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3 (26) 일광천하(一匡天下) =========================================================================
그때야말로 진정한 변혁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산에서 내려갔다.
안남국은 서쪽으로 지척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대리는 해남도에서 육로를 통해 북상하여 곤명을 지나 도성인 대리(大理)까지 1,600Km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다만, 송의 지배력이 완전히 닿지 않는 탓에 거리는 길지만 시간을 더디게 할 만한 장애는 없다고 봐야 했다.
현대에서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를 우리는 말을 이용하여 달렸다. 사천 지방 못지않게 운남 역시 지형이 험하여 숱한 하천과 협곡을 지나야 했다.
그렇게 꼬박 20일을 걸려 마침내 대리성에 도달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강주성 소식이 중원에 널리 알려졌을 터였다. 송 조정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복건에 남은 인재들을 믿었다.
‘아무래도 나는 서유기와 인연이 있나 보다.’
중원의 대성에 비하면 아담한 편에 속한 대리성은 손오공이 우마왕을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화염산의 불을 끄기 위해 나찰녀의 파초선을 두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곳이라 하니 절로 구석구석을 호기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둘러보니 중원의 대도시에 비하면 작다고 하지만 몽골군에게 항복하기 전까지 동남아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자부심은 허언이 아니었다. 시장은 활기에 차 있었고 사람들은 생기가 있었다.
역대 황제 중 8명이나 스님으로 출가한 불교 국가답게 백성을 크게 탄압하거나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반대편 인파가 썰물처럼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만날 것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탓이었다.
“하하하. 10년 전의 천둥벌거숭이가 이제는 천하의 거목이 되었구나.”
그는 오은의 일인이자 황제의 아우인 섬전수 단정홍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출현에 두 손을 모아 공경을 표했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존경의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알고 마중을 나오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곧 찾아뵈었을 것을…….”
“해남도에서 이곳까지는 4천 리의 먼 길이다. 그 길에 거주하는 부족만 수십에 달하지. 그들이 바로 우리의 눈과 귀다. 나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인명 피해가 큰 맞대결은 피하려 애를 쓴다. 자연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 도망을 쳐서 적들의 진을 빼야 하니까. 비겁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우리의 생존 방식이다.”
“복건도 배우고 싶은 방식입니다. 체면이 백성의 삶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하하하!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 아니 이제 경륜까지 더해졌으니 나도 상대가 되지 않겠어. 일단 나를 따르게.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지.”
“좋습니다.”
내가 단정홍의 뒤를 따르자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내가 어떤 인물이기에 왕야 단정홍에게 귀빈 대접을 받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단정홍은 갈라지는 인파를 상대로 소리쳤다.
“대리의 귀빈이 오셨느니라. 순창에서 하북삼절의 이탁을 물리치고 7만의 대군을 종횡하여 채구를 사로잡은 복건의 왕이 바로 이 사람이다. 강주성에서 기병 1만을 농락하고 한 번 놓아줬던 채구의 목을 거침없이 베어버린 자가 바로 여기 있다! 지금은 강남제일인이지만 천하제일인이 될 사람이니라!”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냥 들어서는 마치 약장사가 약을 팔기 전에 차력 공연을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에게 이런 식의 말이 알아듣기 쉬웠던 모양이었다. 금세 대리국 황제 만세를 외치고, 왕야 만세와 양왕 만세를 외쳤으니 말이다.
인파를 벗어나 왕부에 들어섰다.
이제 겨우 한적하여 잠시 숨을 돌리는데 단정홍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이런 정도는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대리로 오지도 않았을 터. 우리와 연수를 꾀하려 하나 거리상 어렵고 단지 문서 상으로라도 우리가 연수하고 있다는 것을 중원에 알리려 하는 것이 아닌가?”
일국의 안위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람답게 단정홍의 경륜은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었다.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하나만의 목적으로 대리로 온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어디 털어놓아 보게.”
“대리의 재상가는 대대로 고씨입니다. 역대 대리의 황제들을 보면 불도에 치중하느라 정치는 전부 고씨에 일임하다시피 했지요. 그래서 11년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닙니까?”
1094년 대리는 재상 고승태에게 왕위를 찬탈당했다. 그러나 고승태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황제가 되자마자 불치의 병에 걸려 죽고 만 것이다. 그는 죽기 직전에 단씨에게 다시 왕위를 돌려주라고 후손들에게 명했고, 후손들은 계속 재상을 맡는 조건으로 왕위 계승자 단정순과 타협했다.
