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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29화 (229/257)

00229  (29) 남산가이(南山可移)  =========================================================================

술탄이 세속의 지배자라면 아랍어로 할리파, 우리에게 익숙한 칼리프는 신의 대리자를 의미한다. 한 마디로 유럽의 교황이다.

교황이 여럿이 있을 수 없듯 칼리프 역시 여럿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시기는 3명의 칼리프가 서로 정통이라며 대립하고 있을 때다.

스페인 남부와 모로코, 세네갈까지의 방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무라비트 왕조와 다수인 수니파에 대항하여 이집트와 그 인근 지역을 영역으로 둔 파티마 왕조,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삼는 아바스 왕조다.

이들은 저마다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무라비트 왕조는 너무 멀리 떨어져서 이번 일과 상관이 없으니 제외하고, 파티마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상황만 설명하면 이렇다.

아바스 왕조는 종교적 권위만 가진 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호라산의 술탄 아흐마드 산자르의 자비에 의지해야 했다. 역대 칼리프가 대부분 의문사를 당한 것을 봤을 때,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건 유럽의 교황과 군주들의 관계도 비슷하니 이해할 수는 있다.

파티마 왕조는 셀주크 제국의 혼란을 틈타 잘나가는 것 같지만, 예루살렘 인근을 모두 빼앗기고 지방 정권의 반란까지 일어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아랍인들의 민심이 어디로 쏠리느냐가 중요해진다. 아랍인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파티마 왕조의 교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세력이 강성한 때도 아랍의 맹주까지는 되지 못했다.

파티마 왕조는 공포와 힘으로 노쇠한 셀주크 제국을 대신해 아랍의 맹주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호라산(이란)에 제2의 근거지를 마련하여 셀주크 제국을 동서에서 압박하고 인근 왕조들의 참전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성공하여 앞서 아흐마드 산자르가 현재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다. 영지도 차지하지 못한 중소 십자군의 모임 정도는 산자르가 움직이면 끝이었다. 그가 움직이려면 그를 암살로 위협하고 있는 하사신, 그들과 손잡은 가즈나 왕조를 전쟁에서 손 떼게 하여야 한다.

우마르는 그것을 나에게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믿는 것은 하나였다. 10년 전 아랍에서 중국까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며 얻었던 ‘마힐셀렘’이란 별호 때문이었다.

마힐셀렘은 만곡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칼이기도 하다. 나는 만곡도를 들고 아랍과 중앙아시아를 종횡했던 때를 떠올렸다.

“마힐셀렘은 당시 유목민에겐 전설이었습니다. 다시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려도 가즈나 왕조(아프가니스탄)와 카라한 왕조(투르키스탄)가 겁을 먹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동부에서 흔들어 달라는 의미였다. 동부 변경이 흔들리면 이란에 집중한 전력이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자르에겐 그 정도의 여유면 충분하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산자르에겐 지금이 그나마 고난이긴 하다. 힘을 키우며 인내했던 그가 폭발하자 가즈나 왕조와 카라한 왕조를 속국으로 만들어 버리고 서부로 진격하여 셀주크 제국의 정통 술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셀주크 제국의 마지막 황혼기이다.

몸을 뺀다면 지금이 적기이긴 했다. 왕이 제도(帝都)를 떠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신하들이 난리를 피울 수도 있겠지만, 이미 양나라는 기존 국가의 정치 체제와는 달랐다.

그것은 양시나 장뢰, 장상영 같은 대신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유학에서 꿈꾸던 신권 정치를 열어주고 왕은 외치에 전념하겠다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 왕이 없어도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에 대해 논의하라고 한 것은 더더욱 그들의 충성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그들은 스스로 베네치아와 거의 흡사한 정치 제도를 만들어냈고 시행에 옮기고 있었다.

‘베네치아도 한 번 들를 수 있으면 좋겠군.’

베네치아는 지금쯤 신흥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을 때다. 이제부터 전성기를 향해 끝을 모르고 상승할 것이다. 나폴레옹에 의해 망하기 전에, 아, 망했다는 말은 어폐가 있는 것 같다. 프랑스군이 베네치아에 발을 들이기 전에 공화정을 민주제로 변경함으로써 사실상 명예로운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굉장히 독특한 사례이기도 하다. 1100년간 지속한 유일한 공화국, 그 사이 두 번의 쿠데타 모의가 있었으나 신속하게 진압하여 최장기 정치 안정을 이루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나 몽테스키외 같은 이들의 저작물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전성기에 베네치아 본토 인구가 20만을 넘겨 본 적이 없고, 속령까지 합치면 100만을 넘지 않는 나라임에도 막강한 해운과 해군을 바탕으로 동방과 교역하고 오스만 튀르크라는 대제국과 자웅을 겨뤘다. 학자들은 그 이유를 무역으로 축적된 부가 정치를 안정하는데 제대로 쓰이면서 유사시 국가의 잠재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을 꼽는다.

