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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53화 (253/257)

00253  (31) 박인방증(博引旁證)  =========================================================================

주변에서 비명이 터졌다. 재빨리 피했다곤 하지만 면도날이 턱을 스쳤기 때문이다.

“몇 명이나 죽여보았지?”

대답이 없었다. 우국충정을 신념으로 삼는 개인의 일탈로 몰릴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자 함일 것이다. 내가 버틸수록 조급함이 드러났고, 손놀림은 빨라졌다. 이미 경호 팀이 근접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실패한다면 프로로서는 실격이다. 음모의 주재자도, 암살자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의 무엇이 그토록 이들에게 위협이 되었는가?

“그렇다 해도 지금의 고초는 과거와 비할 바는 아니지.”

현대에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미 다 겪었고 고민했었기 때문이다. 경호 팀장이 제일 먼저 그의 허리를 붙잡았고 이어 경호 팀원들이 둘로 나뉘어 나를 에워싸는 쪽과 범인을 제압하는 쪽으로 나누어지려 했다. 그것이 경호 팀장과 범인에겐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 범인이 잡혔다고 다시 한숨을 놓는 순간 내 목줄을 노린 마지막 공격이 이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까스로 피하는 척하며 매서운 주먹을 날려줄 준비를 마쳤다. 아마 오늘의 사건은 대선 기간 내내 회자 될 것이 확실했다.

생각은 길었지만 실제로는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때 아기를 가슴에 안은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제야 반응한 것인지도 몰랐다. 무고한 시민을 공격할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범인은 이미 마지막 일격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느닷없이 아기 엄마가 방향을 가로막자 무의식적으로 벤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았다. 내가 아기 엄마의 어깨를 잡아당기고 반 바퀴를 돌았다. 그녀와 내가 있던 자리가 뒤바뀐 것이다. 이어 등이 화끈해졌다. 면도날이 등을 종단했기 때문이다. 범인은 뜻밖의 기회를 잡았고 면도날로 다시 목을 노리려고 했지만, 뒤에서 누가 옷깃을 강하게 잡아당기자 허공으로 잠시 솟구치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기절했다.

은근히 방해를 일삼던 경호 팀장을 제치고 경호 팀원 중 한 명이 범인의 옷깃을 가까스로 잡은 것이다. 나는 아기 엄마가 무사한지를 묻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듯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경호로 할당된 사복 경찰은 모두 15명, 그중 경호 팀장 라인에 속한 인원 외에 지원해서 오게 된 경찰도 당연히 있었다. 대게는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도 출세할 것을 고려해서 자원하게 되는데 여당 후보나 제1야당 후보에게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제3의 후보쯤 되면 당선 가능성이 작으므로 그쪽으로 배치되는 것을 시간 낭비로 여겼다. 좌천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원했다는 것은 대게 지지자라는 뜻이었다. 경호 팀장처럼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보좌관이 급히 다가와 턱과 등에 입은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쓰러진 범인은 이중삼중의 감시하에 끌려갔다. 응급차도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에 도착했다.

응급차에 올라타자 플래시가 터졌다. 아기 엄마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미소와 함께 엄지를 추켜세워주고 응급차에 눕는 장면은 누가 생각해도 특종 감이었다.

문이 닫혔고 응급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보좌관은 계속해서 내가 괜찮은지를 묻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감사하고 있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총기 자유화가 아닌 것을 말이야. 그래서 더더욱 핵무기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군. 총기 자유화론자의 논리를 따르긴 싫다고.”

상세가 위중한 마당에 농담할 기분이냐고 보좌관이 쏘아붙였지만 ‘후보님다운 대답이군요.’라며 선선히 동의했다. 마음이 풀려서였을까? 아니면 피를 흘려서였을까? 나는 어느덧 잠에 빠졌다.

*

우여곡절 끝에 별무반이 공식적으로 출병하기 전 늦은 밤, 일전에 탐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접촉한 적이 있던 예빈경 강보와 해창 당집의 심방이 나를 찾아왔다.

둘의 방문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나는 그들의 방문 목적이 뭘까를 예상하면서 맞아들였다.

전에 보았을 때보다 주름살이 늘어난 심방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마마가 인두(人痘)가 되었구나.”

의미를 곱씹으면 칭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공경을 나타냈다. 그녀는 나의 진로에 나름 한 획을 그어준 인물이었다.

마마는 천연두를 가리키고 인두는 천연두를 치료하려는 방법을 가리킨다. 천연두 환자에게서 시료를 얻어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접종해 면역을 얻게 하는 것이다. 소에게서 항체를 얻어내는 우두법이 나오기 전에 알음알음 쓰인 방법이기도 했다.

