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9 (27) 국난사양상(國難思良相) =========================================================================
신하 중 안색이 노래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치안이 안정되면서 고려에서 가장 큰 범죄는 경제 사범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 사범은 귀족 또는 관리와 유착한 경우가 많았다.
백성에게 저질품을 제값을 주고 팔아넘기는 행위가 만연하자 민심은 들끓게 되었다. 그래서 예종은 보위에 오른 직후 가장 먼저 척결 대상으로 삼았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어린아이도 짐작할 수 있는바 부패 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던진 셈이다. 그런 자신감은 현재 조련 중인 별무반이 왕의 직속이라는 사실에 기인했다. 일부 귀족들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서슬 퍼런 예종에게 반문할 생각도 못하고 대신들은 그저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군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서 이자겸도 숙종과 예종 시대에는 그저 납작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들 반대가 없는 것으로 알겠다. 짐은 참으로 기쁘다. 짐의 금주에 깃든 선조의 뜻을 그대들이 알아주었으니 말이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추밀원에 하나의 임무를 더 맡기고자 한다.”
“임무를 또 맡긴단 말씀이십니까?”
놀라서 반문하는 사람을 보니 생판 모르는 자였다. 정지상이 귀띔하길 백가신(白可臣)이란 자로 주로 외교 부분을 담당하는 신하라고 했다. 그는 이자겸과 연결된 자였고, 탐욕이 많아 사신으로 요와 송을 다녀올 때마다 재산이 크게 늘었다고 소문난 자라 했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는 마저 듣지도 않고 반대할 생각인가?”
“신이 어찌 그런 황망한 생각을 했겠습니까. 폐하의 심려를 중신들이 덜어 드리고자 조정에서 깊게 다룰 일이 아닌가 싶어 말씀드린 것이옵니다.”
매섭게 노려보자 백가신은 덜덜 떨면서도 제 할 말을 다했다. 그러자 백가신을 옹호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다들 이자겸 같은 권문세족의 편에 선 자들이었다.
조정에서 다시 논하자는 것은 결국 왕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진행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기세를 탄 예종이 절대 들어줄 리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각 주군의 수령들이 청렴하게 백성을 돌보고 있는지도 함께 살피고자 한다.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백성이 어찌 가뭄만 그 이유가 있겠는가? 경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폐하의 말이 하나하나 다 옳사옵니다. 그러나 각 주군의 수령을 모두 살핀다는 것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논란도 반드시 일어날 일인 만큼 조정에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령의 청렴함은 백성에게 물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는 일. 무지렁이 백성의 평이라고 그대들은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지방은 열 집에 아홉 집은 비었다는 노래가 있을 만큼 참혹하다 하니 짐은 실로 분통한 마음뿐이다. 그대들이 짐에게 보고 배우라는 열성조들 역시 짐과 같은 처지라면 짐의 선택을 따랐을 것으로 확신한다. 명신(名臣)을 뽑아 지방을 순시하며 수령의 평가를 얻을 것이고, 상벌을 명확히 할 것이다. 그러하니 추밀원사(樞密院使)는 짐의 뜻을 받들어 처결하라.”
“추밀원사 왕하(王?) 명을 받듭니다.”
체구가 당당한 문신이 총총걸음으로 나와 예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하라는 이름에서 보듯 그는 왕족이었다.
즉위 초, 왕이 권력을 빠르게 다지는 일은 중앙군을 손에 넣고, 지방 수령을 감사(監査)하는 것이다. 권문세족들에게 지방 수령은 수족 노릇을 하는 중요한 존재니 이들의 퇴장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왕의 측근들이 대거 기용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정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하면 공공기관의 장들이 바뀌듯 말이다.
잔뜩 일그러진 백가신의 모습에서 권문세족들이 차후 어떻게 반격에 나설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아, 그래서!’
아버지인 숙종의 비원을 받아 예종 역시 여진족을 토벌하길 원한다. 그렇게 조직된 별무반은 왕권 강화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권문세족의 수족 노릇을 하던 지방 수령들이 대거 갈려 나간다면……. 이도 저도 손해를 본다면 가장 적게 손해를 보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백가신이 읍을 하며 말했다.