고구려나 고려가 상무(尙武) 정신을 내세웠다면 베네치아는 상무(商武)였던 셈이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자본가와 산업가의 정치 참여가 주는 폐해가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 발전에 따른 변화이지 모험과 개척의 시대가 곧 다가올 지금으로써는 실리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현재 양나라에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는 송나라지만 이자겸이 개봉과 항주를 넘나들며 준비한 모략을 시작할 터이니 당분간 혼란에 빠질 것이다. 놀랍게도 이자겸이 내민 카드는 재상 채경의 파직이었다. 이자겸의 수완이 채경의 파직을 실행시킬 수 있을 정도라서 놀란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때쯤 채경이 파직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상당히 재미있다.

올해는 유난히 혜성이 자주 출현했다. 게다가 2번의 일식도 예정되어 있었다. 제왕들은 하늘의 변고를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여겼으므로 선행을 베풀어 덮고자 했다. 예를 들어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라던지, 소동파 같은 구법당을 간신으로 규정하여 그 이름을 새긴 ‘원우간당비’를 부수기도 했다. 귀양 간 구법당 인사들을 사면하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구법당 인사들에겐 사형을 멈출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시서화와 주색잡기에 빠진 휘종을 대신해 권력을 휘두르던 채경이나 동관 같은 간신들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휘종이 하늘의 변고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채경은 휘종의 마음을 돌리려 하나 사면 복권된 구법당 인사들이 조정으로 복귀하면서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 파직까지 당하게 된다. 물론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곧 복귀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러한 이면에 숨겨진 쟁투가 사실 만만치 않다.

일단 이자겸은 일식을 예고하는 관리들을 매수했다. 천자의 관심이 큰 일식 예고를 감히 틀리게 하는 짓을 관리가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겠지만 틀렸을 때 천자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관리 입장에서도 고려해볼 만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 해는 2번의 일식을 예고했는데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서 신하들이 이것은 천자의 은덕이 하늘에 닿은 것이라며 축하와 만세를 올린다.

이는 상서로운 징조라며 특별히 과거 시험을 볼 것을 건의했고 이 건의가 먹혀 과거 급제자가 671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채경이나 동관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면 과거에 응시한 자 중 재물을 바치거나 연줄을 통해서 이미 합격자가 결정되어 있었겠지만 구법당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잡은 상황에서 간신들의 이목도 과거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세력을 확보하지 못할 시 자칫 조정에 영영 발을 못 디딜 가능성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대리가 운남에서 북상하여 촉을 차지하고 차마 무역을 독점하기 시작하니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할 것이다. 그 여론은 이자겸과 귀화 귀족들의 몫이었다. 구법당이라고 다 소동파나 장상영 같은 사람이 아니어서 욕심 많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들은 이자겸의 꼬드김을 그냥 넘기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그런 것을 떠나서 차마 무역이 송에 벌어다 주는 금액은 상당했으므로 언제까지 대리국의 지배를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떤 병력을 이동해야 할까? 서하와 요를 상대로 하는 북방병을 뺀다는 것은 자칫 송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었다. 결국, 선택은 항주의 10만 금군이다.

각 지역에서 어중이떠중이 숫자만 맞춘 병사들은 위세를 알리는 용도로 쓴다고 치고 실질적으로 전투에 나설 정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강을 따라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으니 이동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비록 강주(시상)까지 가서 포면을 구하는 난리를 연출했지만, 양나라는 송과 현재 무이산맥을 기점으로 국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로 치면 사섭이 다스리던 교주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수군 양성은 둘째치고 장강에 수군을 투입하고 싶어도 항주를 거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험준한 산맥을 방패 삼아 거점 방어 형태로 지켜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채경과 동관의 시선이 구법당과의 경쟁, 과거 시험, 사천 출병에 쏠리면 거의 다른 일엔 신경 쓰지 못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독한 폭정에 시달리던 항주의 상인들은 이자겸과 귀화 귀족들의 꼬임에 속속 넘어갈 것이다.

오월국을 세웠던 전류가 소금 상인이어서 상인의 중요성을 잘 깨닫고 우대했던 것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들이 나중에 망할지도 모를지언정 일단 해운과 상인의 중요성을 강남 전체가 공감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은 장강 이북과 또 다른 차별점이 될 것이다.

‘별무반의 결성이 완료되는 시점이 앞으로 대략 1년하고도 반년…….’

허투루 허비할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지난 10년이 지금을 위한 준비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미안한 것은 이소를 다시 혼자 두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자매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책감이 들었다. 조금만 더 주의했다면 그녀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그런 수가 있었구나.”

