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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52화 (152/257)

00152  (20) 단역기심자견리(但易其心自見理)  =========================================================================

오만한 자신감을 마음껏 천하를 향해 발했다. 나는 문득 백성의 눈초리가 궁금했다. 풍파를 직접 맞이해야 할 백성은 나를 어찌 생각할까? 그들은 동음(同音)으로 화답했다.

“와!”

기대하지도 않았던 거대한 함성이었다. 오만하리만치 자부심 가득한 내 표정은 외려 백성에게 신뢰감을 주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이상적인 덕으로 인망을 얻었던 이준경이 결코 얻을 수 없는 힘이었다. 이른바 카리스마, 즉 절대적인 실력에 기인한 권위였다. 어찌 보면 위험한 외줄 타기였다. 인망은 성패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실력으로 만든 권위는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내가 그 정도의 인물인가 수도 없이 고민했다.

여포는 마초와 최후의 일전을 벌이면서 ‘나니까 가능하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과연 그다운 호기로운 말이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자신을 너무나 냉철하게 관조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나니까 가능하다.’

여포가 귓전에 대고 힘을 불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방정실에게 첫 명령을 내렸다.

“일대에 소문을 내라.”

“무슨 소문입니까?”

“건성에서 동경으로 가야 할 전매품(專賣品)을 모두 경매에 부치겠다고 알려라. 동경의 시가보다 최소한 2할은 싸게 경매에 내놓을 것이고 덧붙이고.”

“군비를 충당하기 위함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관과 적이 되면서까지 전매품을 사러 올 간 큰 상인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있다.”

“혹여 따로 아시는 분들이라도 있습니까?”

아무리 질 좋은 전매품이라도 사주는 자가 없다면 그저 그림의 떡인 셈이다. 방정실은 내가 어디 숨겨둔 연줄이라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송에 국한하는가? 안남, 왜, 고려가 있고, 서하, 대리, 요, 여진이 있다. 차마고도를 통한 비단길의 서이(西夷) 상인들도 있지. 2할이나 싸다고 하니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아니 그들보다 먼저 강남의 상인들이 몰려들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

이익이 있다면 물불도 개의치 않는 것이 상인들이다. 관에서 막는다고 전매품을 싸게 구할 이 기회를 놓치려 할까? 정체를 숨기고자 대리인을 쓰겠지만, 반드시 입찰에는 참가할 것이다.

“설마……!”

능진은 뭔가 깨달았는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관군의 개입을 더 앞당기실 작정입니까?”

그러자 그 말이 정말이냐며 방정실 역시 눈을 크게 떴다.

“복건에서 건성의 지위는 수부다. 사통팔달의 요지라 방어가 조금 어려운 면이 있지만, 최소한 수만의 병력을 동원해야 점령할 수 있는 곳이지. 그렇다고 수만이 모이길 기다릴 여유가 없다. 다급한 마음에 적들이 서두르길 원한다.”

“전매품은 시간을 두고 얼마든지 비싼 값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내실을 기하며…….”

“천천히 내실을 기하며 일만의 병력을 양성했다고 치자 그 사이 적들은 십만, 아니 그 이상의 병력으로 공격할 것이다. 지금 건성의 병력은 모두 얼마나 되지?”

“2만이 조금 넘습니다.”

3만은 된다고 들었는데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중국 특유의 허풍이었던지 아니면 장부상 군병과 실제 군병의 차이가 그만큼 난다는 뜻일 것이다. 모병제니 군병의 숫자를 조작할수록 월급을 횡령할 수 있다.

“어제까지 기준으로 21,315명입니다. 그런데 그중 1,401명이 귀환하지 못했지요. 장군에게 사로잡힌 기병들입니다. 본래 장부상 건주에 배치된 병사는 32,101명으로 모자란 숫자의 월급은 모두 현관에게 들어갔습니다. 그 돈을 현관은 채경, 채구 부자의 생신강(生辰綱)에 쏟아부었지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장경이 나섰다. 장경의 정확한 대답이 나에게 호감을 살 것이라 여겼던 것인지 방정실은 어떠냐며 어깨를 으쓱였다. 채경, 채구 부자의 호감을 사기 위해 나름 비자금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을 이런 식으로 마련했다고 하니 송의 뿌리는 이미 근본부터 썩어 있었다.

