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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21화 (221/257)

00221  (28) 호시마주(虎視馬走)  =========================================================================

‘너희’의 주체는 유해섬과 같은 자들을 일컫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내가 이런 선택을 하도록 만든 절대적인 누군가에 대한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마치 내가 매트릭스의 네오가 된 느낌이었다.

‘예종의 혼인 제안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선택의 이유는 되지 않았다. 고려 실록 등의 귀중한 문헌들이 소장된 창선 사고(史庫)에 민국실록이 원본인지 사본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치되어 있다는 것을 곽여의 제자인 김리가 알려주지 않았던가?

나는 그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고려 왕도 함부로 열람하지 못하는 창선 사고를 합법적으로 열람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신분은 맞춰야 했다.

민 제국의 법통을 계승하는 양나라의 왕이자 고려 왕의 사위로써 민국실록의 사본 정도는 능히 고려의 이해관계에 따라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선이 머무르는 종남산에 민국실록의 원전이 있을 것이란 추측은 확실하지 않았고 그들의 종적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이소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리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이자겸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안수궁주만이 이소의 경쟁자라고 여기고 있지만 양나라 건국이 임박했고, 건국에 깊숙이 관련된 신하들이 중원인인 이상 법통에 걸맞은 황후를 내세울 것을 요구할 것은 명약관화했다. 또한, 천하가 중원이라는 기준을 깨기 위해서라도 동서양 교류는 필수였다. 나는 과거를 떠올렸다.

내가 이준경의 기억을 되찾기 전 왕들의 도시 하마단의 지배자, ‘아쉬네 하마단 아르타바누스 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의 오랜 후예였고 언제고 다시 돌아올 왕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내가 진왕으로 등장할 때 상징적으로라도 그녀를 품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잔틴 제국의 검, ‘타티키오스’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앞으로 200년은 계속될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여 과거의 코레아가 다시 나타났음을 알리고 그 명성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중동을 횡단하며 나와 원수를 맺은 자들도 있었지만, 또한 내 도움을 받은 자들도 적지 않았다. 친우였던 킬리지 아르슬란은 선택을 잘못하여 실패를 걸었지만 그의 가족과 신하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하마단 영주의 비밀 전언으로 알게 된 이스마일계의 카라미타파 역시 나에게 언제고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한 바가 있었다. 그들에게 영향을 받는 드루즈 종파도 마찬가지였고, 베두인 중 내가 도와준 일부 부족도 해당하였다.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면서 케레이트, 타타르의 전사들과도 인연을 쌓았다. 이미 나는 동서양을 관통한 이 시대 유일한 사자가 되어 있었다.

“항주를 어찌 얻으실 생각입니까?”

왕이 되고자 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이자겸은 시류 판단이 빠른 자였으니 나를 통해 가능성이 생겼다고 확인하자 재빠르게 일을 추진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역사적으로도 그의 꼼꼼함은 알아줘야 했으니까 말이다.

이자겸이 이제 마음이 완전히 놓였는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가된 곳 외에 타국과 교류하기 힘드나 작은 거래까지 막지는 않는다. 우리 가문은 일찍이 인주(인천)를 터전으로 삼았던바, 중원과 교류가 비교적 수월했다.”

“그렇다고 오늘 같은 상황을 예상하여 장구한 계책을 세워놓았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당연하다. 그러나 하늘이 도와주는지 운이 따르더구나.”

“어떤 운 말입니까?”

“후백제를 아느냐?”

“후백제면 견훤의?”

“맞다. 후백제는 백제의 후신답게 당시 오월국이나 후당, 거란, 왜와도 교류를 시도했고, 상당수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빈번하게 교류하고 시종 후백제의 편을 들어준 국가가 있다.”

“그게 오월국이군요.”

생각지도 못한 연관성이 나오자 나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나의 찬탄이 매우 기꺼운지 이자겸은 득의양양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후백제 말기에 정변에서 패배한 금강(견훤의 넷째아들) 계열의 호족들이 후환을 두려워하여 대거 오월국으로 망명했었다. 오월국은 후백제의 새로운 왕이 된 신검이 왕이 될 자격이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기에 신검은 오월국과의 교류를 단절했다. 하나뿐인 우군을 발로 차버린 것이지. 어쨌거나 고려가 건국했으나 오월국은 고려를 한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는 오월국보다 훨씬 강한 나라였다. 오월국이 멸망의 길을 걷자 오월국으로 망명했던 후백제의 호족을 비롯해 오월국 일대의 문사(文士)들이 대거 고려로 망명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자가 박암(朴巖)이다. 들어본 적이 있느냐?”

