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3 (28) 호시마주(虎視馬走) =========================================================================
이미 늦은 밤이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약속하고 나는 거처로 돌아왔다. 술에 취해 곳곳에 쓰러진 장정들이 여럿이었다. 그중에는 아버지와 아우인 척준신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렀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는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하다. 처음엔 남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들은 나를 진짜로 여기고 정성을 다한다. 일반적인 가족 관계라면 그것이 정상일 것이다.
현대에서 나는 외동이었다. 자연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제법 좋은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제대로 효도를 해드릴 틈도 없이 차례차례 돌아가셨다. 암과 교통사고라는,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망 원인에 의해서 말이다.
너무 슬펐다. 그때 효도라는 걸 다시 생각했다. 이루고 난 다음 효도를 하겠다고 하면 늦다는 걸, 효도는 마음먹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평상시부터 주고받는 소통과 추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슬픔을 딛고자 일에 매진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이면 집에서 책을 읽었다. 좋은 말을 듣고 위로받고자 시작한 고전 읽기는 지식욕과 맞물려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탐닉했다.
그러한 탐닉이 과거에도 지금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이곳에 온 것이 부모의 죽음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할 예정된 순서란 것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예정한 하늘을, 그 누군가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망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나를 위해 희생된 부모가 아니라 이만큼이나 잘 자랐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운명론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과거의 아버지도 지금의 아버지와 동생도 하나같이 소중한 존재였다.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어쩌면 나란 존재가 어머니를 통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함의(含意), 즉, 어머니가 아닌 누군가의 의지에 의한 존재라는 증거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 머릿속은 온전히 현대의 이준경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도 어머니와의 어린 시절을 추억을 간직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이준경이 함께했고, 지금은 척준경의 어린 시절이 마치 내가 겪었던 일처럼 체득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하늘, 혹은 누군가에게 발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과거의 이준경, 척준경, 현대의 이준경까지 세 명의 각기 다른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했다. 그 기억이 주는 사랑이 내가 혹여 어긋날 것을 바로 잡고 꾸준히 바른길을 일깨워준다.
‘세상의 그 어느 부모도 나쁜 짓을 하며 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바르고 행복하게 되길 바라지요. 내가 세상에 바라고자 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지금까지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느냐를 놓고 고민했다면 이젠 호랑이를 올라탄 몸이었다. 그 호랑이가 어디로 달릴 것이냐의 선택만 남은 셈이었다. 그것을 아버지와 아우를 보며 다시금 떠올렸다.
아침은 금세 찾아왔다.
다들 숙취에 절어 게슴츠레 눈을 떴지만 내가 전쟁이라도 할 것 같은 복장으로 채비를 끝낸 것을 보자 허겁지겁 군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유도 묻지 않고 나를 쫓으려는 것이다.
아버지야 집에 남으실 것이니 어지러워진 주변을 가솔(家率)에게 정리하라고 이른 후 모두를 대신해 꼭두새벽부터 군장을 갖춘 이유를 물었다.
내가 어제 들은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자 준신이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말했다.
“고영창이면 형님에게 수벽타를 전수해준 고수가 아닙니까? 그분과 겨루시겠다는 말입니까?”
내가 그에게 배웠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지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제 청성검을 상대로 내가 이겼다는 말을 듣고 보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는데 이제야 내 실력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흥분이 더 앞서는 것 같았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전 이철을 죽이면서 내 수하가 되었던 열 명의 무승 중 내가 준 임무 때문에 복건, 혹은 왜로 간 자들을 제외한 6명이 하나같이 준신 못지않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들은 아버지와 아우의 안위, 혹은 동계에서 내 입지를 다져놓기 위해 정주성에 계속 머물러 있었기에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실전 경험도 쌓아줄 겸 그들을 모두 대동하여 고영창을 만날 작정이었다. 당연히 아우와 무승들은 무척 좋아했다.
