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27화 (127/257)

00127  (17) 남도풍운  =========================================================================

‘마치 성종 시대를 보는 것 같구나. 중화풍(中華風)과 국화풍(國華風)의 대립, 그에 더해 토풍(土風)의 개입까지…….’

고려의 군주 중 유능한 이를 꼽자면 광종, 성종, 문종을 들 수 있다. 그중 성종은 조선 시대 영조나 정조의 탕평책을 미리 구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당시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고려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역대 왕조 중 가장 활발하게 귀화인을 받아들인 국가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중원으로 유학을 다녀온 국내 출신, 자생적으로 유학을 받아들인 식자층이 귀화인과 권력을 두고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귀화인 또는 본류를 중원 유학에 기대고 있는 학자들을 중화풍이라고 불렀고, 기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귀족으로서 유학을 받아들인 계층을 국화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토풍은 전통 학문과 문화를 고수하는 무리로써 대게는 국화풍과 겹치기도 하는데 지방 유지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었고, 대표적인 인물로는 강동 6주 획득의 큰 공을 세운 서희 같은 인물이 꼽힌다.

경주 출신의 신라계 유학자 최승로는 광종이 쌍기 같은 귀화인이나 과거제를 통해 입시한 신진 관료들에게 국정을 맡기는 것으로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일침을 놓은 바가 있는데 이는 권력층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그러한 갈등을 공평한 인사를 통해 해결함으로써 성종은 거란의 1차 침입을 무사히 막아내게 된다.

나는 정치계의 격언을 다시금 떠올렸다.

-위기의 시대에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은 소외된 정치세력이다.

과거나 현대나 이 진리는 통용되어왔다. 현명한 군주는 그러한 진리를 해결하기 위해 몸소 실천한 이들이었다.

지금 고려가 처한 상황이 바로 이와 같다. 숙종 역시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정치 세력 간의 갈등이 너무나 커진 상황이었다. 문벌 귀족의 탄생이 사병 철폐에서 시작되었듯 문벌 귀족의 몰락은 무신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현대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때, 조용하던 주변이 시끌시끌 거리기 시작했다. 몸싸움을 벌이는지 고성과 밀치는 소리도 들렸다. 강보의 눈매가 잔뜩 일그러졌다.

“선택한 방법이 겨우 이것인가?”

구 기관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보고를 기다리기도 전에 강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 기관의 뒤를 쫓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아 있던 인원들도 밖으로 나갔다.

밖은 꽤 장관이었다. 수백 명의 장정이 해창 수부 앞으로 몰려왔는데 그 선두에는 유학자 차림의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설마 이들이 모두 중화풍을 따르고 있다는 것일까?

강보는 하나하나를 둘러보더니 당장에라도 잘근잘근 씹어먹을 것 같은 말투를 선두에 던졌다.

“참으로 가관이로군. 이미 계획에 있었던 것인가?”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학자 중에서도 선두에 선 이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태연하게 인사를 올렸다.

“의령(宜寧)의 호장, 여선재(余善才)가 예빈경께 인사 올립니다.”

여선재라면 의령 여씨의 시조가 되는 사람이었다. 송에서 간의대부를 지낸 인물로 작년(1103년)에 고려로 귀화한 인물이었다. 고려는 그의 귀화를 받아들이면서 의령을 세거지로 내렸었다.

여혜경과 동성(同姓)이 아닌가 싶지만, 한자가 다르다.

“그대가 나에게 인사를 올리러 왔을 때, 뭐라고 했었지? 여생을 편안히 살고 싶어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의령으로 내려왔다고 했지. 그로부터 불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송에서 간의대부를 지냈다는 작자가 이런 치졸한 계획에 가담할 것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시류(時流)는 바로 코앞에서도 바뀌는 법입니다.”

여선재의 짤막한 답변은 강보의 화를 이끌었다. 그는 여선재 뒤의 인물들에게도 돌아가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창녕 호장, 성인보(成仁輔), 진주 기관, 노책(盧冊), 의령 기관, 남군보(南君甫)! 그대들은 모두 당나라 때 귀화한 선조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하동현령(河東縣令) 신안지(愼安之), 그대의 아비는 이십 년 전에 고려로 귀화했지.”

하나같이 현대로 이어지는 쟁쟁한 성씨들이었다. 의령 여씨, 창녕 성씨, 교하 노씨, 의령 남씨, 거창 신씨까지 그 면면이 얼마나 화려한가?

“반란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강보가 크게 소리치자 여선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모두를 위해 좋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위해? 그렇게 좋다면 상소를 올리면 되는 것이다. 유학자란 자가 국익을 어찌 사사로이 해결하려 하는가! 이래서야 백제의 정사암(政事巖)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백제를 좌지우지하던 대성(大姓) 여덟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장소가 정사암이었다. 사사로운 정치는 결국 사사로운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강보가 주장한 것이다.

