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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36화 (236/257)

00236  (29) 남산가이(南山可移)  =========================================================================

그것은 그녀의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녀가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이해도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신비 분파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슬람에도 신비 분파가 존재한다. 이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고 그것에 대해 연구한다. 그녀가 그런 계열이라면 환생을 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나 하나 부르자고 시녀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심성은 과연 시대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인가? 산자르에게 아끼는 아이들을 내주었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기 위해 아끼는 시녀들을 내주었다는 것이 과연 절체절명에서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하는 답이란 말인가? 더구나 아꼈다는 수식어는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마저 받았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인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자구책이라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본래 성품인가? 어느 쪽이든 바람직한 결과는 아니었다.

내가 산자르를 만나러 가자 산자르를 어느새 떠날 채비를 모두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 패자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고 여긴 것일까? 그의 두 눈엔 자신감이 가득 찼다.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아쉬네와 하마단의 귀족들도 보였다.

“떠나기 전에 두 성전에 들르세.”

“두 성전?”

“왕이 되려는 자라면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이지.”

알라무트 하사신의 습격은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기에 산자르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위협이 제거된 이상 그는 활발한 대외활동을 결심한 것 같았다.

첫 번째로 간 성전의 이름은 불의 신전이었다. 신전 중앙 입구엔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인 프라바하르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날개가 달린 조류 인간으로 선량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천사다.

아랍 대부분은 이슬람을 믿지만, 내면적으로는 알게 모르게 조로아스터교의 사상이 묻어 있었다. 한국인 중 기독교인이어도 무의식엔 불교 혹은 토속 정신이 어느 정도 깃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전에 들어가자 수백 년간 꺼지지 않고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는 성화를 보았다.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땔감을 이용해 계속해서 불을 지피는 방식이었다. 그런 방식을 수백 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아쉬네는 이슬람의 탈을 쓴 조로아스터교 신자인지도 몰랐다. 과거의 아싱이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타당한 추측이었다.

산자르가 조로아스터교의 축원을 받는 사이 나는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액자로 눈길이 갔다.

-늘 좋은 생각을 가지고 바른말과 올바른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현명한 사람은 신의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신은 조로아스터교의 최고 신인 아후라마즈다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종교를 떠나서 문구 자체는 이상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신의 구원은 진정으로 있는가? 내가 전생, 혹은 환생, 아니 시대에 따라 동시에 존재하다손 치더라도 이것이 신의 구원인가? 아니면 신의 구원에 이르기 위한 몸부림 중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대답도 없는 신을 찾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짧은 축원을 마치고 나온 산자르는 이번엔 두 번째 성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너무 잘 아는 곳이기도 했다.

하마단 북쪽에 자리한 산의 단면을 깎아 내 입상 부조와 내가 말했던 내용이 기록된 곳에 섰을 때, 나는 묘한 감흥을 느꼈다. 예전에도 이곳에 선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기억이 돌아오기 전이라 정확한 감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생각보다 내가 남긴 발자취는 거대했구나 하는 감상을 남길 수 있었다.

그곳마저 산자르가 참배를 마치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페르시아 유적엔 참배하지 않는 것인가?”

하마단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은 페르시아 왕국이 남긴 비문이었다. 페르시아 중흥기의 위업을 산을 깎아 새긴 비문은 옛날 문자들이 많아 아직도 해석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산자르는 내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알렉산드르 대왕의 자비가 없었다면 그 유적마저 모두 부서졌겠지. 패배자의 유적 따윈 관심이 없다.”

산자르는 이제 바그다드로 떠날 생각이었다. 그때 아쉬네가 끼어들었다.

“이분께서 이왕 온 김에 에스더의 묘도 보고 싶다고 하는군요.”

그녀가 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산자르는 그것이 사실인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더의 묘라니? 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인가?

“나는 유대인에겐 관심이 없으니 자네만 다녀오도록 하게. 나는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지.”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쉬네의 인도하에 나는 에스더의 묘로 향했다. 나는 가면서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의도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가보면 안다는 말로 일관했다.

에스더는 성경에 나오는 그 에스더를 말한다. 에스더의 이야기를 다룬 에스더서는 성경 중 가장 독특한 면이 있는데 여호와, 성전, 제사 등의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넣기에는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경에 들어갔던 것은 아랍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을 학살 직전에서 에스더를 통해 구원해준 여호와의 은총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 에스더의 묘가 나와 대체 무슨 연관이라는 것인가?

에스더의 묘는 제법 웅장한 원형 벽돌 건축물이었다. 그곳 입구엔 묘지 관리인이 있었고 벽엔 역대 묘지 관리인의 이름이 수십 명 적혀 있었다. 그들 중 이슬람을 믿는 이들이 있었음에도 기꺼이 에스더의 묘를 관리했던 것은 유대인 에스더가 아니라 페르시아의 왕비로서 대접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측에서 보면 종교 유적지가 되겠지만, 이들에겐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역사 유적지인 셈이다.

