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2 (25) 진(眞) 만인적(萬人敵) =========================================================================
이틀의 시간은 금세 흘렀다.
사대강 패거리들은 모두 배에 올라 내 명령을 기다렸고, 요시치카가 조련한 산적들은 남호촌 동쪽에 마치 고슴도치처럼 창과 방패로 방진을 이루고 길을 막아섰다.
그러자 내 뒤에 마지막까지 남은 무리는 대부분 수호전의 인물들이었다. 그중 무송, 노지심, 여방 같은 자들은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설마 이렇게 미친 작전을 짜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옵니다!”
배를 통해 제방 길로 오는 적들을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장순, 장횡 형제의 수신호가 빠르게 전달되자 이제 진짜 전투를 앞두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는지 땀을 흘리며 긴장하는 자도 나왔다.
마치 범 같은 기세로 질풍같이 내달리는 소년 장수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한세충이 틀림없었다.
그 뒤로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이 보였다. 왕진이었다. 그가 나를 알아볼지 문득 기대되었다.
기병은 대략 1천 정도였다. 남호촌은 40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가호의 간격이 넓어 그 정도 숫자가 무리 없이 활동할 공간은 충분했다.
“그대가 역도의 수괴, 준경인가!”
불패니 제천대성이니 이런저런 호칭이 많았지만, 관군의 수장이 그런 호칭을 불러줄 턱이 없다. 그러나 준경이란 이름은 역사 속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이름이었기에 외려 반길만했다.
그러나 왕진은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였다.
“왕 사범에게 요의 도성에서 패술을 배운 것이 엊그제 같거늘 여전히 강건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제야 왕진은 안장을 치며 외쳤다.
“앗, 그때 고려의 소년 장수가 그대인가!”
나와 왕진이 아는 척을 하니 한세충과 또 다른 군관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군관의 정기가 늠연한 것을 보니 아마도 저자가 임충이 아닌가 싶었다. 만약 임충이 맞는다면 내 예상 그대로 흘러간 것이다.
왕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고려를 떠나 아랍을 헤매고 중원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줄은 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했다.
어쨌거나 지금은 승패를 가려야 할 적이었다. 나는 한세충을 보며 말했다.
“분명히 대종을 통해 제방 길의 위험을 알렸다. 평범한 장수라면 우회를 선택했을 것이고,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빠르게 오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어 나머지 기병은 우회하여 전투 중에 협공할 계책을 세울 것이다.”
그러자 한세충의 낯빛이 변했다.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다 가후나 곽가 같은 이들을 접하면서 내 나름대로 체득한 방법이었다.
나는 문득 수춘 공방전을 수습하고 며칠 후 둘만이 앉은 자리에서 가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방법이라……. 이제 제 밑천까지 털어놓으라 강권하는 겁니까? 그러나 이번에 워낙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알려 드리도록 하지요. 내가 원하는 곳에서 전투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말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천지인 세 가지 이점 중 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방법을 가장 하수라 봅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명장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벌이기 위해 갖은 책략으로 유인 작전을 펼쳤다.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인 경우가 아닌가?
가후는 내 낯빛을 살피더니 한참을 껄껄 웃었다. 중수나 상수가 어떤 것일지 맞춰보라는 말에 나는 아는 상식을 모두 풀어서 대답했는데 그가 원한 대답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외려 엉뚱하게 들려던 모양이다.
-범용한 자가 낼 수 있는 최상의 수이나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만약 제가 형주로 떠났고 총사가 수춘에 남았다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아마 총사가 거둔 성과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 자신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주인은 그 하나만의 결과를 놓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과를 어떤 과정을 통해 얼마나 세인들의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려워야 할 일을 너무 쉽게 얻으면 세인들은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쉬운 일을 어렵게 처리하면 그 역시 평가가 박해집니다. 그럼 다시 전투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적이 원하는 곳에서 적이 원하는 그림으로 전투를 벌여 승리하는 것, 그것이 최상입니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평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러 어려운 일을 자초하다니, 나를 형주로 보낸 것도 그걸 노린 것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들으니 은근히 얄밉게 느껴졌다.
그러나 가후의 지적은 충분히 이해했다. 적이 원하는 장소에 싸운다는 말은 그곳이 나도 원하는 장소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즉, 적은 나름 필승의 각오로 오겠지만, 개미지옥에 빠져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필승이기 때문에 정교한 후속 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이 상황을 주도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착각하게 한다.’
그것이 가후 계략의 요체였다.
내가 감탄을 하자 가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마디를 남겼다.
-그러나 어려운 전투에서 쉽게 이기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바로 항우나 여봉선 같이 천하에 그 용맹이 널리 알려진 경우입니다. 외려 어렵게 이기는 것이 평가를 갉아먹지요.
