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9 (22) 출곡천교(出谷遷喬) =========================================================================
등을 보이고 비교적 천천히 움직였음에도 화살 같은 것이 날아드는 조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기가 질렸다는 뜻이리라.
나는 고지를 오르며 오늘을 복기했다. 사실 오늘 같은 일은 두 번 두기 어려운 수였다. 적들이 화포의 위력을 몰라 사정거리 안에 임시 군량고를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적이라 생각했던 동평이 시의적절하게 아군이 되지 않았다면, 그저 도발로만 그쳤을 것이다.
전술도 중요하지만, 기세를 탔을 때,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경험이 없었다면 감히 군량고 쪽으로 가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세를 한창 타고 있을 때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신호로 사용되었던 사금석을 군량고를 향해 던졌던 때를 떠올렸다.
“대략 야구공 정도 되려나…….”
너무 작으면 빛을 아예 볼 수 없으니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걸 대략 200m 가까이 던졌다.”
어릴 적 잠실 야구장에 갔을 때, 선수들이 이벤트 삼아 멀리 던지기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일등이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에서 잠실구장의 좌측 펜스(100m)를 넘긴 것을 보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거지 감이 안 잡혀서 메이저리그 기록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은 1989년에 발매된 기네스 기록 책자였고 그 책자에는 글렌 에드워드 고버스(Glen Edward Gorbous)란 캐나다 선수가 1957년 135.89m를 던져 세계 기록을 세웠다고 적혀 있었다. 그 기록을 세우기 위해 그는 6걸음의 도움닫기를 허용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는가?
말에 올라탄 채로 일체의 도움닫기 없이 상체의 힘으로 사금석을 던졌다.
“모산파의 도사가 부적을 써서 도술을 부리고, 내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시대에 나 같은 이가 있다는 것 역시 이상한 것은 아니란 말인가?”
아마 현대에서 이런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야구나 축구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외죽부 고지에 거의 다다르자 다들 내가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렸는지 모습이 보이자마자 환호성을 질러댔다. 아마 한 편의 활극을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적들의 사기가 오늘 크게 꺾여 당분간은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새로운 식구도 생겼으니 오늘은 술판을 벌이자.”
환호가 더 커졌다.
그리고는 알아서 챙기겠다며 산적들과 사대강 패거리들이 저마다 깊숙한 곳에 쟁여놓은 술독과 안주들이 나오는 것을 보니 실소가 터졌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나는 능진의 정확한 화포술을 칭찬했고, 모두를 향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제 밤이고 적들은 쉬어야 할 시간이다. 야습을 대비해 진영에 불도 환한 이때, 누가 돌을 멀리 던지나 내기해볼까?”
“하하하, 형님은 정말 짓궂으십니다. 송군을 밤까지 괴롭히려 하시는군요.”
이준은 들고 있던 잔을 깨끗이 비우고는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적당한 돌을 골랐다. 그러자 다들 이준을 따라 돌을 찾기 시작하는데 다 큰 남아들의 행동치고는 매우 재미있는 광경이라 동평은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가장 먼저 준비를 마친 이준이 힘껏 던졌다. 아무래도 고지에서 던지다 보니 더 멀리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적 진영까지 가기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떨어진 돌 소리로 말미암아 송군의 시선을 끄는 것은 성공했다. 그렇게 이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러나자 저마다 자신들의 순서를 정해 던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역시 몰우전이란 별칭을 가진 장청이었다.
타고난 강견(强肩)은 아니었지만 절묘한 기술이 부족한 신체를 메웠다고 할까? 유일하게 적 진영 입구 근처까지 다다라 모두의 찬탄을 자아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섰다. 다들 내가 장청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궁금했다. 고지에서 아래로 던지는 것이니 평지와는 전혀 다를 터였다. 게다가 도움닫기도 가능한 상황이다.
숨을 조절하고 세 번의 도움닫기를 했다. 그리고 팔이 휘둘러 졌을 때, 나는 상쾌함마저 느꼈다. 쭉 뻗어 나가는 돌의 궤적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날아가는 돌을 놓칠세라 ‘어어’ 하며 눈동자는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돌은 까마득하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신체 능력을 현대에 타고났었다면 야구나 축구를 했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그런 길이었는가?
