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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17화 (21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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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호시마주(虎視馬走)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말처럼 힘차게 달린다.

여동빈의 제자는 세간에 두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왕중양과 유해섬이다. 그들은 각기 도교 북파와 남파의 시조로 알려졌는데, 남파의 시조가 된 유해섬의 경우는 여동빈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청성산에 홀로 수도를 하다가 청성파의 장문인으로 옹립된 경우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의 이야기였다. 유해섬에 관한 이야기는 워낙 많아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현대에 이르러 신선 대접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신화적인 인물이 내 앞에서 칼을 뽑고 있었다. 나는 긴장감보다는 희열이 감돌았다. 그의 진면목을 알 좋은 기회였으니까 말이다.

“존장이라고 한수를 양보받지 않겠습니다.”

내가 먼저 칼을 뽑아서 돌진하자 여유롭던 유해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존장이라고 한수를 양보해주는 것과 내가 선수 필승을 외치며 공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차원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첫수였지만 그 첫수로 끝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파직!

검과 검이 부딪친 면에 날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곤 재빨리 나와 유해섬은 검을 떼어 한발씩 물러났다. 유해섬은 검날이 상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란 눈치였다. 그러나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능진이 만들어준 망간 합금 칼은 지금껏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다. 그런 칼날에 손상을 입힌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유해섬의 칼 역시 만만치 않은 제련을 거친 칼이 될 것이다. 청성 장문인에게 전해져오는 무슨 신검쯤 되지 않을까? 아니면 검선 여동빈에게 물려받은 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조금 놀라운 곳은 내 손목이 시큰 거리다는 것이었다. 강 대 강으로 부딪친 첫 합에서 서로 비등한 힘을 보였다는 것과 같았다.

‘내공의 힘인가?’

무협 소설에선 흔히 검에 기를 실어 상대의 병기를 무 자르듯 잘라내고, 상대를 격살(擊殺)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부딪침을 통해 검에 기를 싣는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단지 그의 체구에 비해 손목 힘이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름의 호흡을 통해 손목에 힘을 보탰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신체를 내공으로 보조한다는 식이다.

“허허허, 영보검(靈寶劍)의 날을 상하게 한 것은 네놈이 처음이로구나.”

유해섬은 웃었지만, 눈빛은 싸늘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제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아끼던 검이 상한 것에 대한 분노도 포함된 것 같았다.

‘영보검이라…….’

영보필법(靈寶畢法)이란 것이 있다. 일종의 도교 비전쯤 된다고 알려진 마음공부인데, 여동빈이 왕중양과 유해섬에게 전수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기도 하다. 사실 영보필법의 내용을 보면 몸을 건강하게 하는 양생법에 가깝다. 그러나 기가 존재하고 엄연히 쓰이고 있는 지금 시대라면 내가 알고 있는 양생법과는 다른 면이 있을 법하긴 했다.

또한, 영보는 아주 진귀한 보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영보검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신검이라는 말과 같았고, 나의 망간 합금 검처럼 특별한 주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과 같았다.

“만물은 그 유래를 따져보면 시초가 있다.”

유해섬이 현란한 움직임으로 나에게 접근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보법이었고, 바로 이런 것이 진짜 은거 고수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다함이 없는 법이 아니다.”

진언을 외우면 힘이라도 솟는 것인지 그의 칼이 나를 정확히 열 번 가를 동안 일진광풍이 주위에 일었다. 주변에서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리하여 범인의 몸을 뛰어넘는다!”

그 말을 끝내자 그가 칼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칼질에 허식이 없고 요혈을 노리는 터라 한 번의 실수는 치명상으로 연결될 정도였다.

소문은 허명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고수였다.

그러나 나 역시 이미 한계를 뛰어넘은 고려사, 아니 어쩌면 민족 최강의 무사였다. 고수가 여럿이 나올 수 있다면 척준경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나는 내심 되뇌었다.

‘검술과 병법은 다르다.’