나는 실력이나 명성에서 많이 부족했기에 가후는 돌아가는 책략을 써야 했다는 말을 우회해서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럼 가후의 계략에 항우나 여포 같은 장수가 있다면 어떻게 싸워야 잘 싸우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가후는 껄껄 웃으며 마무리 지었다.
-그 정도면 이미 전쟁의 신인데 무슨 방법을 쓴들 적이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의 회상이 끝나자 나는 상상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바로 그런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닌가 싶었다. 너무나 건방진 생각이라고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오늘의 결과가 그 자신감을 천하에 알릴 것이다.
“주장 왕연은 남은 기병을 이끌고 서가산을 우회할 것이고, 그 지역을 지날 떄는 혹시 모를 매복에 대비해 조심스럽겠지. 게다가 경덕진으로 납품하는 채석장이 인근에 있으니 무사한지 또한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매복이 없다.”
“우리가 시차를 두고 협공을 할 것이라 미리 계산했구나.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나 금군 교두 둘을 이길 수 있어야 가능한 일!”
한세충은 자신을 우습게 보는 듯한 내 작전에 화를 냈다. 아직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알게 될 것이다.
“잡소리는 그만 치우고 시작하자!”
내가 칼을 뽑아들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석보, 장청이 뒤따랐다. 공손승의 금제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뛰기 시작한 이규와 번서의 안면은 정말 뛰기 싫은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여방, 무송, 노지심 등은 주춤하며 상황을 살피려고 했던 것 같다.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홀로 적선을 향해 돌격했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북송이 가장 비참하게 패배했던 일 중에 금나라 기병 17명을 상대로 2,000명의 보병을 동원했다가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절반 이상 사망한 전투가 있다. 17명의 금군 기병은 좌우로 각 5명, 중앙 7명으로 나뉘어 쐐기 모양으로 돌진하면서 활을 난사했다. 대열 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뚫어버리고 반전하여 다시 공격을 시작하자 송군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금군 기병에게 죽은 사람보다 밟혀 죽은 사람이 더 많은 전투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척준경의 무용은 참 대단했다. 그렇게 대단한 금군 기병을 상대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니까. 외려 인질을 구하기 위해 2만 명이 머무는 적진을 급습하고 귀신같은 활 솜씨를 자랑하는 금군이 버티는 석성을 단신으로 돌파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그보다 못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지금의 상황을 보자.
12명의 보병이 1,000명의 기병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훗날 만인적 칭호를 받는 한세충. 80만 금군의 무술 교두 왕진과 임충도 가세했다. 누가 봐도 이걸 어떻게 이겨라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그런 승리가 더욱 짜릿한 법이다.
가후가 했던 말대로 무슨 방법을 써도 승리한다는 명제를 증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전투가 바로 지금이었다.
“으랏차!”
허공으로 뛰어올라 선두에 선 한세충을 노렸다.
이렇게 빨리 공격을 감행하리라 예상하지 못해 잠시 당황했던 한세충이었지만 곧 이성을 되찾고 칼을 뽑았다. 칼과 칼이 대등하게 부딪쳤지만 한세충은 휘청거렸다. 본인은 몰라도 말이 충돌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어디 그동안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자!”
“왕 사범과 임 교두는 잡배들을 처리하십시오. 이놈은 제가 처리합니다!”
왕진이 한세충을 돕기 위해 뛰어들려 했지만 한세충이 손을 휘저으며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왕진과 임충은 한세충의 강함을 인정한 것인지 아니면 의사를 존중한 것인지는 몰라도 칼의 방향을 내 뒤의 수하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물론 왕진과 임충이 수호전 상에서 엄청 강한 것은 맞다. 일대일 대결에서 거의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장수라기보다는 협객에 가까워서 자신의 무용으로 승부를 결하려는 형상이 강하다.
우리는 수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육상에 남은 자 중 공손승만이 인근 민가의 지붕에서 고고하게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럼 우리가 불리한가?
결코, 아니다. 무송, 노지심, 이규 등이 힘을 합치면 왕진이나 임충이 홀로 당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여방과 번서, 장청 등이 뒤에서 보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석보가 있었다. 석보의 무예는 나 다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귀 요시치카가 한 수 밀릴 정도였다. 수호전에서 홀로 양산박 호걸을 가장 많이 상대했고, 가장 많이 죽인 인물답다고 할까?
서로 상대를 잡아 싸우기 시작하자 나머지 기병들은 할 일이 없어졌다. 난전이 벌어지면 사방에서 창이라도 쑤셔 넣을 텐데 마치 무예대결처럼 판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좋았다. 기병이 덤벼들면 덤벼드는 대로 대처할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한세충은 나와 비등하게 싸웠다. 아니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10합이 넘어가자 한세충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마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들 그러했다. 철대인 이탁이 당한 것도 그냥 난전 중에 운이 좋아 이겼다고 믿었을 것이다. 삼절에 비하면 실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오은의 지지 정도야 정치적 계산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17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나이다.
“애송이, 시간이 없어서 이 정도까지만 하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오늘 강주성에서 묵으려면 시간이 없다.”
