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9 (17) 남도풍운 =========================================================================
치기 어린 말일까? 예전의 내가 품었던 신념을 답습하겠다고 다짐했던 것과 비교하면 나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척준경 본인이었다면 당연한 선택지라고 여겼을 법도 하다.
그리고 그 척준경은 지금의 나다.
이준경의 생각과 척준경의 생각이 혼재된 것을 보면 이성과 감성의 대립이 내 머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상상도 해본다. 그것은 마치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프랑스 사상가, 알베르 소렐(1842~1906)의 금언(金言)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 또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상반된 해결책이 있다. 세계를 자신의 정책에 맞도록 상상하는 사람과 자신의 정책을 세상의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사람이다. 이 둘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각을 가지고 있고, 누구도 무엇이 정답이라고 확증할 수 없다.
고민을 끝냈다고 생각하면서도 과거와 행동의 차이가 드러나는 점은 바로 이런 것으로 생각했다. 과거의 나는 충분한 명분과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내 정책’을 세계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그때와 다르다. 행동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기 위한 명분과 권력이 없다. 그렇다면 내 힘을 세상의 현실에 맞게 휘둘러 변화를 유도하는 길이 최선이라는 말이 된다.
‘그 방법뿐일까?’
미국의 유명한 사학자, 자크 바전(1907~2012)은 서양 문화사 500년을 담은 ‘새벽에서 황혼까지’에서 나폴레옹의 명언을 수록한 적이 있었다. 짧고 강렬한 문구여서 기억에 남았다.
-내 아들은 많은 역사서를 읽고 사색해야 한다. 오직 역사만이 진정한 철학이다.
과거 내가 한 제국 말기를 경험하면서 역사에 본을 보이겠다는 신념을 지니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치를 신봉했기 때문이다.
역사만이 진정한 철학이라는 의미는 대체 무엇이었던가?
알베르 소렐은 역사를 쓰려면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를 먼저 연구하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영국의 철학자, 칼라일(1795~1881)이 자국의 유명한 역사소설가, 월터 스콧(1771~1832)을 배워야 유럽의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월터 스콧은 역사가 왕과 같은 권력자들의 선택에 의해 이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평범한 대중들 역시 그 역사의 주체이고, 나름의 변화 의식이 있었음을 소설로 풀어냈다.
기존의 역사학자가 실증(實證)에 입각하여 무미건조한 결론을 내놓았다면, 소설가들은 그런 역사학자들에게 ‘세상 물정’이 가미되지 못한 역사는 교훈 없는 지식 나열 백과사전일 뿐이라는 교훈을 안겨 준 것이다. 그래서는 누구도 역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역사가 철학인 이유는 과거의 예를 통해 지금을 살아갈 지혜를 얻는다는 것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 역사는 대중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근대 이후, 철학자들은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문화, 인정(人情), 언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형태만 바꿔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망각하는 것은 역사의 결과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흔히 소설을 쓰면 기승전결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역사 역시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역사는 소설처럼 읽혀야 한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철학이 되기 위해서는 공감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만 알아서는 결코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초의 이준경도 나고, 고려의 척준경도 나다. 대한민국의 이준경 역시 나다.’
초의 등장으로 중원의 역사가 크게 흔들렸다고 생각했지만,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는 내가 알던 실제 역사로 되돌아왔다. 그것으로 내가 한 일이 무의미해졌다는 것인가? 나는 일전에 같은 고민을 하면서 시도 자체가 중요했다는 것을 다시 깨달은 바가 있다.
‘역사가 바뀌었고, 그 역사가 지금이다. 그 역사를 배운 것이 현대의 이준경.’
어쩌면 세 명의 이준경은 동 시간대를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뀐 과거는 현대의 이준경을 통해 보정되고, 초의 이준경과 고려의 척준경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역사의 철학을 따르며 나답게 행동하는 것.’
월터 스콧은 역사 소설, 아이반호(Ivanhoe)를 통해 역사 논문보다 많은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다. 내가 수호전에 뛰어들려는 생각 역시 즉흥적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생각에서였다.
이 시기 출현한 삼국지 소설은 이미 삼국지의 형태가 아니라 사국지로 불리고 있었다. 한 말, 영웅들이 할거하던 중원은 초 제국의 성립으로 막을 내린다. 실록의 행방은 묘연하여 공식적인 사서는 단절되었지만 모든 인민의 입까지 막을 수 없었기에 구전으로 꾸준히 전해 오던 것이 극과 소설로 만들어졌고, 아련한 향수를 만들어냈다.
나는 그러한 향수가 곧 역사의 철학과도 직결된다고 믿었다. 관심을 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고, 권력자들이 그토록 묻어두고자 했던 이유 역시 낱낱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수호전의 참전 역시 똑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사대기서 하면 수호전과 삼국지연의, 서유기, 금병매를 가리킨다. 그중 서유기는 신화적인 성격이고, 풍자적인 요소도 많아 내가 굳이 끼어들 필요성이 없다. 삼국지는 이미 사국지가 되면서 내 의도가 반영되었다.
