풍습을 지키게.”
“그것은 약속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아구다는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거란은 초원의 주인이었다. 우리는 변방에 머물렀지. 그런 그들이 비단옷을 입기 시작하고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연운 16주를 얻었을 때부터인 것 같다. 한인의 땅에서 한인의 문화를 접하고 그들에게 동화되었지. 말에서 내린 그들은 더는 초원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야성을 지켰다. 거란은 여진 기병 1만이 모이면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뭉치지 못하게 만들려 갖은 수를 썼지. 그런데 그대는 오히려 나에게 더 강해지라고 말한다. 한인들의 문화는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겠지. 거란이 스스로 초원을 버릴 만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구다는 스스로 다짐하듯 외쳤다.
“안출호수(安出虎水)의 후예는 절대 그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서서 죽는 것을 택하리라!”
안출호는 하얼빈 부근을 가리킨다. 완안부의 기원이 아마도 그곳인 모양이다. 재미있게도 안출호는 여진어로 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안출호수에서 사금이 많이 나서 붙여졌다고도 하는데 그러한 사금을 노리고 거란이 완안부를 압박하는 통에 완안부가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요나라를 오르도스 북방의 음산 기슭으로 쫓아낼 것이다. 그곳은 거란족의 고향이다. 작고 초라했던 과거로 돌아가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유목민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나와 여진을 자극하겠지. 그러나 약속하겠다. 궤짝의 주인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아구다는 궤짝을 짊어지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런 그를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이제 내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안배는 다 한 셈이다.
남은 것은 전쟁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가지 일(기말, 교통사고, 종이책 출간 등등)이 겹치니 연재가 지지부진합니다. 77페스티벌 전에 고려편을 끝내고 삼국지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