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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16화 (216/257)

00216  (27) 국난사양상(國難思良相)  =========================================================================

나는 이자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존심 강한 이자겸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상황 자체가 어색했던 탓이다. 나의 당황스러움을 그는 이해한다는 듯 눈빛이 차분했다. 그리고 그런 눈빛까지도 내 당황스러움을 더욱 부추겼다.

흘러가는 상황이 노회한 여우가 전략적 후퇴를 선택하도록 한 것일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긴 했다. 그렇다고 일찍 판단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이자겸이 그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내 수족들을 왕실 곳곳에 포열(布列, 진을 침)하고 관작을 팔았으며, 당인(黨人)을 심어 스스로 국공(國公)이 되었다. 그 예우가 태자와 같았으니 사방에서 선물이 모여들어 썩어 나가는 고기만 수만 근에 이른다. 남의 전토(田土, 전답)를 강탈하는 것도 예사였지.”

나는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지나온 잘못을 줄줄이 읊어대는 것을 보니 꿈속에서 부처님이라도 만나 개과천선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고려판 스크루지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아니면 설마 날 죽일 마음을 품은 것인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때이든 새로운 권력이 갓 출범했을 때, 기존 세력들은 바짝 낮추었다. 본보기를 당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역사에서 이자겸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법상종 승려를 왕사로 앉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낌새는 내가 정지상을 따라 왕궁을 다녀오기 전, 이미 이자겸의 흉중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가 있었다.

그런 그가 내가 왕궁을 다녀온 사이 무슨 심경변화가 있어 자기 잘못을 줄줄이 읊는다는 것은 내가 그보다 윗줄에 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가?

“그런 나의 고백이 놀라우냐?”

“솔직히 놀랍습니다.”

“놀라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권력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세세토록 유지해온 세도가가 아니라 그저 한순간 영달에 취한 바보에 불과할 뿐이다.”

“알면서도 악정을 행한다는 말입니까?”

“악정? 그래,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악정의 빈자리를 다른 가문이 메운다는 뜻이다. 아니 이득을 얻는다는 이야기지. 세력이 커진다는 의미다. 그렇게 거대해진 가문은 자신들의 경쟁자를 쳐낼 것이고 외척을 자처할 것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자겸을 매번 대할 때 느끼는 거지만 그의 궤변은 매우 그럴듯했다.

“그래서 당할 바에는 그 자리에 인주 이가가 서겠다는 뜻입니까? 계속 악정을 저지르며 뭇 가문 중 수위에 서고, 주상과 양립하는 것이 대감의 뜻이냔 말입니다.”

“그런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겠지? 과욕이라고 말이야. 그런 욕심을 버리면 주상과 양립할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너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답을 내놓는 것이 아마 너에겐 최선일 것이다.”

나는 흠칫했다. 이자겸이 빙그레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꺼낸 말들은 앞으로 꺼낼 말들의 밑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네가 복건에서 활개 치는 사이에 고려 은자(隱者)들 사이에선 큰일이 벌어졌다.”

“고려 은자?”

은자란 심산유곡에 은거한 자들을 가리켰다. 주로 노자나 장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도사들이 많았지만 홀로 암자에서 정진하는 승려들도 가리켰다. 혹은 유학에 깊게 매진하기 위한 은둔 유학자들도 포함될 수 있었다.

철저히 은둔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큰일이란 것이 대체 무엇일까? 국가적으로 큰일이라면 예종이나 곽여, 정지상 등이 나에게 말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금강산이나 계룡산 같은 이름난 명산에는 예부터 은둔 무인들이 그들만의 맥을 전수하며 살아가곤 했지. 나는 그들을 포섭하여 숨은 힘으로 삼고자 했다.”

이자겸이 반란을 일으킬 당시 무사들을 대거 동원했다고 했다. 이자겸이 오랜 세월 왕권을 노리고 있었다면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은밀하게 준비한 일이라면 곽여나 정지상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이자겸 최후의 패인 것이다.

그런 최후의 패가 큰일이 났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다 궤멸을 당하여 의기소침해진 것일까?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주상도 살고 나도 사는 방법, 그 방법의 답을 내가 제시해주마.”