나는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다.’라고!
*
양복 주머니의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진동을 뿜었다. 급히 전화를 받자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렸다.
“아우님 지금 어딘가? 큰일 났네. 여당에서 지지부진한 추경예산(追更豫算)안 처리를 직권상정으로 들고 나왔어!”
“지금 의원식당입니다.”
나는 급히 양복을 둘러 입고 본회의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기자들도 본회의장으로 속속 향하고 있었다.
본회의장으로 가면서 전화 통화는 계속되었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국회 선진화법이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추경으로 직권상정은 어렵지 않습니까?”
“젠장, 의장이 국제적인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선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직권상정 하겠다는데 그걸 무슨 수로 설득해.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알잖아. 지금 사회당 의원 6명이랑 막고는 있는데 쪽수에서 밀려! 안에서 문 걸어잠그기 전에 어서 와!”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곧 사람들로 어수선한 본회의장 입구를 볼 수 있었다.
2012년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였다. 무리한 토건 사업으로 이미 국가 부채와 공기업 부채를 재임 전보다 수배 올린 주범으로 평가받는 현 대통령이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제발 조용히 물러달라고 하는 것이 사회적 여론이었고, 정치권 일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현 대통령은 뚝심인지, 아니면 소신인지, 할 일은 하고 가겠다며 경기 부양 카드로 SOC 확충을 다시 들고 나왔다.
게다가 이번에는 수도권 위주의 추경 편성이었다. 수도권에서 야당 후보나 심지어 무소속 후보에게까지 밀리고 있다는 여론 조사가 있어서 이번 조치는 수도권 표심을 잡기 위한 일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 기업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법인세 인하까지…….
18대 국회까지 예산 처리는 여당 단독으로 강행할 수 있었으나 19대 총선 이후 제정된 소위 ‘국회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단독 처리를 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본래는 여당이 19대 4월 총선에서 야당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들었던 법인데 야당의 전략 부재와 막말 논란 등으로 여당이 다시 다수당이 되자 외려 자신들의 목을 죄는 법안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아예 단독 처리를 할 수 없는 방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회 선진화법’은 직권상정의 범위도 굉장히 좁게 정의했다. 천재지변이 있거나 전시, 사변 또는 이에 따르는 국가 비상사태로 정의한 것이다.
나는 연방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을 뚫고 전진했다. 그러자 본회의장 문을 닫기 위해 안쪽에서 개미같이 달라붙은 대한당 의원들과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사회당, 무소속 의원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반색했다.
“사실 이 의원의 노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은 정말 반갑구먼.”
사회당 의원의 말처럼 나는 그들과 정책 노선이 달랐다. 그러나 지금은 힘을 합해야 할 때였다.
“모두 비키십시오.”
“하하하, 유튜브의 영웅이 나섰으니 일당백일세.”
여당 성향이 강한 거제에서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한 박영출 의원이 사회당 의원들에게 말했다. 정치 초년생인 내가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박 의원의 조언이 컸다. 정책적 노선이 같아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정치에 뜻을 두고 직장을 사직했지만, 어떻게 정치에 입문해야 할지 몰라 고향인 경남 사천의 삼천포로 내려가 바다낚시를 하며 생각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먼저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던 사람이 바로 박영출 형님이었다.
소주 한잔하다가 뜻이 맞아 마음에 품은 이야기를 털어놓자 박영출 형님은 내 등을 두들기며 농담처럼 조언을 던졌다.
-이곳 출신이면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대권을 바라볼 수 있거나 전국적인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뭔지 아나? 경남 출신에 수도권 지지를 얻는 후보야. 아, 이게 전라도 출신이 못한다는 말은 아니야. 좀 더 쉬우냐, 어려우냐의 차이지. 정치하고 싶다고? 그럼 고향으로 내려와. 마침 자네는 친가와 외가가 다 이곳이라고 하니 더 잘된 것이 아닌가? 한 5년 노인네들 일일이 찾아다니며 품앗이라도 하면 가능성이 있을 걸세. 그런데 그게 너무 길다고? 욕심도 많구먼. 뭐, 자네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탈 수 있다면 또 모르겠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다음 날 내 얼굴이 전국에 알려졌다.
