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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50화 (250/257)

00250  (31) 박인방증(博引旁證)  =========================================================================

그러나 모든 것은 순서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어떤 행동보다 한 사람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채왕 조사와 그를 보좌하던 장돈이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면서 구법당의 인재들이 우리에게 오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송의 중흥을 믿는 자들 역시 상당수 존재했다.

“증포 대인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급히 달려온 내관의 외침에 대전은 탄식이 흘렀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워낙 노령이었는지라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의 파장을 미리 생각한 사람은 은은한 흥분감마저 드는 듯했다. 채왕 조사와 장돈이 사망한 이후 우리 쪽으로 합류한 임백우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왕안석 대인의 신정(新政)에 참여했던 자 중 유일하게 송에 남은 분이 증포 대인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채경이 눈치를 보던 증포 대인이 돌아가셨고, 재상에도 다시 오른 이상 눈엣가시들을 모두 쳐내고 입맛에 맞는 개혁을 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증포가 사망하면서 제어할 사람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자 채경은 자신의 사람들로 조정을 채우기 시작한다. 항주의 상실로 기반을 잃어버린 동관도 감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그러나 시세판단도 있었던 것 같다. 백성의 원성을 줄이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무인 자질이 있는 자들을 장원급제한 문관에 따르는 대접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권을 잡은 이상 영세토록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이 때론 국가의 존속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지방을 전전하는 무관이 자신을 위협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또한, 증포의 죽음을 애도하며 각 주에 죄수를 사면하는 조치와 빈민을 위한 구호물자도 풀었으니 당분간 송의 민심은 진정 기미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권력 재편과정에서 떨어져나온 선비들을 얻는다. 장상영이나 장뢰 같은 현자들이 내게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임관 동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양나라는 작은 나라에 불과했지만, 오랫동안 지식인의 유출이 적지 않았기에 관료로 쓸만한 이가 현저히 적은 것이 문제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이번 증포의 죽음으로 마지막 열쇠를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양나라의 안정은 그 어떤 문제보다도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새로이 합류하는 이들에게 선보일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나의 이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다. 왕이 해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또 하나의 중국이 아니라, 세계 속의 양나라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려로 건너갔다. 여진 정벌을 구실로 요를 치기 위한 군대가 순천관(順天館)의 남문에 열병한 후 제사를 지낼 것이란 소식을 접해서다. 그 자리는 지휘관들의 인선이 정해질 것이니 빠질 수 없는 자리였다.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순천관은 대외 사신들이 머물던 곳이다. 그런 곳에 군대를 열병하여 출정 제사를 지낸다? 예종의 호기를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종과 문무백관이 빠짐없이 참여한 행사였는지라 예종 즉위 이후 최대 행사라고 할 수 있었다. 장례가 끝나고 권력 이양이 순조롭게 되었다는 것을 천하에 과시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읽혔다.

중신과 군대 사기를 높이기 위해 준비한 은과 베, 술과 음식이 산처럼 쌓인 것도 그중 하나였다.

“부원수에 윤관, 오연총을 임명한다. 원수로는…….”

예종의 어명을 대신해서 읽어내려가던 내관이 잠시 읽기를 멈추었다. 아마도 예종에게 사전에 받은 명령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예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내가 예종의 매제가 되리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고, 원수가 되리라는 것도 다들 짐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발표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니 예종의 행동은 다분히 의식적인 것이었다.

나 역시 일국의 왕이니 임명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도 그렇다. 나는 품에서 예종에게 받은 부월을 꺼내 힘껏 들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예종은 치켜든 나의 손을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기까지는 예상범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 나온 발표에 문무백관 일부가 대경하고 말았다.

“참지정사 김경용을 서경유수사로 보내 별무반을 뒷받침한다.”

일찍이 김경용의 궁술 실력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서경유수로 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는 경주 김문의 사람이었다. 개경파에 속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사람이 서경유수로 온다? 서경파에겐 안방을 빼앗기는 일과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좋은 날에 최대한 초를 치지 않으려던 정지상이 다급히 나섰다.

“폐하, 서경유수가 새롭게 부임하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작은 실정하나 없었던바, 어찌하여 새로이 임명하여 혼란을 주려 하십니까?”

출정하는 날에 서경유수를 교체한다는 것은 병법으로 봐서는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이미 전쟁을 대비하며 준비하던 사람과 갓 부임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할 테니까.

그런데도 굳이 김경용을 서경유수로 보내는 이유는 단점을 상쇄한다는 뜻일 것이다.

‘서경파를 견제하기 위해 이런 노골적인 수를 쓸 정도인가?’

북벌은 예종에게 있어 아버지 숙종부터 내려온 필생의 과업이다. 그것이 틀어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권력 보신에만 연연하는 것이 내가 아는 위인들의 단면이란 말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더 복잡한 이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종이 선선히 김경용을 서경유수로 임명할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동경유수사(경주)는 정지상으로 한다.”

정지상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종의 눈치만을 살피던 내관은 예종이 개의치 말고 어지를 읽어내려갈 것을 손짓하자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발표는 다시금 문무백관을 소란하게 만들었다.

“동경유수사에 정지상을?”