검이 다시 부딪치고 부딪친 면의 날이 나갔다. 그러길 벌써 십수 번째였다. 힘겨루기에 들어가자 나는 그를 응시했다. 그의 이마엔 어느새 땀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그 땀이 흘러 그의 옷깃에 떨어지자 흠칫하더니 이내 재빨리 겨루기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칼을 쓰는 기예는 과연 검술의 대가답군. 검술 기예를 겨루는 것이라면 나는 당신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추켜세워주는 것 같지만, 어감이 이상하게 들렸던 탓일까? 유해섬의 미간이 줄어들었다.

“검술에 능통해도 병법을 이길 수 없지요. 병법은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이기는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외양과 정교한 기술로 무적을 자처하지만 사실 당신은 검술을 잘하는 도사에 불과합니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유해섬의 얼굴에 분노가 일었다. 나는 그러나 피식 웃으며 그의 분노에 더욱 불을 지폈다.

“나는 무사입니다. 검술의 좁은 길이 아니라 병법의 넓은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지요. 술사(術士)이자 도사(道士)인 그대가 상상할 수 없는 넓은 길 말입니다.”

“병법을 우위에 두고 도에 이르는 길을 좁다 말하는 네놈의 무지함이야말로 정녕 베어야 할 악이구나.”

“진인이야말로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나는 손목을 이용해 가볍게 칼을 회전시키며 천천히 유해섬에게 다가갔다.

“검술을 잘하는 도사를 이길 수 있다고 했지, 도를 깨달은 선인을 이길 수 있다고는 안 했습니다.”

“이놈!”

그저 칼 좀 잘 휘두르는 도사에 불과하다는 폄하에 그는 참을 수가 없었는지 맹렬한 기세로 칼을 휘둘렀다. 나 역시 칼을 놀리던 손에 힘을 주고 부딪쳐갔다. 다시금 쨍한 마찰음이 연이어 울렸고 그럴 때마다 검은 조금씩 부서져 갔다.

“과거의 나를 관조했다고 했지요.”

두 검이 부러질 듯 휘청였다. 나와 유해섬이 힘겨루기를 피하지 않은 까닭이다.

“과거의 나는 누구였습니까?”

유해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이 부치는 것을 느꼈는지 이마에 맺힌 땀이 점차 늘어났다. 나는 칼을 잡은 두 손에 힘을 불끈 쥐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자 두 자루의 검은 아슬했던 긴장을 풀어 버리고 용도를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유해섬과 나는 그 힘에 이끌려 서로 자리를 바꾸었다.

반쪽만 남은 칼을 들고 재빨리 자세를 잡고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나는 칼자루를 던지며 말했다.

“과거의 나를 안다면 이리 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해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제야 어느 정도 돌아가는 사정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황제였던 시절, 신하들은, 아니 중원은 나에게 완전한 통일을 원했다. 진나라가 이루지 못했던 강력한 중원 왕조가 천하를 통치하고 그 위세를 만방에 떨치길 바란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와 역사의 균형을 생각하던 나에게 있어 어불성설인 주장이었고, 그러한 주장을 제도와 문화의 우위로 달래주려 했다.

그러함에도 나의 방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무리도 있었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고, 그들이 반기를 들 명분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세월이 지나면 그들이 절로 수긍하리라 믿었다.

“장자의 정암(鼎巖)이로구나.”

유해섬의 눈은 더는 치켜떠질 수 없을 정도로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믿고는 있었지만, 그 가능성이 희박했던 일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정암은 다리 셋 달린 솥 모양의 바위를 가리킨다. 삼국지를 뜻할 때 종종 쓰이는 단어이기도 했다. 정암의 뜻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솥에 곡식을 가득 담는 형상이라, 명예보단 재물이 많아지라는, 세속에서 바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유해섬 역시 재물의 선인으로 알려졌다. 선인치고는 굉장히 세속적인 선인이다. 이것은 단순히 우연일까?

흔히 노자와 장자를 묶어서 노장사상으로 부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주장은 엄밀히 따지면 다르다. 노자가 정치와 사회 현실에 어느 정도 관심을 두고 있다면, 장자는 개인의 입신양명, 혹은 속한 단체의 부흥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이 철학적이라면 장자의 남화경이 읽는 사람을 도취의 망아(忘我)를 준다고 한 누군가의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즉, 장자의 정암이라는 것은 장자의 여러 해석 중 하나를 신봉하는 무리라고 칭할 수 있다. 내가 황제였던 시절, 장자가 죽림칠현 등을 통해 크게 알려졌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이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이들은 다소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것이라도 해도 자신들만의 논리에 입각한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아Q정전의 아Q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있어 전국 시대의 장자는 몰락해버린 옛 이데올로기를 되살리려던 구국의 인물로 중국 문화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래서 준경이란 이름이 주는 위험함을 경계하는 것이었구나.”

