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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78화 (178/257)

00178  (23) 천류불식(川流不息)  =========================================================================

때아닌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그리되니 승전의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물론 다수에게는 악몽 같은 현실이었겠지만 말이다.

채구를 잡는 데 성공했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요구 조건은 제한적이었다. 백기처럼 7만을 모두 매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게다가 이들은 지금 당장은 기세에 눌렸을 뿐 언제든 반기를 일으킬 수 있는 뇌관이었다.

그래서 채구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하나를 내걸었다. 채구는 그 조건을 들었을 때 처음엔 의아해했고 이내 그 조건이 가져올 미래에 경악했다. 그러나 채구는 지금 당장 살아남으면 언제든 그것을 복구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감은 패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반복한다. 채구는 그런 인간이었다. 동료라면 끔찍하지만, 적으로서는 매우 이상적이다.

“수군이 타고 온 배를 모두 불사르겠다고? 단지 그 조건 하나인가? 내 기반을 흔들고 조정의 발길을 막겠다는 것인가?”

“너는 병사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지. 동의하지 않겠다면 네 목을 베어 우리의 항전 의지를 끝까지 조정에 알리는 길밖에 없겠지.”

“배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불사르겠다……. 배야 다시 만들면 되는 것, 그 조건뿐이라면 수락하겠다.”

수군의 발길을 잡기 위해 준비해둔 화약이 수천 척에 달하는 배를 태웠다. 대선부터 소선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활활 타는 장면은 적과 아군에게 상당한 감흥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4대강 패거리들은 아까운 배들을 왜 태우느냐며 툴툴거렸고, 장청은 애써 화약을 만들었는데 왜 이걸 굳이 써야 하나며 구시렁거렸다.

배도 없으니 7만에 달하는 병력이 모두 보산을 넘어 남창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식량을 보급하던 배가 모두 불탄 상황이라 저마다 배식받은 한 움큼의 식량을 보따리에 짊어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어쩐지 처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떠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만하면 제천대성이 투전승불에 오른 것과 비슷하겠습니까?”

혼잣말이었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삼은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세한송백이 말했다.

“광무제 유수를 따르던 병사는 불과 1만, 적은 43만이었습니다. 적들은 다 이긴 전쟁이라며 광무제에게 항복을 권했으나 광무제는 적들이 방심한 이때야말로 우리가 이길 적기라며 3천의 결사대를 이끌고 적의 종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공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적 지휘부가 당황하자 군영의 혼란이 가중되었고 부대와 부대가 엉키는 바람에 적들은 어디를 먼저 구원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광무제는 그런 혼전 중에 적군의 붕괴를 더욱 가중시키며 적의 총대장을 죽였습니다.”

“곤양대전(昆陽大戰)을 말씀하시는 것이로군요.”

역사를 보면 정말 믿기지 않는 전투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곤양대전이었다. 광무제 유수가 이끄는 1만의 농민 봉기군이 왕망의 군대 43만을 상대로 승리를 이끈 전투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돌파로 얻은 승리라 더욱 놀랍다.

“저는 그것이 단지 광무제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한 사가들의 개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군을 보니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한송백이 본인의 심득을 읊을 때만 해도 내 위치는 강하지만 후기지수를 보는 듯했다면 지금은 완전히 격상되어 있었다. 마치 스승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공손할 수가 없었다.

그건 이어 말하는 청담불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세민(李世民)이 장군 왕군곽(王君廓)을 파견하자 왕세충은 여러 장수를 파견하여 왕군곽을 치게 했습니다. 왕군곽을 잡으면 이세민은 풍전등화인지라 왕세충은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왕군곽이 어떤 술수를 썼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을 모두 격파한 후 이세민에게 승전을 보고하자 이세민이 놀라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단지 13명으로 적군 1만을 격파한 것은 예로부터 소수로 다수를 제압한 많은 전투 중에서도 없는 놀라운 일이오.’라고 말입니다. 세한송백이 곤양대전의 업적에 과장이 끼어 있으리라 추측했듯 저 역시 왕군곽의 공이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재주로 과연 얼마나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는가를 떠올려 보면 말이지요.”

그는 진심을 담아 포권을 했다. 나 역시 포권으로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동산고와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항우는 팽성 전투에서 3만으로 56만을 상대했고, 압도적으로 이겼습니다. 무예와 병장기는 세월이 지나면서 발전했기에 이 시대에 힘 좀 쓴다 하는 사람은 그 시대로 돌아가면 자신이 항우를 능가할 것이라며 큰소리를 치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천 년 전과 지금은 그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우가 당세에 존재한다면 지금의 무예와 지금의 병장기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과거의 공적을 재현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장군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 분의 칭찬은 감사하나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승리를 믿어 주신 분들이 아니십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삼은의 명성을 저에게 넘겨주실 리 없었겠지요.”

청담불출에게서 감탄사가 흘렀다.

“반신반의였습니다. 게다가 그것도 이탁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까지였지요. 동산고와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야 강남에 우리를 대신할 새로운 무호(武虎)가 나타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장군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동산고와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세한송백이 껄껄 웃으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천상에는 이선 사문 일사가 있고, 천하에는 하북삼절 강남오은이 있다. 그러나 오늘부로 바뀔 것이다. 이선 사문은 세상 일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오방(五方)의 자리에만 관심이 있으니 세인과 동떨어진 천외(天外)라 할 수 있다.”

시처럼 운율이 있었고, 유쾌한 기색이 역력한지라 주변에서는 맞장구를 치며 흥겨워했다.

