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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46화 (246/257)

00246  (30) 화룡점정(畵龍點睛)  =========================================================================

“어차피 산자르가 죽은 이상 누가 나랑 손을 잡아도 이상할 것은 없지. 그것이 그대라는 착각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나는 그녀가 미처 반응할 시간도 짓쳐들어가 그녀의 얼굴을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아무리 태연한 사람도 이 정도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넘어졌다.

그런 그녀를 위험에서 구하고자 삽시간에 인간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동시에 나에겐 수많은 칼날과 창날이 향했다.

그러나 그녀가 일어서자 그들은 물러났다. 수치심과 분노로 얼룩진 그녀는 아마도 나에게 갑자기 이런 일을 저지른 이유에 관해 묻고 싶었을 것이다.

“다행이군.”

나는 그녀가 듣건 말건 중얼거렸다.

“당신도 목숨 아까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어서 말이야. 그대로 버텼다면…….”

“당신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치졸한 복수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가요?”

“그대로 버텼다면 당신은 죽었어. 나는 주먹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목소리에 살기를 담았다. 그제야 그녀는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제야 좀 인간적인 표정이 된 것 같군.”

“당신…….”

그녀의 눈매는 매서웠다. 당장 나를 죽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싸늘한 분위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항상 떠받듦에만 익숙한 그녀가 어쩌면 생전 처음일지 모를 모멸감을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목숨을 건졌지 않나? 시험이라고 여겼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신의 품에 안겼겠지. 알겠나? 당신이 내게 내민 시험은 이런 것이었어. 아무래도 좋았던 거지.”

“그, 그렇지 않아요!”

“아니!”

나는 성큼성큼 그녀를 향해 다시 다가갔다. 이번에는 그냥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창칼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 역시도 순간적으로 두어 발 뒷걸음질을 친 상태였다.

그녀가 소리쳤다.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죠!”

“뭐?”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게 나란 사람이란 건가?”

“영웅이란 작자들의 속성이지요. 민 태조는 어느 쪽이었나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그래서 나를 잡으려 했고, 나를 이용하려 했다는 변명에 가까웠다. 아니 변명이 아니라 그녀의 신념일지도 모른다.

“태조는 모든 부인을 사랑했지만, 처음부터 그녀들을 진정으로 원했나요? 대의를 위해서 받아들였죠.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에 사랑하고자 노력했을 것이고요. 내 말이 틀렸나요?”

“그래서, 나 역시 그래야 한다고?”

“다른가요?”

영웅이란 대게 일반인보다 뛰어난 재능과 힘과 용기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의 뛰어난 자질은 어떠한 운명적인 시련에 맞서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영웅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운명을 대신하는 존재이고, 따라서 영웅이 겪는 시련은 대게 공동체 전체가 겪는 시련과 위기이며 영웅의 싸움은 공동전체 전체의 보존을 위한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과업의 성격을 띤다. 이미 이러한 인식은 그리스 철학에서도 보편화하여 그녀가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다. 공동체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대게 고대의 영웅은 공동체를 이끄는 우두머리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켜야 할 공동체는 주로 민족이거나 국가를 가리켰다.

나의 공동체는 어디까지인가? 그 안에 그녀가 들어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시험이 오로지 공동체의 번영에 목적을 둔 숭고한 행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문득 헤겔의 정의한 영웅이 떠올랐다. 헤겔은 영웅의 위대함이 개인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시대가 그에게 부과한 소명에 근거했다는 인식을 보였다. 역사란 예정된 섭리가 실현되어 우리 앞에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당대의 법과 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무법천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시대의 법과 제도 사상이 역사의 진보에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예컨대 나폴레옹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유산이 인류의 진보에 공헌했다는 식이다.

그런 뜻에서 따져보면 민 제국의 이준경이나 지금의 척준경이 지닌 능력이 판이하지만 지향하는 소명의식은 비슷했다. 둘 다 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이 주장한 영웅의 삶이 단순히 그 시대와 영웅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실현되는 역사적 이념의 진보와 관련된 것임을 떠올린다면 역사의 예정된 섭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말이다.

“당신의 소명은 제가 보기에 무척 특별했어요. 일국의 왕이 보이기는 너무나 모순된 행보지요. 그렇다면 더더욱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게 뭘까요?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창안해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당신을 창조한 상황이 요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내는 것일까요?”

그녀의 질문은 이미 내가 수없이 고민했던 문제였다. 헤겔은 영웅의 정의를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창안해내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섭리가 요구하는 상황에 충실한 역할 수행자라고 했다. 사실 둘 중 하나만 정의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정해진 역할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고 내 역할을 스스로 만들어내길 원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어쩌면 역사의 섭리에 포함된 것일지도 모른다. 헤겔의 설명대로라면 말이다.

“그 소명에 도움이 된다면 당신은 무릎이라도 꿇을 사람이 아닌가요? 당신은 그저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거예요.”

“투정이라고? 내가?”

“당신 스스로 주도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거죠. 모든 것이 당신의 계산대로만 흘러가야 하는 거예요. 설령 나의 존재가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당신이 직접 선택했을 것이란 식이지요. 당신은 오만해요.”

“오만하다……?”