야사에는 운남의 고씨가 사실은 고선지 장군의 후손이라는 말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신빙성이 없다. 대리국은 전제국가라기보다는 공화제에 가까운 부족 연합체였고 그중 가장 사람 수가 많고 힘이 강한 백족(白族)의 수장이 단가였고 고가는 두 번째 부족의 수장 정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고가가 국정을 전횡하는 간신은 아니었다. 현대에도 대리에 가면 고가의 역대 재상을 기리는 승탑(僧塔)이 있는데 이는 불교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학정의 대상이었다면 현대까지 그 탑이 무사히 보존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가를 모두 내치기라도 하라는 말인가? 자네가 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 같군. 고승태 그자가 역심을 품고 우리를 공격한 것은 맞네. 만약 그가 불치병으로 죽지 않았다면 자네의 말대로 우리는 고가와 운명을 건 일전을 벌였겠지. 그러나 고승태가 죽기 직전에 불심을 되찾아 우리에 사죄하며 일족은 죄가 없으니 용서해달라고 청했네. 우리는 그 사죄를 받아들였고 고가는 여전히 우리의 좋은 동반자지.”
“고가를 물리치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 고가의 과거를 이용했으면 합니다.”
“과거를 이용?”
단정홍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얼굴이 환해지며 탁자를 쳤다.
“송 조정에 반란을 일으키겠으니 도와달라, 뭐 이런 서신을 보내면 그들은 필시 가까운 사천에서 원군을 보내겠지. 사천의 군대는 워낙 지형이 유리한 곳에 주둔하고 있어 국경 근처를 약탈할 때마다 골칫거리였다. 서하의 약탈에는 무능한 자들이 어찌 우리의 것은 그리 탐하는지.”
송의 군대가 그나마 가장 만만하게 들이댈 수 있는 것이 대리였다. 게다가 사천은 서하를 상대하는 송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후방 지역이었다.
송하면 차가 떠오르는 것처럼 사천차(四川茶) 매매가 섬서 일대의 군비(軍費)를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가가 재배한 사천차를 국가가 사들여 인근 국가나 부족들로부터 말과 교환한다. 그렇게 사들인 말을 군마로 쓰거나 말이 비싼 동남부로 보내 판다. 그렇게 얻은 이익으로 서하를 견제하는 군대를 양성할 수 있었고 서역 교역로를 지킬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차마무역(茶馬貿易)의 실현이다.
그런 흐름에서 변수가 되는 것은 대리국이 강성해져 배후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니 송은 일찍부터 대리를 견제하기 위해 여러 외교적인 수단을 써왔다. 동남아 왕조들을 우대하여 대리국을 포위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제가 아는 것만 촉에 41개의 차장(茶場, 시장)이 있습니다. 물론 강남에 비하면 그 숫자가 작지만, 번이(蕃夷)들이 강남차의 순한 맛보다 사천차의 떫은맛에 길들어 그 가치를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을 지키던 군대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장강 이북의 촉은 손을 못 댄다 하더라도 최소한 남부는 모두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되지. 게다가!”
단정홍은 그 여파가 실로 지대함을 깨달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서성거리며 소리쳤다.
“섬서의 군비가 사천차 매매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41개의 차장 중 남부에 자리한 차장이 11곳. 숫자는 적지만 하나같이 장강 이북의 차장보다 두 배의 수량이 거래된다는 알짜배기들이지. 당장은 섬서의 경제가 휘청거리지 않겠지만, 올해가 지나면 조정으로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걸세. 어쩌면 송의 육적 또한 자신들이 가진 것을 토해내야 할지도 모르지.”
그의 추측은 내가 세운 계획과 일치했다. 그리고 실제로 대리는 송의 혼란을 틈타 사천 남부를 손에 넣는다. 그렇게 한 손엔 쌀을, 다른 한 손엔 차를 거머쥔 대리국은 몽골군이 원정을 오기 전까지 풍요를 누린다.
게다가 올해 송 곳곳에서 일어나는 홍수로 백성의 피해가 심대하자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휘종이 어지를 내려 대신들에게 구호 재물을 내놓을 것을 명령한다. 총애를 받던 육적은 눈물을 머금고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계획대로만 가면 그들은 그것보다 더 많은 재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재물을 털어 내는 방법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겨우 시작일뿐이었다.
‘고려엔 이자겸이 있다.’