“북방 평야에는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호시탐탐 남쪽을 엿보나, 대명부의 젊은 기린(麒麟)이 두 눈을 뜨고 있다. 서풍(西風) 모래는 우직한 곰이 막고, 석경(石鯨, 돌고래)은 난창강(蘭滄江, 메콩강)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호라, 보산의 제천대성이 우마왕을 잡아 그 뿔을 무기를 삼으니 이는 곧 남방(南方) 적룡(赤龍)의 재림이라!”

사나운 호랑이는 일사, 곽약사를 뜻하는 것이었다. 대명부의 젊은 기린은 노준의밖에 없고, 우직한 곰은 아마도 마지막 일절 중 한 명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서풍의 모래를 막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서하의 전진을 막는 송군 장수로 추측되었다. 난창강의 돌고래는 섬전수 단정홍이었다. 메콩강 유역에서 희귀하게 발견되는 민물 돌고래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것을 딴 것이리라. 물고기는 육지로 나와 오래 살 수 없으니 그가 대리 왕야의 신분을 가지고 송과 마찰하는 것을 빗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좀 낯뜨겁기는 했다.

제천대성이 나라면 이탁이 우마왕이 되는 셈인데 그 뿔로 무기를 삼았다는 것은 삼은, 거기에 이준의 무예 스승인 이일민까지 나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본시 동양의 용은 오방에 따라 다른 색을 띠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남쪽은 보통 적색을 사용했다. 용은 물을 다루는데 적룡은 물을 다루면서 불도 다루는 특이한 존재다. 어쩌면 나를 설명하는 최적의 명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이 죽여본 것도 처음인 것 같은데 장군에 비하면 새 발톱에도 못 미치니 이거야 참……. 그럼 장군이 적룡이면 우리는 용궁 거북이쯤 됩니까?”

간강의 우두머리, 매괴가 머리를 긁적이며 볼멘소리했다. 그런 매괴의 뒤통수를 무하의 안석이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갑자기 얻어맞자 매괴가 안석을 보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안석은 팔짱을 끼고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네놈 상판을 봐라. 용궁 거북이가 아니라 메기도 감사할 판이거늘……. 그리고 네놈이 나보다 많이 죽였지만, 고작해야 세 놈 차이다. 패거리로 따지면 우리가 제일 많이 죽였다.”

“그거야 네놈들 숫자가 제일 많잖아! 한 명당 상대한 숫자로 따지면 민강이 제일이지!”

민강의 백서까지 끼자 이준은 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사람 죽이기에 급급할 때 내 앞길을 열기 위해 가장 노력했던 사람이 이준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본 송겸은 이준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준은 아옹다옹하는 패거리들을 남겨두고 나에게 다가왔다.

“형님께서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면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그 결심은 변함이 없으십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한송백 등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눈치였다.

“예전에 동숙(同叔) 선생을 만났을 때 형님인 동파 선생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철(蘇轍)은 소식(蘇軾, 소동파)의 동생이었으며 내가 이소를 찾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아간 사람이기도 했다. 소철이나 소식이나 당대 동양 최고의 명사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소식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삼은 역시 옷깃을 여미며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약관에 이르기 전에 독서가 만 권에 달하였고, 내가 가는 길에 존재하는 모든 기둥, 모든 벽에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적어도 다 적지 못할 정도로 재주가 한 시대를 떨쳤다. 뜻은 세월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웅대했다. 그러다 귀양을 다녀오니 백발(白髮)이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을 전해 듣고 풍상을 겪으며 옛 기지와 뜻을 잃은 노학자의 회한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동숙 선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고려에서조차 소순 부자(父: 소순, 子: 소식, 소철)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울 정도였으니 이곳에 모인 자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우 임금이 쉬는 시간을 아꼈던 것은 혹여 자신의 휴식으로 치수 공사가 실패하여 백성에게 해가 갈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주공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경서에 매진했던 것은 혹여 자신의 어리석음이 백성에게 해가 갈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형님께서 죽기 전에 말하길 자신은 하루도 유감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덕을 닦지 못하고 학문을 통달하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운 것이 아니다. 일찍이 세월이 이처럼 빨리 지나가고 나에게 오래도록 머물러 있지 않음을 모른 것이 유감스러움의 첫째요,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 재주와 뜻을 만인에게 돌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유감스러움의 둘째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에 대해 논할 만한 것이 없고, 죽어서 전해지는 것이 없다면 그저 초목이 시들고 다시 피는 자연의 이치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애써 터득한 학문으로 후진을 가르쳐 정도로 인도하고, 깊이 사색하여 모두를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방책을 목숨을 걸고 간언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그리되면 늙어 가는 것을 마냥 기다리는 방관자가 아니라 늙음도 죽음도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주인이 되니 마음에 무슨 유감이 있겠는가?”

주위는 조용했다. 다들 내 말을 곱씹는 분위기였다.

하다못해 아옹다옹하던 패거리들조차 분위기에 눌려 잠잠해졌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것이 제 결심입니다. 나라를 세우는 것은 매우 위대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제게 가장 높은 가치는 아닙니다. 동파 선생조차도 죽을 때야 깨달으셨다는 유감없는 삶. 그것을 백성이 깨닫는 순간 천하는 평안해질 것입니다.”

“유감없는 삶…….”

이준이 중얼거렸다. 패거리들이 중얼거렸다. 다같이 주문처럼 중얼거리자 하나의 거대한 외침이 되었다. 청담불출은 가슴이 뻥 뚫린 사람처럼 시원한 얼굴로 외침에 화답했다.

“민 제국의 태조가 신하들을 놓고 이르길 ‘그대가 공자라면 지금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제갈량이 나서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옳음은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뭉클한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옛이야기가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갈량의 답변은 공자가 말한 정치를 꼭 따르지 않더라도, 나, 또는 제갈량 자신의 정치가 지향하는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대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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