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8 (28) 호시마주(虎視馬走) =========================================================================
이것은 내가 원한 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공자나 노자, 장자가 원했던 도가 아닐 것이다.
민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는 매우 애매하고 모호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근친혼의 폐해를 알고 있지만 지배층은 순혈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자기모순이 있으며, 이민족의 침입, 혹은 교류를 통해 혼혈이 생기지 않은 민족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우월주의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산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산물의 모태는 계급갈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상하계층의 갈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양지가 음지가 되기도 하고, 음지가 양지가 되기도 했다. 쉽게 말해 귀족이 되느냐 평민이 되느냐의 기득권 싸움인 것이다.
서로가 다르게 된 사정을 이해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나의 치세 목표였다면, 자기와 피가 다른, 생각이 다른 자들을 배제함으로써 더욱 집중된 권력과 부를 보장받기를 원하는 자들 역시 존재했다.
그것은 비단 장자의 정암만이 아니었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는 욕심의 집합체였다. 자신들을 역사의 승자로 남기고자 하는 추접한 몸부림이랄까?
피를 토하자 정신이 돌아왔는지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유해섬에게 나는 다가가며 말했다.
“중화인 역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중 너희들의 중화우월주의 역시 일부 특정한 집단의 신념이자 의식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자신들이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대표하고 대신한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마치 중화인의 통일된 생각인 것처럼 몰고 갔다. 중화인을 위한 정의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독선에 빠져 상대를 이해할 생각도 타협할 생각도 없이 그저 없어져야할 대상으로 취급해버렸다.”
“이럴 수 없다!”
유해섬이 크게 소리쳤다. 그는 나의 설명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내공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자신을 이겼는지가 더 궁금하고 치욕스러운 듯했다.
“너희의 내공이 면면부절이라면, 나는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강한 힘을 집중한 것뿐이다. 내공을 오래 지속하는 것은 너희가 나을지 모르나 그 내공을 일순간 뛰어넘는 힘이 가해진다면 면면부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나의 내공은 40년의 진신(眞身) 적공(積功)이다. 범속한 무부가 받아낼 수 있는 가벼운 기예가 아니란 말이다!”
“닥쳐라!”
나는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주먹을 말아 쥐고 유해섬의 면상에 그대로 꽂았다. 퍽 소리와 함게 유해섬이 다시 뒤로 데굴데굴 뒹굴었다. 코가 내려앉고 이빨까지 나가 면상이 곤죽이 된 그는 처음 등장했던 청수한 진인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
“민족이 우선인가, 민(民)이 우선인가! 네놈들의 정신은 썩었다!”
“으어어어, 네, 네놈은 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방금 받은 충격으로 입이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는지 유해섬은 피가 섞인 침을 흘리며 나를 저주했다.
“청성이, 검선이, 사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두려워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설령 네놈이 민 태조의 화신이라 해도 반드시 죽을 것이다.”
“중화인의 영광이 고려인에게 옮겨갈까 두려워서? 고작 그것 때문인가?”
“고작 그것 때문이라니! 그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컥!”
“대체 네놈들에게 민은 누구이며 무엇인가!”
나는 유해섬의 멱살을 잡았다.
“똑똑히 들어라! 민은 백성이고, 서민(庶民)이며, 여민(黎民)이다! 제민(濟民)이고 증민(蒸民)이며 세민(細民)이기도 하다! 전민(佃民)이며, 우민(愚民)이고, 민초(民草)다!”
나는 유해섬을 노려보았다.
“중화인에 그들이 있는가? 그들을 구제한다면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으로 물었는가? 중화우월주의를 앞세워 너희에게 향할 비판과 저항을 밖으로 향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맹자가 말했다! 민은 노력자(努力者)이고 사(士)는 노심자(勞心者)이다! 민은 사가 충분히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사는 사회 전체의 질서와 윤리를 통해 민을 보호한다! 입이 있다면 말해보라! 그것이 중화우월주의와 단 한 푼이라도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어리석은 놈…….”
유해섬의 눈빛은 경멸과 모멸로 가득했다.
“신분은 노력에 따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상속되고 세습되는 것이다. 그러하나 중화인의 빈천(貧賤)이 어찌 세외(世外)와 비교될 수 있으랴. 내가 약속하마. 네놈은 가장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틀렸다.”
나는 멱살을 잡지 않은 한 손을 주먹으로 말아 쥐고 서슴지 않고 유해섬을 내려쳤다. 유해섬은 외마디성과 함께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그의 멱살을 놓자 짚단이 쓰러지듯 풀썩 옆으로 쓰러졌고, 나는 그런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실체도 없는 알량한 화산논검을 앞세워 중화제일이 천하제일임을 주장하려 했겠지. 네놈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보인다.”
현대에 중국을 보더라도 대국이라고 보기에는 이율배반적인 면모를 여러 사안에서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역사 왜곡의 전형인 동북공정이 그럴 것이고,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소수민족 동화 정책은 더 말해서 무엇을 할까? 자국의 노벨평화상 류사오보를 감옥에 가둬놓고 세계가 조롱하는 북한의 3대 세습엔 축하를 보냈다.
천자는 무치라더니 딱 그 짝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공자와 맹자, 노자, 장자, 묵자 등등 위대한 사상가를 다수 배출했던 중국이 왜 그렇게 변한 것일까? 그것이 본래 국민성이라서?