회사를 퇴직하는 날, 직원들과 회식을 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가에서 시비가 붙은 조폭들 간의 다툼에 나도 모르게 해결하겠다고 몸을 움직였던 것이다.
경찰이 달려왔을 때는 근 30명의 인원이 내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지켜보고 있던 시민은 저마다 휴대전화로 이 광경을 촬영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유튜브에 ‘무명의 액션히어로.’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이 올라가면서 폭발적인 조회를 기록했던 것이다.
내가 그 장본인이라는 것을 다음 날 알게 된 박영출은 껄껄 웃으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눈 대화들은 그저 흘려버릴 농담이 아니라 뼈있는 진담이 담겨 있었다.
-우리 집안은 오랫동안 거제에서 제법 알아주는 명망 있는 유지였지. 그래서 여당으로 출마해달라는 제의도 수차례 받았었고……. 여당 간판으로 나오면 당선되는 동네에서 왜 굳이 무소속으로 나오려고 하느냐고 말 많이 들었지. 사실 처음엔 선거에 나올 생각도 없었네. 그런데 선거에 나오게 된 것은 이 동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정치 거물이라며 여당 깃발 꼽는 것이 그렇게 아니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야. 그런 것을 보면 나도 반골 기질이 있었나 봐. 아무튼, 보좌관들 말을 들으니 유튜브의 파급 효과가 대단하다고 하더군. 충분히 승산이 있어.
-아니 유튜브만으로 그렇게 속단하시는 것은…….
-사천의 18대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아나?
-전사라고 소문난 사회당의 강의식 의원 아닙니까?
-맞아. 국회 선진화법이 조속히 추진되고 있는 것은 강의식 의원의 활극이 한몫했지. 다른 지역은 야만적이다 뭐다 하지만 최소한 사천 지역에서 그는 대단한 믿음을 받고 있네. 그럼 재선이 유력해야 하지만 또 그렇지가 않아. 이번에 사천이 선거구 통합 대상이거든. 사천, 남해, 하동이 한 개 선거구로 합쳐진단 말일세. 그런데 남해, 하동은 여당의 강세 지역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천보다 인구가 많아. 강의식 의원이 사천 지역의 표를 모두 가져도 상당한 차이로 지게 될 거야. 그러나 자네라면 달라. 자네의 이름이 젊은 층에 상당한 호감과 호기심으로 기억되게 된 것이 크거든. 강의식 의원은 나와도 막역한 사이니 언제 자리 한 번 만들겠네. 자네를 보며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강의식 의원의 지지를 받아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정치판 더럽다며 농사나 짓는 게 낫겠다고 항상 노래 부르는 양반이지. 만약 강의식 의원이 허락한다면 자네, 나랑 무소속 러닝메이트로 뛰지 않겠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처럼 말일세. 사천과 거제가 함께 뛰자는 말이지. 사천, 남해, 하동, 거제는 지역색이 비슷하고 인맥들이 서로 연결된 동네야. 나는 자네를 통해 젊은층과 진보표를 얻고, 자네는 나를 통해 장년층과 보수표를 노릴 수 있게 되겠지.
그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했고, 나는 밑도 끝도 없는 건달 자식이 되어 있었다. 문중이 사천에 없었다면 아마도 진작에 매장되었을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나는 이제 19대 국회의원이 되어 있었고 첫 과제를 맞이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본회의장의 문을 밀기 시작했다. 수십 명이 막고 있는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다들 뭐하는 거야, 상대는 한 명이잖아, 한 명!”
여당의 중진의원이 뒤에서 초선 의원들을 독려했다. 그 사이 자리에 앉은 의원들은 개표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잠기면 그것으로 게임 끝이라고 이들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힘을 배가시켰다.
“어이쿠!”
갑자기 강해진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문이 벌컥 열리자 버티던 의원들이 뒤로 넘어졌다. 나는 성큼성큼 본회의장으로 진입했다. 박영출과 사회당, 진보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이 속속 들어섰고, 뒤늦게 알고 온 제1야당 국민당의 초재선 의원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국민당이 많이 늦는군요. 이쯤이면 지도부 모두 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옆으로 바짝 붙은 박영출에게 내가 말했다.
