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6 (20) 단역기심자견리(但易其心自見理) =========================================================================
6명은 하나같이 인상적인 얼굴들이었다. 얼굴을 보고 이름을 단숨에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6명의 이름을 맞추라고 한다면 맞출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수호전에서 심양강 패거리로 등장하는 인물 중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여덟인데 그중 하나가 혼강룡 이준이었다.
그가 있었다면 깜짝 놀라는 표정을 볼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가 없는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심양강 패거리와 한 번은 붙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남자들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흘렀다.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삼국지의 이준경이었는지 모를 판이다. 그때 시절이 일장춘몽처럼 여겨지고 지금이 진짜로 여겨지니 그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내가 고려 시대에서 칼을 휘두를 줄 꿈에나 생각했을까?
장경은 기세가 흉흉한 이들이 점차 우리 주위로 밀려들자 내 뒤에 바짝 숨으며 설명했다.
“심양강 패거리는 특히나 무서운 자들입니다. 수하 중에는 주막을 차려놓고 술에 약을 타서 사람을 죽이는 자들도 있다고 하고, 사기 도박장을 차려놓고 골수까지 빼먹기도 한답니다.”
“흥,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우리에게 어쩌고 저째?”
마치 장비를 연상시키는 거한이 장경의 말을 듣고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했다. 뒤따르는 다섯 명은 뭔가 권태로운 모습이었는데 관군이나 다른 패거리들을 지척에 두고도 별로 두려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긴 그 정도니 송강을 구하기 위해 강주 관아를 발칵 뒤집었을 것이다.
“선두에 장비같이 생긴 자가 출동교(出洞蛟) 동위(童威)라는 자입니다. 심양강의 염상입니다. 동위 뒤를 바짝 따르는 자가 아우인 번강신(飜江蜃) 동맹(董猛)이지요. 혼강룡 이준이 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그자가 심양강 염상의 두령이라면 저 둘은 부두령쯤 됩니다. 심양강 패거리가 무서운 이유가 혼강룡 이준때문인데 그자는 오은 중 일인인 태호삼기 이일민의 제자라서 그렇습니다. 수상뿐만 아니라 뭍에서도 그를 이기는 자를 못 봤다고 하더군요.”
“흥, 혼강룡 이준쯤이야…….”
백서와 신경전을 벌이던 매괴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장경의 평가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 패거리는 심양강 패거리가 나타나자 온통 시선이 그리로 쏠려 있었는데 매괴가 견제구를 날리자 무하의 안석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근래 들어 심양강에서 이준을 본 자가 드물다는데, 그 잘나신 사부에게 가 있나? 어디 낯짝 좀 구경하려고 해도 영 보이질 않으니…….”
민강의 백서도 추임새를 넣었다.
“그 나이 먹도록 아직도 칼질을 배운다니 이 바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지. 싸우는데 무슨 법도가 필요 있어? 뒤에서 칼침 놓으면 천하없는 장사도 죽는 거지.”
출동교 동위는 장경을 바라보던 흉흉한 시선을 세 패거리에게로 향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법했지만, 이 정도는 일상인지 평안하기만 했다.
“그렇게 나대다가 강바닥에 파묻힌 자가 셀 수 없다.”
동위가 으르렁대자 매괴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듯했다.
“수상전이라면 간강을 따라올 자가 있는가?”
“무슨 소리, 무하를 무시하는가?”
“흥, 유속이 느린 간강이나 수량(水量)이 일정치 않은 무하가 수상전을 논하다니 우습기 그지없구나. 민강의 물살은 일대에서 제일이다. 삼협에 버금가지. 그곳에서 우리는 잉어처럼 뛰논다.”
백서의 마지막 말에 안석은 귀를 후볐다. 아까도 비아냥을 나타내기 위해 같은 행동을 한 것을 보면 습관인 모양이었다.
“쥐가 잉어놀이라니 그거 상상이 가지 않는데…….”
“뭐! 오늘 사생결단을 내 볼 테냐!”
우두머리 숫자는 민강 패거리가 가장 적었지만, 여기가 그들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즉, 관망하는 자들 대다수가 이들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뜻이었다. 이들은 그것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입씨름을 벌이는 사이 장경은 심양강의 나머지 인물을 작은 목소리로 줄줄이 설명했다.