“송과 고려는 예로부터 순망치한의 관계였습니다. 송이 강해지면 요는 고려를 강하게 압박할 수 없고, 고려로서는 고토 회복의 첫발, 동북평야(함흥평야)로 발을 디딜 수 있습니다.”

“그것과 이번 일이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송은 지금껏 서하와 요를 상대하기 위해 장강 이북에 전력을 집중시켰습니다. 상대적으로 장강 이남은 방관하다시피 했지요. 고려의 중화풍은 생각했습니다. 만약 송이 장강 이남을 온전히 개발할 수 있다면 민 제국의 성세를 잇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당이 실수했던 것은 비단길에 얽매인 나머지 상대적으로 남부의 잠재력을 괄시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미 소주지부의 주면 대인은 ‘응봉국(應奉局)’이란 것을 만들어 북과 남을 잇는 물류망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지금 남부는 여러 해 가뭄이 들어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양곡인데 상대적으로 양곡이 풍족한 국가들이 인근에 있습니다. 안남과 고려, 왜지요.”

“그래서 해창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거쳐 갈 중계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응봉국의 진의(眞義)를 모르고 있었다면 깜빡 넘어갔을 정도로 여선재의 입심은 대단했다. 여혜경을 흘낏 보니 여선재의 발언이 무척 기꺼웠던 모양인지 슬며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예빈경께서 승낙만 하신다면 도성으로 파발이 띄워질 것입니다. 전하가 남경에서 환궁하시는 즉시, 예부상서와 중서시랑이 소를 올려 해창의 관할을 진주목에게 맡겨달라고 청할 것입니다. 예빈경께서 지고 있던 막중한 임무 하나가 덜어지는 셈이지요. 결국, 저희가 원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벽란도에 치중되어 있던 상로(商路)가 남부에도 열려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왕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언컨대 조세는 늘어날 것이고 송과의 우의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계항은 이곳 해창으로 삼지 않습니다. 지금의 역할에 충실하되 그 규모가 조금 더 커질 뿐이지요.”

강보는 정면을 노려보다가 무엇이 떠오르는지 이내 큰 소리로 외쳤다.

“탐라를 노리는구나! 나에게 주려 했던 양질의 야명주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오직 탐라뿐이지. 탐라를 청해진으로 삼을 셈인가!”

“맞습니다. 탐라는 일찍이 고려가 포기한 곳으로 그 이유는 척박함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리적인 이점은 상당하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탐라의 개발은 고려에도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교역을 막기 위해 벽란도로 제한했던 조정의 정책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탐라는 송의 일개 주로 귀속될 것이니 말입니다. 만약, 조정에서 탐라를 지금이라도 차지하겠다는 뜻을 밝힌다면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송도 저희도 무리하게 움직일 이유는 전혀 없으니 말입니다.”

두 손을 들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여선재의 표정은 노회하기 그지없었다. 송에서 간의대부까지 지낸 자가 그리 녹록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순히 물러나겠다는 말에 강보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았던 자들이 원한다면 손을 떼겠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재와 곽여의 안색은 찬바람이 돌고 있었다. 이미 나에게 이야기를 들은 지라 여선재의 말을 거기에 끼워 맞춰보았음이 틀림없다. 오랫동안 남해를 지켜온 강보가 조정 사정에 어두운 것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숙종의 시야는 온전히 북방에 있었다.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겼던 갈라전과 탐라 두 곳 중 갈라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요와 여진의 동태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점차 고려가 개입할 여지가 커지고 있었고, 장기적으로 그것이 이익이라는 생각을 굳혔기 때문이다.

남경 순행은 그러기 전에 남부 귀족들을 단속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실제 역사처럼 엄포만 놓다가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러한 숙종의 마음을 읽고 시작한 일이었다. 숙종이 군대를 일으킨다면 기꺼이 군자금을 내놓고, 북으로 관심을 계속 돌릴 것이다. 숙종의 눈에는 당장은 예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남경 순행의 성과가 나타났다고 말이다.

송강의 난이 왜 일어났던가? 금의 위협에도 향락과 사치에 찌든 황제와 측근들의 실정(失政)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 맞춰 장강 이남에서도 대규모 민란이 연거푸 일어난다. 중원에서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때를 꼽으면 열 손가락 안에 틀림없이 들어갈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그런 수탈의 대상에 탐라가 들어 있다. 아니, 안남과 왜도 포함될 수 있다.

