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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48화 (248/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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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박인방증(博引旁證)

사물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많은 예가 필요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려 연방의 심장인 수도, 서울. 그 한복판에 자리한 광화문 광장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여 단상에 자리한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 숨마저 조절하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단상에 오른 그는 보좌관들이 실수할까 싶어 설치해둔 프롬프터(연설문이 적힌 모니터)를 손수 멀찍이 치워 자신과 인파 간 걸리적 거리는 장애물이 없도록 했다. 일일이 시선을 맞춰본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마이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당원 동지를 비롯한 국민 여러분께 먼저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가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자 우레같은 박수가 터졌다. 그와 함께 그를 상징하는 밝고 고운 초록, 비취색의 풍선이 광장을 메웠다.

한때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겼던 노인은 손자와 함께 비취색 풍선을 흔들고 있었다. 그가 당내 후보 경선에서 한 발언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그때를 떠올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도자기 유약 기법은 중국에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고려청자는 본고장 중국에서 ‘고려비색 천하제일’이라고 극찬을 받게 됩니다. 색감이 중국의 청자보다 우위에서였을까요? 물론 저도 일정 부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청자에 담긴 마음이 중국의 식자들에게 감동을 줬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중국의 비색은 숨길 비(秘)를 씁니다.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색이기 때문에 아무나 쓸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계층을 위해 쓰여야만 했지요. 주로 궁중의 기물에 쓰였고, 왕족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래서 품위 있고 독창적인 자태가 요구되었습니다.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는 중국의 것이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색은 물총새 비(翡)를 써서 새의 광택과 닮은 청록색을 담아냈습니다. 생명을 색으로 형태화하는, 한 마디로 자연을 담아낸 것이지요. 생명 본연이 가지고 있는 빛과 그 빛을 살려내려는 선조들의 혼이 맑고 소박하게 표현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박입니다. 청자는 특정 계층을 위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청자에 물을 부어 마실 수 있었고, 밥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었지요. 그러기 위한 쓰임새였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길은 바로 그것입니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연설 장면은 시간 관계상 도중에 중단되었지만, 노인은 찌르르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의 연설은 사실 다른 정치인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의 정치 인생을 떠올리니 묘한 일치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에 대해 더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그것은 자신만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다. 미래의 고려 연방을 살아야 할 손자를 위한 결정이었다. 노인들의 책임은 젊은이의 미래에 걸리적거릴 장애를 미리 치워주는 역할이라 믿었다.

‘이준경 의원, 이제부터가 시련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힘을 내시오.’

노인은 단상에서 한창 연설을 해나가는 새녘당의 전 대표이자 이제는 새녘당 대통령 후보로서 대선 출정식을 연 이준경을 올려다보며 뇌까렸다. 젊은 대통령 열풍에 힘입어 여론조사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준경이 외치던 개혁을 제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는 여전히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원내에서 겨우 20석을 차지하는 3당의 전 대표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준경 개인이 실패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준경 현상이 실패하면 세대 간, 정치 성향 간 갈등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제1야당인 국민당의 대선 후보와 정책 공조를 하고 야권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2위인 이준경과 3위인 국민당 대선 후보 사이에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2위와 3위의 지지율을 합치면 여당 후보를 크게 웃도는 정도였기 때문에 무리한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준경은 야당 통합 경선 제의를 뿌리쳤다. 거대 야당과의 경선이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생각을 오늘 이 자리에서 밝히기로 한지라 유력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이 총출동한 상태였다.

그래서 비가 주룩 내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분위기는 뜨거웠다.

“8년 전, 저는 여러분 앞에 처음으로 제 생각을 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지요. 아마 이곳에도 제가 다녔던 회사에 다니고 있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준경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직원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일개 직장인이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고 대통령 후보까지 나서게 된 과정은 굉장히 파란만장하여 직장인의 우상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저는 부유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남보다 조금 좋은 직장을 다녔다곤 하지만 그 역시도 직장인의 범주였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꿈이었지요. 아니 우리 모두를 특별하게 만드는 꿈이기도 했습니다. 부단한 노력과 희생으로 각자의 희망을 추구할 수 있다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이 땅에 살면서 그 꿈은 우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마법처럼 발휘되었습니다. 그 마법의 진원지는 놀랍게도 우리였습니다. 평범한 우리가, 학생들이, 군인들이, 농부가, 지식인들이, 빈곤에 시달리던 우리의 이웃들이! 나섰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합니까?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세계 곳곳이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일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전보다 열심히 일하는데 임금은 줄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학생이 학비가 없어 미래에 대한 꿈조차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이 모두 정부의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적절하고 진지하게 대처하지 못한 책임은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0년의 실패보다 훨씬 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나라는 결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어쩔 수 없이 이민을 택해야 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은퇴를 앞둔 평범한 가장이 평생을 열심히 일하고도 건강이 좋지 못하자 금세 경제적 고통에 빠지고, 자식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을 이대로 두고만 볼 수 있습니까? 제가 아는 우리나라는 분명히 그보다 좋은 나라였습니다. 보수라 자처하는, 아니 보수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사람들이 사회 전반에 이룩한 병폐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릇된 자유’입니다.”