남은 것은 수호전과 금병매인데 공교롭게도 이 두 소설의 배경은 같고 나와 동시대다.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어쩌면 이건 하늘의 교묘한 안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두 소설 다 부패한 사회상을 반영했지만, 그 방법이 읽는 이로 하여금 통쾌보다는 씁쓸함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아, 삼국지보다 덜 읽힌 것이 사실이었다. 반인륜적인 범죄를 모의하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등장시키면서 그 이면에 담긴 비판 정신보다 현실의 냉혹함과 절망을 투영한다.
그것을 깨고 싶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 기회가 있을지 시기를 재고 있었는데 아주 좋은 기회가 내 앞에 나타났다. 척준경이 역사 전면에 다시 등장할 2년 후까지 나는 중원 야사(野史)를 다시 쓸 자격을 얻은 것이다.
“하하하!‘
곽여는 크게 웃었다. 내 답이 정말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유재 역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확신하겠소.”
“어떤 것을 말입니까?”
“기실 장군을 계속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의심을 거둘 수 있게 되었단 말이오.”
강보는 무슨 말인가 싶었던 모양이다. 곽여는 웃음을 멈추고 유재의 말을 이었다.
“장군이 이자위의 손서라는 것과 이자겸의 손발 노릇을 하는 것을 아는데 장군의 진심을 온전하게 믿기는 어려웠소. 탐라를 위한다고 했을 때도 사실은 이자겸이 탐라를 노리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
강보는 내가 이자위의 손녀 사위라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호감이 사라지고 은근한 경계가 들어갔으니 말이다. 인주 이가의 인식이 나쁘긴 나빴던 모양이다.
“그러나 장군의 지금 답변을 듣고서야 의심을 거둘 수 있었소. 이자겸이라면 생각해낼 수 없는 방법이지. 온전한 장군의 생각일터……. 그래서 한 가지 궁금해졌지.”
“무엇을 말입니까?”
“장군은 인주 이가를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소. 나는 믿을 수 없기에 가볍게 넘겼지. 그런데 이제는 조금 믿음이 생겼소.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오. 장군은 인주 이가를 이끌 수 있겠소?”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 보이겠습니다.”
“누굴 위해서?”
곽여가 여유롭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결코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김리는 긴장되는지 침을 삼켰다.
“내자를 위해서입니다.”
“내자? 그게 장군의 대답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답에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니 외려 여유가 생겼다.
“주상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니, 동궁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고려의 백성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크게 보자면…….”
나는 천천히 세 사람을 둘렀다.
“천하 인민을 위해서입니다.”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그 적막을 제일 먼저 깬 것은 이번에도 곽여의 웃음소리였다. 이번에는 아예 박장대소가 터졌는지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으하하! 살면서 지금까지 들어본 대답 중에 가장 재미있고, 거창한 대답이로소이다. 예빈경, 이렇게 웃는 저의 무례를 한 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강보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당히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참을 웃고 나자 곽여는 체신을 갖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큰 꿈을 흉중에 담고 있구려. 장군은 실로 큰 야망가요. 곽여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대담하게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을 것이오. 고려 백성을 위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능변(能辯)이라는 생각만 들었소. 자리에 맞춰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처세술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천하 인민을 거론하니 이는 능변도 처세의 범주도 이미 벗어던져 버렸소. 인주 이가의 일은 단지 그 시작, 아니 그 시작의 범주 안에도 들어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소. 정말 무서운 사람이오. 장군은…….”
곽여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더니 종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탐라의 일도, 송으로 가고자 하는 것도 장군은 그것이 정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여 움직이는 것이구려.”
나는 왠지 곽여의 혼잣말에서 여포와 장료가 생각났다. 공손찬을 돕기 위해 유주로 향했을 때, 전풍과 저수의 전략에 휘말려 역경루를 탈취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장료에게 사지에 가까운 임무를 맡겨야 했고, 장료는 신뢰를 드러내며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여 장군이 말씀하시길 세상에서 가장 대하기 어려운 부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제가 수한 별가의 명령을 기꺼이 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가후는 일찍이 내게 진심이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던 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건이 따른다. 그 진심을 이해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세 명은 충분히 그 조건에 해당하는 위인들이었다.
유재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장군은 왕이 되길 바라는가?”
“그러고자 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유신의 임종 전 한가롭게 바둑을 두던 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신과의 한가로운 대담은 그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보름달이 유난히 밝던 밤, 유신은 나와 바둑 한판을 두자고 했었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젊은 시절,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틈도 없이 달려왔다. 남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면 그것으로 만족했지. 지위가 올라가고 조금씩 뒤를 둘러볼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옳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옛 명신들은 하나같이 사회가 동경하는 부와 명예를 가벼이 여기고 인의를 바로 세우고자 노력했다. 그들이 그런 길을 걸었던 이유를 나는 이 나이가 돼서야 조금 깨닫게 되었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 말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현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먼저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어떠냐? 멋지지 않으냐?
처음에는 막연하게 발해를 다시 세워보겠다는 생각도 했고, 양산박을 전 세계적으로 펼쳐볼 생각도 했다. 나는 신념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사춘기 소년의 치기도 섞여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내가 원한다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큰 것을 놓치고 있었다.
“하늘이 되겠습니다.”
더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더 큰 권한이 필요하다. 나는 계속 역사에 얽매어 겉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