“폐하께옵서 별무반을 양성하는 것은 상국인 고려를 받들지 않는 여진의 무도함을 징계하고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종은 흥미를 보였다. 처음부터 이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할 정도였다.
“일찍이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원정을 앞두고 그런 원정을 뒷받침해야 할 방백(方伯)을 감사한다는 것은 방백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민심을 동요시킬 뿐입니다.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것입니다. 신은 추밀원사를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삼아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와 합을 이루고 원정 준비에 전념토록 하는 것이 더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추밀원사를 서북면병마사로? 경들의 뜻이 다들 그러한가?”
서북면병마사는 요나라와 인접해있기 때문에 다소 정치적인 자리였다. 그러다 보니 요나라와 가까운 인사들이 발탁되고는 했는데 그런 자들은 대부분 권문세족이었다.
요나라가 방관하고 있는 연해주 일대를 차지하려고 마음먹은 고려로서는 자연히 전력을 동북면에 쏟아 부었다. 동북 9성은 사실 그 전초 기지에 해당하는 셈이다. 따르는 여진족을 고려에 동화시키고 옛 발해의 영역 중 동부를 손에 넣어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다.
계획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예종에게는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을 것이다. 동과 서가 낭림산맥으로 갈라져 교통이 불편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한반도 좁은 지형 내에서나 그럴 뿐 중원이란 땅덩어리에 비하면 난이도 면에서 그리 높다고 말할 수 없었다. 유방이 촉에서 빠져나온 과정을 생각해보자. 동과 서가 서로 자신의 심복들에게 제어된다면 얼마든지 서로 호응하며 효율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즉, 예종은 서북면병마사 자리와 지방 감찰이란 두 가지 독이 든 사과를 던져 놓고 너희에게 덜 치명적인 것을 고르라고 압박하는 모양새였고, 신하들은 꼼짝없이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신하들이 어떤 것을 선택해도 예종에게는 만족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결국, 권문세족들은 감찰을 받지 않는 쪽을 원했다. 요나라와 친교를 다지며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지방 수령의 대거 좌천은 지방에 뿌리를 둔 가문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예종이 슬며시 웃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경들의 뜻이 좌간의대부와 같은가?”
“폐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짐의 뜻을 헤아린 경들의 충정이 실로 고맙다. 그럼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겠다. 추밀원사를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겸 지중군병마사(知中軍兵馬事)로 삼아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겸 지행영병마사(知行營兵馬事) 오연총(吳延寵)과 손발을 맞추도록 한다. 그와 더불어…….”
이제는 예종이 무슨 말이 더 나올까 싶어 권신들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참으로 통쾌한 장면이기는 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모두 둘러보아도 현명한 왕이 제대로 실권을 휘두른 예는 몇 없다.
“경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동북 정벌의 때가 무르익고 있다. 짐이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정벌에 앞서 동계 변방의 산천 지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다. 옛 지도가 전해지고는 있으나 시기가 흘러 달라진 점이 많다고 들었다. 동북면병마사가 수정 작업을 하고 있으나 별무반을 강군으로 조련시키는 일에도 모자란 상황에서 어찌 그 짐까지 지울까, 하여 내시, 주부, 소감 중 눈썰미가 좋고 민첩한 자들을 골라 동북 산천의 지세를 정확하게 옮기도록 하는 일을 시킬 작정이다. 이에 다른 의견을 가진 자가 있는가?”
한 마디로 상세 지도를 작성한다는 것인데 당연한 일이었기에 감히 반대하는 인물들은 없었다. 예종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모두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잠시 따라오도록 했다. 그렇게 궁전 내원에 들어서 호젓한 정자에 앉았는데 마치 내가 올 것을 알았다는 것처럼 냉수만이 보이는 조촐한 반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다짜고짜 그 말을 먼저 꺼냈다. 그러나 예종과 곽여는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양보한다. 이것이 짐의 치세가 될 것이다. 그들이 짐에게 하나를 내밀면 짐 역시 하나를 내밀 것이다. 경은 짐작 가는 바라도 있는가?”