북방에서는 바지저고리라고 놀림당하던 송군이지만 해상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수군 규모로만 따지면 당적 할 자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하니 북방은 근근이 지키면서 남부로 뻗어 나가자는 생각은 그리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꺼낸 사람들의 면면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보신(保身)과 영화(榮華)를 위해 시작한 것이다. 그 끝이 어떤 식으로든 파국으로 끝날 것임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에 이르러 탐라가 중국땅이었다는 빌미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 나와 같은 처지에 처한 한국인이 가만히 있을까?

“불가(不可)!”

곽여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속에는 천진난만함까지 담겨 있는지라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가 가진 무게감만큼이나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속세를 떠나 은거하셨다는 분이 조정 일에 왈가불가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작 현령과 호장, 기관 주제에 국익 운운하며 설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오만.”

여선재의 안색이 급변했다. 대놓고 무례하게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곽여는 구 기관에게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반평생을 기관으로 봉직하신 구염 어르신께 청하노니, 이들에게 권무직(權務職, 정원 외 관직)의 의무와 권한을 차나 나누면서 설명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녹봉을 받는 관인과 전시과의 토지만을 받는 관인의 차이점 말입니다.”

“큿.”

나도 모르게 입을 비집고 짧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비꼬는 재주는 가후를 능가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고려의 관직은 조선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편에 속했다. 이는 동정직 또는 권무직이라고 불리는 아전(衙前)들을 실직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족들로서는 관직을 흔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실직 정원을 엄격하게 묶고, 정원 외로 서리(胥吏)를 뽑기 시작했다. 서리는 실무 외에도 지역 유지에 대한 명예 관직 성격도 있었으므로 화합을 위해서라도 남발되는 경향이 생겼다. 성종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는데, 귀화인들에게도 다수 내렸기 때문이다.

실직은 녹봉과 전시과의 토지를 함께 받지만, 권무직은 전시과의 토지만을 받는다. 그것을 언급했다는 것은 즉, 권한도 없는 자들이 낄 자리를 보지 않고 함부로 나댄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말 잘했군. 그래서 대국의 귀빈에게 그리 함부로 대하는 것인가!”

곽여의 신랄한 비판에 여선재의 입이 닫힌 사이, 여혜경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곽여는 예상했는지 당황하지 않았다.

“스스로 귀빈이라 칭하는 사람은 살면서 처음 보았소. 참으로 그 낯짝이 두껍구려. 탐라도, 해창도 그대들에게 맡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소.”

“이놈!”

여혜경은 당장에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분노를 터트렸다. 그러나 곽여는 개의치 않았다.

“대국의 관료라면 응당 유학의 근본을 알고 있을진저, 자존(自尊)과 자만(自慢)은 크게 다르오. 자존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형성되는 내적(內的)인 긍정이라고 할 수 있소. 즉, 내가 행한 행실이 관심과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을 배제하고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소. 그러나 당신과 같은 철면(鐵面)들은 다르오. 행실에는 관심이 없고, 관심과 사랑만 갈구하고 있소.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는 자만심이오. 그러니 그런 당신을 귀빈이라고 떠받드는 자들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소? 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지.”

남은 자들까지 싸잡아 비난당하자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여혜경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호위 장수의 허리춤에 걸린 검을 빼내 곽여의 얼굴에 가져갔다. 다들 흠칫 놀라는 사이 여혜경의 눈에서는 광기가 흘러나왔다.

“네놈의 혓바닥이 참으로 길구나. 대국의 여주지부가 네놈 하나 마음대로 죽이지 못할 것 같으냐!”

그럼에도, 곽여는 웃고 있었다. 그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나에게 맡긴다는 뜻이었다.

나는 상장군 백휘직에게 다가갔다. 호위 무장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나는 그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덩치가 단숨에 나가떨어졌고, 다들 휘둥그레 놀라는 사이, 백휘직의 멱살을 잡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까닭에 멱살을 잡히던 백휘직도 자신이 왜 잡혀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곽여에게 외쳤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복수는 해 드리지요. 공평하게.”

“내 몸값이 백휘직과 같다는 것인가?”

“아아,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같을 수가 없지요. 그럼…….”

나는 백휘직의 멱살을 질질 끌고 홍관에게 다가갔다. 다른 자가 나에게 덤벼들었지만,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그사이 백휘직의 멱살을 더욱 세게 쥐자 더 덤비는 자가 없었다.

황당해하는 홍관의 멱살까지 쥐자, 곽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마음 넓은 내가 양보하도록 하지.”

누가 감히 고관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폭력을 휘두를 생각을 했을까? 이들은 지금까지 입으로 모든 것을 행한 자들이다. 여혜경이 잡고 있는 검의 끝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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