항주에 있는 동관의 재물을 털어 버릴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의 다음 행선지이기도 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숙종이 죽고 예종이 즉위하는 혼란기인지라 내가 해야 할 일이 산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소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내일 재상을 만나 당장 자네의 의견을 밝히고 승낙을 얻어내도록 하지. 불사(佛舍)와 승탑(僧塔)을 지을 돈이 없다며 매일 같이 울상인 사람이니 이 계획을 듣는다면 본인이 외려 적극적으로 움직일걸세.”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하고 제안 하나를 드릴까 합니다.”
“제안?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들어줄 것이니 어디 말해보게.”
“11년 전 해남도에서 민국실록의 행방에 대해 동파 선생이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단정홍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이 자리에서 설마 그때의 이야기가 나올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제가 1만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면 대리를 능히 점령할 방법이 있습니다. 모략이나 술책이 아니라 대리가 전혀 방비하지 않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알려 드리도록 하지요. 저는 그 대가로 민국실록을 원합니다.”
“아국에 내가 알지 못하는 허술한 곳은 없다.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최악의 수를 가정하고 가정하여 틈을 메웠다. 그런데 외지인인 자네의 말을 어찌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도록 하지. 나를 믿는다면 먼저 답을 말해주게. 그러면 나 역시 민국실록의 행방을 알려주도록 하지.”
행방을 알려준다는 표현을 쓴 것을 보니 소재지를 알고 있지만, 섣불리 다가가기에는 어려운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공과 암기술에 능한 단정홍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라면 송의 황궁쯤 된다는 것일까?
민국실록을 얻는 자, 천하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 떠돌지만 나는 그래서 필요하다기보다 그저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사라진 이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내가 앞으로 행할 일들에 대한 지침서로 삼고 싶었다. 책 자체가 가진 무상의 권위는 덤인 셈이다.
“모소(?些)를 아십니까?”
“모소? 그들을 어찌 알지?”
모소는 현대 중국의 납서족(納西族)을 가리킨다. 그들은 티벳 북동부에 살던 유목민으로 전쟁을 피해 운남에 정착한 부족이었다. 그래서 본래 운남에 살던 부족들과는 말이나 문화가 이질적이다.
“저는 중원을 벗어나 천하를 종횡했습니다. 중원을 비롯하여 가보지 않은 곳이 없지요. 제가 만나지 못한 부족은 없다시피 합니다.”
사실 만나보지 못한 부족이 더 많았지만, 지식의 출처를 말할 방법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오는 행로에 모소들이 사는 마을을 목격했었다. 단정홍은 내 설명이 이해가 간다는 눈빛이었다.
“중원에서 대리 도성을 공격하자면 금사강(金沙江)을 건너야 합니다. 금사강에서 중원 방향으로 여강(麗江)이 있고 그곳에 모소가 살고 있습니다.”
“설마 모소가 배신을 한다는 뜻인가? 배신하더라도 그들은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배신이 아니라 금사강을 따라 쉽게 도성 근처까지 도달하는 방법을 그들이 알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제가 저 멀리 서역에서 티벳의 유목 민족을 만나 강 건너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배가 없을 때, 그들은 양을 죽여 껍질을 벗깁니다. 껍질을 다 벗기면 공처럼 둘둘 만 후 한쪽에 구멍을 내서 바람을 넣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을 막고 두 팔로 단단히 안고 강을 건넙니다. 대리는 양을 키우는 이가 드물어서 그 같은 방법을 생각한 이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대리의 멸망은 양가죽으로 만들어진 풍선 때문이었다. 몽골군이 대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금사강 인근에 도착했을 때 뗏목을 만들어 건너려고 했으나 유속이 세고 깊이도 깊어 번번이 희생자만 냈다. 그때의 지휘관이 쿠빌라이로 후계자 경쟁을 생각하는 그로서는 몹시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때 인근의 모소를 어찌 회유했는지 그들이 전통적으로 강을 건너는 방법을 배운다. 양가죽을 이용해 풍선을 만들어 건너는 방법이었다. 쿠빌라이는 그 방법을 듣고 양가죽 풍선을 대량으로 만든 후 마치 뗏목처럼 겹겹이 붙여 건넌다.
건너기 위해서라면 쿠빌라이의 방법이 맞다. 그러나 풍선을 잡고 강 흐름에 맡기면, 대리 도성 근처까지 다다르는 방법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방법을 쿠빌라이에 알려준 탓에 대리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 중국에서 옛 대리국의 부족들이 납서족과 절대 혼례를 치르지 않는다는 전통이 생긴 것은 이때부터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