“백성이 얼마나 상했을까 걱정하기보다 전매품이 제때 올라오지 못할까 걱정하는 이들이다. 대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역은 아마도 강주가 되겠지.”

“맞습니다. 게다가 강주는 강남의 산물이 모두 모이는 집산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복건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지요. 강주부윤 채구는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채구가 거느린 병력은 두 갈래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강주에 근거지를 둔 1천 척의 수군 선단과 3만의 수병으로 장강과 파양호 일대에서는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 정예병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남하하여 일대의 수운을 가로막는다면 아무리 건성이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1천 척의 수군 선단. 3만의 정예 수병이라……. 방 압사, 잘 알겠다. 남은 하나는 무엇인가?”

강주(시상) 일대를 수군 기지로 처음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은 원 역사에서는 주유였고, 내가 회귀한 이후는 내가 직접 입안했다. 그만큼 입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았다.

“남창(南昌)을 지키는 4만의 금군입니다.”

“남창……. 남당(南唐)의 도성이 한때 그곳에 자리 잡았었지. 남창에 4만이나 되는 금군이 머무르는 것은 설마 도자기 때문은 아니겠고, 광산 때문이겠지?”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화석강의 시작이자 강남의 대도(大都)인 항주에 10만의 금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강주의 3만 수군과 남창의 4만 금군을 양손에 거느린 채구가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성이 복건에서는 제일 단단하다고 하지만 천하의 뭇 대성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요.”

채구가 육군과 수군을 모두 쥐고 있으니 일대에서는 감히 대적할 자가 없기는 하겠다. 그런 것을 고려하고 채경이 보냈을 테지만 말이다. 강주에 감옥이 많았고, 수호지의 인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창과 강주는 파양호 남북에 자리하며 치아와 잇몸처럼 서로 보완해줄 수 있는 절묘한 곳이라 할 수 있었기에 전략적으로 그렇게 병사를 배치한 것은 이해가 간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남창의 남부를 가로지르는 무이산맥은 금광과 은광, 철광이 산재했다. 본래 도자기와 직물로 유명했지만, 광산이 속속 발견되면서 금은 수공예품까지 절로 유명해지니 그야말로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였다.

“건성의 실제 병력은 2만, 그것도 노약자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나는 빠르게 군을 개편하겠다. 소수가 되더라도 정예병을 지향하겠다. 그러나 채구는 소수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반드시 건성으로 밀려올 것이다. 아니 채경이 강권할지도 모른다. 큰 공을 세울 기회이며 동관이 잡고 있는 북방 병권에 대적할 남방 병권의 탄생이기도 하다. 아무리 같이 권력을 나누고 있다지만 무려 15만의 병력을 휘하에 두고 있는 동관이 껄끄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군을 떠나고자 하는 자들은 적을 것입니다. 20년이 넘도록 군에서 복무한 노병들은 이제 와 농사를 지을 여력이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다 생각이 있다.”

나는 동헌을 둘러보았다. 창을 든 병사의 절반 이상은 마흔이 넘어 보였다. 그들은 내가 어떤 조처를 내릴까 싶어 조마조마한 기색이었다.

“순검(巡檢)을 더욱 키우겠다.”

“순검이라 하시면…….”

순검은 경찰과 다를 바가 없지만, 민생에 전념하기보다 권력자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다. 정적을 사찰(査察)하고, 무고한 자들을 괴롭혔다. 때로는 군인의 역할도 수행했는데 관승이 본래 순검으로 시작한 것을 보면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함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순검을 나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기로 했다.

“순검은 백성을 보호하고 지킨다. 군대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라는 것이 아니다. 도적과 파락호, 온갖 범죄자들로부터 마을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백성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아무 문제 없는 평화로운 마을이라면 농사를 돌보며 탁주를 한 사발 같이 나누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진짜 전투는 갈고 닦은 정예로만 상대할 것이다. 항우가 3만의 정예로 서초패왕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신의 십면매복(十面埋伏)이 대응책으로 다시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인가 의문을 갖곤 했다.