이자겸이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나의 시선도 자연 밖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닫힌 문만 보일 뿐이었다. 밖에서 어떤 이의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곧 자시(子時, 밤 11시~새벽 1시) 타종이 울릴 것이다. 선지교로 가면 내가 이리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자겸이 말한 방법의 답을 나밖에 풀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압도적인 힘을 보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려 은자에게 벌어진 큰일과 연관이 되어 있다. 고려 은자에게 벌어진 큰일엔 이자겸의 숨겨둔 칼들 역시 비켜가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생각은 쉽게 할 수 있었지만 대체 그것이 예종과 이자겸이 공존할 방법으로 연결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직접 가보아야 알 수밖에 없다.

“부디 그것이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자겸은 내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밤이 된 도성 거리는 스산했다. 마치 영화의 한 결투 장면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예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지교로 다가갈수록 드문드문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느꼈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목적지를 정하고 걷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들은 담 혹은 나무에 슬며시 붙어 지나가는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복장이었다. 어떤 이들은 도사 차림이었고, 어떤 이들은 승려 차림이었으며, 어떤 이들은 낭인 무사 같았다.

나는 저들이 이자겸이 언급한 고려 은자들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하듯 선지교로 가까워질수록 예기(銳氣)에 찬 인물들이 점차 많아졌다. 그중 몇몇은 내게 두 손을 모으며 예를 표시했다.

침묵을 누가 강조라도 했던 것인가? 그래도 예를 갖추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읊는 입 모양을 볼 수 있었다.

‘계룡산이라…….’

계룡산에 왔다는 자의 예기는 이곳에서 가장 뛰어나 보였다. 당장 장군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정도의 실력자인 것이다. 그런 그의 표정은 기이한 열망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에게 마치 누군가를 이겨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지교가 점차 눈에 들어왔다.

나는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자매가 춤을 추었던 이곳에서 이제 내가 춤을 춰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운명인가?

선지교 한가운데에 어깨에 칼을 걸치고 청포를 두른 중년 도사가 고고한 자태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따로 생각할 것도 없이 고려 은자들을 패배시킨 장본인이 바로 저 사람일 것이다.

“푸른 산의 진인(眞人)께서 어찌 고려의 속세까지 나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그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내가 금세 그의 정체를 밝히자 조금 놀라웠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목이 뻣뻣하다고 여겨서였을까?

“다시 여쭙지요. 검선의 제자이자 청성의 장문인께서 허명이나 얻자고 먼 이곳까지 오신 연유 말입니다.”

“하하하, 그걸 알면서도 무릎이 그리도 뻣뻣한 것을 보니 과연 불패라는 오만한 명호를 붙일 만 하구나.”

내가 선지교에 들어서자 그를 더욱 자세하게 살필 수 있었다. 검선 여동빈의 제자이자 청성 장문인, 그래서 이선 사문 일사 중 사문의 일원, 유해섬이 바로 내 앞의 청수한 중년 도인의 이름이었다.

그는 사문 중에 유일하게 바깥 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했으니 푸른 도복을 보자마자 그를 떠올리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판단이었던 셈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이자겸이 나를 보낸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고려 산천이 수려하여 수행자들의 도력 역시 높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는 이유 따위보단 그럴듯한 이유를 듣고 싶군요.”

내가 먼저 도발적으로 나섰지만 유해섬은 수양이 깊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흔들리지 않았다.

“너를 기다렸느니라.”

“나를? 나를 상대하느라 무료해서 고려 산천의 은자들을 상대했단 말입니까? 청성산에서 복건까지는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을 텐데요.”

나의 질문에 유해섬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 미소가 매우 얄궂게 보였다. 자신의 정체를 밝혔던 것처럼 이번에도 알아맞혀 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송에 반기를 든 복건의 양왕, 혹은 불패를 꺾는 것이 아니라 고려의 준경을 꺾기 위함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오랜 경륜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응대하자 그의 동공이 흔들렸고, 한탄이 나왔다.

“모산의 말대로구나.”

모산이라면 같은 사문의 모산파 밖에는 달리 떠올릴 곳이 없다. 그렇다면 유해섬은 공손승 혹은 그의 스승을 만났고, 이후 고려로 오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중원이 혼탁한 것이 세외(世外)의 인재들이 득세하여 그런 것이라 믿고 계시는 것이라면 착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진인의 칼이 향해야 할 곳은 세외가 아니라 송 조정의 간신들일 것입니다.”

