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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90화 (190/257)

00190  (24) 연징취영(淵澄取暎)  =========================================================================

비범한 제자 위에 평범한 스승 없다는 말이 있다. 대혜종고가 뛰어난 자질을 믿고 오만하던 시절에 그를 따끔히 채찍질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한 이가 내 앞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는 문준이었다.

“강남에서 시주의 명성은 중천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다들 나를 찾아와 시주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보니 어떠신지요.”

“제게 골치 아픈 제자가 하나 있습니다.”

대혜종고를 가리키는 것이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이야기를 들었다.

“대혜라고 하지요. 갓난아기 적부터 경서를 섭렵하여 세상의 지식이 자신에게 모두 있다고 믿고 있는 아이입니다. 똑똑하다고 소문나자 주변의 문인들이 그 아이를 찾아가 시험했고, 그 학식이 뛰어남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떠받들어주니 그 아이는 자신보다 뛰어난 이는 세상에 없을 것으로 여기게 되었지요. 그러나 어찌 천하에 인재가 없겠습니까? 그 아이는 뛰어난 명사를 찾아 자신의 지식을 견주려 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저였습니다.”

어쩌면 자랑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 선종의 5대 종사 중 한 명이 문준이었다. 이 시기 불교는 단순히 종교적 교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儒)와 선(仙)이 녹아들어 오늘날 선종 가르침에 거의 근접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내 밑에서 재상을 맡은 장상영은 유학자였지만 불교 교리를 깊게 파고들어 정치에 접목할 생각을 한 것을 보면 불교 하나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대혜가 찾아와서 저에게 온갖 지식을 뽐내더니 내가 그 지식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시주께서 만약 저라면 어떤 대답을 주셨겠습니까?”

다행히 나는 불교를 잘 몰랐지만 대혜종고가 남긴 글들을 읽어 본 적은 있었다. 종교를 떠나 하나의 우화처럼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아는 것이 많음을 칭찬하고 그 보물이 언제나 함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묻겠습니다.”

“허.”

문준 대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책에서 본 내용을 약간 변용한 것이기 때문에 쑥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문준은 그런 쑥스러운 감정마저 겸손으로 받아들였는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전형적인 무부(武夫)라 들었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자네는 귀중한 것을 가지고 있네. 그런 보물이 수면 중에도 남아 있던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뭐라 답하던가요?”

“대혜는 워낙 영민한 아이라 금세 말뜻을 알아들었습니다. 지식은 잠이 들었을 때는 없으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이것은 시주의 경우에도 해당이 됩니다. 무예도 잠이 들었을 때는 있으나 마나지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궤변 같지만, 선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르침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화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도 깜빡 졸면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셈입니다. 제가 알기로 불법이란 그 근본이 생사 해탈을 얻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에서 초연해지는 것이지요. 내가 깨달은 것이 여기에 통용되고 저기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문준 대사의 눈빛은 더할 나위 없이 깊었다. 어쩌면 그만의 놀라움을 나타내는 표시일지도 몰랐다.

“선재(善哉, 칭찬, 찬성을 나타내는 산스크리트어)로다. 선재야.”

나는 칭찬을 감당할 수 없어 합장하며 몸을 숙였다.

“시주가 아까 고려를 언급하신 것을 보니 혹여 고려에서 오셨습니까?”

내가 숙인 채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짧은 염불을 발했다.

“고려의 불심이 신실한 것은 이미 아는 터, 과연 그러하니 무부인 시주조차도 이리도 깊은 깨달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자분과 마찬가지로 제 깨달음은 매우 미미하여 아직 무엇이 참된 진리인지 미망에 빠진 중생일 뿐입니다.”

“잠이 들어도 깨달음이 남아 있다는 것은 신오(神悟)에 다가가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는 신오를 돈오(頓悟)에 빗대어 부지불식 간에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불석신명(不惜身命)이라, 생명을 아끼지 않고 공부하는 준비된 태도가 아니면 돈오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깨달음이 찾아온 것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오매일여(寤寐一如)를 모르는 자 불법을 논하지 말라 들었습니다.”

내가 화답하자 문준은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 역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대답이 머릿속에 맴돌며 또 다른 화두를 풀어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해방 후, 선종의 최고 스님을 꼽으라면 단연 성철 스님을 꼽는다. 성철 스님은 깨달음의 경지를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의 순으로 제시했는데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參究, 연구) 하는가, 꿈속에서도 화두를 참구 하는가,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지더라도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화두를 참구 하는가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매일여를 통과하지 못하면 견성(見性)이 아니며 오도(悟道)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물론 불교계가 이것을 온전히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진리의 방법은 여러 가지라며 다른 해석들이 쏟아져나왔고 그건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갑자기 오매일여를 떠올린 것은 지금 내 처지가 그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표출이 아니었나 싶다.

