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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84화 (18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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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연징취영(淵澄取暎)

어찌 보면 지독한 이중잣대일 수 있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기준을 스스로 정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얼마나 한결같이 관철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를 떠올려 본다.

그렇게 보자면 내가 지금을 판단하는 기준은 내 지식, 정확하게 말하면 현대의 지식이 가져다주는 편견의 집합체다. 그것을 선택의 근거라고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니 사유(思惟)는 더 깊어진다.

그건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람쥐보다 날랜 놈이로구나!”

쌍부를 풍차처럼 휘둘렀지만 한 번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 이규가 성질이 나는지 분을 참지 못하고 잠시 물러났다. 그러자 과격한 이규의 공격에 연수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던 것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여방의 방천화극이 내 뒤에서 뱀처럼 영활한 몸짓을 보였고, 노지심의 철봉, 무송의 대도가 전면을 압박하자 품자 형태에 완벽하게 갇힌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상황만 그럴 뿐 나는 전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간간이 노지심의 철봉 근접을 허용하며 가벼운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아직 내 사유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고전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였다.

게다가 번서는 부적을 날리며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을 보니 이젠 얼마나 대단한 주술이 나올지 궁금한 여유마저도 있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항상 싸움을 벌일 때마다 무의식의 사유를 거듭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흔한 경험이었을까? 그럼에도, 싸움에 전혀 지장없이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은 척준경의 무의식과 이준경의 무의식이 자리를 바꾸는 유일한 시간이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흔히 자기만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사람은 고집이 세다는 평가도 따라왔다. 내가 가진 식견과 공동체 사회의 식견은 항상 일치할 수 없다는 단면일 것이다. 그런 ‘균열’과 ‘마찰’을 다루면서 자아는 성장하게 된다.

누군가는 균열과 마찰을 인정하지 않고, 누군가는 포용하려 애를 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그 선택의 결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럼 이런 사유의 근원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내가 저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데서 비롯될 것이다. 한백룡을 서슴없이 죽인 것도 그 결과다.

그래서 흔들리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

나는 고개를 강하게 가로저었다.

‘사실은 저들을 죽일 핑곗거리를 찾기 위한 것이다. 이들의 가치가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죽인 병사들보다 높은가? 이름값과 능력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호전이 잘 보여줬지.’

사람을 아무 죄책감 없이 죽인다는 것은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래서 이유가 필요하다. 선한 자는 죽이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고 했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선한 자가 아니었다. 아마도 의인(義人)에 가까울 것이다. 의인과 선인(善人)은 같은 것 같지만 행동 철학은 반대에 가깝다.

나는 그것을 몸소 보여주기로 했다.

“천류불식(川流不息) 연징취영(淵澄取映)이라.”

싸늘하게 내뱉는 말에 무슨 무공 초식인가 싶어 흠칫했던 노지심은 찰나에 두 손이 허전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그의 철봉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 마냥 나는 자유롭게 휘둘렀다. 무송의 대도를 허공으로 날려버리고 여방의 손을 후려쳐 방천화극을 놓치게 하였다.

그다음은 노지심이었다. 철봉이 반원을 그리며 노지심의 오른팔을 후려치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사이 갑자기 변한 기세에 놀란 여방과 무송이 병기를 주우려 뒷걸음질하는 것을 노렸다.

“냇물이 쉬지 않고 흐르면 못은 항상 맑게 되는 이치. 그것이 너희가 구천으로 가야 할 이유라고 생각하거라.”

“구천은 네가 먼저 가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주술이 완성되었는지 번서가 득의양양하게 외쳤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머리 위를 보니 아까와 같은 구름이 다섯 개나 생겼다. 게다가 나는 철봉을 들고 있었다. 그래도 전혀 두려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외려 마음이 편한 것은 이들의 처분을 이미 결정한 개운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만 죽어라!”

번서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다섯 개의 작은 먹구름이 강렬한 빛을 뿜었다. 이미 약간의 고통을 각오하고 있던 나는 다음 행동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나 흘렀을까? 뇌전이 떨어져도 벌써 떨어졌어야 할 시간인데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힐끔 번서를 보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모산의 도력 앞에 사술은 무릎을 꿇는다!”

호방한 음성이 등 뒤에서 점차 가까워졌다.

“기가 막힐 정도로 적절한 등장이로군.”

나는 그 목소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일전에 야성에서 만난 바가 있는 입운룡 공손승이었다. 그는 장상영이 나에게 합류한다면 자신 역시 돕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지금 나타난 것이 그 결심의 표현일 것이다.

“내 주술을 고작 부적도 쓰지 않고 손짓만으로 깨다니!”

번서는 충격을 받았는지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수호전 상에서 도력을 실제 실력으로 치환하면 최강자에 꼽히는 것이 공손승이니 그럴 법도 했다.

공손승이 계속 송강을 도와 도력을 베풀었다면 수호전은 이준이 주인공인 후수호전까지 나오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것이라 확신할 정도다.

번서가 꺾이자 증 가주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규 등이 나를 붙잡아 놓는 사이 번서의 주술로 나를 무력화시키려는 계획이었겠지만 비단 공손승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허망한 계획에 불과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내 앞에 나타난 순간 나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보다 모산파 도사의 출현이 증 가주에게 미친 영향이 더 컸던 모양이었다. 그만큼 강남에서 신화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겁쟁이 같은 놈들! 모산파가 어쨌다는 거냐! 고작 비리한 도사 나부랭이잖아!”