인해전술로 승리를 얻었다는 것은 결국 병사의 값어치가 그 정도라는 말과 같다. 지휘관에게는 승리의 영광이 남을지 몰라도 죽은 병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최소한의 인명으로 승리를 거둘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뛰어난 모사가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가후는 나의 스승이라 불릴만했다. 그는 대회전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 희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체면만 버린다면 승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변했다. 정치와 외교는 젖혀둔 채, 전쟁 오직 그 하나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장군께서는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요를 정벌하기 위해서는 100만의 병사도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모병하고 있는 동관이 들으면 뜨끔하겠습니다.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장군의 생각은 참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정말 훌륭하고 뛰어난 장군이 병사를 이끈다면 얼마든지 대병을 상대할 수 있음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군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우리 모두 보았지요. 장군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방정실이 두 손을 모으며 수락을 나타내자 나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나는 복주의 백성에게 빚을 졌다. 그들에게 빚을 갚을 것이다. 그 일은 내가 내리는 어떠한 명령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과연…….”

방정실은 흡족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기도 중요합니다. 특히나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장군께서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쓴 복주인의 재물을 비싼 값에 사들여 되돌려 주신다면 건주인들도 장군을 우러러볼 것입니다.”

“또 하나, 전매품을 제외한 모든 물산은 애초에 약속했던 대로 공평하게 나눌 것이다.”

다들 흐뭇하게 웃다가도 이어진 명령이 너무 무리하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방정실이 그들을 대변하여 질문했다.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 대체 병력을 무엇으로 유지하려 하십니까? 절반을 퇴역시켜도 일만이 남습니다. 아니 퇴역병을 순검으로 고용한다고 했으니 그들의 급료도 계속 지급해야 하는 셈입니다. 전매품을 팔아 지급을 한다고 해도 당장 다음 달부터는 이들에게 지급할 돈이 없습니다.”

“원하는 자는 자신의 몫을 우리에게 팔도록 한다.”

이해가 쉽게 가지 않는지 다들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자(關子)를 발행하겠다. 지금 당장 재물이 필요치 않은 자는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이자를 붙여주겠다. 본인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

“관자라면 익주에서 쓰이고 있다는 지폐(紙幣)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송나라는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대였다. 그중 익주는 다른 곳에 비해 물가가 낮아 철전(鐵錢)을 주로 썼는데, 대량의 물건을 거래하려면 다량의 철전이 필요하여 상인들이 불편함을 호소했다. 관에서 아무런 대응이 없자 익주의 대상인 16명이 조합을 결성하고 조합 이름으로 어음의 일종인 관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사설 화폐나 다름없었지만, 점차 그 편함이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관자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여 공인 화폐의 한 종류로 인정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관이 주도하여 정책을 실험했지만, 화폐 제도를 깊게 이해하지 못하고 남발하는 바람에 가치가 폭락하여 실패한 바가 있었다. 오히려 상인 조합만 못하다는 비아냥만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익주에서 발행한 관자만이 다른 지역에서 소수 통용되고 있었다. 물론 지역을 주름잡는 대상인들이 자기 지역에서 관자를 발행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익주처럼 일시에 단합하면 모를까 각종 이해관계로 얽혀 논의만 하다가 무산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나는 거기에 중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를 넣기로 했다.

자신의 몫을 정부에 그냥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이자가 올라간다. 도박의 개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도박이 아니다. 투자자는 투자처가 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승리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투자가가, 인재가, 사람이 몰려들 것이며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이다.

미심쩍은 이들은 처음에는 극히 적은 돈을 예치하겠지만, 승리가 계속되면 승리의 가능성을 더 높이기 위해 이들은 투자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승리를 위해 모두가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장경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셈법인지 짐작했던 모양이다. 침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나는 가까운 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성현은 도를 얻기 위해 욕심을 멀리하라 했지. 그러나 그것이 현세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욕심을 멀리할 수 없다면 나는 욕심에 재갈을 채우겠다.”

칼은 유용한 도구인가? 흉기인가?

나는 이미 답을 내렸다.

============================ 작품 후기 ============================

추석 중에 미리 예고해두었던 신작 예정 글 중 삼국지를 소재로 한 프롤로그를 까페에 올렸습니다. 연재 방향이 궁금하신 분은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고려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최소 이틀에 한 편 이상은 나올 수 있도록 속도를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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