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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51화 (251/257)

00251  (31) 박인방증(博引旁證)  =========================================================================

외방을 돌며 야인 기질이 밴 김한충이야 그렇다고 쳐도 오랫동안 조정의 중신이자 신라 귀족들의 대표격이었던 김인존이 이런 발언을 하며 나섰다는 것은 모두에게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김인존은 별무반을 반대했으며, 동북9성을 쌓은 직후에도 실익이 없다며 여진에게 돌려줄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송이나 요와 반목할 것이 뻔한 칭제를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선다? 보수적인 그의 생각을 바꿔줄 충격적인 사건이 없고서는 지금의 이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대국은 지금껏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었소이다. 은주 시대를 거쳐, 최초의 제국인 진이 생겼고, 한이 생겼으며, 민이 생겼소이다. 당이 생겼고, 작금엔 송과 요로 양분되었지요.”

고요했다. 김인존은 김한충보다 훨씬 거물이었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김인존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앞장선 것이 틀림없었다.

“중신들에게 묻노니, 고려 사람이 왜 남의 나라를 지성으로 여겨왔소이까?”

그 질문은 나를 격동시켰다.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가슴이 뛰었던 것은 나의 노력 중 일부가 보상받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내가 던질 수 있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지금의 고려를 사는 이들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의미가 큰 것이다.

“그것은 약육강식의 천하에서 소국이 살아남는 생존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김부식이 결연한 표정으로 나섰다. 아무리 김인존이라고 해도 자신과 일말의 상의 없이 중심들의 생각을 정해진 결론으로 이끌려는 것을 경계하려는 몸짓이었다.

“중국은 저 서역의 대국들도 인정했던 유일무이한 거대 제국이었소이다. 이것은 진나라 이후로 불변한 주제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소. 그랬기에 신라는 당과 손을 잡아 삼한을 차지했지요.”

“당의 도움을 받았으나 신라가 주도하여 삼한 일통을 이룬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 지금 처후(處厚, 김인존의 자)께선 선조의 업적마저 부정하려 하십니까?”

김부식이 신라 귀족인 당신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말했지만 김인존은 이미 그 정도 소리는 들을 것을 예상했는지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대신 김한충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나당 전쟁은 왜 생겼소? 대국에 대한 사대(事大)가 정말 존경스러워서가 아니라 이길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외교 방법이란 것을 오히려 방증한 것이 아니요?”

나는 통쾌함 마저 느꼈다. 그렇다. 지금은 사대주의가 하나의 진리처럼 자리매김한 조선 시대가 아니었다.

김한충은 동북면병마사를 거치면서 야율대석의 음모와 직접 맞닥뜨린 사람이었고, 송 혹은 요와의 사대가 과연 고려가 계속 끌고 가야 할 외교정책인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통일 신라 시대도 그렇고 고려도 그렇고 사대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피해를 덜 입기 위한 외교 정책 정도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런 인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칭제를 공식화함으로써 자주 국가를 천명했다.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대주의가 무작정 악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도 국제표준을 외치며 선진국의 사례를 받아들이는 것은 흔한 일이고, 주한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도 피해를 덜 입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대주의는 국가전략의 하나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굴복당했을 때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은 꿈의 나라이고 우리나라는 사람이 살지 못할 국가라는 식의 비하하는 논리로 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거야말로 사대주의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이 분열되어 제대로 된 통일 제국이 없고, 북방의 이민족 역시 요와 금으로 대결할 찰나의 지금 시점이야말로 고려가 도약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도약이 그저 지금 당장 유리한 시기라서 이익을 얻었다는 관점이 아니라 이제 우리도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는다는 관점에서 가야만 장기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한 번이라도 해보았다는 것과 못해 본 것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니 말이다.

사실 조선의 약화를 따지고 보면 모순된 것이 많다. 사대주의가 생존을 위해 강국에 조아리는 것이라면 청이 명을 압도할 때부터는 응당 청으로 머리를 조아렸어야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족과 정신세계를 공유한다는 소중화 사상의 태동은 그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가짜 유학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일지도 모른다. 청보다 약한 명을 따른다는 것은 사대주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하니 조선의 멸망은 차라리 사대주의를 철저히 하지 못한 것을 탓할 수도 있다. 청에게 사대를 하겠다는 마음을 품었을 때쯤엔 이미 세상은 서방 열강의 시대가 도래했으니까.