“너의 말이 옳다.”

유해섬의 표정엔 가식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서서히 어깨에 있는 칼을 뽑고 있었다.

“고려인이 중원을 차지할까 두려운 것입니까?”

그렇다면 어불성설이다. 북방 이민족들에게 중원을 내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않은가? 하다못해 지금의 요나라도 있었다.

“그렇다.”

그런데도 유해섬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설마 하며 던진 질문이 옳다고 긍정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질문을 긍정할 줄이야.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신이 있다고 믿느냐?”

도교의 신봉자인 그가 명목상 불교도인 나에게 신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도교와 불교는 세계관이 어느 정도 융합하여 마치 그리스로마신화 같은 인간적인 신들을 수십 수백 만들어냈다. 서유기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신이 있다고 대답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보기엔 어려웠다.

“그리고 그 신이 너만 편애한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도술도 나오는 마당에 뭐가 나오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가졌지만 설마 이런 일을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민 제국이 망하고 이후 왕조가 민 제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허무하기도 했지만, 면면부절로 이어져 온 율가의 맥을 확인하며 아직 내가 애초에 꿈꾸었던 정신이 시대를 계승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러한 역사의 주관자는 오직 나 하나뿐인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의 균형을 생각해야 했고,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의 주관자가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역사가 다시 회귀하려는 바탕에 어떠한 이질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차라리 네가 고려에 만족했다면 내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중원인으로 귀화하여 중원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면 그 역시도 내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너를 우리가 관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갈수록 섬뜩해졌다. 마치 나의 전생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마 나와 유해섬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확실했다. 이자겸이 나를 유해섬에게 보낸 것도 거기까지 생각해서 보낸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재미난 이야기군요.”

천신 숭앙은 어느 나라나 있었다. 오직 그 민족만을 도와주는 배타적인 신부터 전 세계에 걸쳐 긍휼함을 행사하는 광의의 신까지 저마다 역사와 환경에 맞는 성격을 갖추고 있었다.

하물며 우리나라도 부여, 고구려, 가야, 신라, 고조선까지 제각각의 천신 신화가 있지 않은가?

나는 지금 시기의 송나라를 떠올렸다. 요나 서하, 대리의 공세가 심해지고 민중의 고역이 날로 더해지는 상황에서 신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기다. 그래서 불교나 명교도 흥한 것이 아닌가? 본래 도교의 최고신은 태상노군(노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원시천존을 거쳐 지금 시기엔 옥황상제가 최고신으로 숭배받기 시작한다.

옥황상제는 부처처럼 수행을 통해 평범한 인간이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면에서 인기였다. 꾸준히 선행을 쌓아서 언제고 최고신에 올라 선악에 따른 응분의 보상을 내리길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암울한 현실을 단숨에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희망이었다.

그것은 엄연히 같은 것을 받아들인 우리나라와 궤를 달리하는 반응이었다. 우리는 옥황상제, 미륵불, 하느님 등이 초월적, 근원적 존재라고 믿지만, 중국인들은 현실을 바꾸고 복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라면 근원적 존재마저 인간화시켜 하늘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인간 세계에 개입하던 그리스 신화의 신, 제우스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신이 있다면 너무 편협하군요.”

나 역시 칼을 빼 들었다. 어쨌거나 이긴 후 승자로서 패자의 변명을 듣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맞았다.

============================ 작품 후기 ============================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논란의 여지가 분명히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삼국지편을 처음 시작할 당시부터 현대편까지를 염두에 두고 설정같은 것을 짰습니다. 그걸 모두 빼고, 다시 짜야 하느냐, 아니면 그런 설정을 그대로 가지고 가야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불꽃처럼과 우리의 마음은 남쪽을 향한다를 썼지요. 이제 과거의 글을 지금에 맞춰쓰기보다 과거의 제가 생각했던 취지대로 이끌고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아주 과한 정도는 아니겠지만 분명히 불편하고 당황스러운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건 글을 리메이크 하지 않고 그대로 끌고 가기로 결정한 제 선택의 결과이므로 감수하고 받아들일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이 흥행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시동을 걸었습니다. 다음 글은 월요일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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