나는 처음 듣는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속으론 그 이름을 듣고 이자겸이 그리는 시나리오를 엿볼 수 있었다. 박암은 오월국의 고위 문신 중 한 명으로 그가 고려에 귀순을 요청하자 왕건이 기쁘게 맞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고려의 힘과 정당성을 천하에 알릴 좋은 기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자겸이 박암을 언급했으니 필시 박암의 가문이 인주 이가에 종속, 혹은 동조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또한, 오월국에서 고려로 넘어왔던 후백제 귀족들은 전부터 자신들이 살던 전라도에 안착했을 것이다. 그들과도 모종의 결탁을 맺은 셈이 된다.

탐라 여정을 통해 전라도에 중원에서 온 귀화 가문들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중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할 날을 고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이 정도면 예종도 능히 밀어줄 수 있는 상황이 된다. 골치 아픈 호족들이 대거 사라지는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자겸이 예종에 대해 보이는 자신감은 바로 여기서 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이자겸이 사라진다는 것은 세도정치가 당분간 사라진다는 뜻이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후 김부식 같은 문신들이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사라지거나 혹은 더 늦게 찾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무인정권이 열리지 않거나 혹은 상당히 늦게 찾아온다는 이야기였고 고려의 수명이 더 길어진다는 의미였다. 몽골의 발호가 최대 위험이긴 했지만 그건 몽골이 발호하기 전에 요나라를 북방으로 패퇴시켜 몽골의 부족들과 세력 다툼을 하도록 만들며 힘을 소진케 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래도 몽골이 되살아나서 전 세계를 휩쓴다면 이건 정말 역사에 복원력이 존재하고 그 복원력은 신이 내린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미 당과 송을 거치며 민 제국의 자취가 희미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하니 나는 역사라는 도도한 시스템에 뛰어든 버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트릭스의 네오가 떠오르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아무튼, 이자겸은 이 일로 가문의 저력을 모두 동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도와준다면 틀림없이 새로운 오월국을 항주와 소주라는 강남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에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그가 오래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내가 생각한 천하일통의 목표가 중원일통이 아닌 동서양 교류를 통한 새로운 철학과 일관된 의식의 발현에 있기 때문이다.

송나라의 위기가 계속되면 간신들이 설 자리가 위태로워진다. 그들은 위기를 타개할 비상대권을 명장과 명신에게 쥐여줄 것이고 어쨌건 꾸역꾸역 버틸 것이다. 수호전의 대표적인 간신, 채경이 위기에 처한 국가 재정을 타파하기 위해 장상영이나 장뢰를 중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 마디로 눈치가 없는 자들이 아니란 말이었다.

송이 한숨을 돌리고 강남을 공격한다면 가장 먼저 어딜 공격할까? 그건 십이면 십, 항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항주 한 곳이 강남 모두의 부와 합쳐야 비슷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월국이 그러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빠르게 망한 이유, 그것은 내부 분란도 있었지만, 외부의 공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북에서 남에서, 모두 항주를 노렸다. 현상 유지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막다른 상황까지 몰리면 나라를 그대로 망하도록 둘 것인가? 아니면 나라를 바치고 부와 명예를 유지할 것인가? 이 정도의 선택이 남는다. 이자겸이 고려 혹은 양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아도 알아서 그렇게 만들어줄 신하들이 우리 쪽에는 차고도 넘쳤다. 이미 송나라 재상을 지냈던, 혹은 미래에 역임했던 인재들이 여럿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자겸은 왕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문을 범의 아가리로 집어넣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이자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소는 그때까지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자겸이 그런 나와 이소를 보곤 호탕하게 웃으며 사라졌고, 우리는 그제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소는 나에게 양규 장군의 수패가 손질이 끝났다며 내밀었다.

나는 수패를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수패 뒤에 새겨진 ‘대인불사(大人不賜)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대인불사는 어쩌면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떠올리게 한다. 편들어주지 않는다 함이 불인이요, 불사라는 것이다.

“소인의 팔은 안으로 굽기를 좋아해 편 가르기를 하여 내 편, 네 편을 정해 다투고 시샘하며 시비를 건다고 했지. 나는 과거에 그것을 나쁜 것으로 여겼다. 노자의 답이 옳다고 생각했지.”

“과거에? 오라버니가 나와 자매 언니를 전리품으로 선택했을 때는 오히려 소인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하하하, 맞다. 그때의 나는 소인이었다.”