그들을 이끌고 관헌으로 가니 이미 수천의 병사가 모여 있었다. 혹시 모를 마찰을 대비한 병력이었다. 고영창이 5천의 거란 기병을 이끌고 있다고 했고, 해가 부족은 약 3천 정도라고 하니 맞서 싸우지는 않더라도 퇴각할 시간을 버는 정도의 전력은 갖춰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니 반색하며 맞이했다. 청성검을 이겼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깟 고영창이 문제겠느냐는 인식이 역력했다. 오직 해가의 추장, 내가만이 고영창은 진짜 무서운 고수라며 약간의 불안감을 내비쳤다.
일단 고려군의 개입은 최악의 순간이어야만 했기 때문에 해가 부족 남쪽 10리 인근 숲에서 숨어있기로 했다. 고영창을 만나는 것은 아우와 6인의 무승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가 추장 내가는 사건의 당사자이므로 길잡이 역할로 같이 가야 했다.
우리가 해가 부족에 도착하자 해가 부족은 노약자를 피신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의식이 벌어지고 결의를 다지고 있던 차에 추장이 도착하자 저마다 몰려들어 귀부 신청이 받아들여졌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를 고려로 인도할 길잡이 정도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다 전사 중 누군가 나를 보며 기웃하다가 이내 경악하며 주변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해가가 야율대석의 명령으로 아구다를 공격했다가 나의 개입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으니 그때 공격에 참여한 전사들은 내 얼굴을 알 법도 했다.
전사들의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칼을 빼서 나에게 덤벼드는 자가 생겨났다. 아마도 그때 형제를 잃었거나 친우를 잃은 자이리라 예상했다.
나는 덤벼드는 전사를 가볍게 피해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키고, 배에서 힘을 끌어올려 큰소리로 외쳤다.
“공봉관 고영창이 강한가? 내가 강한가? 궁금하지 않은가!”
힘에 대한 경외는 약탈을 주업으로 삼았던 북방 민족에게 필연과도 같은 일이었다. 죽고 죽이는 일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때론 자식을 죽인 원수와도 손을 잡아야 했다. 예컨대 무엇이 우선순위인가를 따져 묻는 것이었다.
내가 고영창에게 패한다면 내게 원한을 가진 자들의 원한은 풀릴 것이나 부족은 불행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고영창을 이긴다면 원한은 남지만, 부족 전체가 안전해진다. 내가 아는 북방민족들은 대게 솔직한 사람들이었다. 가혹하고 척박한 삶 속에서 생존에 우선시 되는 것을 선택하는 실리적인 사람들이기도 했다.
나에게 원망의 시선을 던지던 전사들은 순간 흠칫했다. 그때 추장 내가가 나서서 청성검이 나에게 죽었음을 공표했다. 대부분 놀라워했지만 어떤 이들은 청성검은 허약한 한족들이 만들어낸 가짜 신선이라며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었다.
두두두!
그때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자 부족은 일순간 바빠지기 시작했다. 고영창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다. 그는 어쩌면 일부러 여정 자체를 늦추었다가 갑자기 급행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적들이 미처 대비하기 전에 들이닥치는 것은 어느 시대든 좋은 전술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입구에 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고영창이 선봉에 섰던 것은 아닌지 이름 모를 장수 하나가 나를 보자마자 항복의 사신으로 여겼던 것인지 일단 멈출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내 옷차림을 조금만 살펴도 해가 부족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해명을 요구하는 투로 내 뒤에 선 추장 내가를 쏘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거란 기병이 썰물처럼 갈라지며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치 이곳에서 일어날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권태로운 표정이었는데 나를 발견하더니 이내 안색이 바뀌었다.
“너로구나.”
그가 말에서 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를 다른 이들이 위험할 수 있다며 막으려 했으나 강하게 권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는 듯했다. 그는 바로 고영창이었다.
