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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96화 (196/257)

00196  (25) 진(眞) 만인적(萬人敵)  =========================================================================

고려사에 만인적으로 기록된 고려 무장은 오직 한 명이다. 바로 권현룡(權玄龍)이라는 우왕 시절의 무장이다. 그는 주로 왜구 토벌에서 공을 세웠는데 홀로 왜구를 상대하면 수십 명 정도는 가볍게 베었다고 한다. 왜구의 횡포가 극심하던 때에 백성은 그를 영웅시하며 만인적으로 칭했다고 한다.

당시에 최영이나 이성계 같은 쟁쟁한 무장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왜 만인적의 칭호를 받지 못했을까? 지휘관들은 대체로 선두에 서지 않는다. 보통은 권현룡 같은 하급 무장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려가며 싸운다. 백성의 시각에서 보자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고위 지휘관보다 목숨 걸고 선두에서 싸우는 권현룡이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평가도 후하게 나올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최고 지휘관이면서 기꺼이 앞장서서 무쌍의 신화를 만들어낸 항우나 사자심왕 리처드 같은 경우는 정말 예외적인 인물인 셈이다.

어쨌거나 권현룡과 비슷한 자리에서 무공을 세웠던 사람이 척준경이었다. 그러나 척준경은 만인적의 이름을 받지 못했다. 이자겸의 난에 동조했던 그 전력이 사관들로 하여금 만인적이란 칭호를 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문을 활짝 열어라. 그리고 다시 닫을 필요 없다.”

“옛?”

굳게 닫힌 성문 위, 이준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말이 진짜인지 가늠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염려를 덜어주었다.

“강주의 부민(府民)은 오늘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준은 내 자신감에 전염되기라도 한 듯 호탕하게 한 차례 웃더니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순식간에 문이 열리자 뿌연 황진을 일으키며 일직선으로 달리는 기병들이 보였다.

나는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했다. 가볍게 발을 구르며 적 기병대와 나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계산이 서자 나는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오직 칼 한 자루만이 나와 함께 했다.

“준경, 네! 이놈!”

선두에 선 한세충이 나를 보자마자 시뻘건 얼굴로 노호(怒號)했다. 그는 들고 있던 창을 있는 힘껏 나에게 던졌다.

전력을 다한 한세충의 창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왔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았다. 나는 척준경이다.

한 치 차이로 몸을 비틀어 피하자 창은 바닥에 강하게 내리꽂혔다. 나는 그 창을 재빨리 뽑아 한세충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것이 한세충의 이성을 잃게 하였다.

보병이 기병을 정면에서 상대한다는 것은 실로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슴도치 같은 빽빽한 사각 방진도 아니고 오직 나 혼자였다.

기병이 보병을 상대로 강한 이유는 여러 사람이 익히 알고 있다. 말의 무게와 속도가 더해진 돌파력, 그리고 치고 빠질 수 있는 기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기병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가 더해졌다. 중장 기병은 전차 같은 돌파력과 방어에 중점을 두었고, 경기병은 적과 거리를 유지하며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을 더욱 효과적으로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원거리 공격을 할 만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남은 것은 말의 돌파력과 말 위에서 공격할 수 있는 높이의 이점이다.

보통 말의 돌파력이 인정받는 것은 사람은 절대 말을 힘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나는 한 손에 든 칼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창을 두 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창의 중단과 하단을 잡고 정면을 주시하는 지극히 평범한 자세였다.

점차 한세충과 가까워졌다. 한세충은 칼을 뽑아 내 상단을 날릴 기세로 크게 몸을 비틀었다.

앞으로 왼발, 뒤로는 오른발로 하반신이 단단하게 지축에 지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는 어깨를 뒤로 뺐다. 자연히 두 손에 잡고 있던 창이 사냥감을 노리는 웅크린 사자처럼 내 허리쯤에 안착했다.

“죽어라!”

한세충의 칼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졌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 역시 어깨를 앞으로 빼며 창날을 오직 한 점을 향해 집중시켰다.

“합!”

우렁찬 기합에 힘입어 폭풍 같은 기세로 창은 말의 목덜미를 찔렀다. 만약 그대로 주춤한다면 한세충의 칼은 정확하게 내 목을 쳤을 것이다.

“이야 앗!”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창대를 허공으로 끌어 올렸다. 씨름의 뒤집기 기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고작 창대 하나에 의지해 500kg이 넘는 말을 뒤집기 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내 행동은 제자리에 선 말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있는 힘껏 달려온 말이었다.

말이 고통의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내 머리 위로 뒤집히는 것과 한세충의 칼이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를 스친 것은 찰나의 시간 차이였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세충과 말은 내 등 뒤로 떨어지며 그대로 처박혔다.

그러자 등 뒤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강주성의 백성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복건은 중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외져서 아무리 대단한 소문도 중원에 이르면 축소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변방이니까 호들갑을 떤다는 식이다.

순천 전투가 만약 하북의 대명부나 강남 항주 같은 곳에서 일어났다면 천하의 민심을 뒤흔들고도 남았을 것이지만 변방이라는 이유로 그 파급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제방 길이나 서가산의 존재를 알았을 때부터 나는 그 이점을 살려 적을 상대하기보다 외려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 가장 극적인 승리를 이뤄내는 모습을 강주 백성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 강주는 중원의 중심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촉 지역과 항주를 잇는 장강 물류의 핵심 도시다. 그래서 채구가 이곳을 장악하고 권세를 누렸던 것이 아닌가?