“아니, 오라버니, 그런 뜻으로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내가 말한 과거는 나에게 보위에 올라줄 것을 외치던 신하들에게 군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던 그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연 최선이었던 것일까? 오늘을 기점으로 그것이 이상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현실과 괴리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만약 현명한 승상으로 남아 관중처럼 자신만의 사상을 퍼트렸다면 어쩌면 이상적인 선택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황제, 혹은 천자의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그 길을 약간은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오늘의 내 생각을 만들었다.

이소는 예전과 변함없이 내게 톡 쏘는 농담을 던지려는 것이었겠지만 내가 당황하지 않고 순순히 인정하자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자신이 뭔가 실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남은 한 손으로 그런 이소를 가볍게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따지고 보면 소문이란 결국 사소한 것들이 시비의 냄새를 피우는 바람과 같다. 그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자들이 소인이고, 소문이 어떠하든 한결같은 것이 대인이라고 했지. 그래서 장자는 무기(無己)라 했어.”

“무기? 나를 없앤다?”

품에 안긴 이소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소인은 한사코 편을 갈라 적과 나를 갈라 다투려 한다며 자신의 사리사욕을 지울 수 없다고 했어. 대인은 그와 달리 사리사욕에서 초월해 있으니 그런 다툼 자체가 없다고 말이야.”

“양규 장군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그래, 그래서 나는 양규 장군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한 손에 들었던 수패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자 이소가 놀란 듯 품에서 빠져나와 내게 말했다. 내 말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던 연유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소는 눈치가 매우 빨랐다.

“오라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소인은 무기 할 수 없다. 즉, 나를 없앨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소인만 있고 대인이 없는 곳을 일러 시정(市井)이라 한다고 성현들이 말했다.”

“저 역시 들어본 말이네요.”

시정은 속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부자나 문인들이 자신들을 시정에 산다고 표현하지 않으므로 대개 하층민을 가리킬 것이다. 그들의 삶은 오직 삶 자체를 영위하는 것에 목적이 있어 하루하루 동물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들과 섞이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인이란 풍족한 삶을 살며 그런 풍족한 기반을 바탕으로 학식을 쌓아 속인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지식을 뽐내며 관직에 나아가는 자들을 가리킬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중에 이덕무(1741-1793)라는 분이 있다. 그는 가난한 탓에 남들처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독하게 공부하고 공부할 책이 없다면 초목과 곤충, 물고기를 살피는 열정을 보이며 박학다식함으로 이름을 떨친 분이기도 하다.

그가 ‘영처문고’라는 저서에서 ‘시정에 섞여 살면서’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산림(山林) 속에 숨어 살면서 세상의 명리(名利)에 마음을 두는 것은 큰 부끄러움이다.

복잡한 시정(市井)에 살면서 세상의 명리에 마음을 두는 것은 작은 부끄러움이다.

산림 속에 숨어 살면서 숨어 사는데 마음을 두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복잡한 시정에 섞여 살면서 숨어 사는데 마음을 두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다.

작은 즐거움이든 큰 즐거움이든 그것은 다 즐거움이요,

작은 부끄러움이든 큰 부끄러움이든 그것은 다 부끄러움이다.

그것이 떠오른 것은 내 결심과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름지기 남을 이끌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시정에 발을 디딘다는 의미다. 시정에 발을 디디면서 명리에 마음을 두는 것은 당연한 즐거움이며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산속에서 도를 닦는 마음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고고한 선비였고 군자였다. 주나라의 이상적인 왕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본을 보이겠다는 결심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본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시정의 소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시정의 소인이 산중의 대인에게 외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소는 말없이 내가 내려놓은 양규 장군의 수패를 집어 다시 나에게 내밀었다. 내가 얼떨결에 받자 그녀가 말했다.

“양규 장군이 대인불사를 신념으로 삼았던 것은 무고한 백성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라버니가 시정으로 나가 스스로 소인이 되겠다는 그 마음이 양규 장군과 다릅니까?”

“다르지 않다.”

나는 양규 장군의 수패를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았다. 방법의 차이일 뿐 결국 나와 양규 장군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굳이 구분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주어는 없었다. 그것은 이소에게 향한 것일수도 있었고, 혹은 수패에게 향한 것일수도 있었으며, 양규 장군 본인이 될 수도 있었다. 혹은 나의 경험의 모든 스승에게 바치는 다짐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소가 머금은 환한 미소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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