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2 (28) 호시마주(虎視馬走) =========================================================================
다음 날, 나는 서둘러 정주로 떠났다.
예종을 만나러 가면서 정지상을 통해 예종의 국정 운영방안을 대강 들었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음을 알고 그전에 정주성에서 머무르고 있는 아버지와 동생을 만나고, 나를 따르는 자들을 위무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아구다를 만나 향후 정세 변화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함도 있었다.
‘일단 예종은 상중(喪中)임을 핑계로 신년 하례를 받지 않을 작정이다. 재상들이 왕에게 건강을 위해 고기반찬을 권할 것이지만 이마저도 거절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 중 전국 수령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을 지시할 것이다.’
이미 예종을 찾아가면서 지켜보았던 광경이 아닌가? 숙종의 상중임을 내세워 혼인 같은 경사스러운 일들을 잠시 미루고 그사이 덕을 쌓겠다는 구실로 전국 감찰에 나선다. 이것은 실제로도 예종이 즉위 초기에 행했던 일이다. 그리하여 호족 세력을 일부 누르고 자신의 측근들을 그 자리에 앉히거나 요직에 중용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런 이유만으로 감찰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고려는 오랜 기간 토호들의 전횡으로 유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별무반 소집은 사실 유민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
정주에 도착하니 강증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가 아직 도성 소식을 모르는 듯하여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담담히 풀어주니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는 고려가 옛 발해와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수군이 아무리 강한들 뭐하겠는가? 기보(騎步, 기병과 보병)가 요와 여진에 비해 단단하지 못해 지금껏 수성에만 급급하고 말았지. 하지만 자네가 왔으니 이제 달라지겠지.”
강증은 현실을 푸념하며 내게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나는 고려가 차라리 해양국가로 진작에 발돋움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북방 고토를 차지한다? 이것 역시 해묵은 고정관념이 아닌가? 수백 년 전의 영토가 우리 것이었다고 되찾아야 한다면 현대에는 자기 땅이라 주장하는 민족이 수십은 나올 것이다. 고려가 뛰어난 수군을 바탕으로 신라의 장보고나, 백제를 뛰어넘는 해양국가를 주창했다면 아마 고려 역사는 내가 알고 있는 역사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벽란도로 오는 아랍 상인들이 아니라 아랍에 나타난 고려 상인들, 혹은 유럽과 교역하는 고려 상인들, 정말 멋지지 않은가?
만약 후백제가 후삼국을 통일했다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 있기는 했다. 고려는 시작부터가 고구려의 계승을 천명했으니 백제의 기조를 쫓아갈 이유가 없긴 하다. 그러하니 이것이 실질적으로 이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 예가 바로 양나라가 될 것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촉발된 동서양의 급격한 교류를 통해 대항해 시대를 일찍 여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보다 한발 앞서 역사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유럽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 예컨대 베니스나 제노아, 혹은 비잔틴 제국같이 종교보단 실리에 우선을 두는 국가들이 있었으므로 곧 자극을 받아 쫓아올 것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동등한 시선에서 서로를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메리카가 더욱 빨리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교류를 통해 아메리카가 분점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유럽만의 가치관이 전부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의 융합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나의 결심이었다.
“김한충 영감께선 자네가 귀양을 간 후 곧 복직하시어 상서가 되셨네. 곧 동경(경주)의 황룡사가 중건(重建)되는지라 주상께옵서 낙성식(落成式)을 주재하도록 명하셨지.”
김한충의 이름도 그렇고 황룡사의 이름도 그렇고 모두 뭉클한 이름이었다. 황룡사는 건립이래 외적의 침입 혹은 낙뢰로 말미암은 화재 같은 이유로 끊임없이 보수 과정을 거쳤다. 앞으로 황룡사는 더 수난을 겪게 될 것이지만 어쨌거나 지금 시기에선 수리가 다 끝나 그것을 축하하는 사절로 김한충을 보낸 모양이었다.
“병마사 영감은 출타 중이십니까? 어찌 안 보이십니까?”
강증을 찾아간 곳이 관헌이었으니 가장 먼저 상급자인 동북면병마사의 근황을 물어야 했지만, 워낙 기쁨이 커서 회포를 먼저 푸는 바람에 이제야 물었다.
현 동북면병마사는 김한충이 나와 함께 낙마한 이후 김덕진(金德珍)이 맡고 있었다. 그가 윤관 대신 별무반의 총사령을 맡았다면 더 적은 피해로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문신이지만 전쟁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김한충이 파직당했을 때도 나는 안도할 수 있지 않았던가?
“병마사 영감은 지금쯤 요나라 해가(奚家)의 추장인 내가(乃哥)를 만나고 있을걸세.”