당문화도 개방적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중화 민족이 우월함을 전제로 한 주변국에 대한 시혜(施惠)였다. 송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애초부터 내가 내세웠던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민 제국의 평등한 호혜(互惠) 정신을 갑이 을에게 베푸는 시혜로 포장해야만 했다.

“어떤 민족이든 호혜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선포한 민 제국이 당서(唐書)에서 언급 자체가 사라졌듯, 당 시절 산동에 제나라를 세운 고구려 유민 출신의 이정기 역시 언급이 사라졌지. 자치통감에서도 말이야.”

유해섬의 전신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정기가 죽기 전에 말했지. 자신이 바다를 건너 청주로 왔듯, 선인은 동쪽에서 오리라.”

“정말 그대가……?”

되묻는 유해섬의 목소리가 떨렸다.

실록을 보지 못해 뭐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 술을 과하게 마시고 아명공주에게 삼한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간운보월(看雲步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일어나니 제갈량이 찾아와 ‘구름을 바라보고 달빛 아래를 거닌다는 것은 객지에서 집을 생각하는 마음이니 이것은 어찌 된 연유입니까?’라고 물었다. 그것이 사관에 의해 적혀졌다면 이후 그 실록을 본 사람 중 오해하는 이가 나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물론 그것은 명백한 나의 실수였다.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어야 했던 말이 취중에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들은 생애를 두고 몇 차례 있었다.

도술이 존재하는 마당에 환생이라고 못 믿을쏜가? 정암의 무리는 언제고 나타날 나의 화신이 헌원(軒轅) 황제의 후예들인 자신들을 망하게 하리라 확신했던 것은 아닐까? 비약적인 과대망상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무리가 소수 존재하고 스스로 중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민국실록의 원전을 수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했던 것이 실은 정반대의 경우라는 것이 드러난다.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없애지 않았을까? 추종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민국실록 자체가 그 증거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북방 이민족의 침략엔 대응하지 않았을까? 이 역시 답은 간단했다. 북방 이민족 역시 호혜가 아니라 시혜를 내세우는 한 자신들과 다를 바가 없고, 결국, 월등한 문화를 가진 자신들의 의지대로 역사가 흘러갈 것이라는 자신감인 셈이다.

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장자가 복수(?水)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때, 초나라 왕이 두 대부를 보내 정치를 맡기고자 했다.”

지난날의 나는 결코, 어떠한 민족이, 어떠한 문화가, 어떠한 제도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삶이 아니었다.

“장자가 답했다. 초나라에는 신령한 거북이 있는데 초왕이 그런 거북을 잡아 죽인 후 비단으로 싸서 묘당(廟堂)에 모신다고 들었다. 과연 그 거북은 죽어서 왕에게 귀하게 모셔지는 것을 원했을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꿈틀거리길 원했을까?”

“도를 행함에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유해섬이 부러진 칼을 꽉 잡고 내가 내지른 주먹을 곧장 찔러왔다. 아무리 부러진 칼이라고 하나 칼과 주먹의 일 합은 누가 보아도 승부가 뻔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질 수 없었다. 그것이 누구나 예상했던 결과라고 해도 결코 질 수 없었다.

도를 행함에 있어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의 명분이 되었다. 천하는 중화(中華)가 아니라 중화(中和)라는 나의 외침을 과거로 되돌린 자들인 정암의 신념이기도 할 것이다.

“컥!”

칼이 주먹에 박히자 선혈이 솟구쳤지만 나는 그보다 더 빠르고, 강한 힘으로 그대로 그를 밀쳐버렸다. 칼을 든 그대로 유해섬의 팔이 본인의 가슴을 쳤고 입가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나는 살아서 진흙 속에서 꿈틀거릴 것이다.”

나는 너희의 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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