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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99화 (199/257)

00199  (26) 일광천하(一匡天下)  =========================================================================

역사는 어떻게 바뀌는가?

그에 대한 내 대답이자 세상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역사의 본질에 대해 여러 학자가 이야기했지만 나는 역사를 바꾸는 지도자 뒤에 묵묵히 힘을 실어주는 대중 다수는 과연 변혁의 역사를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이제, 이 시대에서 나만의 기준을 기꺼이 남에게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뛰어난 무예 실력, 뛰어난 언변……. 물론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도자로 나서기로 했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을 따르는 자들을 변화의 과정에서 소외시키지 않고 정체성을 일깨우고, 집단의 사고와 능력을 고양한다. 그렇게 그들 스스로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심어준다.

한 마디로 현대 사회에서도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는 역량 강화(empowerment)를 통한 지도자-국민 간 Win-Win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명사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역사를 바꾸는 힘은 인간과 인간의 소통에서 나왔다.

정부가 국민을 돕고, 국민은 정부를 돕는다.

이른바 호혜(互惠) 사상의 실현이다.

문제는 그런 것을 펼치기에 앞서 지도자는 그 변화를 몸소 이끌고 감성적인 열정으로 민중의 숨은 열망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오늘 이 자리에 기꺼이 나선 진정한 이유.

위엄을 보여 백성을 설복시키는 자리가 아니었다. 불공정한 시대에 백성의 울분을 몸소 토하는 씻김굿이다.

이른바 이성적인 분노다.

미국 속담에 ‘anger is one letter short of danger.’라는 속담이 있다. 직역하면 위험에서 한 글자 빠지면 화라는 뜻인데, 결국 화가 지나치면 그 끝은 위험으로 간다는 말이다.

백성의 난은 화가 지나쳐 스스로 위험에 빠질 것을 감수하고 일어난다. 진정한 지도자는 화의 위험성을 자신이 포용하고 모두를 대신해 이성적인 분노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그랬다.

‘용기’란 ‘이성적인 분노’를 뜻한다.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어 자신이 손해를 입는다면 그는 단지 ‘화’가 난 사람이다.

초나라나 민 제국 시대의 나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분노를 터트리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선 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평이 그러했고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당시의 시대상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화폐를 보급했지만, 상업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내가 죽기 전까지도 물물교환이 여전히 성행했다. 물물교환을 위해서는 평소 개개인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서로 아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뢰와 믿음은 굳건해져 갔다.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 칼을 잡았지만 내가 척준경이 아니라 이준경이었더라도 역시 칼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화를 풀어 주는 칼의 종류가 달라졌을 것이다. 가후가 나를 만나기 전의 과거처럼 되지 않았을까?

나는 왕연 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숱한 전장을 경험한 숙련자였음에도 이런 일은 처음인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다들 주장인 왕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강주성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성에 남아 있으라고 했던 일행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좀처럼 놀라지 않는 나였지만 나는 선두에 선 사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왕연 등도 마찬가지였다.

“소경태상(太常少卿)이다!”

뜻밖에도 장뢰가 나타난 것이다. 장뢰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송의 중앙 관직이 소경태상이었기에 관인들은 그리 불렀다.

반갑기도 했지만, 건성에 있어야 할 그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새로운 면면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복건의 치안을 맡겼던 주동, 관승, 능진까지 일행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천주의 유염도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가움을 표시했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남창의 금군은 어차피 내가 강주성에 다다른 이상 설마 누가 또 오겠냐 싶어 수운의 경계를 게을리했나 보군요. 그렇더라도 태사에게는 너무 위험한 원행(遠行)입니다.”

장뢰는 처음 보는 세 사람을 대동하고 있었다. 장뢰의 왼쪽에 한 사람은 환갑에 가까운 중년 문사였고, 그 곁에는 이십 대 중반 정도의 문사가 뒤를 따라고 있었다.

장뢰의 오른쪽에는 부리부리한 안광이 인상적인 무인이 있었는데 왕연은 그를 보고 장뢰를 본 이상으로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다른 이들은 왕연이 그토록 놀라는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그의 반응으로 보아 장뢰보다 못한 인물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어쩐지 의기소침해진 표정들이었다.

장뢰가 내 앞에 이르는 것을 그들은 가로막지 않았다. 사실 나로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만약 왕연이 그들이 포위망에 들어오기를 기다려 공격할 마음을 품는다면 나는 어찌 몸을 건사한다고 해도 대혜종고를 따라온 신자들과 장뢰 일행들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장뢰는 그저 산책 나선 노인처럼 전혀 긴장감 없이 수월하게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정중한 예를 올렸다.