사람 둘이 나란히 서지 못할 정도로 좁은 입구를 통과하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다시 보였다. 입구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작았는데, 그 이유는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에스더에게 고개를 숙이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사실 이 묘지는 엄밀히 따지면 두 명이 묻혀 있었다. 한 명은 에스더이고 다른 한 명은 에스더의 양아버지인 모르드개이다.

그래서 지하로 내려갔을 때 두 개의 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곳엔 이제 아쉬네와 나 둘 뿐이었다. 그녀는 좌측에 자리한 에스더의 관을 매만지며 말했다.

“신께서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을 돌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범한 죄악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신은 유대인이 학살 위기 가운데서 극적으로 구원하심으로써 영광을 드러냈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곳까지 나를 불러들였을 것 같지 않군.”

그녀는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입구가 잠겼을 겁니다. 힘으로 밀어낼 수 없어요. 돌문의 무게는 장정 이백 명과 맞먹으니까요.”

뭔 짓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먼저 노력했다. 마음을 추스른 후 나는 냉랭하게 말했다.

“그래서?”

입구의 돌문은 무려 23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관리인이 아까 말했다. 그 무게가 현대 기준으로 치자면 1.4톤이다.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 수십 마리의 우마를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밖에서는 그것이 가능해도 안에서는 불가능한 셈이다. 즉, 이대로는 나나 아쉬네나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쉬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그녀는 비단에 둘러싸인 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 관은 900년 전에 만들어졌죠. 투이싸르커니라는 명장이 만든 것이죠.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장님이었어요. 과거에 다른 작업을 하던 중에 장님이 되었었죠.”

“이 관을 만든 후에 설마 두 눈을 떴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가?”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나요?”

그녀는 눈을 반짝였다. 왠지 기분이 들뜬 듯하면서 묘하게 슬픈 기색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장단에 놀아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나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입구로 향했다. 그녀는 느긋하게 나를 쫓아왔다.

지상 현관으로 나오니 밖으로 나가는 돌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를 지하까지 데리고 간 것은 아마도 돌문을 닫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상단에 걸린 액자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웃을 사랑하라. 참 좋은 말이지요. 하마단은 지금껏 좋은 이웃을 둬 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요.”

“그래서 살기 위해 아끼는 시녀를 산자르에게 기꺼이 희생양으로 던지고 나를 부르기 위해 시녀가 자살을 시도하도록 만드는 것인가?”

“옳지 않은 일이지요. 그건 나도 알아요. 그래서 나를 던지면 모든 것이 해결되나요? 그랬다면 하마단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정복되어 그냥 그런 도시로 남았을 겁니다.”

그녀의 음성에선 분한 마음이 느껴졌다. 멋대로 선악을 판단하지 말라는 건가? 나는 그녀가 유대인의 이야기를 꺼낸 것을 떠올렸다. 유대인은 여호와에게 죄를 지었지만 결국 여호와는 그들을 구원해주었다는 사실 말이다.

“신의 모습도, 신의 이름도, 과거엔 그토록 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들이 접했음에도 오늘날엔 어떤 자에게도 들리지 않습니다. 들렸다고 주장하는 가짜 선지자들만이 있지요. 에스더의 시대도 그랬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신의 말씀을 멀리했고, 금을 숭배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신은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고 지키심으로써 선한 뜻과 섭리를 이루었습니다.”

나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나는 신이 아니다. 신의 섭리와 전능을 나에게 기대했다면 그건 착각이다.”

“부림일(days of Purim)을 아시나요?”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답하지는 않았다. 내가 묵묵부답하자 그녀는 벽에 기대어 처연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부림은 ‘제비뽑기’를 의미해요. 제비뽑기는 우연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운명이라는 뜻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당시 재상이었던 하만이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한 구실로 제비뽑기를 제안했지요.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그 음모를 저지하여 많은 유대인의 목숨을 살립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지금에 이르러 그 날은 그저 유대교의 절기만이 아닙니다. 이미 이곳에 유대인은 찾아보기 어려운데도 그들의 절기가 풍습처럼 내려오는 이유는 가난한 자들에게 선물과 음식을 베푸는 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내가 아끼는 아이들을 아무 때나 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매정한 사람으로 보였겠죠. 그러나 그 아이들은 부림일을 통해 가난을 구원받았어요. 그들은 나 하나를 살린 것이 아니에요. 수십이 넘는 식구들을 살렸죠.”

“그것이 나와 당신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그녀를 직시했다. 나라는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 매달린단 말인가? 그녀는 아름다웠고 지혜로운 여자임이 분명했다. 어쩌면 제주의 심방처럼 신격(神格)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족했고 아쉬웠다. 그것은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이고 모호한 감정이었다.

“그 이야기에서 신이 빠진다면…….”

“네?”

그녀는 의아한 기색이었다.