이준경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대중의 얼굴도 상기되기 시작했다. 노인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그릇된 자유’, 이준경이 외치는 저 구호는 자신들 세대의 오점인 거 같아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그 시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점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여 가족들 먹여 살리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그것은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회에 더 관심을 가져야 했다. 부조리에 더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그러지 못했기에 사회는 퇴보했다. 다시 힘겹게 제자리로 가져다 놓아야 하는 일은 젊은 세대의 몫이 되고 말았다. 이래서야 언제 사회의 진보가 이뤄질지는 암담하기만 했다.

사적인 인간관계엔 관용이 필요하지만, 공적인 관계는 엄정해야 하는 것이 도리어 인문학 정신이라는 시니어 강의를 들었을 때 노인은 눈을 번쩍 떴다. 비 맞는다며 타박하는 며느리의 말을 애써 외면하고 손자에게 비옷을 입혀 이곳까지 온 것은 조금이나마 과거의 무지를 반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의지는 정치적 신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열망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표출이기도 했다.

“그릇된 자유는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가면서 그들이 남긴 부스러기를 우리 같은 평범한 이가 기꺼이 손 벌려 받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냥 까놓고 말하지요. ‘각자 알아서 잘 살아봐.’ 라는 뜻입니다. 우리 중엔 지금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을 지킬 것은 자신들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다, 실직했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세상 참 어렵지. 알아서 잘 살아봐.’, 암에 걸렸는데 보험이 없다고? ‘그거 안됐군. 알아서 잘 살아봐.’, 집안이 가난해서 공부할 수 없다고?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공장 가봐 일할 사람 없다고 노는 기계 천지야. 요즘 젊은것들은 편한 것만 찾고 노력이 부족해.’…….”

이준경이 가볍게 한숨을 쉬자 대중들 역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우리의 이웃 중 누군가가 직면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실패가 그들의 전적인 잘못입니까? 정말 국가와 정부, 기업의 책임은 단 1%도 없습니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는 대통령에 출마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정부는 우리를 멀리하지 않고, 우리를 해치지 않으며, 돈과 권력을 쥔 소수만이 아니라 일하고자 하는 모든 국민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정부여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번영과 쇠락을 함께 나눈다는 의식 또한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내 가족을 돌보듯 우리 역시 그럴 것이라는 궁극적인 믿음,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이며, 우리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비가 점점 강하게 내리고 있음에도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여러분은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변화는 국가와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와 정부로 우리의 변화가 가야 바뀔 수 있습니다.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내가 강한 것이 아니고, 국가가 강한 부를 가지고 있다고 내가 부유한 것은 아닙니다. 반만년 찬란한 문화가 있다고 내가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것도 아니지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나은 곳을 향하고자 하는 약속, 잠든 가족을 보며 매일같이 하는 그 약속이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묻습니다. 고작 20석밖에 차지 못한 원내 3당의 전 대표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요? 지키지도 못할 공약만 남발하는 것은 아니냐고 말입니다.”

갑자기 기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금까지 비를 맞으며 기다렸던 것이 아닌가? 비는 이제 너무 강해져서 우산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제 자리를 지키고 이준경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우리의 대통령 선거일은 앞으로 정확히 5개월 뒤인 12월 20일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없겠지요? 쉬는 날이니까요.”

워낙 진지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나온 가벼운 말이라 그런지 웃음소리가 제법 크게 흘렀다. 잔뜩 달아오른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일까? 이준경은 그사이 목을 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의 이웃인 북중민국과 남양 자치령, 몽골, 구주사국(九州四國, 규슈-시코쿠)의 수반(首班) 선거가 모두 올해 열리게 됩니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개혁을 외치며 나선 후보들이 대부분 젊다는 것이지요.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제게는 매우 뜻깊은 우연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째서 유럽 연합이나 미국 같은 동아시아 연맹체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치령의 상원의원들께서 그 취지에 공감하여 다리를 놔주신 덕에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동아시아 연합이라니? 기자도 대중도 매우 놀랐다. 그러나 이준경은 이미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는지 담담히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미국처럼 정·부통령 러닝메이트 제도가 없지만 저는 이미 국회 진출을 러닝메이트 제도를 활용하여 이룬 바가 있습니다. 이제 그 꿈을 더 크게 가져보고자 합니다. 국회가 여소야대라서 일을 할 수 없다면 동아시아 연합으로 열거한 국가들의 국회는 어떠할까요? 그들을 모두 합친다면 어떻습니까?”

