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4 (21) 파죽지세(破竹之勢) =========================================================================
다들 우려를 잠시 잊고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서유기의 배경은 당나라이고 그 시대의 실존인물인 현장법사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인도에서 불경을 구해 돌아온 험난한 역경을 원전으로 삼고 있다. 일종의 여행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가 민간에 구전되면서 허구가 가미되었고 송 대에 이르러 동양 판타지의 정점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신괴(神怪), 환상(幻想), 애정(愛情), 우애(友愛)의 네 요소가 적절히 가미되면서 명대에 이르러 오승은에 의해 현대의 서유기가 완성된다.
“장군이 제천대성이면 전 천봉원수(天蓬元帥, 저팔계의 전생) 하렵니다.”
석보는 나와 그저 전투에 나갈 수 있는 게 좋은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혹여 남은 자리를 빼앗길까 싶어 장청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럼 전 권렴대장군(捲簾大將軍, 사오정의 전생)을 맡으면 되겠군요.”
“젠장 그럼 남은 건 현장법사인데…….”
처음엔 비관적이었던 능진도 유쾌한 분위기에 휘말려 우려를 씻어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럼 각자 준비를 하도록 하고 나는 그 사이 4대강 패거리를 설득하겠다.”
능진과 석보가 배에 실을 물자와 인원을 점검하고, 적당한 고지를 물색하는 사이 나는 성 외곽에 머무르고 있는 4대강 패거리를 찾아갔다. 그들은 한창 술을 마시던 참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입버릇처럼 욕설이 난무했다. 몇 명은 벌써 술에 뻗어 아무렇게나 자는 자들도 있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식어 내렸다. 그 분위기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은 이준 한 명뿐이었다.
“급히 대책을 마련하러 가시더니 벌써 끝나신 모양이지요? 저희를 찾아온 것을 보니 아마도 저희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이준의 눈치는 역시 빨랐다. 백서가 술잔을 비우며 뒤를 이었다.
“설마 남창 금군과 강주 수군을 상대로 같이 싸우자는 말일랑은 하지 마십시오. 강주 관아를 급습하는 정도야 날짜를 잘 고르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5만의 관군, 그것도 정규군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나에게 대적하여 패한 순간부터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나에게 죽던지 관군에게 죽던지.”
다들 안색이 급변했다.
그 사이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술잔을 건네주었다. 나는 한숨에 들이키며 그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이준은 빈 술잔에 다시 술을 따르며 말했다.
“형님에게 덤비면 확실히 죽겠지만, 관군과 싸우면 살아남을 가능성이라도 있지요. 저는 형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렵니다. 게다가 경매 대금이 이미 몸값으로 지급되지 않았습니까?”
심양강 패거리는 하나같이 불만 가득한 표정이면서도 별다른 반발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준의 영향력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머지들은 망설였다. 괜히 화를 냈다가 나한테 맞을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이토록 빨리 전쟁에 참가하게 될 줄 꿈엔들 알았겠는가? 적당한 이유를 들어 1/3의 경매 물품이라도 가지고 도망칠 마음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오백 리 안에 너희 같은 패거리들이 더 있겠지?”
“어느 정도의 규모를 원하는지 모르겠으나 대략 100명 정도의 산채들이 대여섯 곳 정도 있습니다. 설마 그들마저 끌어들이시려고요?”
그나마 대답하기 쉬운 물음이 나와서 그런지 백서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너희가 살아날 가능성을 높이고 싶으면 무슨 약속을 해서든 산채의 수괴들을 죄다 끌고 순천으로 와라."
전쟁만 조기에 끝난다면 산적도 수적도 나의 통제하에 들어갈 것이다. 그럼 복건은 매우 안정된 지역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패거리들에게 생각하고 있던 바를 털어놓았다.
