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1 (21) 파죽지세(破竹之勢) =========================================================================
유염은 내 시선을 다 받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자 이소가 중재에 나섰다.
“자자, 이제 한 식구가 아닙니까? 천주에 머무는 복건로(福建路) 제점형옥(提點刑獄, 사법전담)이 이 친구의 매제입니다. 그를 설득시킨 것은 이 친구의 공입니다.”
“과연, 천주를 일개 상인이 값을 매긴 이유가 있구나.”
유염은 내 말을 듣고 울컥했다. 전통의 명가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일개 상인으로 깎아내리니 열불이 났을 것이다.
“무엇이 그리 억울한가? 천주를 그런 식으로 양도한다면 내가 덥석 받을 것으로 예상했단 말인가? 내가 아는 남월왕은 이렇지 않았다.”
“내가 당대 남월왕인데 대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오?”
나의 시선은 어느덧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이 땅에 진정한 남월왕이 있었다.”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던 그 순간 남월왕과 일면식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나만큼이나 키가 컸고, 덩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람했다. 전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나 대화를 나눠보니 웬만한 학자들은 이름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학식이 깊었다.
남월 사신들이 전해주는 친서와 근황을 통해 그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만나본 결과 그에게 남해 일대의 자치를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도 무방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해 일대를 월족의 자치구로 선언하고 중원의 타민족에게도 그들의 땅을 되찾아주는 효시로 삼겠다고 하자 조야는 그들에게 반란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들끓었지만, 나의 뜻은 꺾이지 않았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타민족의 주권을 존중하고 공생할 수 있는 첫 선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학의 가르침은 유용한 면이 있다. ‘인’과 ‘교화’라는 말로 모든 반대 논리를 누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같이 논리가 뛰어난 학자들이었지만 한때 주자학에 흥미를 느껴 깊게 팠던 나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800년 전의 남월왕이면 모든 남해인이 존경하는 인물이 아니오. 그를 안다니 참으로 공부를 많이 하셨구려.”
유염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그 당시 남월왕은 나와 깊은 교류를 나누며 서남이(西南夷)와의 우호도 이끌어 내는 공적을 세웠다. 장강 이남에서 최소한 100년 이상은 전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평성대가 열렸다.
육손은 그것을 보고 북이(北夷)도 역병이나 돌았으면 좋겠다는 우스개를 사담으로 남기기도 했다. 창궐하는 역병을 해결하기 위해 남월왕의 사신이 나를 찾아오면서 생긴 결과이니 말이다. 타 부족과 혼례를 올린 자들이 점차 정착하고 융화되면서 월족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고 경제적인 교류가 잦아지면서 굳이 월족을 견제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그때 나는 느꼈다. 전쟁이란 불길한 요소는 위정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결국 백성의 안정이 어떤가에 따라 터지는 것이다. 넉넉하면 없던 인심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대는 남월왕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그저 일개 장사치로 남고 싶은가?”
“남월왕의 가치를 어디에 비견할 수 있겠소? 하물며 나는 남한 유 왕실의 적자(適者)요.”
“남한 유 왕실 이야기는 그만하자. 백성이 남월왕의 이름을 기억하고 남한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언하는 신하를 죽이고, 동생들의 아내를 후궁으로 맞아들이고, 동맹을 맺은 나라의 뒤통수를 치고…….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대 스스로는 선조와 다르다고 선을 긋겠지만, 그대가 남한 유 왕실의 적자라고 칭한 이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숙명이다. 그것을 모두 짊어지고 기꺼이 남월왕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그대는 천주의 값을 묻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은 그대로 간직한 채 편하게 부유한 상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럼 내가 어찌해야 했단 말이오?”
“천주의 값이 얼마인지 물을 것이 아니라 천주를 어찌 다스릴지를 물었을 것이다.”
잠시 시선이 교차했다.
이소가 껄껄 웃으며 우리 사이에 끼었다.
“장군의 답이 옳습니다. 장군이 애초에 앞장을 선 것은 송이 이 지역의 민심을 대변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저 한 나라의 국운은 백성에게 달려 있는데 외려 수탈의 대상으로 보니 그건 규모가 큰 도적떼와 다를 바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이소는 유염의 손을 잡았다.
“장군의 배포와 도량이 이 정도일세. 장군은 율가의 부활을 천명하면서도 유학의 거두인 장천각을 품을 정도지. 그러니 이제 자네의 본심을 밝히게.”
유염은 겸연쩍은지 머리를 잠시 긁적이다가 두 손을 모아 예를 차렸다.
“장군의 위명이 워낙 허황하게 들려 잠시 장군을 시험했습니다. 이소와 저는 율학을 동문수학한 사이로 미흡하나마 율학의 진전을 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군의 일성은 충분히 제 신념에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장군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족한 것?”
“명분입니다.”
“내가 명분이 부족하다고?”
“이소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장군이 일찍이 묘족 아내를 맞아들였고, 해남도에서 소동파 선생을 만났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궐기의 명분으로 부족합니다.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고, 선정으로 남은 불만을 무마시킬 수 있지만, 세상에는 선정에도 불만을 품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살벌한 전장에서도 식은땀을 흘리지 않던 나였는데 어쩐지 지금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어째 내가 과거 여러 번 겪었던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군의 이름이 준경이라 들었습니다.”
