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2 (31) 박인방증(博引旁證) =========================================================================
생각해보니 여기에 요시치카까지 신속을 약속하며 도움을 요청하면 탐라 사태로 위상이 떨어진 전라 토호들은 발 벗고 나설 것이다. 추락한 위상을 회복할 기회일 뿐만 아니라 교역을 통한 경제적 이익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곽여가 나를 향해 눈웃음을 보이는 것을 보니 고맙게 잘 받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
퍽!
달걀이 정확히 검정 양복 상의를 맞추며 깨졌다. 그러자 곁에 있던 경호 팀장이 황급하게 내 앞길을 가로막았고 보좌진 중 한 명이 손수건을 꺼내 닦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뿌리치고 달걀이 날아온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힘껏 추켜 올리며 외쳤다.
“주변국을 자극하는 미군은 철수하라!”
“핵 개발이 자주국방이다! 외세에 의존하는 매국노는 물러가라!”
“대마도는 우리 땅이다! 우리 땅을 구주사국에 팔아넘긴 매국노 이준경은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
경찰에서 파견된 경호인력은 그들이 다시 달걀 투척할 것을 대비해 막으려 다가갔다. 그 와중에 몸싸움이 일었다. 그리고 내 지지자 중 일부도 흥분된 기색으로 그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나는 모두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국민 여러분!”
우렁찬 목청은 모두의 이목을 나에게 쏠리도록 했다. 재밌는 기삿거리를 예감한 기자들은 벌써 카메라를 그들과 내가 대비되도록 구도를 잡고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은 며칠 전 첫 TV 합동 토론의 여파였다. 나는 이미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주국방입니까? 아닙니까?”
내 질문에 ‘자주국방’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만약 내가 아는 역사였다면 그리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도 또한 존재했다. 예컨대 북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함경도와 평안도, 연해주까지 포함된 특별자치도가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불안한 이웃과 접한 불가피성 때문이었다.
북으론 전통의 강호 러시아가 버티고 있고, 서쪽으론 양자강 이북의 중국을 석권한 북중민국이 있다. 동쪽으론 홋카이도와 혼슈를 차지한 일본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핵보유국이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은 하나였다가 둘이 되었다가 때론 여럿이 되었다가도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나가 되는 과정은 그리 길지 못했다. 지역적인 특색이 너무나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유럽인을 받아들인 중국 남부의 개방성은 아시아에서도 이질적으로 손꼽혔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고려 중기에 규슈와 시코쿠가 불교 국가를 주창하며 구주사국을 이룬 이후 수많은 영웅호걸이 하나 된 일본을 외치며 통일 전쟁을 벌였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하나로 묶기에는 문화나 습속이 이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일찌감치 외국인을 받아들여 대양 진출을 시도한 양나라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몇 해 전부터 기억났지만 나는 조선 시대 선조의 스승이기도 했다. 일본을 통일하는 데 성공한 히데요시가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대외 원정을 기획했지만, 미리 준비한 덕에 막아낼 수 있었다. 오히려 규슈와 대마도를 조선에 편입시키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30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사이 조선의 성리학이 규슈에 퍼졌고 일본과의 이질감은 더욱 커졌다. 그것이 근대에 이르러 독립을 위한 사쓰마-조슈 동맹으로 나타났고, 실제로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몽골은 오히려 내가 알고 있던 역사보다 커졌다. 변한 역사를 거치며 내몽골과 만주 일부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요나라를 정벌한 후 영토를 나누는 과정에서 고려가 아구다에게 상당한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고려가 원하는 것은 황제라는 명분이었고 아구다는 실리를 택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고려 연방은? 대한민국보다 약해졌는가? 아니면 강해졌는가?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별무반 출정식에서 왕권 강화를 위한 화려한 쇼의 마지막에 곽여가 나를 향해 던진 눈웃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핵 없이는 자주국방도 없다!”