“동맹 옆으로 칼자국 있는 털보가 낭리백도(浪裏白挑) 장순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마에 일자로 주름살이 있는 자가 장순의 형인 선화아(船火兒) 장횡입니다. 장횡은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도강비(渡江費)를 걷는데 부자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강 한가운데서 협박하여 돈을 빼앗는 예도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장순은 젊은 시절 개차반이었다가 혼례를 올리고 조금 유순해졌는지 지금은 심양강의 어선들이 잡은 생선을 타지 상인들에게 거간(居間)하는 역할을 한다는군요. 마지막으로 가장 험상궂게 생긴 두 명이 있지요? 저들 역시 형제입니다. 몰차란(沒遮欄) 목홍(穆弘), 소차란(小遮欄) 목춘(穆春) 형제로 심양강 일대에 술을 공급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심양강 일대의 손꼽히는 재력가라고 합니다.”
‘몰차란’이란 뜻은 막 나가는 놈을 뜻한다. 송강을 처음 대면할 때부터도 그런 낌새를 보이는데 심기에 조금만 거슬리면 대놓고 시비를 걸고 패고 보는 성품이었다.
그들의 지랄 같은 성질을 제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이준 뿐이었는데 이준이 없을 때는 또 다른 동료가 대신 시비를 걸어 그들이 먼저 시비를 걸고 판을 키우는 것을 차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동위가 먼저 나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피라미들이 시끄럽게 설쳐대느냐? 경매물품은 모두 우리 것이니 그냥 썩 꺼져라!”
“미친놈들 여기가 심양강인줄 아느냐!”
백서가 소리치자 근처에 있던 자들이 슬금슬금 뒤로 모이기 시작했다. 30명쯤 되었는데 그것을 보고 다른 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야, 다들 나와!”
매괴가 소리치자 10명 정도의 인물이 뒤로 붙었다. 그 사이 안석의 뒤로도 15명 정도의 인물이 더 합류했다.
“자칫하면 큰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경이 나에게 우려를 보였다.
“예로부터 싸움 구경은 돈 주고도 구경을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서로 싸워서 좀 죽고 죽으면 어떤가? 다들 쓰레기 같은 자들인데…….”
내가 그들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발언을 대놓고 하자 장경은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 실력을 잘 안다고 해도 이렇게 흉흉한 상황에서 어찌 걱정되지 않을 수 있을까?
매괴가 주먹을 매만지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거슬렸다. 네놈이 ‘불패’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을 쓰는 놈인가?”
내가 누구인지 이들도 대충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 못지않게 시비가 붙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꺾는다면 복건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나는 장경의 어깨를 툭 쳐주고 앞으로 나갔다. 병사들에게 장경의 보호를 맡겨둔 상태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자 주위는 사람으로 둘러싸였고 주변은 자연스럽게 공터가 되었다. 나는 패거리들에게 소리쳤다.
“제안 하나 하지.”
나는 차고 있던 도를 풀러 내 주변 1장에 원을 그렸다. 그리고 도를 장경 쪽으로 던졌다.
“어떤 무기를 써도 좋다. 나를 이 원 안에서 밀어내는 패거리에게 경매 우선권을 주지. 그에 더해 최저가 입찰을 할 수 있는 권리도 함께! 단, 나에게 지는 경우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면 된다. 목숨을 빼앗거나 금전적으로 손해 보는 부탁은 아닐 것이니 그리 부담되는 조건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기면 최소한 한 품목 정도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거저먹는 장사나 다름없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구나 내가 벌칙으로 제안한 것은 상단 전체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국한된 것이다.
“설마 상단을 해체하거나…….”
“그런 것은 요구하지 않는다.”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분히 현실적이고 양아치 같은 자들이며 패륜적인 중범죄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꿰뚫는 하나의 정서가 있는데, 신의(信義)다. 옳든 그르든 남자라면 마땅히 지켜야 한다며 남성적인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내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 번 내기를 받아들이면 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야성의 성문을 쪼갰다는 소리를 들었다. 포환을 받아냈다고도 들었다. 그러나 나 역시 호랑이를 때려잡는 몸.”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매괴가 먼저 나섰다. 안석은 호랑이를 잡았다는 매괴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비웃음을 던졌다.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겠지.”
매괴가 발끈했지만 지금 눈앞에는 더 큰 이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억지로 참은 듯했다. 그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두 개의 철수조(鐵手爪, 장갑처럼 끼는 긴 손톱 모양의 날)를 꺼내 들고 보란 듯이 손에 꼈다.
그리고는 내 곁에 다가오자마자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무작정 내 상반신을 노리고 찔러왔다.
이들의 심성이라면 왠지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기에 나는 상반신을 회전하듯 뒤로 젖히며 두 팔로 매괴의 왼다리를 후려쳤다.