준경이란 이름을 일부러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숨기지도 않았다. 본래 고려에 알려지지 않을까, 그러면 동북 9성 원정에 참가하지 못할까 싶었던 걱정이 있었지만 이미 틀어진 역사에서 동북 9성 원정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물 흐르듯 역사에 내 몸을 맡길 생각이었다.
“바라옵건대 개민(開?)을 버리십시오.”
“개민을 버리라? 민에서 탈피하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李)’ 성을 사용하십시오.”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나는 기껏해야 유염이 혼인 이야기를 꺼내서 남월왕의 칭호를 나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성을 붙이라니……!
“이…… 준경.”
얼마 만에 불러 보는 이름이었던가? 최소한 지금 시대에서 스스로 사용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이름이다.
“남당(南唐)을 아실 것입니다. 10국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 원천은 바로 금릉입니다. 그리고 금릉의 시작은 초의 이준경이었지요. 남당의 건국자 이변(李?)은 서씨 집안의 양자였지만 정권을 잡자 곧바로 자신이 본래 당나라 황족의 후예라면서 이씨로 바꿨습니다. 장군께서도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복건은 지세가 험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일국을 어찌 경영할 수 있을지언정 천하를 아우르지 못합니다. 금릉이야말로 장군께서 천하를 여시기에 최적지지요.”
“남당의 창업자가 그리했다고 해서 나마저 그리하란 말인가?”
“남당의 창업자를 쫓을 필요는 없습니다. 장군은 당의 이준경이 아니라 초의 이준경이 되셔야 하니까요.”
나는 흠칫했다. 이소가 담담한 것을 보면 오면서 말을 맞춘 것이 분명했다.
“금릉을 중심으로 삼았던 남당의 이변, 장사를 중심으로 삼았던 초의 마은, 성도를 중심으로 삼았던 촉의 왕건, 광주를 중심으로 삼았던 남한의 유염, 복주를 중심으로 삼았던 민의 왕심지, 항주를 중심으로 삼았던 오월의 전류…….”
유염의 입에서 남부에 자리했던 십국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이 모두의 이름값을 합쳐도 800년 전, 초나라 시절의 이준경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하니 이 이름이야말로 난세를 종식하는 최고의 명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장군과 저는 800년 전의 황제와 남월왕의 관계가 그러했듯 아름답게 남을 수 있겠지요. 이것이 제가 자식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이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허락하리라고 보는가?”
“허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염은 본색을 드러내자 꽤 단호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소의 설득 방법이 어떠했기에 이토록 결연하단 말인가?
“간신들이 득세하면서 이미 망국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난파선이 될 것을 알면서 뻔히 남아 있는 사람은 충신이거나 미련한 사람, 둘 중 하나입니다. 일찍이 경사(京師, 수도)를 떠나온 것은 그곳에 계속 머물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장군의 신화적인 무용담과 의기 넘치는 내용을 들으면서 과연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회의감을 가졌지만 정말 소문 그대로라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분기에 서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장군, 부디 이준경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아니 더 강력한 이준경이 되어주십시오. 민 제국 시대를 그리워하면서 감히 그때로 돌아가자고 하는 위정자가 없는 것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자제력과 인내심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위정자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군, 장군은 진정으로 잃어버린 초나라의 가치를, 민 제국의 가치를 다시금 당대에 재현할 마음이 전혀 없단 말입니까!”
옛 시대와 지금 시대의 가치는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현시대에 맞는 가치를 정립하겠다고 생각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바로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다시금 옛 시대를 떠올려보면 지금과 상반된 가치는 하나도 없었다. 사람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염의 의견대로 이준경이란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옳은 것인가?
‘현대 정치는 근대 정치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을 근본 과제로 삼고 있다. 그것을 지금에 대입하자면 지금의 정치가 과거 정치의 모순을 해결하고 있는가로 볼 수 있다. 현시대는 어떠한가? 독점적인 자본주의가 출현했고, 권력은 국민의 생활권에 관심을 두기보다 기본권을 무시한 수탈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해운의 발달로 식민지, 종속국이 무차별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려는 나에게 척준경이란 이름을 주었다. 그러나 중원은 나에게 이준경이란 이름을 마치 필연처럼 부여한다. 운명론을 믿고 싶지 않지만…….’
고려의 척준경과 중원의 이준경.
둘 다 의미가 있다. 그래서 어느 하나만 선택하여 버릴 수 없었다. 둘이 곧 나인데 나눌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는 둘이 곧 나이니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답도 나올 수 있다.
“나를 이준경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대의 의견…….”
혹시 내가 거절하지 않을까 유염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다면 내 성정이 직설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받는 순간, 그대들은 후회할지 모른다. 옛 선인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정치에 임했는지 안다면 당장에라도 그 제안을 철회했을 것이다.”
수락의 뜻으로 들렸는지 유염은 두 손을 모으며 외쳤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남월왕이 초의 이 승상을 대했던 것처럼 정성으로 뜻을 읽고자 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옛 동료는 이제 없고 새로운 동료가 곁을 감싸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꿈을 갈망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기에 걸려 며칠 쉬었습니다. 몸이 좀 나아져서 주말까지 매일 연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불꽃처럼도 내일쯤 한편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