그들이 외쳤다. 우리는 주변국 중 유일하게 핵을 가지지 않은 국가였고 미군을 받아들인 두 국가 중 하나였다. 다른 한 곳은 일본이었지만 일본과 우리는 사정이 달랐다. 그것은 고려부터 이어진 외교 정책에서 기인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진취적인 기상을 펼쳐 대양으로 나갔고 세계를 누볐습니다. 많은 나라를 만났고 대게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를 했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고 그 이해는 진실한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의 미국은 초강대국까진 아니었다. 아시아의 적극적인 대양 진출 노력이 유럽까지 알려지면서 대항해 시대가 1세기 이상 빨리 열렸고 그중 가장 상징적인 아메리카 발견은 동부와 서부에서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을 정도다. 내가 아는 캐나다와 미국이 북아메리카 전부였다면 지금은 10여 개 국가가 존재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국가가 미국 본래 국토의 70% 정도를 차지한 현 미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외 국가들은 아시아계와 인디언들이 결합하였거나 인디언 단독, 혹은 영국, 프랑스계 식민지가 독립하면서 국가로 바뀐 경우였다.
“멀리 있는 그들과 신의를 쌓기 위해선 때론 그들의 적과 함께 싸울 필요도 있었습니다. 교차 주둔은 비록 미미한 전력에 불과했지만, 서류에 적힌 조약문보다 강한 신뢰감을 부여했습니다.”
일본이 주변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미국을 군사 파트너로 삼아 미·일 연합사령부를 구성했다면 우리는 교차 주둔이었다. 워싱턴 인근에 자리한 우리 군은 극히 미미한 전력이었지만 미국이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는 우방을 돕기 위해 참전한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그러한 교차 주둔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었다. 유럽연합, 이집트, 이란, 아프가니스탄, 인도, 브라질 같은 나라들도 포함이었다. 그러니 예전 역사의 한미연합사령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우리의 힘이 강할수록 국지적인 분쟁을 억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교차 주둔한 대부분 국가가 핵무장 국가였다.
핵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을 외치는 사람들에겐 우리가 약소국이 아님에도 핵우산 기조를 굳이 선택하는 것은 점점 폐쇄화, 보수화되어가는 국제 정세를 따졌을 때 반대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그들은 조선 시대에 잠시 대마도와 구주를 차지했던 근거를 들어 구주사국의 실질 지배하에 있는 대마도를 우리 것이라고 외쳤다. 나는 토론회에서 그렇다면 간도와 만주 일부를 차지한 우리 역시 북중민국과 몽골에게 돌려줘야 하느냐 대마도 문제는 이쯤에서 놓아줘야 한다고 말했으니 자칭 강성 애국 보수들의 분노를 자아낸 것은 당연하였다.
“핵무기가 없다고 우리는 약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뿐이 아니라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서 기울였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남들이 손쉽게 핵을 무기화했을 때,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미사일과 요격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가장 뛰어난 잠수함 기술도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그런 기술의 집약체들이 하나하나 배치될 때마다 러시아와 북중민국은 위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손쉽게 얻은 강한 무기로 수십 년간 재미를 본 그들이 안주해 있는 사이 우리는 강한 방패를 얻었고, 재래식 전력은 미국과 러시아, 북중민국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20개국의 군대야말로 훌륭한 핵 억지력입니다. 세계화 시대에서 자주국방은 도둑으로부터 내 집만을 지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 이웃과 힘을 합쳐 마을을 지키는 것이 자주국방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물론 반대론자 입장에선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은 대중을 대하는 태도를 본능적으로 익히게 하였다.
“대마도 문제에 대해서도 여기서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90년대 맺은 신어업협정이 대마도를 중간수역에 포함하면서 일부에서 줄기차게 주장한 대마도 영유권이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니냐고 확대하여 해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결코 아닙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반대 시위자들은 피켓을 다시 높이 들고 배신자, 매국노를 외쳤다. 예전 역사의 독도를 생각하면 정 반대되는 상황이라 참으로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긴 했다. 구주사국에서 나를 진정한 고려인이라 칭하는 것도 조선 시대와 달리 화기애애했던 때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모든 해상 영토가 12해리 영해를 가지지만 그렇다고 모든 해상 영토가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과 아이슬란드가 100년이 넘도록 배타적 경제수역을 놓고 다투는 것을 보십시오. 솔직히 대마도가 중간수역이 된 것은 우리나라와 구주사국 간의 실리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무인도도 아니고 수만 명이 거주하는 대마도를 중간수역에 놓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까? 독도 분쟁도 심각한데 울릉도가 일본과 중간수역이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단언컨대 여기 모인 대부분의 시민분은 결사반대를 외치며 피켓을 들 것이라 확신합니다.”
