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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31화 (231/257)

00231  (29) 남산가이(南山可移)  =========================================================================

이소와 나는 손을 잡고 내려왔다. 묘족 장로들은 밤새 의견을 통일했는지 나에게 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와 이소는 매우 놀랐다. 자매와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매의 사촌 동생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매를 데리고 왔을 당시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장로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했다.

묘족 사회는 일부일처제가 기본이다. 부모가 혼인을 강제하는 일도 드물어서 젊은 남녀가 서로 배우자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마디로 자유연애라는 것이다. 배우자 선택에 있어 재산과 가정환경보다는 재능과 성품을 우선시하는 면모를 보이는데 그것이 부족의 번성에 더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로 바람직한 마음이긴 하다.

자매의 사촌 동생은 이미 한 차례 혼인을 한 바가 있다고 하여 또 놀랐다. 수년 전에 남편이 중병에 걸려 사별하고 부모마저 일찍 떠나보냈다는 여자를 나에게 권하는 까닭은 단지 자매와 연관이 있기 때문일까? 장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새롭게 결혼하는 부족원이 신방(新房)을 꾸리면 오직 과부만이 초청받지 못합니다.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모조차 여윈 과부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내가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배우자가 멀쩡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혼하는 경우는 비난을 받지만, 배우자와 불가피하게 사별했을 경우의 재혼은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렇다고 재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재혼이 가능한 경우는 상대 역시 배우자를 사별했을 경우입니다.”

“내가 자매와 사별했기 때문에 배우자를 사별한 그녀의 사촌 동생과의 재혼이 성립된다는 것인가?”

왕이 과부를 맞이하는 경우가 드문 것은 아니었다. 특히 고려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 재혼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양나라의 대신들은 한인들이었다. 묘족이랑 결혼하는 것도 쌍심지를 켜고 보는 판에 아무리 나와 인연이 있다고 해도 과부를 왕후로 맞이하라는 장로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았다.

벌써 장로의 설명에 발끈하려는 신료들이 있었다. 사실 한족 왕조에서 아버지의 여자를 아들이 탐하는 경우도 많았던지라 그런 예를 들면 할 말이 없긴 할 것이다.

“우리는 일부일처제가 기본이지만 소수는 첩을 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손이 없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내가 엄연히 있음에도 형수를 맞이하거나 제수를 맞아들이는 경우는 혼자 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양의 의무입니다. 이제 왕께서 우리의 어버이가 되시겠다고 하셨으니 부양의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버이니 부양의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중얼거리자 장로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10년 전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자매의 죽음 앞에서 얼마나 비통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갑자기 왕이랍시고 나타나 묘족과 혼인하는 것이 마치 묘족을 위해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하니 나라도 참 뻔뻔한 놈이구나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는 나에게 목숨을 건 시험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의 결의가 번지르르한 말뿐인지 아니면 진정인지 말이다.

그러하니 나의 결정은 승낙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당경을 영입하는 일 외에도 정무로 바쁜 장상영을 대신해 나를 따라나선 양시가 따르는 신료를 대신해 나에게 고했다.

“전하의 어진 성품은 그간 옆에서 지켜본 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 국혼은 국가의 중대사입니다. 지금 천하가 아국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국체(國體)의 존엄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으며 하물며 이제 개국한 아국은…….”

“구산 선생.”

양시는 홍문관과 비슷한 기능의 한림원을 설립하여 그곳 학사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러하니 나에게 간언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물론 그런 자격이 없더라도 양시 정도의 학자라면 언제든지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지만 가끔은 내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이 배운 가치와 충돌이 일어날 때다. 그 가치를 따를 경우 유학, 아니 한인의 습속(習俗)이 다른 민족의 그것보다 상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것은 내가 양나라를 세운 취지와 정반대였다.

“양나라의 근본은 헌원 황제입니까? 치우천왕입니까?”

