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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89화 (189/257)

00189  (24) 연징취영(淵澄取暎)  =========================================================================

나태하다고 느낄 만큼 다음 목적지로 삼은 진현(??)까지 걷는 내내 어떠한 위험도 없었다. 덕분에 번서와 이규는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심심함을 참지 못한 일행들이 둘을 놀려댔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이 틈틈이 공손승에게 도술에 관해 물었다. 보지 않았으면 모르되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신선들의 소문 역시 사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야 했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강자가 있고, 그들이 적으로 나타날 경우를 대비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공손승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법력, 도력, 도술……. 어떤 단어를 붙여도 좋습니다만 그 본질은 타인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호표와 금고아를 예로 들어보면, 제재가 걸려 있다고 상대가 믿으면서 출발합니다.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대가 부적을 쓰자 상처가 낫고 호랑이가 나타나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경험이지, 믿음이 아니다.”

“기적을 경험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하지요.”

그가 도사 복장을 입지 않았다면 개신교인이 했을 법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인 종교의 맥락에서 믿음이란 요소는 핵심이니 이해는 갔다.

“물론 믿음으로 전부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세상에는 저 같은 사람 천지겠지요. 그런 뜻에서 보자면 전하 역시 세외기인(世外奇人)입니다. 가상의 믿음을 벨 수 있는 것은 확신이지만 확신만으로 믿음을 모두 벨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믿음의 수행자를 자처하는 것처럼 전하 역시 확신의 검을 제대로 쓰기 위한 수행자인 셈이지요. 누군가는 그것을 선택받았다고 선망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척 하고 싶지 않은 고된 일입니다. 전하와 제가 통하는 것은 후자여서가 아닐까요? 강한 힘이 주는 사명의 무게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람은 각자 마음속에 신념을 품고 있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살아가면서 여러 제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건히 신념을 관철하여 존경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살아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알기 때문이다.

도술에 대해 알고자 했는데 외려 응원만 얻고 말았다. 여러 강물이 흘러 바다에서 합쳐지는 것처럼 도술도 무예도 강해지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목적이 되어야 하며 그 목적이 분명하고 확실할수록 거짓된 믿음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한 이치로 따져보면 내 앞에 나타날 이들은 헛된 믿음을 품거나 욕망에 충실한 자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니 그들이 어떠한 방법을 들고 나오더라도 나를 이겨내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공손승은 에둘러 이야기한 것과 같았다.

“하하하, 드디어 진현입니다!”

무하의 안석이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럴 법도 했다. 사대강 패거리는 파양호에 각자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남부에 자리한 진현이 안석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태도부터 달랐다.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표정으로 확 드러날 정도였다.

평소라면 방약무인하였겠지만 안석은 그들이 극도의 인사를 보일 때마다 내 눈치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도 세상 소식에 담쌓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내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호들갑을 떨며 언급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는 공식적으로 역도였다. 엮이기 싫었을 것이다.

“무하는 작은 지류라 수군이라도 만나면 피할 길이 없어서 육로를 고집했다지만 이곳부터는 강주까지 배로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바다만큼 넓은 곳이 바로 파양입니다.”

“이곳에서 간강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수하들을 모두 소집하겠습니다. 강주 수군의 배가 상당히 불타버린 이때 우리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할 것입니다.”

“계양진의 형제들도 모두 부르겠습니다. 날강도나 다름없는 강주 수군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제가 생각한 인원 이상이 모일지도 모릅니다.”

채구는 자신이 이끌고 온 수군의 배를 불사를 때 내가 이토록 빨리 강주로 출발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내가 수군이나 다를 바 없는 무리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배쯤은 금세 보충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래로 온갖 병장기를 열거해도 배는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물건 중 하나다.

이준이 전면에 끝없이 펼쳐진 포양호를 보며 말했다.