“해가의 추장?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혹시 내가 모르는 변수가 생겼나 싶었다. 강증의 설명을 들으니 해가는 거란에 예속된 선비족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중국 동북부에 주로 거주했지만, 거란의 요나라가 세워지면서 점차 동쪽으로 밀려 백두산 인근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거란은 이들을 여진을 견제하는 용도로 부렸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추장이 병마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귀순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저녁쯤이면 김덕진이 돌아온다고 하여 나는 짧게 해후했던 아버지와 아우인 척준신, 그리고 이곳에서 묵묵히 때를 기다린 가신들과 정겨운 자리를 열었다. 그들은 내가 중원에서 한 일을 설명할 때마다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꿈같은 일이라고 평했다.
시골 향리에 불과했던 아버지는 내가 양나라의 왕이 될 것이며 예종을 만나 부마가 되기로 약속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한순간 너무 놀라 졸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우가 아버지를 안고 간신히 깨우자 감당할 수 없는 복이 화근이 될 수 있다며 걱정했다. 한미한 집안의 향리로서 걱정할 법도 했다. 나는 그런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늦은 밤이 되어 모두가 주독에 취해 잠이 들었을 때쯤 강증이 보낸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병마사가 나를 찾는다는 말에 발걸음을 바삐 놀려 관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북방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나는 그가 해가의 추장, 내가가 아닌가 싶었다.
병마사 김덕진은 나를 어찌 호칭해야 할까 고민하며 잠시 망설였다. 아직 양나라가 건국 전이니 장군으로 대우해주길 원하자 그제야 얼굴을 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척 장군, 내가 이곳에 부임하여 그대의 용명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소. 그리하여 갈라전의 크고 작은 여진 부족의 입조(入朝)가 끊이지 않았다오. 꼭 한 번 그대를 보고 싶었는데 마침 그대가 필요한 날 보게 되었으니 이 역시 부처님의 덕이 아닌가 싶소.”
나 역시 겸양하며 김덕진을 높여주자 김덕진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의 북방인에게 눈치를 주자 그가 넙죽 엎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해가의 추장, 내가라 하옵니다. 검은 사자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검은 사자라면, 일전에 요나라 사신단과의 씨름 대결을 통해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일부러 찾아 왔을 리는 만무했다.
“이들이 병마사 영감을 찾은 연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미 척 장군을 불렀을 때 그 연유에 대해 같이 의논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어려울 것이 없소.”
김덕진이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을수록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야율대석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수하로 삼으려 했고, 자칫 요와 고려 사이에 전쟁을 일으킬 음모를 획책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이름을 다시 들었더니 이젠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금쯤이면 요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천조제 치세다. 마지막 황제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는 어리석었고 정무에 관심도 없었으며 충신들의 직언을 싫어했다. 당연히 요나라의 국운은 기울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지나면 참다못한 아구다가 독립을 외치며 금나라를 건국하게 되기도 한다.
야율대석이 나를 만났던 시기는 별다른 관직 없이 흉중에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다. 그러나 지금은 한림원의 승지가 되었다고 했다. 한림원의 승지면 별 힘을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유목국가에서 그러한 관직보다는 핏줄과 그가 머무는 곳이 더 중요했다. 그의 핏줄은 요나라 태조에서 비롯되었고, 줄곧 동경 요양부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웠다.
다른 경쟁자들이 중원을 노릴 때, 발해의 영토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고 나아가 고려까지 도모하여 중원으로 나가고자 하는 원모(遠謀)가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야율대석의 명령을 철석같이 이행했습니다. 완안부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며 모든 부족 전사를 동원하라고 했을 때도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야율대석이 고려와 요의 전쟁을 획책하려 했던 음모, 그것은 요를 따르는 숙여진과 아구다의 완안부를 충돌시킴으로써 시작하지 않았던가? 나는 아구다를 도와 숙여진을 박살 냈다. 그 와중에 백산부의 추장을 설득하여 우리 편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검은 사자가 우리의 적이었다면 한사코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날 이후 우리 부족은 몰락했습니다. 아니 그때 완안부를 가담한 숙여진 대부분이 몰락에 가까운 길을 걷고 있지요. 야율대석은 이제 갈라전의 숙여진을 통제하기보다 하나로 합쳐 요나라의 군사로 부리고 싶어 합니다.”
“대수령(大首領) 부족군(部族軍)?”
“맞습니다.”