“아마 한두 놈은 눈먼 화살에 죽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지시만 제대로 따른다면 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정말입니까? 저희를 방패로 쓰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항우는 24살에 반진(反秦)을 외치며 거병하여 3년 뒤, 18명의 제후왕을 봉하는 서초패왕이 되었다. 그는 거병 당시 겨우 8천의 병사를 이끌었을 뿐이다. 8천의 병사는 하나같이 강동 귀족의 자제들로서 정예병이었지만 겨우 8천으로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항우가 항상 그들 앞에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위험을 끌어당겼고, 빈틈을 제공했다. 나는 그에 비하면 더욱 조건이 좋다. 1만의 병사가 나를 따르고 있고, 복건 3주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 천하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4대강을 벗어나 천하를 보고 싶지 않은가?”
“우리라고 웅심(雄心)이 없겠습니까? 살면서 장군보다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장군의 호언대로라면 저는 한 번 나서보렵니다.”
간강의 매괴가 머리를 긁적이며 참가 의사를 나타냈다. 무하의 안석이 나에게 물었다.
“반산(半山) 선생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안석은 고향의 자랑, 왕안석을 존경하는 만큼 내가 그의 덕담을 남기는 것만으로 합류할 명분을 찾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재주가 뛰어나지만 소인(小人)이었다.”
“소인!”
안석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어서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만약 내 실력을 알지 못했다면 당장에라도 멱살잡이할 것처럼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한 말은 실은 조선 시대 세종이 그를 평가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에 공감 가는 바가 있어 솔직하게 답한 것이었다. 우상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깨어지는 순간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법가와 유가, 율가를 모두 섭렵하며 깊은 학문을 쌓았고, 신법을 제정했다. 인간을 ‘이익을 추구하는 동물’로 규정하고 포상과 채찍을 한데 아우르는 법률 제도를 만들어 운용하고자 했지. 어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 사상이 어찌 널리 공감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그런 점을 지적하면 ‘네가 나의 고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해 그런 것이니 공부나 더 하고 와라.’라며 우습게 여겼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다. 반산 선생이 그럴 리가 없단 말이다!”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는지 나에 대한 공포심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주먹질하며 나에게 달려드는데 나는 가볍게 주먹을 잡고 밀쳤다.
“맞수인 사마광을 비롯해 한기, 구양수, 소식 선생에 이르기까지 신법을 반대한 것은 그 신법이 틀려서가 아니었다. 왕안석의 독선이 불러일으킨 결과였지. 분명히 말하겠다. 왕안석의 신법은 비록 그것이 성악설에 근본을 두고 있을지언정 당시 송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옳다.’라고 믿는 독선이 정적을 늘리고 경쟁자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결국 그가 세우고자 한 모든 정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나는 정치를 하는 자라면 무릇 유연하길 바란다. 제도를 세우면서 인간의 정의를 개인적인 잣대로 잰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며 그것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동조하는 이가 없는 이상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안석은 보기 딱할 정도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존경하는 목민관이기도 하다.”
“목민관?”
“그렇다. 반산 선생은 20대부터 40대까지 근 20년의 세월을 지방을 전전하며 목민관을 맡았다. 조정에서 불렀음에도 지방관직을 희망한 결과였지. 그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조정에서 자신이 생각한 정치를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자신이 맡은 지역민들이라도 편안케 하고자 생각했던 것이다. 목민관 시절의 독선은 오히려 뛰어난 결과로 돌아왔다. 지방에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지역민들의 절실한 점을 숙고하고 해결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쌓인 자신감이 결국 조정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게 하였지만, 그 결과는 아까 내가 말한 대로다. 나는 그가 차라리 포증(포청천)의 뒤를 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간신들이 대거 사라졌을 것이고 새로운 인재들이 정치를 혁신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하는 그 마음은 항우의 과신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을까? 반산 선생을 존경하는 네놈의 마음은 잘 알겠다. 나 역시도 그를 존경한다. 존경은 숭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장점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겠는가?”
나는 기꺼이 안석의 복잡한 마음이 풀리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백서가 끼어들었다.