김부식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주면 개경파들에게 심장과도 같은 도시가 아닌가? 그렇다면 예종은 사이좋게 서로를 견제하라는 의도를 지닌 것인가? 예종의 뒤에 기립한 금문우객 곽여가 나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남경유수(서울)는 윤언이로 한다. 개성부사엔 한안인(韓安仁)으로 한다.”

어디선가 억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지추밀원사인 한안인이 개성부사로 임명된 것은 좌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었다. 북벌을 통해 고구려를 계승하길 원하는 서경파와 신라를 계승하고 있다는 의식이 선명한 개경파,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신진사대부라고 할 수 있었다.

윤언이는 정지상의 친우로 서경파에 속해있지만 아버지가 근왕파라 할 수 있는 윤관이라 정치색이 엷은 편에 속했다. 그를 남경에 박아두는 것은 당파를 떠나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건 개경파와 서경파가 서로의 심장을 내주고 근왕파가 중심을 잡는 인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 양쪽 다 이해득실을 빠르게 따지고 있을 것이다.

“안서대도호부사(황해 해주)를 김인존으로 한다. 동경의 판관은, 서경의 판관은, 남경의 판관은…….”

중앙 요직에 있던 자들이 다수 지방직으로 발령 나고 말았다. 좌천이니 모욕감을 느껴야 마땅하지만 그런 마음보다 파격적인 인사의 뜻이 확실하게 읽혔기에 어찌해야 할지 수군거림이 더해졌다.

탕평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였지만 중신들의 반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사였기에 공고한 왕권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생각했지만, 중신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서 다른 중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김인존이었다. 따지고 보면 개경파에 속하기 때문에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다들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돌이켜보건대…….”

김인존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오랫동안 과거 시험을 주관한 학자답게 학구적인 기품이 배어 나왔다.

“신은 덕이 보잘것없으나, 하늘이 평안을 내리시는 덕분에 나라가 복록을 누려왔습니다. 전쟁은 삼변(三邊, 중국 입장에서 흉노, 남월, 조선을 뜻하나 인접한 변방을 모두 포함한 의미로도 쓰임)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문궤(文軌, 문자와 수레바퀴의 폭이 같다 즉, 나라가 안정되어 있다는 의미)는 대국(송)을 넘어섰습니다.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와 사업은 반드시 대국을 본보기로 삼았으나 이제 아국이 본보기를 보여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하여 대청(大淸)의 잔치가 열렸으나 어찌 대국의 그것과 같겠습니까?”

대청은 태청(太淸)이라고도 하는데 송나라 조정의 서책을 모아둔 누각을 말한다. 그곳에서 잔치를 베풀고 동산에서 활 솜씨를 겨루는 여흥을 보이는 것을 대청의 잔치라고 불렀다. 군왕이 문무를 가진 이를 우대하고 재능있는 사람을 숭상하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였다.

김인존은 한마디로 예전엔 우리가 중국의 것을 모두 따라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피력하고 있는 셈이었다.

학문을 좋아하지만,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그가 대국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선언했으니 일부는 이에 동조했고 일부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때 또 다른 이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김한충이었다.

“신의 처는 알다시피 인효(仁孝, 문종의 시호) 대왕의 비첩 소생이었소이다. 하여 대성(臺省)에 들어가지는 못했지요.”

대성은 고려시대 어사대(御史臺)의 대관과 중서문하성의 성랑(省郎)을 합쳐 부르는 것이었다. 조선으로 치면 사헌부와 사간원을 합친 것으로 생각하면 쉽다. 궁내 감찰 업무가 있다 보니 왕실과 관련된 사람은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김한충은 그것을 먼저 설명한 것이다.

“하여 지방관을 돌기를 십수 성상이었소이다. 한때 요나라의 간계에 휘말려 야인 생활도 했지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니 보이는 것이 있더이다. 그래서 뜻이 맞는 지우들을 모아 왕사(곽여)를 찾아갔소.”

그러자 영문을 알겠다는 듯한 표정들이 여럿 보였다. 그중에는 한 방 먹은 듯한 정지상과 김부식이 가장 크게 시야에 들어왔다.

“광종께서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고려가 제국임을 선포하셨소이다. 개경은 황도가 되었고, 서경은 서도(西都)가 되었지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만세삼창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였소이다.”

그러했다. 고려는 이미 100년도 넘게 칭제하고 있는 국가였다. 그러나 광종 이후 자주적인 목소리는 작아졌고 고려 내에서만 칭제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예종은 대외적으로 고려가 제국임을 천명하고 싶은 소망을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폐하 만세! 고려 제국 만세!”

갑자기 김한충이 만세를 외치자 다들 얼떨떨한 듯했다. 그러나 김인존이 호응하며 같이 만세를 외치자 그를 추종하는 자들도 마지못해 손을 들어 외쳤다.

대다수가 분위기에 휩쓸려 만세 삼창을 하고 나자 김인존이 다시 나섰다.

“개경과 서경으로 남겠소이까? 아니면 황도가 되겠소이까? 김모는 황도가 어느 곳에 있던 황도라 외칠 수 있길 바라오. 그것이 고려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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