나를 가리키기엔 생경하게 느끼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새겨들은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역사를 내 생각대로 바꿔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오만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오만이 순수한 선으로 포장되어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태조는 스스로 약함을 인정했기에 타인에게 몸을 숙였죠.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타인에게 진심으로 몸을 숙여 본 적이 있나요?”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확실히 과거의 나는 몸도 생각도 천재들에 비교해 상대되지 않았다. 그래서 열과 성을 다해 그들을 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열과 성을 다해 인재를 모은 것은 맞지만, 그것이 과거의 마음가짐과 같았나를 돌이켜보면 많이 달랐다. 과거엔 얻지 못했던 일신의 강대한 힘이 어떤 선택지를 골라도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못이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나는 나폴레옹과 같은 인물이 될 뿐이다. 그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행한 실수를 나 역시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사는 나폴레옹을 선택했고 개인의 능력 역시 그것을 이룰 만큼 뛰어났지만, 개인의 삶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 그의 삶이 대단히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진정한 운명의 소유자를 찾고자 노력했다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어요. 지고한 점성술사가 알라무트의 불은 천 년은 무리여도 수백 년은 꺼지지 않으리라 예언했지요. 산장로는 그것을 믿고 알라무트를 하사신의 본거지로 삼았어요. 그러나 불과 수십 년을 채우지 못하고 두 번이나 불이 꺼지는 수모를 당했지요.”

“지고한 점성술사가 엉터리였나 보군.”

“미신이 신봉되는 이유 중 하나는 대게 엉터리임에도 불구하고 진짜가 있기 때문이에요. 남들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환생을 제가 믿고 있는 것처럼요. 그렇지 않았다면 제 어머니는 결코 저를 후계자로 삼지 않았을 거에요. 점성술사가 말하길 ‘예언이 틀리는 경우는 오직 하나,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러요. 신화에서 대게 암울한 예언은 영웅에 의해 깨어지죠. 일반인이 하지 못할 숙명을 타고난 자들이니까요.”

나는 그녀와 더 대화하길 포기했다. 그녀의 신념은 차고도 넘치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근거를 이유로 나의 존재를 확신했고, 믿음을 가졌다. 그것은 그녀의 존재 이유와도 연결되어 있기에 앞으로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선택만이 남은 셈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결코 나에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일을 하는 데 있어 더 편해진 셈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계속 밀어내고자 했다. 그녀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불편했다. 지금껏 노골적으로 나를 원한 사람은 오직 이 여자뿐이었으니까. 처음 느껴보는 당혹스러움이 반발을 만들었고 그녀를 욕망자로 인식하게 했다. 정말 그것뿐이었나? 내 행보에 있어 나는 조금의 책임도 없었던 것일까?

유럽인을 끌고 양나라로 향하는 행보가 인도적으로 옳은 것인가만 따져봐도 그렇다. 뭘 그리 복잡하게 따지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합리화시키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

“어렵군.”

결국, 계륵이다. 그녀는 나의 성향을, 아니 영웅이나 위인들이란 작자들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내 개인의 일이 아닌 공동체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고, 그 공동체의 범위가 그저 동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더 큰 범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의 표정을 원한 대가이기도 하지요.”

“가면을 벗었다는 말로 들리는군.”

“방법이 거칠었지만, 본심을 확인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지요.”

“끝까지 지지 않으려 하는군.”

“이기고 싶나요?”

그녀가 밉살맞아 보였다. 원하면 패배를 인정해주겠다, 승리의 전리품으로 자신을 가지고 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어쩔 셈이지?”

“산자르는 일찍 혼인했지만, 아이가 아직 없었지요. 그래서 당신을 잡아 복수를 완수한다는 명분은 후계를 노리는 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어요. 그들만 처리하면 끝이지요.”

“그들을 처리한다고 끝이 아니지. 나를 도왔다고 당신이 오히려 표적이 될 텐데.”

“셀주크 제국의 술탄들이라면 그렇겠지요. 어차피 그들과 손잡을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파르티잔은 바빌로니아의 계승자였고, 불의 나라였습니다. 설마 모든 사람이 모슬렘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슬람이 창시된 것이 7세기 초였다. 500년 정도의 시간은 길었지만, 종교에 있어 500년은 무척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알라 이외에 신이 없다는 가르침은 전통 신화를 가진 민족들에겐 상당한 반발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반발 세력이 거의 사라진 이상 세력을 일굴 자신감이 충만해 보였다. 하긴 그 정도의 자신감이 없었다면 나를 미끼로 쓸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묘한 일이다. 야율대석이 멸망한 요를 떠나 카라 키타이를 세웠을 때 인근의 국가는 모두 이슬람계였다. 십자군 1차 전쟁의 승리로 세워진 근동 기독교 국가들이 하나둘 멸망해갈 때 비모슬렘인 야율대석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사제왕 요한이 서방 기독교를 구하기 위해 셀주크 제국과 싸우고 있다는 소문마저 돌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그러한 야율대석의 방식을 은연중 깨닫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적의 적은 우군이었으니까.

============================ 작품 후기 ============================

저도 고민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내 생각을 전개를 납득시킬 수 있을까? 이준경이란 사람의 성격은 그런 저와 많이 닮았습니다. 아마도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주인공이라서 그럴 수 있겠지요. 전자책 교정을 하면서 지적받았던 내용이나 제가 다시 쓰고자 했던 내용들을 채워서 보강하는 중입니다. 삼국지 종이책이랑 고려편 교정이랑 학교 시험 기간도 끼고 하니 정말 눈코뜰새가 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급한 것은 거의 끝나가니 상반기 중에 연재를 서둘러서 고려편을 끝을 내고자 합니다.

다음 글은 화요일 혹은 수요일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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