이규가 쌍부를 휘두르며 저돌적으로 공격해왔다. 그 사이 나머지 인물들은 몸을 일으켜 다시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대다수를 점하는 증 가주의 사병들은 두려움에 주춤주춤 물러났다. 모산파 도사에 대항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다는 행동이었다.

어느새 내 곁까지 다가온 공손승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명한 모산파 도사가 이제야 왔으니 한 번 물어보지. 이들을 살려야 하겠는가?”

공손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저에게 입운룡(入雲龍)이라는 과분한 별호를 내려 주셨습니다. 게다가 비전 법술까지 물려주셨지요. 스승님께서는 앉아서 만 리를 읽으시는 분입니다.”

질문에 답하지 않고 뜬금없이 자기 자랑에 가까운 말을 늘어놓는 공손승이었다. 그러나 그가 괜히 이런 말을 할 것 같지 않았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장군께서 아까 외치신 천류불식 연징취영의 참뜻처럼 말입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큰 힘을 가진 자에게는 운명처럼 큰 시련이 닥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손승은 손가락으로 이규 등을 가리켰다.

“저들과 함께하면 큰 시련을 이겨내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잠자코 있자 공손승은 이번엔 손가락의 방향을 틀어 뒤의 일행을 가리켰다.

“듣자 하니 복건의 수적, 산적은 모두 끌어들이셨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장군의 의지라면 이들 중에 살아남을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대강 패거리들은 공손승의 말이 섬뜩한지 부르르 떨었다. 그동안 나를 겪으면서 자신들이 괜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던 중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저희는 이미 추악한 과거를 버렸습니다. 장군, 아니 전하의 뜻에 거스를 행동은 추호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명만 하신다면 제 가슴이라도 갈라 충성을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간강의 매괴가 덤터기를 쓰는 것이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치며 외쳤다.

그런 매괴를 힐끔 가리키며 공손승이 말했다.

“고래로 악자(惡子)를 두고 죽이느냐, 개심시키느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행적을 덮어두자니 피해를 보거나 죽은 사람만 억울한 셈이고, 그냥 죽이자니 그렇다고 그들이 죽인 자가 살아 돌아오지도 못할뿐더러 악행에 대한 죗값 역시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열 명을 살해한 살인자 한 명을 죽여봐야 열 명의 목숨 값을 대체 하기에는 너무 값쌉니다. 그러니 살려서 열 명 목숨 값 이상의 공덕을 쌓으라는 의미겠지요. ”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지.”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규는 한 번만 걸려 보라는 식으로 마구잡이 공격을 펼쳤다. 나는 공격의 빈틈을 노려 철봉으로 이규의 쌍부를 막아내고 무릎으로 복부를 올려쳤다.

이규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고 재빨리 팔목을 비틀어 쌍부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게 하였다. 그리고 안면에 주먹을 박았다. 얼굴이 뭉개진다는 의미가 적절할 정도로 이빨이 나가고 코가 부러졌다.

이 정도면 풀이 죽던 다른 이들과 다르게 눈빛은 더욱 붉게 적의를 띠고 있었다.

“이놈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지금 바로 죽어도 내키는 대로 잘 살았다고 웃을 놈이지. 공손승 대답해보게, 악인이 인정하지 않는 처벌이 무슨 의미가 있나?”

공손승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했을까?

“제멋대로 살아온 악인에게 최고의 복수는 제멋대로 살지 못하게 재갈을 채우는 것이지. 공덕을 쌓도록 개심을 시킨다는 의미도 그런 마음을 반쯤은 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누군가를 위한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과 같기 때문이다. 어떤 악인은 그런 방식으로 제어할 수 있겠지. 그런데 재미있지 않은가? 부처께서는 자비라는 굴레를 악용하는 악인들에게 매를 들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않았지만, 사천왕과 제천대성 같은 이들을 활용하여 간접적으로 자비의 한 단면을 비추셨다고 생각하네.”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이규를 잡고 있는 틈을 노려 여방이 내 등을 노렸다. 이미 기척을 알아채고 잽싸게 피한 나는 잡고 있던 이규를 방패처럼 활용했다.

이규의 허벅지에 여방의 방천화극이 꽂히자 참았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이규는 원한 가득한 절규를 뿜었다.

“자비란 사람을 구하는 것일세. 구한다는 의미는 악인을 감화시킨다는 방법도 있겠지만, 악인을 때려잡아 선량한 자를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을걸세. 열 명을 죽인 자가 혼자 죽어봐야 열 명의 목숨 값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지? 그러나 그가 계속 살아 있으면 열 명의 목숨이 백 명으로 늘어날 수도 있겠지. 그것이 도사인 자네와 나의 셈법 차이일세.”

이번엔 노지심이 사병에게서 받은 죽창을 휘둘렀다.

“악!”

이규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남은 허벅지에 죽창이 박혔던 것이다. 번서도 당황을 잊고 봉을 들고 싸움에 가세했다. 양산박의 일원들은 대체로 봉술, 창술에 능한 자들이 많았기에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규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 차이가 지금 너의 처지다.”

어떤 감정이 들었던 것일까? 이규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이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도 들렸다. 당연한 행동이다. 그들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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