“재상이 모든 일을 수월히 처리하니 노구(老軀)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이 헛되지 않았는지 노구를 찾아 어찌하여 전하에게 의탁했는지 묻는 친우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전하께서 강주성을 얻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친우들은 전하의 진심과 실력을 의심했습니다.”

“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친우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 먼 길을 오셨다는 말입니까?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말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자칫…….”

배를 타고 온 일행들은 하나같이 내 손발과 같았다. 그들을 믿고 복건을 떠나왔는데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다면 내가 생각한 개혁은 채 피기도 전에 시들 판이었다.

그러나 장뢰는 그런 내 걱정조차 흐뭇하게 느껴지는지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전하께서 일만의 기병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송의 문제를 질타하는 모습에서 노구는 평생 받을 복을 다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위험한 행로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여기…….”

장뢰는 부리부리한 인상의 장년 무인을 가리켰다.

“명주방어사(明洲防禦使, 저장성 닝보)이자 마군도호후(馬軍都虞候) 맹재(孟在) 대인입니다.”

이미 그 정체를 알고 있던 왕연은 나직한 신음을 흘렸고, 왕진, 임충, 한세충은 그 이름의 주인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신과 경악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맹재의 출현은 나에게도 놀라움이었다.

‘이미 폐위된 원우황후(元祐皇后)의 아버지!’

원우황후가 워낙 유명하기에 맹재를 기억하는 것이지 맹재 그 자체가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원우황후는 철종의 첫 황비로 철종은 현 황제 휘종의 형이자 선황(先皇)이다.

철종은 원우황후 사이에서 공주 하나를 낳았는데 3살에 죽는다. 아이라고는 오직 공주 하나밖에 없어서 애지중지했다가 그마저 죽어버리니 웃어른들은 비를 여럿 맞아 씨를 뿌리도록 했다. 그중 현비 유씨가 아들을 낳았고 그걸 위세로 삼아 황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원우황후를 모함하여 폐위시킨다.

그런데 외려 그것이 정강의 치욕(靖康之辱變, 북송의 멸망) 당시 살아남는 원인이 되었다. 금나라는 개봉을 점령하자마자 송의 황족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는데 원우황후 맹씨는 오래전에 폐위되어 잊힌 상태였기에 잡아들일 명단 자체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남송이 건립되자 황제는 황실의 어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타파하고자 그녀를 복위시키고 웃어른으로 대접했다. 그녀를 폐위시킨 현비 유씨가 낳은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죽고, 그녀 자신은 금나라까지 끌려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인생 만사 새옹지마에 딱 어울리는 예다.

그러나 아무리 황실 어른이 없어도 폐위된 맹씨를 유독 대우해준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맹씨의 집안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맹가는 명주를 기반으로 한 명문가로서 원우황후의 조부 맹원중은 태위를 지냈고, 부친은 지금 소개를 들었다시피 그 지역의 군권을 꽉 잡고 있었다.

명주는 항주 바로 인접 지역으로 강남에서 고려의 예성 항구로 떠나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강남의 물산이 모두 모이는 항주에 비하면 아무래도 그 세가 약했다.

그러던 것이 북송이 멸망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하북과 하남의 귀족들은 가진 것을 모두 잃었지만, 강남의 귀족들은 잃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어찌 원우황후를 우대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쨌거나 거기까지는 너무 먼 이야기였고, 나는 맹재가 단순히 장뢰와 친분이 있어서 온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는 지금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복건에서 날뛰며 황실의 차밭까지 거둬들이자 동관이 요나라 정벌을 위해 비장(備藏)하고 있던 10만 대군을 이끌고 항주에 똬리를 틀지 않았던가? 명주는 항주 인접이라 동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어째서요. 어째서 명주방어사가 역도들과 함께 있는 것이냔 말이오!”

왕연은 화가 잔뜩 나서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화는 남은 두 명의 문사에게도 향했다.

“임백우(任伯雨), 진여의(陳與義), 네 이놈들!”

그러나 두 문사의 안색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허, 중년 문사가 임백우, 청년 문사가 진여의였구나. 하나같이 쟁쟁한 자들이거늘.’

생각지도 못한 이름들이 흘러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쁘기도 했다.

임백우는 옳은 소리를 상소하는 간성(諫省)에 오르자 육 개월도 채 되기 전에 100건이 넘는 상소를 통해 채경 일당을 공직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상소를 쓰는 능력이나 말재주가 워낙 뛰어나서 대신들은 그를 탄핵과는 먼 부서로 옮겨버렸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부서와 연관이 있는 상소를 교묘하게 만들어 탄핵을 시작했다. 대신들은 골치가 아픈 그를 강남으로 좌천시켜버렸다.

생각해보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던 것 같다.

진여의는 관직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삼국지 시절의 화흠 정도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스승이 바로 황정견이다.