양시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뒤로 기립한 신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인 입장에선 고민할 필요도 없이 황제가 우선이었다. 그러나 양나라의 시작은 오롯이 고려인인 나였다. 묘족인 자매를 아내로 맞이했던 탓에 군신 치우의 환생이란 소리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복건인의 나라라고 공언한 상황에서 그들 다수를 차지하는 장족과 요족, 묘족 등의 신화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 한국인이 현대에서 한반도의 조상신처럼 주장하는 치우 천왕에 대한 오해도 풀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고 말이다.

사실 사마천이 사기에서 황제와 치우를 언급했을 때는 어떤 뚜렷한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한인을 하나로 묶을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존재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치우를 떼어낼 필요가 있었다. 황제가 중화 전체의 신이 아니라 황하와 회수 일대를 다스리던 신이고 치우가 남방의 신이라는 지역 개념이 정착되면 이미 역사를 읽는 관점부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미 짐은 불패이고 군신입니다. 지금껏 중원의 문화가 뛰어나 그들의 모든 것이 옳다고 여겼다면 이제 그런 생각을 버리십시오. 구산 선생을 비롯한 현인들은 중원의 현사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짐은 믿고 있으며 그리하여 아국이 천하에 문명국임을 증명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전하의 성심은 잘 알겠사옵니다. 그러나 황제와 치우의 대결로 몰고 가는 것은 천하를 더 큰 혼란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국혼에 대해서는 차라리 전하의 뜻대로 하십시오. 하나…….”

“민간에서 조상신을 따로 믿는 것은 상관없으나 아국의 근본으로 삼지 말라는 구산 선생의 말을 따르겠소.”

양시는 얼떨떨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내가 시원스럽게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유교 논쟁으로 번질 수 있는 혼례의 양보를 받아냈으니 내겐 손해가 아니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묘족들의 입을 빌려서 알음알음 퍼질 것이다. 그들은 나를 진정한 왕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삼황이라는 존재부터가 철저한 한인 시각이다. 헌원 황제의 우열을 명확하게 해놓고 염제와 치우를 괴물이나 요괴처럼 그리는 시각 자체가 소수민족 융합 차원에서 자리를 동등하게 마련해줬지만, 실상은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조상신을 점차 멀리하고 한인과 동화하는 하는 장구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아득히 먼 시절 나처럼 과거로 떨어진 한인이 계획하지 않았을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도 떠올랐다. 그 한인이 살던 미래는 어쩌면 내가 지금 만들고자 하는 미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내가 아니라 이소에게 맡겼다. 양시와 신료는 설마 하는 기분으로 이소의 선택을 기다렸는데 이소는 생각보다 일찍 결정을 내렸다. 나보다 연상인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묻고 손을 잡았다. 그녀는 자신이 받아들여질 것인지 반신반의하다가 조그맣게 ‘옥금’이라고 말했다. 성은 ‘대과’였는데 한문으로 음차(音借)하면 마씨가 되었다. 마옥금이 그녀의 성명인 셈이다.

그녀가 받아들여지자 장로와 자매의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그제야 토해냈다. 딱한 처지를 제대로 구제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이리라. 그것이 내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날 묘족들은 소 한 마리를 잡아 잔치를 열었다. 유학자들 입장에서는 왕과 왕후가 묘족과 한데 어울려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모습에 기절할 정도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앞으로 바꿔나갈 세상이었다.

마옥금은 내가 서역을 다녀올 때까지 마을에 남기로 했다. 그것은 묘족의 전통이기도 했다. 임신이 확인된 후에야 남편의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혼인의 확실한 증거이긴 하다. 그래서 며칠 머물며 신방을 차리라고 묘족 장로가 권했지만 나는 서역을 다녀온 후로 미루기로 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가져야 한다면 이소가 먼저였다.

해남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모두가 소동파를 모신 사당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그가 편견 없이 소수 민족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덕을 베풀지 않았다면, 서역으로 떠났던 나를 대신해 이소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양시는 직접 제사를 주관할 정도로 소동파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사상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음에도 소동파나 포면이 내게 보여준 신뢰는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나는 이래저래 소동파와 인연인 셈이었다.