가끔 일본 강점기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조선의 엉터리 사대주의가 3.1만세 운동마저도 일제 사학자들에게 빌미를 주는 논리로 사용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 사대주의가 미국 사대주의로 갈아탄 것뿐이라며 자주성이라곤 원래부터 없는 민족이라고 헐뜯는 것을 들을 때 속에서 천불이 나곤 했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런 생각이 자주성을 회복하는 길로 연결되도록 스스로 고려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했다. 고려인이 아닌 양나라 인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입장이었다면 앞장서서 고려를 뒤엎고 몽골 제국과 같은 정복의 역사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서린 역사를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대인의 관점에서다. 지금 이들은 조선 시대처럼 소중화를 겪지도 않았고, 일제 강점기를 통해 역사를 왜곡되게 배운 것도 아니다.

벽란도로 대변되는 상인의 시대가 활발히 열릴 수 있었던 것은 꽉 막히지 않은 실리적인 관점에서 기인한다. 그 자유로움이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거치면서 점차 경색되기 시작하여 보수적인 문인 파벌을 만들었다. 그것이 무인의 난으로 이어져 고려의 국력을 소진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사상 최강의 외적인 몽골군의 침입마저 겪게 된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서 고려가 건재했다면? 거란의 수십만 대군이 수시로 쳐들어오던 때와 비교하면 몽골군이 특별하게 강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아니 기병의 숫자로만 따지면 거란의 전력이 더 막강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몇 차례나 막아냈다.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히면서 말이다. 송이 그러한 승리에 일조했는가? 단 하나도 송이 개입한 바가 없었다. 우리 스스로 투쟁해서 승리를 쟁취했다. 그러하니 지금 이들에게 송에 대한 부채의식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온갖 선진문물을 전해 받으면서 느낀 동경이라면 모를까.

“민간에 십팔자득국(十八子得國)이란 말이 떠도는 것을 들은 사람이 있소?”

김한충의 반문에 정지상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답이 튀어나왔다.

“십팔자(十八子) 성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래서 인주 이가가 그리도…….”

정지상은 실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가 하지 못한 말을 여기 있는 신하들은 다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러 이자겸이 뿌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도참설(圖讖說, 예언)처럼 십팔자 성씨, 즉, 이씨가 왕씨에 이어 나라를 얻는다는 말이 떠돌아다녔다. 그것이 이자겸 개인이 했든지 아니면 그냥 돈 것인지는 몰라도 이자겸의 야심과 정확하게 부합했다. 생각해보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 예언이 또 다른 의미에서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추김을 받은 이자겸이 결국 오월을 건국하지 않았는가?

“항주에 인주 이가의 오월이 세워졌으니 도참이 헛것은 아니었던 셈이오.”

김한충의 말에 호응하듯 지금껏 구경만 하던 곽여가 앞으로 나서며 한 폭의 비단 서신을 펼쳐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회해왕(淮海王)이 삼가 부모국 고려에 신속(臣屬)의 예를 올리나이다.”

그러자 잠시 고요하던 신하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회해왕은 이자겸이 오월을 건국하고 만든 왕호였다. 회는 양주의 젖줄인 회수를 뜻하고, 해는 황해를 말하니 오월의 영역이 그와 같다고 선포한 것과 같았다. 또한, 회해라는 뜻 자체가 강이나 바다처럼 넓은 성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하니 굉장히 신중하게 지은 왕호라는 것이 느껴졌다.

곽여는 첫 문장만을 읽고 서신을 다시 말았다. 그리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멍석 깔아주었으니 이제 다음 출연자는 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문득 광해군을 떠올렸다. 실록을 통해 알게 된 광해군은 ‘조선은 그놈의 명분과 체면을 앞세워 큰소리만 치다가 나랏일을 망칠 것이다. 고려처럼 실리를 따져야 나라가 보전될 것인데…….’라며 가슴을 칠 정도로 조선이 꽉 막힌 나라임을 증명했다.

지금 송과 요가 존재하듯 조선 중기에도 명과 청이 동시에 존재했다. 상황 자체는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광해군은 고려의 서희처럼만 하면 강대국끼리 부딪치는 격동기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보았다. 소중화와 재조지은을 들먹이며 진짜 유학의 가르침이 뭔지 모르는 꽉 막힌 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양왕이 삼가 부마로서 고려에 신속의 예를 올리나이다.”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예종은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탐라 성주(星主) 고조기(高兆基)가 고려에 신속의 예를 올리나이다.”