“강주는 장강이 3면을 휘감아 천혜의 요새로 불립니다. 수군만 충실하다면 접근조차 어렵기 때문이지요. 금군 1만이 증원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모두 강주 성내에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대대로 강주의 수군은 강력했던지라 강주 포구는 항시 수군이 출동할 수 있도록 성벽 자체가 없습니다. 형님께서 채구를 붙잡고 고작 배를 불사르는 정도로 목숨을 살려주셨을 때 다들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생각했지만 어리석은 아우는 이제야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강주 수군의 기반이 모두 사라지면 장강에서 우리 패거리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다들 열기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꿈같은 현실이 정말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장강 이남의 송은 고립무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열망을 담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에게 손가락을 들어 동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시선들 역시 동쪽으로 향했다.

“항주가 있다.”

“항주는 강남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동관이 형님의 소식을 듣자 친히 10만 금군을 이끌고 내려왔습니다. 그런 동관을 다음 상대로 삼기보다 남은 지역을 위무하며 차근차근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강남을 위무한 후 그 힘을 모아 동관을 치는 것과 동관을 공격하여 승리한 후 강남이 스스로 내 발밑에 들어오는 것, 어떤 것이 더 빠를 것 같은가?”

“아!”

기이한 열기는 단순히 해묵은 욕망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태연하게 해치울 수 있는 자신감에 순수한 마음으로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전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강주 일만 잘 처리되면 우리는 항주를 무혈입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지도 않은 미래 일엔 신경 끄고 이번 일에만 집중하도록 해라.”

“항주를 무혈입성한다고요? 항주는 강남 그 자체입니다. 누구도 포기할 수 없는 땅입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자들도 있었지만 나름 이해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아예 나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 경우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염불 소리가 들렸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염불 소리에 맞춰 합장하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대략 쉰 정도로 보이는 탁발승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 일행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모양새라 비켜주려고 했다. 이 시기 송의 민간 신앙은 유불선이 고루 공존하는 형태였지만 수행의 특성상 민중에게 그래도 친숙한 것은 불교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도 불교 신자들이 제법 있는지 험상궂은 장한들이 합장하며 공손하게 길을 비키는 모습이 무척 재미난 광경이었다.

그러나 곧 지나갈 것으로 여겼던 탁발승은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제게 볼 일이 있으십니까?”

“제천대성이 견성성불(見性成佛) 했다고 하여 공양이나 드릴까 합니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혹 고려에서 오신 분입니까?”

그러자 인자한 탁발승의 눈가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이내 담담함으로 바뀌었다.

“보통의 스님들은 나무아미타불이나 나무관세음보살로 염불을 대신합니다만 제가 아는 스님들은 유독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동시에 염하곤 했습니다.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이유는 후사에 극락세계로 가기 위함이고,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이유는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현생을 제도(濟度)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현생과 후사를 모두 염하여 중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욕심 많은 승려는 한결같이 고려에서 나왔습니다.”

“의천대사와 원응대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유불선이 혼재하던 송을 제외하면, 이 시대 아시아의 대표 종교는 단연 불교였다. 고려를 비롯해 요, 금, 서하, 대리, 안남, 왜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특색있는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그중 고려 불교는 호국 불교라는 특색 외에도 현생과 후사를 모두 챙기려는 성향을 보였다.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것을 보면 어쩌면 비빔밥의 유래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이 시기 고려 불교계에서 명망이 높던 의천과 원응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니 고려 사람은 아니더라도 내가 알 법한 고승일 가능성이 있었다.

