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7 (19) 이세동조(異世同調) =========================================================================
기병들이 점차 가까워지자 장청은 허리춤에 묵직하게 걸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청은 양손에 서넛의 돌을 잡아 들었는데 하나같이 넓적하고 매끈한 타원형 모양새였다.
어릴 적 물가에서 동무들과 돌 튕기기를 할 때면 골라잡으려고 애쓰던 그런 돌들이었는데 장청은 이런 돌을 비황석(飛蝗石)이라고 부르며 틈틈이 주었었다.
돌을 던지면 마치 메뚜기가 하늘을 날 듯 날아간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진짜로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던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메뚜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듯이 돌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지정한 목표물에 정확히 맞췄다. 더구나 목표물로 지정한 나무를 살펴보니 패인 흔적이 있었는데, 넓적한 타원형 돌이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갔다는 방증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돌 던지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인간이 최초로 발명한 투사병기가 돌팔매라고 하는데 그런 돌팔매가 궁극으로 진화한 것이 지금 장청의 자세라고 하겠다.
“갑니다!”
장청의 오른 손목이 쾌속하게 움직였다. 두 개의 비황석이 순식간에 두 개의 원하는 목표를 맞췄다.
“으악!”
비황석이 이마에 정확하게 적중하자 비명을 지르며 두 명의 기병이 낙마했다. 주인을 잃은 말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는데, 나는 두 말의 고삐를 재빨리 낚아챘다. 힘으로 말들의 질주를 잠시 늦춘 사이, 장청이 한 마리에 올라탔다. 내가 장청이 탄 말의 고삐를 놓자, 장청은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기병과 나란히 협곡으로 달리는 모양새였다.
나 역시 남은 말에 재빨리 올라탔다. 말이 중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품종이 아니었다. 이른바 차마무역을 통해 서역에서 들어온 말이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말에 올라타자 나는 호연지기가 들끓어 올랐다. 내 앞을 가로막는 무엇이라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내가 말에 올라타자마자 두 명의 기병이 창을 곧추세우고 달려들었다.
“으랏차!”
몸을 절묘하게 비틀며 두 개의 창날을 양팔에 끼고는 허리를 좌우로 회전했다. 기병은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힘을 이기지 못했다. 창대가 부러지면서 기병 둘이 다시 말에서 낙마했다. 나는 부러진 창날 두 자루를 바로 잡고 팔을 수평으로 핀 채,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콜로세움을 가로지르는 전차가 되었다. 양손을 수평으로 뻗은 상태라 고삐를 잡지 못하니 허벅지로 힘을 주며 말을 조정했다. 내 처리를 뒤에 맡기려 했던 앞선 기병들은 뒤에서 연이어 비명이 들리자 뒤를 돌아보았고, 사색이 되어 말을 옆으로 선회하려 했다. 그러나 한데 뭉쳐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무리한 선회를 하면 옆 사람과 엉키게 된다.
아군끼리 부딪쳐 쓰러지고, 낙마하는 자가 속출했다.
내가 선두와 중간 대열 사이에서 선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면, 먼저 선두로 치고 나간 장청은 틈이 날 때마다 돌을 던지며 군관들을 차례로 낙마시켰다.
손놀림 한 번에 군관이 한 명씩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장청이 돌을 날리는 시늉만 하여도 머리를 움츠리거나 애써 말 고삐를 돌리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단 두 명에게 휘둘리는 것이 분해서였을까? 기병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년의 군관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독려했지만 지금 와서 진형을 바꾸거나 진로를 바꾸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노린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임시로 진을 친 곳이 건성에서 10리 근방, 협곡은 건성에서 8리 떨어져 있다. 건성의 해자 역할을 담당하는 민강에서 협곡까지 길게 잡아야 6리에서 7리다. 평균으로 따지자면 대략 2.5km 정도다.
성문이 열리자마자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경주마의 평균 초속이 15m라는 기록이 있으니, 그것을 토대로 계산하면 전력을 다해 달리는 말은 3분 이내에 협곡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것은 즉, 지휘관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순간, 이미 기병들은 우리를 쫓아 협곡으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새 장청을 따라잡았다. 말은 무리한 기동에 숨소리가 거칠어 가고 있었다. 앞으로 몇 분 정도면 이 말은 더 달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몇 분으로 충분했다.