이제 당분간 모두와 헤어질 시간이었다. 우마르와 아랍 선원들이 끄는 배에 올라탄 나는 아쉬움을 느낄 시간도 없이 빠르게 바스라로 향했다. 시간이 급한 것은 우마르도 마찬가지여서 10년 전 아랍행보다 훨씬 빠르게 바스라에 도착했다.

카라미타가 사라진 바스라는 고대의 영광만큼은 아니더라도 폐허에서 상당히 벗어난 상태였다. 바스라의 영주는 10년 사이에 몇 차례 바뀌었는데 지금은 아흐마드 산자르의 측근이 통치하며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영주는 산자르의 도성인 바그다드까지 수백의 낙타 기병을 붙여주는 성의를 보였다.

‘이 자가 아흐마드 산자르?’

셀주크 제국의 황혼을 대표하는 영웅은 나만큼이나 듬직한 체구의 사내였다. 수염 때문에 보기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이제 겨우 스물 초반대였다.

12살 때 이미 호라산 총독이 되었고 14살이 되었을 때는 말만 술탄이 임명한 총독이지 일대의 왕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킬리지 아르슬란 역시 10대의 나이부터 정복 전쟁을 벌였지만, 경력으로 따지면 아랍의 역대 영웅 중 산자르를 확실하게 넘어설 사람은 전 세계적인 명장급에 속하는 살라딘 정도에 불과하다.

산자르는 나를 보자마자 호위의 칼을 뽑아 나에게 던졌다. 내가 던져준 칼을 잡자 자신 역시 칼을 뽑으며 뭐라고 말했다. 워낙 빠르게 말해서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한 마디는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마힐셀렘이었다. 아마도 내가 진짜 마힐셀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지 자기랑 한 번 붙어보자는 것이리라.

재미있었다. 중언부언하는 것보다 차라리 깔끔하게 실력을 겨루고 서로를 인정한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나았다. 그런 면에서 산자르는 긴 재위 기간 내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영웅적인 성과를 낸 술탄다웠다.

월도와 월도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점점 빨라졌다. 합을 맞추어 대련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우리의 동작은 절묘했고 주변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가자 칼이 합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산자르가 눈짓하자 금세 칼 두 자루가 우리 앞에 대령했고 대결은 재개되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다섯 번, 지켜보는 대신들은 자칫 자신들의 왕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칼을 다시 대령할 때마다 그만하라는 투의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산자르는 공방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지 일체의 조언을 물리쳤다. 그가 소리를 한 번 지르자 아무도 다시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다.

그는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난 왕이었지만 밑에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한 편은 아니었다. 패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가 포로로 잡힌 적이 한 번 있는데 군 지휘관들의 배신 때문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산자르라는 이름 자체가 찌른다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그는 나와 대결하는 내내 공격뿐이었다. 수비를 도외시한 그의 공격은 일격필살과 같아서 나를 손님이 아니라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만의 대화일 것이다.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 자신의 고난을 해결해줄 수 없으며 자신의 친구 역시 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대결을 통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대화를 한 셈이었다.

열 자루의 칼이 부러지자 그는 부러진 칼자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버리고 내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얹었다. 아직 내 손에 부러진 칼이 들려 있음에도 스스럼없는 그의 행동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는 룸 술탄국 왕자의 후견인이다.”

“잘 안다.”

나이도 어린놈이 반말을 해대는 것이 영 거슬리기는 했지만 일단 잠자코 들어주기로 했다.

“마힐셀렘이 사자의 친구인 것도 안다.”

룸 술탄국 부활의 주인공, 킬리지 아르슬란의 별명이 용맹한 사자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킬리지는 많이 아픈가?”

“사실 킬리지는 중병이 아니다. 이스마일파의 빌어먹을 하사신에게 암습을 당해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다.”

킬리지 아르슬란은 나와 동갑이다. 아직 한창인 그가 중병에 걸렸다는 것이 조금 믿기지 않았던 차였다. 내가 우마르를 바라보자 우마르도 몰랐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우마르가 떠난 후에야 알아낸 사실이다. 킬리지는 룸 술탄국을 노리고 침입한 십자군들을 몰아내기 위해 앙숙이었던 다니슈멘드와 연합했는데 그 와중에 하사신이 끼어든 것이다. 선봉에 서서 군의 사기를 책임졌던 킬리지가 쓰러지니 십자군 기사단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현재 킬리지는 코니아에서 군대를 끌어모아 반격을 준비하고 있지만, 상세가 위중해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문제는…….”