고영창의 모습은 10년 사이 크게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이마에 두어 개의 주름이 희미하게 비치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 주름만큼이나 눈빛은 침잠(沈潛)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만나게 되면 너와 나는 전장에서 서로 칼을 겨누게 될 것이라 말한 바가 있다.”
“기억이 납니다.”
망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그는 나에게 수벽타를 전수하고 거란으로 떠났다. 떠나면서 그는 나에게 분명히 지금과 같은 말을 남겼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일타필살이다.”
일타필살. 정말 오랜만에 그의 입에서 듣는 단어였다. 전장은 산속에서 내공이나 수련하는 신선놀음이 통하지 않는다며 가장 힘을 적게 들이며 적을 살상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일타필살, 그 하나만이 전장의 싸움법이라 정의했다.
나는 뒤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우가 냉큼 다가와 자신이 들고 있던 수패를 건네주었다. 이소가 손질한 양규 장군의 수패였다.
고영창의 눈에서 이채가 발했다. 수패가 자신이 줬던 것임을 알아본 것이다.
“잘도 잃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구나.”
“누가 준 물건인데 잃어버리겠습니까.”
“연원(淵源) 역시 알렸다?”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영창은 뒷짐을 쥐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결에 앞선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강조가 고려의 장기인 수성전을 무시하고 통주에서 정면 대결을 대패했다. 거란 기병의 약점이 장기전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회전 선택은 매우 빨랐고, 총사령관이 위험을 감수하고 지휘를 선택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강조는 불안했던 것이지요. 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으나 그 기반이 취약했습니다. 유서 깊은 명문가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군대를 다른 이에게 맡겼다가 뒤통수를 맡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이 직접 지휘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자칫 도성을 오래도록 비우면 취약한 기반이 흔들릴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에 단기 결전에서 승리한 후 도성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죠.”
내가 조목조목 설명하자 고영창은 흠칫 놀라는 모양새였다. 그가 알고 있던 어린 나는 척준경의 본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색다르게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고영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10년의 세월은 용맹만 강했던 소년에게 지혜도 선물했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전을 치러야 하는 상대방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니 지켜보던 사람들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겠지만 나와 그는 분명히 통하고 있었다. 누가 이기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고영창이 왕진을 소개해주던 그 날 밤, 나누었던 대화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고영창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권력에 집착하던 강조의 오판으로 고려는 단 하루의 전투로 수십만의 주력을 모두 잃었다.”
“그래서 도성이 함락당했지요. 그러나 불과 10일 만에 거란은 고려를 떠났습니다. 단 한 명의 활약 때문에요.”
그것이 양규 장군이었다. 적들의 보급로를 모두 끊어버리자 성공을 목전에 둔 거란으로서는 후퇴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현지에서 물자를 보급하여 싸우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식량이 아니라 말에게 먹일 건초였다. 애초에 기병이 활성화되지 않은 고려에서 충분한 건초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한 건초를 초원에서 조달해와야 하는데 그 통로가 막히니 거란도 달리 손쓸 방도가 없었다.
“양규 장군과 김숙홍 장군은 목숨을 걸고 고려를 지켜냈다. 당시 양규 장군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수패를 어찌하여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었겠느냐?”
요나라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고영창 뒤로 늘어선 거란 기병들은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서에 나온 발해 유민으로 이뤄진 발해 기병일 가능성이 컸다. 곽약사 역시 발해 유민으로 이뤄진 군대를 이끌고 연전연승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번 출정도 야율대석에 대한 충정이라기보단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었다.
“선조가 양규 장군의 부장이 아닙니까? 그 외엔 딱히 다른 생각이 안 드는군요.”
“너의 생각이 옳다.”
고영창은 시원스럽게 답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어찌 양규 장군이 전사하면서 잊혔을 수패를 챙길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후사를 부탁했을지도 모른다.