나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등장이라 내심 놀라웠다. 그리고 이제야 예종과 곽여가 심혈을 짠 행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그 의도를 가지고 움직였다고 해도 도무지 이렇게 완벽한 명분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치밀했다.

약관의 청년인 고조기가 깊게 읍을 한 후 나를 보며 오랜만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화답했지만 절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조기는 바로 고당유였기 때문이다. 내가 탐라의 음모를 분쇄하는 과정에서 탐라 성주인 고유가 죽었으니 그 뒤를 아들인 고당유가 물려받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탐라의 쇄신을 위해 이름을 고조기로 바꾼 후 고려에 귀속을 요청하고 더불어 정식으로 고려에서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을 것이란 것까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역사대로라면 올해 고조기는 과거를 치르고 당당히 급제하여 조정에 진출하게 된다. 내 추측으로는 곽여가 고조기의 과거를 만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자리를 위해.

언제나처럼 오건에 학창의 차림인 곽여는 학의 깃털로 만들어진 백우선까지 펼치자 신선다운 풍모가 더욱 돋보였다.

“일찍이 중원에 소국이 난립하던 시절에도 없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복건의 양과 항주의 오월이 신속을 청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신속을 거부했던 탐라마저 기꺼이 제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오월의 공주가 제국의 황비요, 양의 군왕이 제국의 부마올시다. 탐라의 신임 성주는 기꺼이 제국 조정으로 출사하고자 귀한 지체(肢體)를 낮추고 과거를 보길 청원하였습니다.”

곽여가 백우산을 접어 손뼉에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삼한의 역대 왕조 중 그러한 성과를 거둔 이가 누가 있었습니까?”

김부식도 정지상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떤 말도 사족에 불과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외통수였다. 서경과 개경의 논란은 제국으로 나가느냐 아니냐에 비하면 너무나 미미했으니까 말이다.

결국, 내부 정쟁이 외부로 돌려지는 격이다. 요와 송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느냐 혹은 버틸 수 있느냐의 대외 투쟁인 셈이다. 여기 동참하게 되면 왕권 강화는 필연적이다.

예종이 일어섰다.

“짐이 이르노니 신속을 기꺼이 여겨 구제(舊制)를 허락하노라.”

신하들이 미처 의견을 내기도 전에 무 자르듯 끊어버리는 예종이었다. 구제는 옛날 제도를 의미하는데 풍습 혹은 고유의 문화를 가리키기도 한다. 즉, 제국으로 나가기 위한 명분을 줘서 고마우니 제도와 문화, 풍습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하긴 이 정도 약속이 없고서야 어찌 이자겸이 순순히 신속을 청할까? 어부지리로 건국한 오월이 송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인접한 나와 바로 바다 건너 고려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나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이 위대한 공업(功業)은 사실 시작에 불과합니다. 대소신료의 합심이 없다면 그저 공염불에 그칠 따름이지요. 분명한 것은 제국의 도성을 논하기엔 이르다는 것뿐입니다. 서경이 될지 개경이 될지 남경이 될지 동경이 될지,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 될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말입니까?”

그제야 곽여가 무슨 말을 꺼낼 것인지 짐작이 가는 김부식과 정지상이었다. 예상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폐하께옵선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분신쇄골 하는 충신의 간언을 그대로 흘리실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다들 이제는 어느 정도 짐작했음에도 극도로 표정들이 얼어붙었다. 쉽게 말해 경쟁을 붙이겠다는 말이었다. 별무반의 지원에 심드렁하던 자들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차기 권력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야 하는 과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교통사고는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걱정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6월1일부로 오프라인서점 및 온라인 서점에 삼국지 같은 꿈을 꾸다가 모두 입점되었습니다. 광화문 교보와 강남 교보엔 출시기념으로 따로 광고판과 전용 매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차기 종이책 출간작은 불꽃처럼이 될 예정입니다. 고려편은 7월 이전에 완결지을 예정입니다. 차기 연재작은 초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써보기 위해 삼국지 마행처우역거가 될 것입니다. 고려편도 현재 틈틈이 지적받은 내용을 수정하면서 이북으로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략 12권 선에서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다음 글도 빠르게 들고 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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