나와 장청은 재물이 가득 담긴 수레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멈춰라! 장애물이다!”
선두에선 기병들이 수레를 보고 소리쳤다. 우리는 수레를 배치하며 미리 열어둔 가장자리로 달렸지만, 수가 많은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기병들이 협곡으로 밀려들었다.
“매복이 있을지도 모른다. 매복을 조심하라!”
지휘관이 영 생각 없는 위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두의 기병은 말 고삐를 당기며 수레를 중심으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나와 장청이 도망치지 않고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과 매복을 조심하라는 지휘관의 말에 경계심을 최고조로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병이 멈춰선 이상 기병의 이점은 없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그들의 시선을 현혹하는 것이 있었다. 주위에 널브러진 수레에 상자들이 활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하나같이 재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먼저 손을 대지 않았다. 이것에 손을 대는 순간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는지도 몰랐다.
아무리 막장인 국가라도 대개 기병은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었다. 유지비가 많이 들지만 강력하기 때문이다. 기병만 있었다면 우리는 섣불리 기습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이다! 은이다!”
뒤늦게 협곡으로 진입한 보병들은 매복이 있을 것이라는 지휘관의 엄명에도 바로 눈앞에 널려진 재물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지금 챙길 수 없다면 나중에는 그저 손가락만 빨아야 할 처지라고 생각했는지 다투어 수레로 달리기 시작했다.
군관 하나가 달리는 병사를 베었지만, 먼저 재물을 손에 넣은 병사가 기쁨에 괴성을 지르자 대오는 무너졌고, 기병들과 뒤섞여 꼼짝달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머니에 더 넣을 수 없어 잡고 있던 창까지 던지고 동전을 양손에 잔뜩 움켜쥔 모습은 차라리 희극처럼 여겨졌다.
나는 오른손을 높이 올렸다. 그리고 전방의 아비규환을 보며 혀를 차는 장청에게 말했다.
“나라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공평하게 나눠준다는 말만 했더라도 우리는 어려운 전투를 했을 것이다.”
내 손이 수직을 갈랐다.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병사들이 밀려들었다. 마치 그물을 치듯 후미를 가장 먼저 좁히며 달려들었는데, 지휘관이 대응할 것을 주문했지만, 기병도 보병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보병들은 이러했다. 창을 들자니, 남들과의 경쟁에서 얻은 재물을 버려야 한다. 빨리 움직이자니 허리춤에 쑤셔 넣은 보화가 거치적거렸다. 그래도 놓칠 수 없었다. 경쟁자가 가져갈 것이니까. 그러다 싸우기를 포기하고 후방으로 도주하는 자가 생겨났다. 무사히 탈영할 수 있다면 평생 먹고 살만한 재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병들이 보인 무법 행동에 기병들은 선회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우리 병사들이 근접하자, 말을 포기하고 칼을 빼든 자들까지 나올 정도였다.
“송은 요보다 인구가 20배나 많다. 군대는 3배 이상 많았지. 부(副)? 천하의 재물이 모두 송에 있었다. 그런데 송은 요에게 평화를 구걸해야 했다. 지금 보이는 저 모습. 저것이 송이다.”
송 태조는 정병주의(精兵主義)를 채택하여 중앙군인 금군 20만, 지방군인 상군 18만을 후대에 물려주었다. 그러나 송이 요, 서하 등과 전쟁을 치르면서 정병주의는 모병제로 변경된다.
모병제는 실업구제책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은 병사로 자원했다. 그렇게 늘어나기 시작한 병사가 인종 시절에 이르러 금군 82만, 상군 44만, 도합 126만명이라는 고금에서 보기 드문 숫자를 자랑하게 된다. 수호전에서 왕진과 임충 등이 80만 금군 교두라는 호칭을 받게 된 것이 빈말은 아니라는 말이다.