우마르는 내가 마힐셀렘이라는 이름을 적절히 활용하여 산자르가 처한 동쪽의 위기를 해소해주기를 바랐지만, 그 사이 상황이 바뀐 것 같았다.

“킬리지가 아내와 자녀들을 볼모 형식으로 콘스타티노폴리스로 보냈다는 것이다.”

“비잔틴으로?”

볼모 형식이라면 뭔가를 걸었다는 뜻이다. 십자군 기사들이 제멋대로 국가를 세우고 활보하는 것을 비잔틴으로서는 참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니 킬리지는 그런 비잔틴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수를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칫 늑대 몰아내자고 호랑이를 안방으로 모시는 격인데 그 정도로 십자군에 대한 원한이 컸을까? 나는 그렇다고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볼모 형식을 빌린 보호라고 보고 비잔틴이 얻게 될 이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토다. 현대의 영토로 따지면 비잔틴은 터키 전부를 얻기보다 해안 인근의 알짜배기 땅을 얻는 것을 선호했다. 땅만 많아 봐야 실속은 없고 분쟁만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터키 중부 코니아를 중심으로 한 룸 술탄국의 존재는 아랍과 십자군에 대한 방파제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룸 술탄국은 필요에 따라 아랍과 비잔틴 양쪽을 오갔고 200년을 버틴다.

“가즈나의 왕은 내게 복속을 청했다. 친히 선봉에 서서 사로잡은 포로 일만을 베자 애걸복걸 매달리더군.”

“그러나 아르빌의 총독에게 바그다드가 약탈당하지 않았습니까?”

산자르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그가 그 말을 꺼낸 대신을 쏘아보자 대신은 괜히 말을 꺼냈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대번에 산자르의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산자르가 칼리프와 셀주크 술탄의 권위에서 벗어나 이라크와 이란 양국에 걸쳐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초기 단계라 세력이 완전하지 않았다. 한 곳 정도는 전력을 다해 부술 수 있지만, 그사이 하나를 내줘야 하는 형국이다. 현재 셀주크 제국은 집안싸움 중이었고 산자르는 정통성을 지닌 술탄의 반대편에 선 쪽이었다. 그렇다면 아르빌의 총독은 전자에 속한 자일 것이다.

“그대가 타티키오스와 친분이 깊다고 들었다.”

산자르는 이미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조사한 것 같았다.

“타티키오스는 병으로 죽었지만, 그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비잔틴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여기에 있는 누구도 그대만큼 비잔틴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보고 킬리지 아르슬란의 부인과 자식들을 귀환시켜달라? 룸 술탄국이 비잔틴의 속국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군.”

산자르를 후견인으로 정할 때 아마도 그의 현재 세력보다는 가능성을 보았을 가능성이 컸다. 셀주크 제국의 지배자, 말리크 샤 1세의 다섯째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셀주크 제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반란군 비슷한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은 어머니가 같은 동복형제들끼리 뭉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킬리지가 건재했을 때는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한 보험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위급한 상황에서 십자군과 앙숙인 비잔틴 쪽에 선을 댄 것이리라. 예전 내가 니케아 공방전에 참여했을 때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십자군보다는 비잔틴에 순순히 내주며 생긴 인연도 있지 않은가? 거리도 비잔틴 쪽이 훨씬 가깝기는 하다.

킬리지의 예상보다 빨리 산자르의 세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었고 그가 훗날 셀주크 전체의 술탄이 될 것을 아는 나다. 산자르는 비잔틴의 동진 야심을 막아 외부 변수를 줄이고 내전의 승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 룸 술탄국이 온전하게 독립을 유지하는 것은 킬리지의 친구인 그대도 원하는 바일 것이다. 성공한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소원은 그 어떤 것도 들어주겠다. 설령 나의 하렘을 달라고 해도 말이지.”

산자르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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