“그게 무슨!”
자신들이 가로막고 있는데 강주성 점령이라니, 얼굴에는 황당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사이 생긴 틈을 놓치지 않고 옆구리를 찔렀다. 아픔을 참지 못하고 한세충이 비명을 지르자 주변이 웅성거리며 구하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이들의 안위를 살폈다.
여럿이 달라붙어서 그런지 왕진과 임충을 그럭저럭 잘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임충은 외려 위험한 상황이 올 것 같았다.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은 것인지 돕겠다고 나서는 기병들을 애써 물리는 모습에서 소수 정예의 지휘자 정도면 모를까 전투에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원래 그런 것을 노리기는 했지만, 너무 잘 막혀서 불안할 정도다.
“자, 이제 선생 차례입니다.”
내가 공손승을 보며 중얼거리자 멀리서도 알아챈 것인지 부적을 꺼내 드는 모습이 보였다. 수호전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공손승은 도인답게 살인을 즐기지 않는다.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진정한 주군이라 생각했던 탁탑천왕 조개와 관련되었을 때뿐이었다.
이번 계획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죽이는 술법은 아예 배우지도 않았고 쓸 생각도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데 이유를 듣고 나니 참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항우가 있는데 한신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술법이라도 부려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람을 일으키는 술법이었다. 무슨 돌풍 번개를 동반한 태풍 수준이 아니라 그저 미풍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저 흔한 바람이 아니었다.
말들이 미처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병들이 흔들렸다. 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지만 말들은 미친 듯이 광분하며 사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왕진도 임충도 간신히 신형을 일으킨 한세충도 이 광경에 어이가 없어 했다. 그러다 코끝이 움찔했다. 바람 속에서 희미한 냄새를 맡은 것이다. 본래는 매우 독한 냄새였지만 바람에 날리면서 흩어지다 보니 옅어져서 민감하지 않은 자는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왕진이 가장 먼저 정체를 눈치채고 소리쳤다.
“호변(虎便)!”
호변, 쉽게 말하면 호랑이 배설물을 가리켰다.
지금도 공손승은 호랑이 배설물이 담긴 종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김을 불고 있었다. 도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부는 바람은 남호촌 구석구석 냄새를 전달하고 있었다.
나는 방송에서 멧돼지 퇴치의 한 방법으로 호랑이 배설물을 밭 주변에 뿌려놓고 실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멧돼지는 코끼리나 사슴의 배설물이 있는 밭에서는 거리낌 없이 작물을 파헤쳤지만 유독 호랑이 배설물이 뿌려진 곳은 피해 갔다.
물론 그것이 매번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학습 효과가 생겨서 무시하고 밭으로 진입하는 멧돼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같이 딱 한 번만 써먹으려는 경우라면 가장 효과만점이었다.
“나를 따라라!”
내가 크게 소리치며 북쪽을 향해 뛰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하들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만큼 송 기병의 진형은 무너진 상태였다. 말에서 낙마한 자는 부지기수였고,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세충, 왕진, 임충도 우리를 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보다 공손승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를 사로잡거나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행동이 빠른 자들은 화살을 쏘기 시작했지만 공손승은 알아서 잘 살아나올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별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기병은 우리를 뒤쫓았다. 견제의 성격이 강했지만, 기병과 보병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첫 번째 제방 길로 진입하자 나는 다들 앞으로 보내고 뒤에 남았다.
“갈!”
크게 소리치자 쫓던 말들이 일시에 흔들렸다. 그 틈에 내가 거칠게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자 기병들은 대치 상황만 이어갈 뿐 나를 어찌하지 못했다. 그것이 모병제로 말미암은 송 기병의 한계였다. 한 마디로 월급쟁이이다. 월급쟁이는 월급을 받기 위해 일을 할 뿐이지 특별한 애국심을 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크게 웃으며 제방 길을 건넘에도 그들은 감히 뒤쫓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대로 돌아가 어쩔 수 없었음을 보고하고 전력을 추슬러 우리를 뒤쫓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길 것이다. 한세충이 옆구리를 베인 마당에 자신들이라고 별수 있을까,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나까지 제방에 진입하자 대기하고 있던 사대강 패거리들에게 손을 들어 신호했다. 그러자 그들은 물속에서 밧줄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그 밧줄은 제방을 받치는 주춧돌을 필요하면 빼기 위해 예전부터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지리나 기후도 점차 변화하면서 파양호에 쌓인 수많은 제방 중 구실을 상실한 제방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래서 물에 잠기거나 그냥 길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와 함께 제방 쪽으로 몇몇 배가 다가왔다. 이준이 이끄는 계양진 패거리들이 우리를 실으려고 온 것이다. 배에 모두 올라타자 100척의 배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제방의 주춧돌을 일거에 빼려는 몸짓이었다.
============================ 작품 후기 ============================
내일도 한 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