피터 드러커의 저서, 경제인의 종말을 보면 국민성이란 영문 모를 사건을 설명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능력을 인정하기 싫은 곤경에 처한 역사가들이 그런 사건에 대해 전적으로 적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옛말이 있다고 했다.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나라가 어려울수록 애국심을 강조하는 풍토 역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나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송나라가 그러했다. 그래서 이민족이 화합했던 민나라가 아니라, 이민족 위에 군림하며 시혜를 베풀었던 당나라를 그리워했다.
“네놈들은 같은 민족조차 계급의 빈천을 논했다. 옥황상제 역시 최고의 선인이면서 정작 천계는 계급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너희가 중화우월주의를 앞세웠지만 나는 대장부이니 치졸하게 같은 수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송은 고려 말과 무척 닮아 있었다. 소수의 권문세가와 유학자, 도사, 승려들이 권력을 독점하여 양극화나 다를 바가 없는 정치적 배경 말이다. 송은 그런 양극화를 자체적으로 해소할 생각을 하지 않고 중화인임을 앞세워 외부의 적에 대항할 것을 독려했다. 정도전 같은 자가 나타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역사가 반성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내가 보여주겠다. 내가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업보를 모두 걸머지겠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유해섬을 죽이자 두려움과 경외의 눈길이 쏟아졌다. 그들에게 불과 잠깐 전만해도 유해섬은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대국의 절대고수였지만 이제는 초라한 주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객주(客酒)에서 누군가가 내 주인인양 식탁에서 던져주는 연민의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것에 나는 관심이 없다. 나는 객주에서 파는 모든 음식을 주문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너희 중 그러하지 않은 자가 있는가!”
“없습니다.”
계룡산에 왔다는 도인이 화답했다.
내가 한 말은 남아공 출신으로 노벨 평화상과 간디 평화상을 잇달아 수상한 데즈먼드 투투의 명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중화인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천 계급이 중화우월주의를 위해 기꺼이 헌신을 감내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만약 그것이 고려인이라면? 방금 계룡산에서 온 도인이 답했다. 그것은 고려의 건국이념과도 관계가 있다.
항상 왕조 말기는 문란하듯 신라 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적으로 왕권 강화수단으로서의 불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선종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선종은 불법이 곧 왕법이라는 왕권 수호적인 성격보단 지방 분권적인 정치 이념과 통했다. 그것이 주는 폐해를 떠나 중앙집권에 염증을 느껴서 속박 받지 않는 자유를 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는 현재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직은 국가 존속의 취지가 그런대로 실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혼란한 송과 달리 안정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 안정된 상황에서 오는 체제의 자신감이 계룡산 도인의 입을 통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래에서 위로의 혁명은 이미 맹자가 주장한 바가 있었고, 나는 그러한 논리를 충실히 실천하여 양나라의 건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는 중화인과 세외인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내부 갈등의 해소였고, 사회정의 구현인 셈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정교해야 했다. 수호전 호한들의 몰락은 불만을 표출했지만 그 불만을 진보의 계기로 삼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백성을 착취해 이윤을 얻는 것을 덜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양심적인 위정자였다면, 이젠 그런 임시적인 정치는 바뀌어야 했다. 이윤을 덜 가져가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란 파이를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해섬이 나선 것이 일견 이해가 되면서도 측은했다. 그는 중화인에 의한 중원의 평화나, 백성의 희생에 기댄 송나라의 부흥을 인민 구제의 목표처럼 설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자들을 현대에서도 많이 봐왔다. 대게 산업계의 발전과 국가경쟁력강화, 산업공동화 우려 같은 사안에 대해 노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지식인이나 종교인은 대게 자본가들에게 두둑한 대가를 약속받은 ‘선무당’에 가까웠다.
그들이 노동자의 투쟁을 폄하하고 불의한 것으로 취급하기 전에 그 해결책으로 사회주의 공동체라도 만들자고 앞장서야 하는 모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전면부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물어뜯는 일이 애초 목적이었는데 말이다.
“결정되었군.”
나는 중얼거렸다.
“척준경의 삶은 칭기즈칸 같으리라 생각했지. 의협 국가, 혹은 경찰 국가의 형태를 초기에 구상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제 알겠다. 척준경이자 이준경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시대를 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자해지를 하라고, 매듭을 지으라고, 역사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주자학의 태동이 시작되기 전의 상황인 것도 공교로웠다. 사대부는 높은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많은 것을 알기에 미천한 자들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으로 변질되었다.
하물며 율가를 받아들여 신법을 이루고자 했던 왕안석도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강경한 자세를 고집했고, 백성들에게도 오랑캐보다 우월한 문화인이라는 생각을 주입했다. 율가의 목적이 그런 것에 있지 않으므로 구법당에게 이율배반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니 그의 실패는 어쩌면 예견되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나 만주의 청나라도 중원에 조정이 들어서면 중화에 동화되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민주주의조차 중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특유의 중화로 탈바꿈한다는 말도 있었다.
“이준경이 가졌던 의로운 신념과 수단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율가는 율가의 정신을 계속 지켜 유가와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것보다 역사에 더 영향을 미치는 불의한 일들은 충분히 많았다. 나는 화합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지금과 같은 어긋난 신념의 강요가 될 수 있음도 깨달았다.
아래에서 위로의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실험은 증오를 수반할 것이다.
“너희가 중화우월주의를 역사의 승리자로 만들겠다면 나는 애향심을 강조할 것이다. 무엇이 중화인에게 우선일까?”
바꿔 말하면 지역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