요나라의 왕족들은 고려 호족과 비슷하게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으론 요나라가 곧 자신들의 집안이기에 집안을 지키기 위해 사병을 거느리는 것이 마땅하며 미리 위험한 적들을 공격하여 위험을 미리 방비하는 것이 집안을 지키는 것이란 논리를 댔다. 어쩌면 유럽의 장원제하고도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다. 황제가 소집령을 내리는 경우 사병을 내놓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한 사병을 대수령 부족군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떤 부족이 자유를 버리고 순순히 밑으로 들어가길 바라겠는가? 대부분은 강제로 편입되었다.
야율대석은 숙여진이 완안부 견제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이상 그들의 역량을 하나로 합쳐 단일한 군대로 형성되길 바랐고 지금이 그러한 시기라는 것이다.
“당장 일천 리 밖에서 야율대석의 수족인 동봉관 고영창이 5천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그저 시키는 대로 한 것인데 이제 영혼마저 달라고 합니다. 숙의(熟議) 끝에 고려로의 귀부(歸附)를 결정하여 병마사 영감에게 허락해달라 청했습니다. 그러나 병마사 영감께서…….”
“잠깐!”
김덕진은 자칫 요나라의 내정간섭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라 망설였던 것 같다. 자신의 권한을 뛰어넘는 일이라 판단하고 조정에 알려 처리를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라면 능히 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영창이란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사고가 멈췄다. 나에게 무예의 기초를 심어주고 수벽타를 전수해준 고영창, 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이다.
앞으로 몇 해 뒤에 아구다가 금나라를 세우며 요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틈을 타서 고영창은 따르던 발해 유민 등을 모아 대원국을 건국하고 황제를 칭하게 된다. 그런 대원국을 멸하고자 요나라가 공격했지만, 번번이 막아냈다. 대원국이 멸망한 것은 거추장스럽다고 여긴 금나라의 공격 때문이었다.
“공봉관 고영창이 정녕 맞는가?”
“틀림없습니다. 칼둔이 야율대석의 방패라면 고영창은 야율대석의 칼이라고 알려진 최측근입니다. 그는 동경과 갈라전 일대에서만 활약하여 중원이나 고려는 그의 이름을 잘 모르지만 곽약사도 그를 피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입니다.”
곽약사면 이선 사문 일사 중 일사(一邪)를 가리킴이다. 이미 사문 중의 일인인 청성검 유해섬과 겨뤘으므로 그의 수준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저러한 명칭 자체가 서로 겨뤄서 생긴 것이 아닌 그저 누군가의 명명으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예의 우열을 따질 수는 없었다.
한족의 우월성을 나타내려고 일부러 발해 유민인 곽약사를 사악한 자로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적국인 요나라의 대표 장수인 것도 한몫했을 것이고 말이다.
어쩌면 고영창과 곽약사는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영창의 실력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수준이었는데 곽약사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동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영창과 곽약사의 성정은 정 반대다. 고영창이 발해 유민을 모아 발해 부활을 선언하고 최후를 맞이했다면 곽약사는 그때그때 유리한 상황에 따라 주군을 옮겼다. 요에서 송으로, 다시 금으로 옮기며 가는 곳마다 공신 취급을 받았으니 능력만은 출중했던 것이 확실하다.
어쨌거나 고영창의 이름이 나왔다. 그는 야율대석을 우산 삼아 은밀히 세력을 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청성검을 꺾었더니 이젠 일사와 비견되는 공봉관 고영창이라…….”
나는 의식적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나를 보며 김덕진과 추장 내가, 강증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청성검을 꺾다니? 설마 우리가 알고 있는 저 중원의 신선은 아니겠지?”
전설처럼 내려와서 감히 이름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이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잘 되었습니다. 공봉관을 만나겠습니다.”
“자신 있는가?”
김덕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성검을 꺾었다는 말은 믿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동계에서 쌓아놓은 실적은 어디로 도망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말의 기대를 품고 물어보는 것이리라.
일을 해결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자연인 신분이었다. 예종이 부월을 내리기는 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공표되지 않았다. 부마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려의 개입이 없이 그저 부모 형제를 만나러 이곳에 들렀다가 일사에 비견되는 고수와 겨뤘다면 어떨까? 국가와 국가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만남 말이다.
“사실 이기든 지든 본관은 걱정일세. 왕족 중 나이는 어리나 음험하기 짝이 없는 야율대석이 어떻게 나올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일세.”
일전에 야율대석의 음모를 어전에서 고하며 야율대석이란 이름은 고려의 관료들에게 똑똑히 인식되었다. 그 일로 내가 파직을 당한지라 혹여 비슷한 일이 벌어져 내가 해를 당하거나 고려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김덕진은 걱정하고 있었다.
“영감께선 걱정 놓으십시오. 아마 그때쯤이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럴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이건 제가 장담하지요.”
이미 그때쯤이면 요나라는 없어졌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