“컥!”
단 일 수에 매괴가 다리를 부여잡고 원 밖으로 튕겨져나가자 매괴를 따르는 무리의 동요가 보였다. 예의라도 갖췄으면 그나마 조금 더 버틸 것을 괜히 기습을 자초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지는 개망신을 가져왔으니 이만저만 자존심 상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매괴는 벌떡 일어나며 성난 불곰처럼 나에게 쇄도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왼다리가 절룩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체를 반원으로 젖히면서 생긴 원심력과 주먹 힘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과였다.
“죽어!”
눈에 핏발이 서린 것을 보니 어지간히 당황스럽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철수조로 내 얼굴을 찢어발길 듯이 휘두르자 나는 그의 왼쪽 팔목을 순식간에 낚아채서 손바닥을 오른손으로 밀어 버렸다.
팔목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손바닥을 뒤로 밀어 버린 형태이니 손바닥이 뒤로 완전히 꺾였다. 보통 움직임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형태가 되자 고통이 밀려오는지 매괴는 상처입은 곰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반대쪽 철수조로 나를 후려치려 하자 나는 그 손목마저 붙잡고 그의 안면에 정권을 후려쳤다. 부러진 이빨이 튀어나왔고 코뼈가 부러졌다. 코피까지 흐르자 전쟁터의 시체도 이보다 괴기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그만…….”
부러진 이빨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는 기고만장할 때와 달리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너는 상대가 그만이라고 외치면 그만했나?”
다시 정권이 안면을 후려쳤다.
“대, 대인……. 그만…….”
“나는 대인이 아니다!”
다시 정권이 안면을 후려치자 말도 제대로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매괴는 간신히 숨만 남아 나에게 자비를 구했다.
“자……. 장군……. 목숨만…….”
나는 매괴의 가슴을 발로 차며 밀쳤다. 그러자 간강 무리가 득달같이 달려나와 매괴를 끌고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그들은 아연실색 그 자체였다.
“자 다음은 누가 도전해볼 텐가? 본래 막대한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도박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도박치고는 자신들에게도 무척 유리한 도박 아닌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생각보다 실력이 있고 잔인하다고 여겨서였을까? 괜히 매괴 꼴이 나면 지금의 세력마저 와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일까?
“너희는 지금까지 너무 쉽게 돈을 벌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 힘으로 모든 것을 얻겠다고 나섰다면 그 힘을 나에게 보여봐라.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얼마나 간단한 법칙인가? 아니면 기껏해야 양민만 괴롭힐 줄 아는 여우들이라 호랑이 앞에는 감히 나서지 못하는가?”
“젠장 도저히 못 참겠다!”
내 도발에 다시 한 명이 걸려들었다. 몰차란 목홍이었다. 그는 내게 무작정 달려오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대도를 뽑아들었다. 나는 가는 미소를 지었다.
“내기에 참가한 것을 환영한다.”
“내기고 뭐고 그냥 죽어라!”
완력을 바탕으로 대도를 붕붕 휘두르며 다가오자 피할 공간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공간을 지우기 위해 사방팔방 도를 휘두른다는 것은 곧 도가 움직여야 할 공간이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가 내 옆을 스칠 때 몸통으로 살짝 바깥쪽으로 튕겼다. 철산고 같은 형태라고 할까? 그 상태에서 왼손으로 그의 옷깃을 잡아챘다.
그는 한순간 허공을 날았다. 그러나 날았다는 생각도 잠시 이내 땅바닥에 처박혔다. 유도의 한 손 업어치기였다.
그가 충격을 딛고 일어나려 하자 나는 그의 머리를 걷어찼다. 비명과 함께 원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가자 동생인 소차란 목춘이 기겁하며 달려와 형을 보호했다.
“미친놈이 따로 있었구나…….”
가차없는 행동에 무하의 안석은 기가 질리는 듯했다.
나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손가락 2개를 폈다.
“귀찮다. 두 명씩 와라. 보상을 두 배로 해주마.”
두 품목을 최저가로 얻어갈 수 있다면 은자 수만 냥에 달하는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인육 값이 소 값보다 싼 현실에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일 것이다.
한 명이 겨룰 때보다 둘이 나올 때가 더 승리 가능성이 큰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보상을 두 배로 쳐준다고 한다면 한참 얕잡아 보는 것이었지만 막대한 이윤이 걸리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들을 덕으로, 법으로 교화시킨다고?’
나는 주먹으로 교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