“오늘 지도부의 누구 출판 기념회라고 하더군. 장사 한 두 번 해보나. 아마 여야 지도부 간에는 모종의 협의가 있었을 거야. 야당이 원하는 법안 몇 개가 함께 처리되겠지. 보좌관 시켜 처리될 문건을 급하게 훑어 봤는데 국민당 지역의 선심성 사업도 추가된 것을 보면 틀림없을 거야. 그러면서 줄기차게 외쳤던 영유아 보육 예산 증액은 일언반구도 없더군.”
“그럼 지금 달려온 국민당의 초재선 의원들은 구색 맞추기입니까?”
“저들 중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의감에 불타 달려온 사람들도 있겠지. 사람 사는 것 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서 양복 주머니에 접힌 문건을 넣어주었다. 아마 대치하면서 읽어보라는 뜻일 것이다. 다행히 이제 국회의장이 입장하려고 하고 있었다. 여당 의원들은 내가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르르 달려왔다.
그러나 내가 먼저 국회의장석을 먼저 점거했고, 재빠른 몇몇 야당 의원들이 주위를 둘렀다. 극히 소수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문건을 꺼내 펴서 빠르게 훑어 내렸다.
“의정부 전(前) 미군 부대 자리에 국고를 투입하여 4대 중증을 전문 관리하는 특수국립병원을 설립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공사 와중에 일어난 진위면 불법폐기물 매립 사건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그 지역에 제2의 상암을 플랜으로 하여 공원을 짓고 임대아파트를 짓는다. 과천 청사 부지의 개발 역시 올해 안에 조속히 진행한다. 2010년 25%에서 22%로 3% 낮춘 법인세를 다시 1% 인하하여 기업을 살린다. 부동산 취득세율을 인하하여 주택 경기를 살린다. 차세대 전투기 도입 예산을 늘린다. 대략 큰 건은 이 정도인가? 추경신청예산 14조 중 부동산 대책과 법인세 인하 등으로 말미암은 세입결손보전에 쓰일 돈이 11조……. 정작 SOC에 들어갈 돈은 3조, 그것도 기반 산업이 아닌 건물들. 무슨 차기 대통령 선거 공약 발표 현장입니까?”
“어디서 건방지게 무소속 초선이 나대는 거냐. 그리고 의장석과 위원장석 점거를 금지한다는 국회 선진화법을 모르는가?”
이름도 제대로 기억 안 나는 여당의 중진 의원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쳤다. 그와 동시에 의원들이 나를 밀어내기 위해 힘껏 힘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국회 선진화법을 아는 양반이라면 핵심 쟁점 법안의 단독 강행 역시 있을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텐데. 정말 아쉽다. 아쉬워, 조금만 관심 있었더라면 영유아 보육 예산이나 청년 일자리 대책 기금이나 살려 놓고 그걸 홍보했으면 그나마 조금 믿어주기라도 했을 텐데……. 그리고 마음대로 처벌하십시오. 3개월 출석 정지 또는 수당 정지에 불과한 솜방망이 벌칙, 그것도 아직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지요. 왜? 여당과 야당이 혹시 뒤바뀔 경우도 대비해야 했으니까요.”
“건방진 놈! 다들 뭐해? 이놈을 끌어내리지 않고.”
그러나 끝내 날 밀어낼 수 없었다.
국회 방송을 비롯한 수많은 기자가 내일 기사를 어떤 식으로 낼까? 아마도 만만치 않은 집중포화가 쏟아질 것이다.
나는 마치 아비규환 같은 현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평화롭다.”
============================ 작품 후기 ============================
아마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삼국지편부터 고려편까지 하나의 현대 정치물을 상정하고 글을 썼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고려편이 아니라 수호전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셨지만 고려편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있습니다. 사실 현대편을 묘사한 글을 중간에 붙여야 하느냐를 놓고 계속 고민을 했는데 최종적으로 정말 쓰고 싶은데로 써야 할 것 같아서 결국 이렇게 글을 전개 시켰습니다.
PS. 그리고 글 중간에 100M를 던져 펜스를 넘겼다는 투수 이야기는 두산 유희관 선수의 인터뷰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