병사의 숫자만으로 따지자면 온 세계를 상대로 싸워도 될만하다. 그런데도 서하와 요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중앙군이고 지방군이고 할 것 없이 먹고살기 어려운 노약자 태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형세호(形勢戶, 토호)의 요청을 받아들여 중앙에서 내려온 모병 명령을 서류상으로 구색만 맞췄다. 노동력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대지주들은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압력은 거셌다. 그래서 명목상으로나마 홀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노약자들을 구제한다며 병사로 추천하면 지역 주민은 선정을 베푼다며 만세를 불렀다. 군대인지 복지시설인지 모를 판이 된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바로 그러한 폐단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호전에서 관군이 양산박에게 번번이 밀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북송 말기에는 관군보다 개인적으로 모집한 의용병이 더 잘 싸우는 예를 볼 수 있다. 악비의 악가군, 이강의 의용병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도 끼자.”
내가 앞으로 튀어 나가자 장청이 허겁지겁 뒤따랐다. 내가 노리는 것은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후퇴를 시도하는 지휘관이었다.
‘양군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전투를 벌이는 경우, 그 승패의 향방이 어찌 되든 한 번의 전투로 승부를 보는 것은 드물다.’
특히 튼튼한 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승리로 건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건성을 당장 얻으려고 했다면 병사들이 건성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려 성 안을 휘저었으면 가능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병사들의 힘으로, 아니 우리라는 집단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모병이 아니라 의용병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저 높은 곳, 누군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의욕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장청이 비황석을 쉬지 않고 날리며 앞길을 냈다.
내가 쫓아오는 것을 감지한 지휘관은 거리가 좁혀지자 당황한 표정으로 말에서 내려,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풀썩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장청이 비황석을 날려 정확하게 그의 뒤통수를 맞춘 것이다.
나는 서슴지 않고 지휘관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 목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지휘관이 죽었다! 계속 싸우겠다면 너희도 똑같이 목을 잘라주마!”
재물에 눈이 뒤집혀 도망칠 궁리만 했지 싸울 의욕이 별로 없던 보병들은 항복하면 소지품을 빼앗길까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도망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결사적으로 항전하는 것은 수십 기의 기병이었지만 숫자에서 밀리자 속속 항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방으로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항복하는 자는 소지품을 인정하겠다!”
도망치던 자 중 몇몇이 움찔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불패군으로 들어온다면 건성에 모인 막대한 재물을 나눌 권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도망친다면 적이라 간주하고 끝까지 추격하여 죽이겠다!”
내 외침에 장청이 기겁하며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아니, 이번 작전에 쓰인 재물은 복주 백성에게 그대로 돌려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그대로 인정하면 나중에 복주 백성을 무슨 낯으로 보려 하십니까? 그리고 저들을 보십시오. 젊은이는 찾아보기 어렵고 다들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저런 자들을 병사로 받아들이시겠다고요?”
“물론 잘 알고 있다. 나는 복주 백성과의 약속을 어길 생각도 없다. 좀 더 두고 보아라.”
“아니 소지품을 인정해준다고 하면서 약속을 어찌 지키겠다는 것인지…….”
장청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지휘관의 머리를 저만치 던져 버리고, 손가락 하나를 폈다.
“불패군에 자진해서 들어오면 은 1냥을 준다. 병사 한 명을 추천하여 함께 오면 은 반 냥을 더 준다. 추천한 병사가 다른 병사를 데리고 오면 은 반 냥을 더 준다. 그리고 너희가 챙긴 소지품. 그 소지품을 다른 고장으로 가서 팔아봐야 그 출처가 불패군인 이상, 사기를 당하거나 제값에 거래되기 어려울 것이다. 소지품의 감정을 거쳐 제값에 은화로 쳐준다.”
이 시기 금 1냥이 은 12냥 정도였고, 은 1냥이 동전 3000문 정도였다고 한다. 은 1냥은 쌀 5섬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는데, 노비의 1년 치 소득이 은 1냥 정도, 보통의 자영농이 쌀을 팔아 거둬들이는 연수익이 은 4~5냥 정도였다. 현대로 치자면 평균 월급의 3개월 치 정도를 입사 비용으로 지급하는 것이라고 할까? 게다가…….
‘다단계 성과제…….’
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장청은 내 외침을 듣고 거의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아니, 이소, 이강 부자도 내 제안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우리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습니까!”
이소는 참지 못하고 나에게 다가와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