노인은 소름이 돋았다. 현실적으로 임기 내에 동아시아 연합이란 구상을 실현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국회를 합친다는 말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현재 동아시아 전체가 개혁 주자들에게 힘이 쏠리는 추세였다. 그들이 한배를 탈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설령 연합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공동으로 발을 맞출 수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조금씩 허물어지는 교류 장벽이 급속도로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국민에게 인식된다면 이준경은 이제 단순한 제3당의 전 대표가 아니었다. 동아시아 차세대 지도자를 모두 등에 업고 있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대게 이준경이 열거한 차세대 지도자들은 지지율이 2위에서 3위를 왔다 갔다 했다. 보수층의 확고한 신임을 아직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이들의 연대가 하나의 시대적 대세라는 흐름으로 흘러간다면? 기자들은 지금쯤 이 연설을 지켜보고 있을 여야 거물 정치인들의 셈법이 복잡해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동안, 아니 대통령 선거까지 근 반 년간의 뉴스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

지금의 통일과 훗날의 연합이 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문화와 언어가 다른 국가를 모두 합쳐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법의 제약이 거의 없는 중세인 지금도 어려운 일이었다. 유럽에서나 아랍에서나 하다못해 중국에서조차 하나의 대제국이 영속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자면 저명한 사회학자인 율리히 벡(1944-2015)의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유럽은 무엇인가?’를 화두로 던졌다. 간단한 화두였지만 본질을 찾는 문제였기에 많은 학자를 괴롭혔다. 그렇다면 나 역시 동아시아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던져볼 법하다. 역사의 중첩성 면에서 유럽과 비슷한 점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 교수, 헤들리 불(1932-1985)은 유럽 연합의 탄생을 놓고 ‘새로운 중세’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연합 테두리 안에서 주권 국가가 사라지고 신성 로마 제국 아래의 제후국 같은 시대를 열 것이란 가정을 했기 때문이다. 지구 상에서 극도로 발달 된 사회라 할 수 있는 유럽이 아이러니하게도 중세 체제로 회귀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시대에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세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중세를 본래 부조리한 중세 본연의 모습으로 내버려두는 것? 내가 체험한 현대 세계의 극인 ‘새로운 중세’가 조금 더 빨리 태동하여 이어서 언제고 출현할 ‘새로운 현대’를 고대하는 마음의 실천이었다.

현대에서 동아시아 연합이란 것이 그저 꿈에만 그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과거사 문제에 각국의 상반된 역사의식이 영향을 크게 미친다. 정치 체제의 차이도 있고, 경제 불균형의 문제도 있다. 미국과의 동맹이냐 아니냐의 차이도 클 것이다. 이 모든 문제 중 가장 걸림돌 하나를 꼽으라 하면 나는 일 순위로 과거사 문제를 들 것이다. 도무지 섞일 수 없는 앙금을 제거하지 않는 한 그저 꿈에만 그치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언제 올지 모르는 동아시아 연합에 목을 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을 뿐이다. 최소한 이웃 국가들끼리 물과 기름 같을 정도로 증오스러운 감정을 품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동아시아 외교의 기본 생각이었다.

1,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이 유럽 연합의 주축이 되는 것과 비교하면 무슨 오지랖이냐고 할 법했지만, 베네치아와 제노바 상인들이 양나라에 자리를 잡은 이상, 그들과 아랍 상인들의 경쟁에 자극받아 아시아 전체가 모험을 통한 경쟁으로 발산되기를 바랐다. 제국열강의 식민지로 시작하던 비참한 과거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새로운 대항해 시대의 개막 말이다.

물론 아메리카는 발견 이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긴 했다. 일정 개입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유럽인들의 등장에 맞춰 나타난 질병으로 대다수가 죽어버리는 참상을 막을 길이 없으니까 말이다.

============================ 작품 후기 ============================

5월 19일 부터 네이버에서 작가전 이벤트를 합니다. 한시적으로 이벤트 기간 동안만 전작품을 대여할 계획이라서 노블에서 교정된 원고를 저렴하게 보실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려는 아직 이북 출시전이라서 우마남까지입니다. 그리고 학생이라서 의아하신 분이 있는거 같은데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서 인문학 공부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4학년에 들어섰지요. 인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은 학비도 싼 방송대에서 공부를 해보시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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