“비어 있는 자리에 자신들의 사람을 앉히려고 하겠지요.”
“비어 있는 자리? 짐이 보위에 올라 조정을 일신하였거늘 아직 비어 있는 자리가 있다는 말인가?”
예종은 곽여를 보며 물었다. 곽여도 처음에는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생각이 났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아차, 중요한 자리를 미처 염두에 두지 않았었습니다. 양왕의 말이 아니었다면 앉아서 당했겠습니다.”
왕으로 인정한다면 곽여는 내게 존대를 해야겠지만 민국은 아직 어떤 나라의 인정도 받지 못한 국가였다.
오늘 예종이 나를 드러냈으니 아무리 입을 다물라고 했어도 알음알음 송과 요로 소식이 다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걸 감수하면서도 고려의 신하라 불렀다는 것은 흉중(胸中)에 큰 생각이 들어 있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오늘 내가 이 자리에 불려 온 이유가 될 것이다.
사실 송과 요가 알아도 당장은 직접적인 수단을 고려에 쓸 수 없다. 외교전이 일어날 것이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쯤 되면 들불처럼 일어난 금나라의 기세를 막기 급급하여 이쪽은 신경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예종도 곽여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눈치를 채서 외려 질문을 던졌다.
“법상종(法相宗)을 밀겠군. 현화사(玄化寺)의 주지일까?”
예종도 곽여도 이제 알았다. 바로 왕사 자리가 비어 있었던 것이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기에 조정에 승려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이 왕사다. 그런 왕사가 죽으면 국사로 모셔지게 되는 것이다.
왕의 스승이란 명칭답게 왕사가 될 고승을 상좌에 앉히고 왕은 면복을 갖추고 하단에서 제자의 예를 치르는 행위를 한다. 그때 고승은 상좌에 앉는 것을 사양하는 예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어쨌거나 왕보다 상석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왕실 출신인 의천 대사가 귀천하면서 화엄종이 분열되기 시작했고, 조계종의 싹이 트기 시작하는 시점이 지금이다. 그러다 보니 화엄종 이전까지 대세를 이루던 법상종의 세력이 현재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법상종이 인주 이씨의 지지와 비호를 받고 있다는 데 있었다.
왕사가 정치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백성의 존경을 받는 큰 어른 성격이 강하기에 예종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다. 때론 불법을 들어 예종의 행동을 막아설 수도 있다.
골치 아픈 문제를 만난 것이 분명하겠지만, 곽여는 곧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거 참, 대국 재상의 생신강을 털겠다는 무모한 호기로 바다를 건넜던 청년이 재상의 아들을 죽이고, 나라를 세웠으니 그야말로 놀랄 지경이었는데 이제는 생각지도 못한 훈수까지 듣게 되니 과연 비범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답을 구하시는 방법이 참으로 고명하시군요.”
어찌 알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운을 뗐으니 내가 그 해답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곽여는 생각한 것이다. 물론 나는 그 해답을 알고 있다. 아니 해답이라기보다는 순리였다.
“고승은 보통 나이 드신 분을 뜻합니다. 언제 열반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로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허.”
곽여는 내 대답에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듯했지만 내 대답은 단 하나의 의미밖에 없었다. 아니 예언이라고 해야 하나? 권신들이 추천한 고승은 결국 왕사 자리에 오르지만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타계한다. 그제야 예종은 자신이 원하던 왕사를 지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잡음이 좀 있었다. 직언을 담당하는 간관(諫官) 중 일부가 권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애초부터 권신을 간관, 언관에 앉히지 않으면 되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종의 정치적 감각이었다. 고려의 관직 체계는 직접 발로 뛰는 실직과 명예직인 허직으로 나뉘었기에 자신의 측근들을 최대한 실직에 앉히고자 하는 판단이었다.
즉, 시끄러운 소리 듣는 정도는 왕이 감수할 테니 측근들은 실무에 집중하라는 인선이다.
“이제 저를 이곳까지 부른 이유를 말씀해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