오랜 전횡으로 백성의 불만이 가득 찼던 채구를 그의 앞마당에서 일거에 제거했고 이제 그동안 소문으로만 여겼던 무위가 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만 하면 더 손을 쓰지 않아도 송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절로 귀속을 청할 것이다.

바닥에 꽂아두었던 칼을 재빨리 뽑아 이렇게 빨리 한세충이 쓰러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기병 한 명을 향해 뛰어올랐다. 내가 허벅지를 단숨에 베자 병사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고삐를 놓치고 말에서 떨어졌다.

나는 마치 일련의 동작처럼 등자 끈을 손으로 붙잡고 단숨에 말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질주가 시작되었다.

메뚜기 떼를 농민이 제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메뚜기가 지나가는 경로에 불을 놓으면 메뚜기들은 그곳에 불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경로를 바꾸지 않고 뛰어든다.

지금 내가 그러했다. 풍차처럼 칼을 휘두르며 나를 지나치는 기병은 족족 베었다.

정말 비정한 지휘관이라면 성문 밖, 성문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백성을 밀치고, 밟고 어떡하든 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걸어 잠그고 본대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나라는 사람을 정말 높게 평가할 때다.

한세충이 뭔가 해볼 새도 없이 낙마하고 수십 명이 잇달아 죽거나 다쳤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자신들은 머릿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남아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으려고 할 것이다.

공격이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 떼가 죽을 힘을 다한다고 호랑이를 도망치게 할 수는 없다.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게다가 이들의 말은 지쳐 있었다. 제방 길이 무너진 상황에서 우회로를 통해 강주로 달려왔다면 최소 60km를 전력 질주한 상황이다.

물론 내가 탄 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달리면서 혓바닥을 내놓고 가뿐 호흡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 같이 열악한 상황이라면 조건은 동등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들은 정석적인 기병 전술에 익숙해져 있다. 즉, 지금처럼 누군가 한 명을 잡기 위한 포위 전술, 말이 너무나 지쳐 대형이 오합지졸이 되어 있는 상황 자체를 아예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손발이 맞지 않으니 결국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한 백 명쯤 베었을까? 서서히 송 군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때 한세충의 상황이 어떤가, 힐끔 살폈는데 낙마한 충격이 워낙 컸는지 일백 이상의 기병이 그곳으로 집결하여 단단히 지켰다. 내 체력이 소진될 때쯤을 노리는 차륜전(車輪戰)을 계획했다면 체력 회복의 의미도 될 것이다.

그때 강주성에서 한탄의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송 군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서쪽에서 한세충의 출현 때보다 더 거대한 먼지 구름이 일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왔군.”

보나 마나 왕연이 이끄는 본대였다.

한세충을 상대하면서 왕진과 임충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호랑이 변 같은 워낙 믿기지 않는 일을 당했던 터라 왕진과 임충을 왕연에게 보내 설명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다들 잘 들어라!”

구원군이 나타나자 나를 적극적으로 상대하기보다 거대한 원을 그리며 단지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는 모양새가 재미있었다. 이걸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수많은 기치가 점차 가까워지자 겁을 먹은 백성 일부는 강주성 안으로 피신하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싸움 구경은 평생 돈 주고도 못 볼 진귀한 경우라는 것을 알았는지 태반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 은, 주의 왕도와 한, 민, 당의 패도는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송 태조는 많은 학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왕도를 표방했다.”

*같은 꿈을 꾸다 에서 왕도(王道)란 의(義)와 인(仁)에 바탕을 둔 자생적인 복지를 가리킨다. 즉, 국가가 태평성대를 지향하는 것은 백성이 자구(自救)하고 복지를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에 초점을 둔다. 패도(覇道)는 국가가 백성에게 이(利, 세금)를 얻어 그것을 다시 필요한 백성에게 돌려주는 국가 주도의 복지와 선별 복지를 지향하며 그에 따른 불만을 사회 질서 강조를 통해 해결한다.

내가 처음 민을 건국했을 때, 나는 스스로 왕도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고 명사들도 그러한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내가 한 흔적들의 결과물을 보게 되니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율가의 파생부터가 그러했다. 제자백가의 장점을 취했다고 하지만 율가라는 이름에서 보듯 법가의 사상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다. 물론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후대의 평가는 한, 당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체계는 비슷하다는 범주로 엮였다.

나로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현대에서도 평가 방식은 이와 다르지 않다. 도도한 역사 중 하나의 왕조를 설명하자면 요약문 하나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예전과 같은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시대는 변했고, 옛 왕조의 흥망을 현대에서 역사책을 넘기던 때보다 더 생생하게 체험했다.

송이 왕도를 선택했다고 해서 반작용으로 내가 패도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이유. 나는 그 이유를 왕도와 패도를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오늘 천하에 그 뜻을 고할 것이다.

나는 이제 지쳐 쓰러지려는 말의 고삐를 사정없이 당겼다. 정면에는 왕진과 임충이 힘껏 말을 몰아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전력을 다하겠다는 결의가 가득했다.

통일 신라 시대에 신라와 일본의 불사(佛舍)를 보면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불사에 비치된 신라의 종소리에는 그윽한 울림이 있지만, 일본의 종소리는 울림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힘을 끌어 올리며 왕진, 임충을 마주쳐갔다.

“으아 아아!”

고대 일본 종의 제작과정을 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큰 소리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신라 종은 큰 소리보다 진동에 중점을 두었다. 파동을 통해 정서의 맥놀이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목표인 동시에 지금부터 벌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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