“두신(痘神, 마마)은 오면 반갑기보다 두려운 존재이고, 공경하기는 하나,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 예전 저를 처음 만났을 때 해주셨던 말입니다.”

그녀 역시 기억이 나는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어 말했다.

“사람은 참을 수 없이 불안하면 몰입경(沒入境)에 든다. 나를 이해시킬 이유를 만들기 위함이다. 원래 가진 습관이나 행동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데 그 습관과 행동으로 낳은 결과이면서 때때로 자신이 뜻대로 한 일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자에게 귀신이 달려든다.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을 때야 후회하게 된다고도 말씀하셨지요.”

“용맹한 자에게 어질기를 부탁한 것일 뿐.”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는 깨닫고 있었다. 그것이 그토록 쉬었다면 이 세상에 독재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심방이 다시 입을 열었다.

“힘 있는 자가 갈림길을 만나게 되면 어느 곳을 선택해도 상관없다. 어떤 난관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 과정에서 길이 망가질 수도 있겠지. 뒤를 쫓는 누군가는 그 길이 원래부터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마는 본래 그러한 존재니까. 인두가 된 마마는 후에 이 길을 걸을 사람을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길도 나중엔 다 필요했던 길이 된다는 것을, 넓은 길이든 좁은 길이든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심방은 영혼을 울릴 줄 알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아쉬네가 서방의 심방이라 치면 그녀와 영혼의 그릇에서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을 느꼈다.

“부처를 제외하고 고려에서 숭배하는 신은 두 분이 있다. 이름을 댈 수 있겠느냐?”

불교 국가인 고려에서 따로 숭배하는 신이 두 명이나 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녀가 이어 이름을 말하자 나는 무릎을 쳤다.

“성황신과 토지신이니라. 이 중 신격이 높은 신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성황신입니다.”

고민할 문제는 아니어서 바로 대답했다. 고려 시대부터 각 고을의 수령과 향리가 관내의 성황신을 관리하고 제사하도록 제도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엔 불필요한 미신으로 간주하여 민간 신앙으로 격하되었지만,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의 존재는 민간에선 종교적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낭과 성황은 서로 다른 뜻이었고 조선 시대에 들어 혼용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서낭이 본래 우리나라에 존재했으며 나무와 돌의 결합으로 성역을 나타내는 유목민족의 그것과 흡사하다면, 중국에서 전래한 성황은 성읍을 수호하기 위한 수호신에 가깝다. 중국에서 성황이 보편화 한 시기가 요와 금에 시달리던 송나라 시대 것을 생각하면 고려도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성황을 관에서 모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대답이 틀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성황신과 토지신은 본래 하나이다.”

토지신 중에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성읍을 수호하는 신이 성황신이니 하나라는 설명은 맞다. 심방의 질문은 신격이 높은 신을 묻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성황신이 정답이어야 한다. 그러나 앞선 질문을 보면 신이 두 명이라고 했다. 성황신이 넓은 의미에선 토지신에 속하니 굳이 둘로 나눠 따로따로 숭배되는 것처럼 말할 이유는 없다.

“성황신의 복장을 아느냐?”

“그야 관복을 입고……. 아!”

나는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깨달았다.

성황신은 중국에서 전래했고 송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송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문인 정치를 지향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성읍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그 당시 지방 관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 토지신은 관복을 입고 있던가? 농사를 짓는 노인 모습에 가깝다.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 다가가기 쉬운 친근한 모습이다.

“나라와 관리는 관복 입은 중년의 성황신을 모시고, 백성은 허름한 농민 차림의 늙은 토지신을 모신다. 그러하니 그 두 신이 같다고 할 수 있겠느냐?”

고려 안에서, 아니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그리고 해법을 찾기 어려운 사회 문제를 심방은 지적한 것이다. 나라의 번영이 백성의 번영과 연결되는가? 나는 심방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성황을 찾는 것이 아니라 토지신을 불렀음을 떠올렸다. 당연히 백성과 함께하는 것, 그런 마음의 습관이었을 것이다.

별무반이 여진과 손잡아 금나라를 정벌한들 백성의 삶은 얼마나 나아질 것인가? 만세를 부르면서 만세를 불러야 할 이유에 정작 자신들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불행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과거에 나는 작은 소망이 큰 소망을 이룬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대의엔 희생이 따른다며 백성을 외면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대의인가?