우마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장상영을 찾았다. 양시나 장뢰 등은 행정보다는 국가의 근본이념을 설정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상영은 나의 예상하지 못한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왔는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나타났다. 나는 그의 숨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다려 말했다.

“재상을 비롯한 신료들은 정통성을 위해 이곳에서 혈통이 좋은 가문과 혼인을 치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합한 열 곳의 혼처를 추려 간하지 않았습니까?”

장상영의 얼굴이 희색이 되었다. 다들 왕과 왕후가 고려 출신이라는 것이 양나라 최대의 약점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줄기차게 고귀한 핏줄을 맞이하여 정통성에 대한 시비를 잠재울 것을 권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채왕 조사의 딸이었다.

휘종이 비록 하늘의 변고 때문이라고는 하나 구법당을 재등용하기 시작하면서 곤란해진 것은 나와 함께 반란을 주도하려는 채왕 조사였다. 나야 이미 구법당의 알맹이들을 영입한 셈이고 그들이 다시 송으로 갈 일은 없었으니 상관없다.

채왕 조사의 측근들도 대부분 신법당에게 밀려난 구법당 출신들이다. 문제는 그들의 우두머리격인 장돈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구심점의 공백을 맛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뒤를 이을 사람으론 임백우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그의 연륜은 장돈에 비하면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중앙에서 밀려난 구법당 무리 중 일부는 휘종의 사면복권에 환영하며 이탈하는 실정이었다.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나라도 역사를 몰랐다면 그랬을 것이기 때문이다. 채경이 반년 후 복귀하여 그들의 목을 치리라는 것을 짐작했다면 누가 가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채왕 조사나 장돈, 둘 다 병으로 사망한다면? 구심점을 잃은 채왕 옹립 세력은 나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채왕의 누이를 왕후로 맞이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선택이었다. 휘종의 숙부인 채왕의 딸이면 천자는 몰라도 왕을 자처하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따지면 내 사후 양나라가 중원으로 귀속될 빌미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현명한 재상 후보들이 즐비하다고 해도 사람의 욕심이란 역사를 되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왕 혼인할 것이라면 가장 양나라다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재상이 올린 열 곳의 혼처는 하나같이 한인이었습니다. 아국의 백성 중 한인은 얼마나 됩니까?”

“아국은 모두 49개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에 비해 한 줌도 안 되는 한인이 그들을 다스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중원의 예와 의가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지금 조정의 관료만 하더라도 7할은 한인입니다. 그렇게나 많은 인재가 궁벽한 이곳까지 온 것은 오로지 전하의 영명 때문입니다.”

내가 던진 질문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장상영은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만약 이 자리에 이소 부자나 양시가 있었다면 장상영을 거들면서도 은근히 뜻을 거뒀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어쨌거나 복건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짐은 결심했습니다. 아국의 왕후는 아국에서 태어나 아국의 전통과 문화를 잘 이해하는 여인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국 백성의 대다수는 묘족입니다. 그러하니 묘족의 여인을 왕후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전하…….”

장상영은 당황스러운지 멈췄던 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장상영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채왕 전하와 틀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을 잘 입니다. 한인 관료들이 묘족 여인을 왕후로 맞이하는 것을 비웃고 경멸할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서하의 왕후는 한인입니까? 요의 왕후는 한인입니까? 고려의 왕후는 한인입니까?”

“같은 변방이라 하더라도 복건은 천하를 이루는 조각입니다. 필연적으로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중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중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짐이 천하를 얻겠다고 공언했으나 재상과 짐이 보는 천하는 다른가 봅니다. 천하는 중원이 아니라 바로 이곳,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시작합니다. 중원이 중심이 아니라 우리가 중심이란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신이 잘 이해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요나라의 관료 6할이 한인입니다. 특히 남경(지금의 북경)의 관리 중 9할이 한인이라는 사실도 말입니다. 한인의 말을 쓰고 한인의 문자를 쓰며 점차 한인과 똑같이 변하고 있지요. 한때 여진의 기마술을 비웃던 용맹한 거란이 이제는 여진을 야만이라 칭하고 그들의 기마술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옳은 것입니까?”

“거친 거란도 교화되었으니 여진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그럼 이곳 역시도 교화해야 마땅한 곳입니까?”

장상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뜻이 확고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내 말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차후에 나올 반발을 생각해 나를 만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출신지가 사천인 것을 생각하면 이곳과 별 차이도 없다.

“묘족을 비롯한 49개 부족의 언어와 예의가 중원과 다르다 하여 교화의 대상이 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이 천하가 되면 오히려 한인들이 이곳의 언어와 예의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짐이 생각하는 천하입니다.”

============================ 작품 후기 ============================

전에 방송대에 편입해서 역사나 철학에 대해 더 공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 어느덧 4학년이 되었네요. 주말엔 엠티를 가게 되서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월요일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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