“저는 건주 출신입니다. 지금까지 중원은 우리를 야인으로 취급했지요. 중원에서 무슨 일만 터지면 우르르 내려와 우리의 터전을 빼앗고 자신들이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숨을 죽이고 언제든지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우리를 쥐새끼 같다고 욕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길이 없었습니다. 장군, 나는 장군이 제발 대업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떳떳이 살았으면 합니다. 저, 백서, 앞으로 나설 용기는 없지만, 기꺼이 그 뒤를 쫓아갈 용기는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안석 뿐이었다. 안석은 생각을 정리했는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반산 선생은 위대한 목민관이었습니다. 유교경전과 율학을 재해석하여 왕학(王學)이라는 학파를 창시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서예 역시 뛰어났습니다. 장군께서는 인정하십니까?”
“물론이다.”
재상으로서의 왕안석이 조금만 더 유했다면 신법은 송나라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제도가 옳다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꼭 아니라는 것을 왕안석이 제대로 보여주었다. 무릇 정치는 사람과 제도가 같이 가야 한다.
안석은 고개를 숙였다.
“무하의 안석, 기꺼이 장군의 뒤를 쫓겠습니다.”
이제 4대강 패거리가 전부 내 손에 들어왔다. 인근의 산채까지 모두 끌어들인다면 일대의 악(惡)은 전부 내 손에 잡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악을 짓누르는 무한한 패도가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백서와 안석은 인근 산채를 설득하여 순천으로 오는 역할을 맡았다. 매괴와 이준은 고지로 향할 물자와 인원을 실어나르고 남은 배들을 가라앉혀 장애물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그런 후 모두 약속된 고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외죽부(外竹埠)라…….”
순천 지리에 익숙한 병사들이 열거한 고지를 취합하여 지도를 보며 대강의 위치를 가늠해본 결과 꼽힌 최적지였다. 대나무가 많아서 일대의 야산을 죽부(竹埠)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외죽부는 그중 강가에 인접한 야산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라고 했다. 부(埠)가 부두나 선창을 의미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대나무가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정상부는 해발 200m 정도였고 최소 200명 정도가 머무를 수 있는 평지가 존재했다. 공격을 올 수 있는 방향은 강변을 통해서 구릉까지 올라오는 서쪽 경로밖에 없었다.
우리가 구릉까지 올라온 동쪽 경로도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거리를 우회해야 가능했다. 이곳은 필요하면 우리의 퇴로가 될 예정이었다.
너무 서둘렀던 탓일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적의 진군을 알아본 결과 아직 보산을 넘기 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7주야 이상의 시간이 확보된 셈이었다.
진지를 구축할 시간이 충분하니 우리는 과다할 정도로 물자를 쌓았다. 200명의 인원이 최소한 두 달 이상 버틸 수 있는 양이었다.
입구로 진입하는 소로(小路)가 경사진 토사로 되어 있던 것을 암석을 가져다 돌계단을 만들었다. 정상적인 계단이 아니라 발걸음을 불규칙하게 만들기 위한 계단이었다. 게다가 그곳에서 공격을 당해서 쓰러지면 흙바닥에 쓰러진 것보다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정상으로 진입하기 전에 양옆으로 내 키의 두 배 만한 바위가 절묘하게 벽을 이루며 서 있는지라 더욱 완벽했다.
배치한 화포는 겨우 10문에 불과했다. 화포 대대를 천명했지만 한 달의 시간 동안 화포는 한 문도 늘어나지 않았다. 일단 화포 대대의 인원을 선별하여 기존 화포를 숙련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획대로만 된다면 10문으로도 충분했다. 이번 전쟁의 승패는 어차피 나에게 달렸다.
예상과 다르게 14일을 넘어서야 금군이 보산을 넘었다는 정보가 들려오고 강주 수군도 곧 순천에 도착한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을 때, 어느덧 해는 바뀌어 있었다. 개성에 있을 이소는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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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란에 외죽부 고지에 관한 사진을 올려두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