독도와 대마도는 경우가 다르다며 반대 시위자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내 주장에 호응해주는 반응이 더 컸다. 구주사국에 가면 간간이 우리나라 말 흔적이 남아 있거나 일부 쓰는 곳이 남아 있을 정도였기에 일본에 비하면 우호적이었다. 그러니 중간수역은 독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맺은 그것에 비해 평화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마도를 얻었다고 칩시다. 그래서 그곳에서부터 12해리 영해를 주장하고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할 셈입니까? 그렇게 구주까지 닿으면 구주도 본래 우리 땅이었다고 주장할 셈입니까? 필연적으로 우리는 구주사국과 영국, 아일랜드처럼 싸우게 되겠지요. 구주사국은 핵보유국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핵을 갖자고 하는 것이 헌법에 명시된 평화 국가로 가는 길입니까?”
연이어 질문이 쏟아지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피켓을 든 무리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잠자코 있었기 때문이다.
“중화민국에서 고대에 자신들이 만주와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우리나라가 자신들 땅이라고 주장합니까? 몽골이 과거 요가 발해를 포함한 강토를 지녔다고 간도와 사할린, 연해주를 달라고 합니까? 일부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생각은 다르나 그런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틀림과 다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내 발언이 마무리되자 기자들은 질문을 던졌다. 며칠 동안, 아니 대선 레이스 내내 이 주제가 다뤄질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마 그것만 있을까? 설령 대선에서 내가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진보를 위한 화두를 충분히 던져 놓을 셈이었다. 성장기에서 정체기로 접어드는 우리나라엔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뒤를 보지 않고 달리던 것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리고 미처 따라오지 못한 인간다운 것, 사회적인 것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나는 기꺼이 나를 불쏘시개로 사용할 작정이었다.
“매국노! 개소리하지 마라!”
피켓을 든 무리와는 다르게 지지자들 틈에 끼어 있던 중년 남성이 30cm 정도 길이의 주방용 칼을 품에서 꺼내 내게 덤벼들었다. 내 발언이 끝나고 난 후 다들 긴장감이 풀린 틈을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가만히 지나치지 않고 소신 발언을 하리라 예측한 것이 틀림없었다.
경호 팀도 아차 했을 것이다. 요인 테러의 위협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우리나라가 아닌가? 나는 그를 본능적인 몸놀림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여유 있게 생각했고, 차라리 슬쩍 맞아주는 것이 어떨까도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살기 어린 눈빛과 마주치자 평범한 중년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화로운 시대에 너무 적응된 것일까? 인파에 싸여 피할 틈이 적다는 것도 한몫했다. 나는 피하려고 최대한 몸을 비틀었지만, 기어코 어깨에 칼을 맞았다. 그것도 최선이었다. 상대는 분명 생사를 도외시하고 내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찔했다.
아무리 몸이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몸의 내구성까지 좋아진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고통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제압하라는 경호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119를 호출하는 보좌관의 목소리도 들렸다.
대체 어떤 놈일까? 프로를 보냈다면 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어그러졌다. 그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건 실패하면 내겐 전화위복이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이런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조력자가 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다. 보좌관 아니면 경찰에서 파견한 경호 팀.
제압되었다고 믿었던 범인이 갑자기 내게 달려들었다. 그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수갑을 채우던 경호 팀장의 손놀림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쓰러져서 기절한 시늉을 하자니 당장 내가 죽을 판이었다. 칼을 빼앗긴 범인의 손엔 어느새 면도칼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