“발해가 멸망하고 유민들은 압록강 주변에 모여 정안국을 열었다. 대씨가 중심이 되어 한때 나라의 성세가 대단했으나 열씨와 오씨가 대씨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자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정안국 이야기는 나도 잘 아는 이야기였다. 대씨가 정권을 빼앗기면서 고려와 중국의 후주(後周)로 귀화를 선택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나는 그가 그냥 이야기를 꺼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그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양규 장군의 임지가 압록강 나루를 통제하며 요의 남하를 막는 흥화진이었죠. 정안국이 멸망한 후에도 그곳에 살다가 양규 장군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군요.”
“맞다. 양규 장군은 최후에 이르러 수패를 맡기며 고려의 방패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하지. 고려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야.”
양규 장군과 김숙홍 장군은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때 양규 장군이 추증받은 직위가 공부상서였다. 품계로 따지면 정3품이다. 장군은 정3품 이상 오르지 못한다는 관례가 고려를 존망에서 구한 장군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사실 쉽게 갈 수 있었던 전쟁의 패배를 자초한 강조를 보면 크롬웰과 같은 개혁 정치를 벌인 성과가 있긴 하다. 천대받던 무인의 지위를 향상하고 왕족과 문벌 귀족의 부패를 척결하려는 시도가 보이니 말이다. 전투에서 패해 강조가 사로잡혔을 때 함께 잡힌 이현운은 회유에 넘어가 변절했지만, 강조는 응하지 않다가 처형되는 것을 보면 고려에 대한 충심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강조와 양규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역사를 막론하고 인재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가치관과 포상하는 기준이 적절한가는 항상 논란이 있었다. 그에 대한 불만을 터트려 역사가 바뀐 사례도 여럿 있다. 강조는 울분을 터트리며 궐기했고, 양규는 포상 이전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군인의 의무를 먼저 행한 것의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런 양규 장군 같은 사람을 위인이라고 평하지만, 실제 세상을 살다 보면 강조 같은 사람이 되기 쉽다. 지금 고영창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그의 선조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적절한 포상을 받지 못하고 공신에서도 빠졌을 것이다.
후일 무신 정권이 열렸을 때,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이 예외 없이 공신에 오르며 철권을 휘둘렀던 것은 제2의 강조 사태라고 할 수 있었고 고려의 묵은 병폐가 터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옳은 것인가? 개인에겐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겠지만 무자비한 전횡을 통해 사회 정의는 무너졌다는 점에서 그러한 기회를 사회 변혁의 지렛대로 활용한 성군, 명신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력이 떨어져 반쯤 눈이 감겼던 양규 장군은 선조에게 수패를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너도 이 자리에서 죽으면 공신이 될 것이다. 개인에겐 영광이지만 고려를 살려줄 사람이 없구나. 미안하다. 너에게 큰 짐을 주었다. 살아남는다면 고생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자들이 여전히 활개 치는 고려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가시밭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고려가 살기 때문이다.”
과거든 현대든 나도 그런 비슷한 일과 고민을 겪어야만 했다.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을 왜 내가 해야 하는가? 왜 더 고생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바보처럼 이용만 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가? 양규 장군의 예를 보듯 묵묵히 의무를 다하는 사람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선택일 뿐이다.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정의만 실천하며 실리적으로 살던지, 아니면 실패는 나에게만 오지만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하는, 혹은 그 성공 중에 불합리한 무언가가 섞여 있더라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 말이다.
“양규 장군의 유명을 충실히 지키며 변방의 방패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고려 조정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는 향리에 불과했다. 정작 능력을 알아보고 출사를 제의한 것은 요나라였지.”
북방 민족이 세운 국가들을 보면 대게 능력 중시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혈기 넘치던 시절의 고영창은 혹할만했을 것이다.
“발해는 대씨의 나라였지만 고씨의 나라이기도 했다. 고려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내 손으로 대제국을 건설하리라 마음먹었다.”
안타까웠다.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고려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이 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많은 책임을 걸머지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감사나 보상에 인색하다.
“너는 어떠하냐?”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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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쉬고 월요일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