“논밭의 잡초는 자라기 전에 뽑아버리듯 작은 악도 그냥 지나쳐서는 아니 된다. 그것이 제가 고려에서 배운 가르침이었습니다. 물론 고려조차도 그러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진실과 정의를 품고 있는 사람은 불사(不死)라고 했습니다. 그 가르침이 만대에 남기 때문입니다. 귀인께서 불패라는 명호를 내건 까닭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관 못지않게 백성을 괴롭히던 소악(小惡)을 거둬들인 이유 또한 그러하다고 믿습니다. 듣자하니 황제가 자신에게 맡는 제례악을 다시 만들라고 지시하여 대성신악(大晟新樂)이란 것이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쓰일 악기도 새롭게 만들라고 명하여 10여 종의 악기와 수반되는 물품이 모두 새롭게 만들어졌는데 그에 쓰인 비용이 천금이라고 합니다. 그러하니 백성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고관들의 생일을 챙겨야 하고 황제의 취미에 따라 고통스러운 노역을 해야 합니다. 근래 들어 관세음보살보다 아미타불을 찾는 불자가 늘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실이 이리 각박하니 내세라도 편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몰랐는데 올해가 바로 대성신악이 만들어진 해였던 모양이다. 송나라 궁중은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제례악을 휘종 때까지 모두 6차례 고쳤는데 지금이 바로 6번째다. 가장 완성도 높다고 평가받고 조선 시대까지 원류로 전해지는 제례악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정도가 지났을 때, 휘종이 고려 사신에게 선물로 이 대성신악과 필요 물품을 선물로 주는데 그때 사신이 왕자지(王字之)다. 기록에 전하길 당시 절대음감의 기준이 되었던 악기, 편경(編磬)의 제조법을 고려가 따라 하지 못해 한동안 수입했다고 했을 정도로 정교한 세공품의 극치라고 한다.

휘종의 예술 감각이야 천재라고 이미 인정받았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그걸 위해 수많은 실험이 더해졌고 그에 따른 부담은 모두 백성의 몫이었다. 문화재가 많다는 것이 현대 국가에 관광 유산으로 남을지 몰라도 대부분은 고혈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눈앞의 탁발승이 범상치 않게 보였다.

“법명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문준(文準)이라 합니다.”

“문준?”

내가 그 이름을 떠올리기도 전에 뒤에서 큰 소리로 그 이름을 외치는 자들이 있었다. 장횡, 장순 등의 계양진 패거리 목소리가 유독 컸다.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의 담당선사(湛堂禪師)인 문준 대사가 맞으십니까?”

그토록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극도의 존경심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나저나 임제종 황룡파 담당선사의 출현이라니…….

목춘이 흥분하며 내게 외쳤다.

“강남, 특히 강서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종파가 황룡파고 그곳의 수장이 문준 대사입니다. 문준 대사의 법회가 열리면 구름같이 사람이 몰려들어서 얼굴을 보기 쉽지 않을 정도지요. 저도 몇 번 법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만 워낙 멀리서 뵙고 지금의 허름한 옷차림과는 너무 다른지라 전혀 몰라뵈었습니다.”

몰라본 것이 정말 큰 죄라고 여겼는지 다들 머리를 조아리며 합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문준 대사의 출현이 다른 의미가 있었다.

‘문준의 제자가 바로 대혜종고(大慧宗?)다!’

대혜종고는 선종을 바로 세운 인물로 유명하고 남송 초기에 주전파인 악비, 한세충을 열렬히 지지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가 주창한 간화선(看話禪)은 고려와 왜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대혜종고가 지금은 약관쯤으로 문준 대사 밑에서 수행하고 있을 시기였다.

============================ 작품 후기 ============================

마당쇠님이 질문하신 전국지의 한문은 의도한 것이 맞습니다. 원래 고려편이 끝나면 삼국지와 전국시대 중 한 편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국시대와 한문이 겹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고려편은 대략 300회 전후로 끝날 예정입니다.

새녂당 맞춤법 관련해서 새녘으로 수정하였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이제 불꽃처럼 연재 분 쓰려고 하고 있고, 내일도 특별한 일이 없는한 고려편과 불꽃처럼 둘다 쓸 예정입니다. 요새 삼국지 종이책 원고 교정이 막바지라 외전을 새로 쓴다던가 자료 보충문제로 바빠진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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