“애초에 에스더 이야기엔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유대인이니 그렇다고 추정할 뿐. 결과가 좋게 나오니 신을 끼워 맞췄을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페르시아 왕은 하렘을 소유하고 있었지. 에스더라는 유대인 왕비가 사실은 300명이 넘는 후궁 중 한 명이며, 나름 왕의 총애를 얻어서 일족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지 않나? 당신이 한 행동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걸 나한테 반복하겠다는 건가? 그럴듯하게 신의 이름을 빌리고, 환생을 빌려, 나를 구원자로 삼겠느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잘못 골랐다. 나는 신의 선지자 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나는 그저 인간일 뿐이다.”

“에스더는 아랍어로 별이라는 뜻이죠.”

그녀가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소리쳤다.

“별이 어쨌다는 거냐! 별이 신의 주위를 돈다고 말하고 싶기라도 한 것이냐!”

나의 포효에 그녀는 멈칫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운명입니다.”

“운명? 이딴 것이 운명이라고? 에스더의 묘에 와서 당신과 그 짓거리를 하는 것이? 차라리 산자르가 적임자였다. 그는 셀주크 제국의 술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다!”

“그래서 당신에게 안기려는 것입니다.”

“뭐?”

“당신의 확신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말문이 닫혔다. 그녀가 나의 전생을 믿는 것과 별개로 그녀는 내가 지나치게 많이 알고 그것을 확신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기꺼이 몸을 던지겠다는 발상은 어떤 확신에서인가?

나는 에스더의 관을 쳐다보았다.

‘에스더는 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어원을 살펴보면 바빌론의 여신 이슈타르라는 설이 있다. 에스더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스텔라가 되고, 그 스텔라가 성모 마리아의 별을 상징하게 되었듯이 말이다.’

성모 마리아는 처녀 잉태로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비유를 비슷하게 맞춰본다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그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밀쳐내고 육중한 돌문 앞에 섰다.

“소용없는 짓이에요. 설사 헤라클레스나 삼손이라고 해도…….”

내 등 뒤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두 손을 돌문에 가져갔다.

“당신은 아름답다. 지혜롭기도 할 거야. 산자르를 거부한 그대가 나와 둘이 돌문을 닫고 들어왔다는 말이 산자르 귀에 들어가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와 산자르 둘 중 하나는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다음엔 누구를 싸움 붙일 것인가? 타티키오스도 어제 일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당신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한 번쯤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면 말이야. 그는 아마 나에게 손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산자르와 반목하면 비잔틴을 더욱 돕게 될 테니까.”

“그, 그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당신은 분명히 선조가 남긴 유물에 반응했어요. 민 태조의 입상을 보았을 때도 말이지요. 그걸 부인하려는 건가요?”

“진왕은 스스로 깨닫는 자라고 말한 것은 당신이다. 당신의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뿐이지. 당신은 현실과 이상 중에 현실을 택했을 뿐이야. 나는 어떠한 것 같은가?”

나는 묘지 내가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성과 함께 모든 힘을 끌어올려 돌문을 밀기 시작했다. 1.4톤이면 보통의 인간이면 결코 밀 수 없는 무게이긴 하다. 그러나 이곳은 모래가 많은 곳이다. 문 밑으로 깔린 무게는 마찰을 줄여준다.

현대에서 종종 사람이 비행기를 끄는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대략 90톤 이상 나가는 비행기를 20명 정도가 끄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나에게 아예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돌문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아쉬네가 놀라는 소리를 들으며 피식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한 돌문은 곧 사람 하나 빠져나올 정도까지 열렸다. 나는 유유히 돌문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아쉬네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지 기다리던 자들은 경악과 함께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나가자 옷을 여미고 재빨리 뒤따라 나온 아쉬네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당신이 기다리는 옛날의 그 이준경은 없다. 나는 척준경이다.”

“당신…….”

“그것이 나의 충고다.”

남산가이라 했다. 남산은 옮길 수 있지만 한번 다짐한 옳은 결정은 굽히지 않고 고치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그것이 설령 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 작품 후기 ============================

챕터의 마무리입니다.

이제 완결도 서서히 보이는 듯 합니다.

사실 고려편이 여러모로 고민이 많고 난해한 면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호쾌한 활극을 원하시는 분들은 실망하셨을 것입니다. 짜장을 기대하고 왔는데 짬뽕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지요. 글을 쓰면서 장르의 미덕이 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다 제가 감수해야 할 몫입니다. 인기가 없는 것은 그런 반영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은 제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좋아해주는 독자분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장르에 수많은 재미있는 작품들이 즐비한데 이런 글 하나 쓰는 사람 있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본래 불꽃처럼 보다 먼저 이러한 의도로 짰던 글입니다. 저보다 훌륭한 작가분들이 척준경 본연의 소재로 더 호쾌하고 재미있게 써주시리라 믿습니다.

본래 제목을 in 고려가 아니라 in 중세로 하고 싶었습니다. 척준경과 고려에 방점을 찍는 것보다는 더 큰 시대상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중세가 접근성이 어렵게 느껴지는 제목 같았습니다. 이 글도 이북 나갈 준비를 하며 한창 교정 중이기에 아마 이북에서는 글을 읽기 전 미리 설명을 할 것입니다.

더 쉽게 더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것은 어느 작가나 바랄 것입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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