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9 (28) 호시마주(虎視馬走) =========================================================================
현대에서도 중국 내 지역감정은 공산당도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지금은 현대보다 더 심할 때다. 특히 황화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화북과 장강을 중심으로 하는 화남은 대대로 역사적 대립 관계였다.
생각해보면 과거의 민 제국은 화남이 기반이었다. 그러나 이후 당은 화북을 기반으로 삼았다. 송 역시 1126년 정강의 변을 당하기 전까지를 북송이라 칭할 정도로 화북에 중심을 두지 않았던가?
또한, 화남에서도 광둥과 사천, 복건은 은근한 경쟁 심리가 있었다. 화북이야 중원의 중심답게 전쟁 혹은 교류를 통해 언어를 비교적 쉽게 통일시킬 수 있었다면 남부는 자연환경과 개척지, 미개척지 등의 차이로 방언이 생겼고, 그런 방언은 문화와 관습의 차이도 만들었다.
그러니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지역감정을 조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아니 애초에 힘이 있는데 하나로 합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분열의 원흉으로 남겠다는 자체가 미친 생각일 것이다.
현대 대한민국이 겪는 비애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부정하고 싶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서 세계적으로 둘러봐도 동북아가 3차 세계대전의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화약고 역할을 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큰 힘이 큰 책임을 부른 것이 아니라 큰 힘이 큰 욕심을 부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미국이나 러시아는? 설령 그것까지 고려했다고 해도 바뀐 역사에서 또 다른 패권국가들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기꺼이 증오의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가? 역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이 나에게 있느냐고 이런 사정을 훤히 아는 누군가가 나를 질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외려 질문을 던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의 역사를 만든 사람은 누구입니까?
수많은 과거의 영웅과 위인들? 혹은 이름 모를 백성, 시민들? 사실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그렇다면 앞서 내가 받을 질타는 부질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미 나는 과거의 인물이니까. 그렇다면 또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현대를 아는 자가 어찌 과거의 인물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나 혼자 만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강대국이 되는 이유를 꼽아본다. 입지가 좋아서? 인구가 많아서? 그런 것은 부수적이다. 역사의 중심에 떠오르는 결정적 계기는 당시의 인식을 초월하는 위대한 업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철학일 수도 있었고, 전쟁일 수도 있으며, 정치일 수도 있다. 그런 업적을 일군 주역들이 그저 과거의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내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었다. 아마 신이 아니고서는 답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내 사정을 다 알고 질문을 할 정도면 사실 신밖에 없겠군. 알면서도 물어보는 고약한 신 말이야.’
예전엔 절제하려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제는 고삐가 풀린 기분이었다.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의 상상은 끝을 모르고 더해갔다.
‘일본도 분열하기 딱 좋은 시기이기도 하고 말이야.’
화려한 귀족 문화를 열었던 헤이안 시대의 황혼기가 지금이다. 어린 자식에게 천황의 자리를 일찍 물려주고 상황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원정(院政, 인세이)이 천황과 상황 간 권력 다툼으로 변질하면서 그에 따른 귀족들의 이합집산이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요시치카는 그러한 이합집산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극단까지 치달은 권력 투쟁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고, 무사세력인 다이라 씨족과 미나모토 씨족을 양 세력이 끌어들여 힘을 실어 주는 바람에 무사 정권의 토대를 만들어 주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투쟁의 중심은 대게 오사카, 사카이, 고베, 교토, 나라, 나고야가 존재하는 중부였다. 그래서 규슈나 시코쿠는 변방으로 인식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시코쿠는 불교가 융성한 지방이었는데, 헤이안 시대가 열리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불교 세력이 커지면서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피하려 했다는 것이니 설움의 크기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요시치카의 능력에 내가 힘을 더 보태준다면 규슈나 시코쿠 정도는 능히 독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불교 국가를 천명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고려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짝짝짝!
몰입했다 싶었는데 전면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이자겸이 힘깨나 쓰게 생긴 가복(家僕)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이자겸이 주상도 살고 자신도 사는 방법을 이곳에서 찾으리라 말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내가 유해섬을 이기리라 확신했던 걸까?
이자겸이 나타나자 숨어서 지켜보던 자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이자겸이 포섭했다던 무인들일 것이다. 그들의 얼굴엔 희열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이자겸을 돕는다면 자신들의 패배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금섬(金蟾, 금두꺼비)의 뜻을 아느냐?”
내가 고개를 젓는 사이 이자겸의 손짓에 따라 가복들이 유해섬의 주검을 수습했다. 이자겸은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며 혀를 차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금섬은 항문(肛門)이 없다. 그래서 자기가 삼킨 것을 배설(排泄)할 수 없지. 마치 재물을 모으는 이치와 비슷하지 않으냐? 그런 금섬을 유해섬이 상징으로 삼았다.”