심방이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휘영청 밝은 달이 제법 너른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춤을 추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고루고루서낭 마루마루서낭 산을 타던 서낭 골을 타던 서낭 동남서북서낭 길 위에 서낭 길 아래 서낭 수살서낭 남경서낭 북경서낭 사신서낭 행차서낭 남서낭 여서낭 수풀서낭 덤불덤불서낭 너울너울 서낭 받아날제 감기고뿔서낭 몸살서낭 걸립서낭 열기행차 서낭님들 서낭에 길을 열어 상산부군 안암 받아 우 높은 서낭 좌 높은 서낭 산에 가면 산신덕 입고 동서사방 길 재수주고 물에 가면 용궁 소망주어 어마대길 길진 잡아 만리용마 낚아타고 뜬 귀는 소렴하소사” (출처 :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편, 2009. 11. 12., 국립민속박물관)

우리나라 전통의 서낭신은 비단 지역의 수호신만이 아니라 모든 일의 문과 길을 열어 나쁜 액을 막아주는 신이기도 했다. 달빛에 몸을 맡긴 심방은 내가 부딪칠 모든 일의 문과 길을 열어 나쁜 액을 막아주기 위한 춤에 혼신을 쏟아부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그녀의 춤에서 나는 선지교에서 자매가 추었던 춤이 떠올랐다.

-묘족은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어요. 보름 달빛 아래 단풍나무에서 노생으로 연주하며 춤을 추면 앞으로의 일을 무사기원 할 수 있데요.

몽환적인 환상으로 가득한 자매의 춤을 가리키며 이소가 했던 말이었다. 당시 자매와 지금의 심방이 비록 다른 마음으로 춤을 췄겠지만 뜻하는 바는 어찌도 이리 같단 말인가.

대체 내가 무엇이라고.

나도 모르는 사이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감정은 눈사태처럼 크게 일었고 그에 비례해 몸이 들썩였다. 그때 내 눈물을 닦아주는 이가 있었다. 어느새 춤과 노래를 마친 심방이었다.

“누구나 극락정토로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죽어서야 갈 수 있다고 하면 누구나 선뜻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

내 볼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손은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부터 극락정토를 함께 만들자고 하면 선뜻 나설 사람 역시 드물다. 이미 존재하는 극락정토에 가고 싶어 하지. 그만큼 극락정토를 가는 것도, 만들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것이 노구를 이끌고 기꺼이 천릿길을 온 이유이다.”

위정자는 백성에게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정복을 하고 노동력을 갈취하며 재산을 빼앗는다. 정작 그 일이 끝나고 나면 그것은 백성을 위한 일이라기보다 위정자의 맹목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백성은 그 사실을 알기 어렵다. 이것이 국가를 위하고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에 기꺼이 발을 벗고 나서면 어느새 주제와 분수라는 진창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위정자들은 언제나 백성을 위한 극락정토를 부르짖지만, 결과적으로 위정자들의 극락정토가 되어버린다.

고려가 제국으로 거듭나 천하 열강에 꼽히는 선례를 만드는 것, 양나라가 대양으로 진출하여 서구의 대항해 시대와 경쟁하는 것, 모두 시대를 흔드는 사건들이다. 그러한 변혁에서 뒤처지는 사람도, 소외되는 사람도 분명히 나올 것이다. 심방은 그들이야말로 사회의 근간이며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알려준 것이다.

한때 민족사관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연히 일제의 만행이 민족의 불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이란 테두리에 우리 모두를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정말 모두가 불행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라를 되찾고 민족은 행복해졌는가? 민족의 뜻이 하나라면 나라는 왜 다시 두 조각으로 갈라져야 했는가? 정말 민족의 뜻인가, 아니면 민족의 소리를 가장한 위정자들의 욕심이었나?

언젠가 잃어버린 땅 간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는 열강이 팽창주의를 채택한 시기에 적용했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위상과 정기를 되찾고자? 미래 번영을 위해서? 그 앞에 나라와 민족이란 단어가 붙으면 마법처럼 우리가 꼭 이뤄내야 할 과업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것이 대다수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대게는 위정자의 치적으로 남게 된다. 그렇다고 그것을 이룰 기회가 있는데 하지 말자는 것인가?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면 공평하게 손을 써서는 결코 균형이 맞춰지지 않는다. 안과 밖을 경중을 두고 현명하게 살펴야 한다. 정말 죽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이상적인 일이다. 그래서 극락정토로 가는 길이다. 심방이 처음 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 작품 후기 ============================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심사숙고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견은 언제나 받아들이겠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미안하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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