오(寤)와 매(寐)는 꿈과 현실을 나타내고 일여(一如)는 그 둘을 구분하지 말라, 또는 별개로 보지 말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지금을 현실이라 믿고 살아가지만, 또 다른 삶을 기억하는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라 할 수 있었다.

오매일여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처절한 구도를 상징하고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 있는 자는 세상의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세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는 자는 본시 오매일여의 정진에도 다다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자기를 놓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놓는 순간 우리는 실성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래서 대부분은 세파에 맞서길 포기하고 함께 휩쓸리길 원한다. 휩쓸려서는 세파에 떠다니는 것을 영원히 막을 수 없다. 누군가는 세파를 거슬러 근본 원인을 찾아 치유해야 한다.

위인이 될 것인가, 부처가 될 것인가?

“부처는 여럿의 고행으로 탄생할 수 없습니다. 홀로 오롯한 깨달음을 요구하지요.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나약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준 대사를 보는 것만으로 복을 받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주민이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더 가까이에는 일행들이 나와 문준의 대화를 한 자라도 놓칠세라 경청했다.

“내가 아니라, 우리이기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떤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천자가 되는 것이 타락 중에 가장 큰 타락이다. 하다못해 군현의 장만 되더라도 천자가 된 것처럼 행세하며 타락을 자초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관세음보살께서 부처에 올라 높은 법력으로 만민을 구제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큰 법력을 얻어 자비를 베풀기를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깨닫지 못했을지언정 뜻을 함께하는 동료를 모아 백성을 구제하겠다고 말입니다. 천자가 불심을 얻어 곤룡포를 벗는다면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그 불심은 헛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창 불심을 이야기하다 이제는 그 불심이 헛된 것이라 말하니 문준 대사보다 백성의 얼굴에 노기가 솟았다.

그때 문준 대사가 나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갈(喝)!”

나를 꾸짖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일행들은 어찌할 줄 몰랐다. 누구의 편을 들기도 모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합장한 자세 그대로 허리를 더욱 굽혔다.

“저 역시 삼파(三破)로 화답하고 싶으나 연세가 있으시니 그저 겸양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문준 대사는 껄껄 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대혜가 있으면 참으로 볼만했을 것을……. 시주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내 눈에는 이미 득도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다 들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찼다.

“선종에 다섯 종파가 있으니 조동종,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 마지막으로 임제종이 있습니다. 그중 임제종이 가장 번성하여 가지가 여럿 되는데 나는 그 가지 중 하나인 황룡파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습지 않습니까? 부처는 자신만의 오롯한 깨달음을 얻어 이뤄지는 것인데 세속의 이권 다툼처럼 교리를 두고 싸우고 사람을 따라 분가하는 일이 매양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고민했습니다. 선종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임제 조사께서 후학에게 제법(諸法)을 강론하면서 소리치는 것(喝)과 때리는 것(棒)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도(求道)는 심산(深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도 있으니 바르지 못한 것을 보면 소리치고, 때리는 것이 올바른 도에서 벗어나는 일이냐며 되물으셨습니다. 부처가 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부처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이분 시주의 대답은 외려 제가 진작에 여러분에게 내놓았어야 할 대답인 셈입니다.”

다들 합장을 하고 염불을 외웠다.

문준 역시 염불로 화답했다. 그의 백미는 호선을 그렸다.

“깨달음에 집착하지 말고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제도하는 것. 그것 역시 부처로 가는 길이고 아는 자가 택해야 할 올바른 길입니다. 모산의 도사가 시주를 따르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공손승이 앞으로 나서서 예를 표했다. 일가를 이룬 사람들끼리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말은 하지 않아도 두 사람 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종문(宗門)으로 돌아가면 제자를 시주에게 보내겠습니다. 시주라면 제자의 총기를 잡아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자를 보내주신다는 것은…….”

대혜종고는 임제종 황룡파 문준 대사의 직전 제자였지만 문준 대사는 임종 전에 선종의 통합을 강조하며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의 종주 환오선사(?悟禪師) 극근(克勤)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라고 유언으로 남겼다. 그 뜻을 따라 양기파의 전인이 된 대혜종고는 선종 사상 통합에 몰두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간화선에 영감을 받은 고려의 지눌 대사가 조계종의 중시조가 된다.

‘내가 어찌하느냐에 따라 간화선의 내용이 바뀔 수도 있겠군. 당장 고려의 역사가 영향을 받을 것이고, 현대도 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세운 민 제국의 영향력은 수백 년 이상이 흐르자 후대 왕조들에 의해 희석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학문과 종교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왕조의 전성기가 길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최대한 혜택을 볼 수 있는 백성이 많아진다면 후대의 문제는 후대에 맡기겠다는 자세였지만 그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물씬 들면서 오는 새로운 고민인지도 몰랐다.

대혜종고를 통해 나는 오래도록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종교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도전이었다. 그러나 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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