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00화 (200/257)

00200  (26) 일광천하(一匡天下)  =========================================================================

맹재가 소리쳤다.

“채경의 제안은 음모였다. 내 딸을 복위시키는 문제를 조정에 화두로 던지자 과거 폐출을 반대했던 구법당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러자 신법당의 무리는 자신들의 권력이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역시 뭉치기 시작했다. 당시 채경은 황상의 신임을 받고 있었으나 신법당에서 서열은 다섯 손가락 말석에 겨우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원우간당비(元祐姦黨碑)였다. 채경은 구법당의 대표적 인사였던 사마광, 소식 등을 간신으로 몰아세워 대대적으로 탄압에 나선 사건이 아닌가?

그러나 구법당은 뛰어난 문인들이 많아 쉽게 엮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음모를 꾸몄을 것이다.

구법당과 신법당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과거의 사건 하나를 수면으로 떠올려 그걸 기회 삼아 정적을 모두 솎아내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이용된 사건이 바로 원우황후 폐위를 둘러싼 내홍(內訌)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지 않은가? 이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 시대도 현대에도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이러한 음모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채경은 은밀히 구법당에 동조하면서 폐위를 취소한다는 어지까지 받아냈으니 구법당은 자신감을 가지고 신법당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승리를 예감한 구법당의 무리가 한자리에 모이자 채경은 새롭게 받은 어지를 그들에게 내밀었다. 황상이 잠시 잘못 판단한 것이니 복위는 없었던 것으로 하며 외려 소모적인 논란을 일으킨 죄를 물어 구법당 무리의 좌천을 명했다.”

한때 구법당이 수구 세력으로 평가받고 신법당이 개혁 세력으로 대두되었지만 철종을 거쳐 휘종 시기에는 외려 거꾸로 되어 있었다. 왕안석의 신법이 아니라 휘종과 대신들의 입맛에 맞는 신법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신법당의 권력은 공고해졌지만 채경은 그중 일인자가 아니었다. 한충언과 증포가 있었기 때문이지. 게다가 눈엣가시 같은 장상영도 존재했다. 채경은 좌천한 구법당 무리에게 자신은 한충언과 증포, 장상영 등의 요청을 받아 이번 일을 저질렀다고 은밀히 알렸다. 원우간당비에 오른 구법당 문인은 모두 120인에 달하는데 구양수, 문언박, 소식, 진관, 장사량, 왕헌가 본인과 학통을 건네받은 수제자들이었다. 그들이 중원 문인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여 신법당이 비록 조정의 권력을 쥐고 있으나 지방의 권력은 구법당 문인이 잡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구법당은 즉시 상소를 올려 한충언과 증포, 장상영의 허물을 모조리 고하였다. 없는 허물을 만들고 작은 허물은 크게 만들어 고변하니 이는 채경이 바로 원하던 바였다. 채경의 뜻대로 움직인 황상은 증포, 한충언, 장상영을 파직하거나 관직을 깎았다.”

맹재가 밝힌 진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다들 이게 진짜인지 어리벙벙한 표정들이었다. 역사서를 통해 원우간당비 사건을 알고 있는 나마저도 내밀한 속사정은 잘 모르고 있었는데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신법당의 거물들이 모두 좌천하니 자연 채경이 우두머리가 되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법의 폐기를 상주하여 황상의 어지를 받아냈다. 구법당 존립의 근거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구법당 무리의 자손들은 지방관은 몰라도 중앙관으로는 절대 등용치 말라는 어지도 받아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맹재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내 딸의 복위를 정쟁을 위해 절대 거론하지 말 것이며 폐출은 역시 옳은 것이었다는 결정을 내렸다.”

왕연을 제외한 모두는 이보다 심각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제히 왕연을 바라보았다. 왕연은 그저 장탄식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권력 투쟁은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소?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무리가 한배를 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 아니오? 원우황후의 일은 안타깝지만, 복위라는 화두가 등장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뭉친 구법당 무리는 순수했다는 뜻이오?”

“토번, 서하와의 분쟁에 지방관으로 좌천된 한충언, 증포를 보냈다. 아무리 문신이 총 대장을 맡는 것이 전통이라 하지만 한평생 오로지 책만 읽던 고고한 문인들을 보낸 것은 패배를 자초한 것. 서하에게 형편없이 대패하고 황주를 빼앗기자 한충언, 증포의 무능력함이라며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수치를 주고 이름에 먹칠했다. 이는 이미 정상적인 권력 투쟁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것이다. 권력을 잡자고 예견된 패배로 영토를 잃게 한 자야말로 역적이다!”

맹재가 울부짖자 한세충은 잔뜩 굳은 얼굴로 왕연을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그럼 우리가 황주를 되찾기 위해 출병하려 했던 것은…….”

채경과 동관 등의 이름으로 잃었던 땅을 되찾으면 큰 공으로 치부될 터였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합당하다는 이유를 만들어내기 위한 출병이었다. 그러나 뜻밖에 내가 돌출하면서 그들은 부랴부랴 이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칠만의 병력이 나에게 일시 후퇴를 당한 바가 있지만 그건 이탁이나 채구가 너무 방심했던 탓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최소한 서하보다는 쉬운 상대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게다가 황실 차밭을 되찾는다는 좋은 명분도 있었다.

“좌천한 구법당 무리는 의욕을 잃고 지방 행정을 내버려뒀고, 지방 요지(要地)는 모두 간신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진주와 원주의 이족(異族)이 인근 백성을 침탈하고 있는데 백성보다 자신이 머무는 성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전국에 메뚜기와 가뭄이 창궐하여 백성이 고통을 호소했으나 높은 담 뒤에서 부른 배를 두들기며 기생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내 어찌 간사한 무리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유서깊은 명주 맹가의 이름을 걸고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민왕(?王)과 힘을 합쳐 채왕(蔡王) 전하를 옹립하겠다.”