뱃속에 재물을 무한정 쌓아둘 수 없는 이상 그 무게에 깔려 죽는 것이 금섬의 운명일 것이다. 마치 인간의 욕심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권문세가가 세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오롯한 세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군이 있어야 하고, 반대파의 반대파가 필요하기도 하다. 고만고만한 경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었지. 고려는 시작부터가 호족 연합국가였다. 과거, 광종은 왕권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로 바꾸고자 했지.”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의 시행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
노비안검법은 호족 세력이 갖은 수단으로 소유한 노비들에 대해 심사를 거쳐, 양민 출신의 노비들을 양민으로 돌려놓기 위한 것이었다. 호족의 노동력을 축소해 그들의 경제력을 약화하고, 사병을 줄이는 이중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노비안검법은 귀족들의 불평을 사게 되었고, 왕권과 신권이 우위를 가려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갔다. 성종이 즉위하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양민이 된 노비를 다시 노비로 되돌리는 노비환천법(奴婢還賤法)을 시행하고 나서야 나라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성종이 받아들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종 자신이 임시 왕에 불과한 것이 컸다. 광종 다음이 경종인데, 경종이 허약하여 국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경종의 아들이자 조카인 왕송(목종)은 너무 어렸기에 중간자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카가 왕위를 제대로 계승하도록 신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그 자신이 유학자를 자처하고 있었으므로 신권 정치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
나는 이자겸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주상께옵선 선왕보다 더욱 왕권 강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고, 그것이 결국 역사를 뒤로 돌리는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계십니까?”
“돌려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말하기 편하겠구나. 그렇다. 별무반이란 것이 대저 무엇이더냐. 노비들을 빼내 주상의 군대로 삼겠다는 것이니 이는 노비안검법보다 더욱 독한 수단이 아니더냐. 토반(土班)과 향족(鄕族)들이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러나 주상의 기세가 날개 달린 호랑이에 탄 것 같아서 감히 소리 내 반대를 외치지 못했다.”
“제가 유해섬을 이긴 것이 그런 난국을 타개할 답으로 보신 것입니까?”
“유해섬은 사문의 일원으로 신선 대접을 받는 자이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다섯 명 중 한 명은 그의 이름을 말할 정도다. 그런 그가 죽었다. 나의 사위에게.”
“금상(今上, 현 국왕)의 부마가 될 예정이기도 하지요.”
“안다. 그리고 내 딸이 중전이 될 것이니 나는 고려에서 가장 높은 귀족이 되었다.”
“그런데도 더 욕심이 나신단 말입니까?”
“욕심이라……, 금섬의 뜻을 알면서 내가 금섬이 되고자 하겠느냐?”
이자겸의 속내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소에게 일렀다. 너를 단단히 잡으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저는 이소와 함께 갈 것입니다.”
“안수궁주는 매우 현명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소를 버리고 안수궁주에게 빠질까 두려운 것입니까?”
“내 너의 성정을 안지 한두 해가 아닌데 기우(杞憂)를 하겠느냐? 너는 이소를 목숨을 다해 아껴줄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데도 언급하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별무반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너는 아느냐?”
“17만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렸다.”
이자겸은 손바닥을 쫙 펴서 들어 보이더니 손가락 두 개를 접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3개, 즉, 30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놀라지 않자 이자겸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역사를 통해 별무반이 본래 30만을 예상했으나 17만이 원정에 나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토반과 향족들이 거느린 사병을 파악해달라고 예부상서에게 부탁한 것을 알고 있다.”
이건 놀라울법했다. 내가 유재를 만나 무엇을 부탁했는지 안다는 것은 왕궁의 이목도 자신의 손에 있다는 자신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예부상서 유재가 가장 믿고 따르는 관료 중 하나가 이자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박박 긁어모은 30만이므로 그중엔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가 상당수다. 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다면 네가 말한 17만이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숫자일 것이다.”
이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어 나온 이자겸의 말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30만을 다 끌고 가거라.”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이자겸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순간적으로 생각해보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재빠르게 떠올랐다.
이제부터 고려는 몇 년 동안 가뭄이 든다. 만약 가뭄의 징조를 이자겸이 어떤 수로든 알고 있다면 예종 직할의 30만 병력이 예종에게 큰 부담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해섬을 이기는 조건이 답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가뭄을 이용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해섬을 이기지 못했다면 이자겸은 다른 제안을 준비했던 것은 아닐까? 유해섬에게 이기든 지든 예종에게 밀리지 않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있을 방법 말이다.
가뭄을 이용한 것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내가 졌을 때를 대비한 제안이 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추측이다.
그렇다면 이겼을 때 내놓을 제안이라는 것은 내가 유해섬을 꺾을 정도로 강자라는 전제하에 내놓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증인이군요.”
내가 대답하자 이자겸의 눈이 처음으로 치켜 떠졌다. 그러다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과연 내 사위로 손색이 없구나. 맞다! 맞아!”
17만과 30만은 어감부터가 틀렸다. 그런데 30만이 별 힘을 쓰지 못한다면? 오히려 1명의 무용을 관람하는 관객이 된다면? 그것은 예종과 이자겸에게 어떤 득실을 줄 것인가? 잠깐 떠올려봐도 기가 막힌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제일.”
이자겸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천하제일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