황정견과 나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능히 찾아올만한 인물이기는 했으나 나는 그 이름을 전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니 고려나 송 대의 인물들이 다들 그렇다. 얕은 역사 지식의 폐해일지도 모른다. 나도 나름 취미로 역사를 팠지만, 이 시기는 생소하기 때문이다. 알려주면 떠오르지만, 한나라 말기만큼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맹재는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왕연을 향해 냉소를 머금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한가?”

“지금 빤히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변명하겠다는 말이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숭녕(崇寧) 원년(1102년) 9월.”

왕연의 말문이 막혔다.

그런 왕연을 향해 맹재가 퍼붓기 시작했다.

“채경, 이 씹어먹어도 부족할 놈이 내 딸을 다시 복위시키겠다고, 황실 어른으로 모시겠다고 나에게 감언을 했다. 나는 처음에는 긴가민가 싶었지만, 그 뜻이 고마워 감사의 뜻으로 많은 예물을 보냈다. 상소가 황상께 가납(嘉納)되어 폐출을 모의한 자들을 모두 내치고 당시 벼슬이 깎였던 자들은 복위하라고 어지(御旨)가 내려왔다. 나는 그날 뛸 듯이 기뻐하며 딸을 안고 울었다.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것이 이제야 풀리는구나 싶었다.”

“그것은…….”

당시에도 동관은 휘종의 가장 가까운 환관이었기에 직속인 왕연은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이 사실이 병사들을 통해 흘러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다.

“채경은 신법당에 속해 있었지만 탐욕스러운 성품 탓에 신법당의 인물들에게 외면받았지. 구법당이 대세가 되자 말을 갈아탔지만, 그곳에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지. 신법당과 구법당의 무리를 모두 몰락시키고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당을 만들 방법을 찾았다.”

“그만! 어디서 그런 요언(妖言)을 퍼트리느냐! 뭣들 하느냐 당장 이놈들을 모두 죽여라!”

왕연은 참지 못하고 칼을 빼들고 앞장섰다. 그러나 이내 허전함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누구도 함께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왕연은 능력이 없는 자는 결코 아니지만, 출세에 너무 목을 매달았다.’

사실 현대인도 출세라는 명제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나는 그의 선택을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출세를 하고자 마음먹었다면 위만 챙길 것이 아니라 아래도 챙겨야 한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출세를 위해 우리를 베고자 하는 병사보다 맹재의 진실을 듣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았다.

“감히 내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냐? 한세충 칼을 잡아라! 저 역도를 쳐라! 당장!”

한세충은 다소 무뚝뚝한 얼굴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연의 얼굴이 다소 펴졌다. 왕연과 나라히 서게 되자 한세충은 칼을 왕연의 목 밑으로 가져갔다. 왕연의 눈이 당황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사대부의 정쟁은 나라를 위한 것이니 죽이지는 않는다. 이것이 오랜 묵계 아니었습니까? 준경인지 뭔지 저 근본도 모르는 놈은 몰라도 맹재 대인은 송의 사대부입니다.”

조선 왕조 실록에 보면 사화(士禍)가 빈번하자 신하들이 한탄하며 송의 사대부는 정쟁을 빌미로 상대를 죽이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말하는 것이 여러 편에 걸쳐 나온다.

정치의 주도권을 언제 누가 잡을지 모르기 때문에 일종의 선을 그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권력을 잡고 있는 채경도 반대파로 몰렸을 때는 여러 차례 파직을 당한 전력이 있다.

물론 그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유수의 군벌 가문들이 죄다 문인으로 전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인들은 더욱 기꺼워해서 그들을 자신들과 동화시키는데 전력을 다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자면 나쁘지 않은 정책일 수 있지만, 나라의 자위권이 더없이 중요한 중세에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전쟁에서 패전한 장수에게 책임을 물리지 않고 나중에 같은 당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중책을 맡기는 일이 벌어지니 송이 무너지는 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역도와 손을 잡았다. 지금 저 광경을 보고서도 지금 사대부를 들먹이는 것이냐! 어서 칼을 치우고 저들을 공격하라! 큰 포상이 내려질 것이니라!”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어차피 다 인질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맹재 대인이 역도라 판단되면 제가 먼저 가장 앞장서겠습니다.”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으려는 한세충의 기세에 왕연은 한탄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 작품 후기 ============================

항상 댓글은 잘 읽고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장르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 쓰고 있지만 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장르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연결된다면 더욱 쉽게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재미를 위해 그저 웃고 떠들며 호쾌하게 흘러가는 것보다 좀더 이 시대를 이해하고 이 시대가 현재의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 있으며 현대인으로서 그 시대에 어떤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를 고민하는 글. 아니 그런 담론에 대해 독자들과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고려편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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