말은 짧았지만, 의미는 절대 간단치 않았다. 송의 처지에서 역도나 다름없는 나를 민왕으로 추켜세워준 것은 기꺼이 이쪽 편에 서겠다는 각오나 마찬가지였는데 채왕의 언급은 정말 뜻밖이었다.

나는 장뢰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장뢰는 내 눈길을 느끼고 은은한 미소로 화답했다. 장뢰는 새로운 왕조의 출현보다 후한의 광무제 같은 역사를 답습하려고 하는 것일까? 정도전이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개국에 앞장선 것은 때로는 파괴를 통한 혁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고, 나는 이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뢰가 다른 생각으로 나 몰래 일을 꾸몄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장뢰와 함께 온 맹재가 채왕의 옹립 이야기를 흘렸으니 나는 동조 인물로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 아닌가?

채왕은 신종의 13번째 아들 조사(趙似)를 가리킨다. 그는 본래 간왕(簡王)이었으나 휘종이 즉위하고 그를 채왕으로 임명했다.

‘혹시!’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흔들리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장뢰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나는 그제야 장뢰의 생각을 알아챘다.

장뢰는 송을 재생시키기 위해 채왕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외려 완전한 파국, 그리고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꾀한 것이다.

이어진 맹재의 말은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호주(湖州) 장가와 소주(邵州) 황가, 융주(融州) 양가가 우리의 뜻에 동참했다.”

“그것이 정말인가!”

호주와 소주는 명주의 인접 지역으로 동관이 현재 머물고 있는 항주와 그리 멀지 않았다. 융주는 지금 우리가 있는 강주의 남서쪽에 자리한 곳으로 한족보다 이족이 주로 많이 사는 곳이었다.

왕연이 놀란 표정을 짓는 이유는 그중 호주 장가의 동참 때문이다. 물론 나는 예측을 하면서 그 이름이 튀어나오리라 생각했다. ‘그’가 빠지고서는 채왕의 옹립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돈(章惇), 그 늙은 퇴물이!”

철종 시절 재상은 장돈, 증포였다. 둘 다 신법당이다 보니 그리 큰 마찰이 생기지 않았지만, 철종 사후 다음 황제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의견이 엇갈리면서 소원해진 관계가 되었다.

장돈은 예율(禮律)에 따라 철종의 친동생 조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증포는 황자 중 가장 연장자가 황제에 오르는 것이 예법에 맞는다고 주장했다.

연장자로 치자면 휘종 위에 신왕(申王)이 있었으나 그는 고질병이 있어 정무를 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그다음 연장자인 휘종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증포가 주장한 것이다.

휘종은 어려서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고 얼굴도 잘생겨서 황태후(皇太后)가 예뻐했던바, 모두 신종의 아들인데 굳이 분별을 둬서 무엇을 하겠느냐며 증포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었다. 문학적 소양은 뛰어나지만 괄괄하고 좁은 성품 탓에 오히려 장군 기질이라던 장돈은 남자다운 풍모가 있는 조사가 끌렸고, 천생 문인이라고 불린 증포는 휘종의 문학적 재능에 끌렸을 것이다.

그렇게 휘종이 보위에 오르자 장돈의 실각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송의 사대부는 한 번에 몰락시키지 않는다는 묵계처럼 여러 번에 걸쳐 벼슬을 깎았다. 사실 나에게는 이것이 더 치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지방 관직을 전전하다가 도저히 못 해먹겠는지 사직을 청하고 호주에 은거한 장돈이었지만 재상까지 지냈던 자의 인맥이 어디 가겠는가? 여전히 그를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가 구법당이라면 어림없겠지만, 현재는 신법당의 천하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속을 아는 자들은 신법당은 이제 채경의 사당(私黨)이나 다름없어 장돈이 영원히 조정에 복귀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장돈이 모를 리도 없었다.

내가 복건을 휘젓고 민심을 모으자 승부수를 띄운 셈이라 할 수 있다.

‘장뢰는 천기라도 보았던 것일까?’

나는 이미 아는 사실을 가지고 장돈의 승부수가 장뢰의 은근한 꼬드김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장뢰는 대체 무슨 근거로 지금과 같은 판을 만들었을까?

철종의 동복동생(同腹同生)인 조사의 옹립은 내가 단순한 역도가 아니라는 명분을 준다. 그와 더불어 휘종의 행태를 비판하던 애국 문인들이 자연스럽게 휘하에 들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게다가 지금껏 내 인연들이 대부분 구법당 출신들이라 납작 엎드려 있던 구법당 무리들이 대거 이쪽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많았다. 왕안석이 애초에 신법을 계획한 이유가 기존 구법당 무리 대부분이 대지주였음을 알고 그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의 구법당은 권세는 빼앗겼어도 여전히 부는 지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뢰나 장상영에게 가해지던 비난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미리 합류한 선지자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내가 원하던 바냐고 물을 수 있다.

송이란 뼈대는 그대로 둔 채 황제와 권력자들 몇몇이 갈린다고 천하는 안정될 수 있을까? 애초 그런 목적이었다면 유력한 인물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이 더 빨랐을 것이다.

“자, 이제 선택하라. 선황의 유일한 동복 아우, 채왕 전하를 쫓아 송의 정기를 지키느냐, 아니면 뱀의 혓바닥에 놀아나고 향락에 놀아나는 천자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리겠느냐!‘

맹재의 외침에 병사들은 동요했다.

백성은 숨을 죽이고 지휘관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의 선택에 따라 오늘은 역사의 한 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저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장뢰는 내게 천하를 쥘 명분을 주었다.

‘장돈과 조사……. 둘 다 내년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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