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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25화 (125/257)

00125  (16) 금문우객(金門羽客)  =========================================================================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의 눈에는 각기 묘한 기대감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크게 웃음을 터트린 이는 앞서도 대소를 터트린 바가 있는 곽여였다.

“하하하, 인주 이가에서 알면 장군을 당장 내칠지도 모르겠소. 장군이 이자위의 손녀와 혼례를 치른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자위는 이미 오랜 귀양 생활로 뒷방 늙은이에 불과하오. 가주의 손서(孫壻)라고 해도 고작 사냥개 노릇에 불과할진대……. 아니 장군의 값어치를 봐서는 해청(海靑, 사냥용 매) 정도는 되겠구려. 사냥개에 비하면야 귀하신 몸이지만, 그렇다고 주인과 비견할 수는 없소. 그래도 그런 호기나마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호기를 우리에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오.”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도움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의 충고는 현실적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반골기질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선심을 써주시는 것은 좋으나, 그러한 선심은 달갑지 않습니다.”

중인들은 흠칫했다. 특히 곽여의 안색은 더했다. 당연히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던 호의를 내가 거절했으니 말이다.

“어르신께서는 제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질 것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선심 쓰듯 은혜를 베풀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것이…….”

“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오래도록 정권의 중심부에 선 가문을 이끌겠다고 하다니……. 누가 보아도 바위에 주먹을 찌르는 격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칠성암 주위로 흐르는 내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내 키의 반 만한 거석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활시위를 당기듯 주먹을 어깨너머로 끌었다. 중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한 호흡이 더해진 주먹은 빛살처럼 튕겨져나가며 거석을 맞췄다.

어디선가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김리였다.

그러나 그의 비명에 담긴 의미와 달리 나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극진 가라데를 창시했던 최영의는 20cm 두께의 차돌을 주먹으로 격파할 때,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고 술회했는데 지금의 나도 그와 비슷했다. 그것은 힘과 기술이 정점에 이르러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쩍!

주먹 주변으로 실금이 생기더니 마치 수박을 양손으로 벌린 것처럼 강한 균열이 파문처럼 번져갔다. 나는 신형을 돌려 중인들 앞에 좌정했다. 이미 주먹을 찌를 때부터 결과를 알고 있었던 터라 재차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균열이 커지는 거석처럼 삼 인의 입도 커져만 갔다.

한순간 ‘펑’하는 파열음이 들리더니, 비산한 돌조각들로 말미암아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냇물 소리가 한층 격렬해졌다.

“대다수는 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군가는 그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믿어주는 이도 있겠지요. 집단은 개인에서 출발했고, 집단의 폐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주체 역시 개인입니다. 저는 불가능을 도전하는 용기를 칭찬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능함에도 단지 도전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제 꿈이 허황한 것입니까?”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 (1939년, 미국)’ 라는 영화가 있다. 나는 그 영화를 매우 감명 깊게 보았는데 그 영화의 주인공과 나를 대입시키며 몰입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의견이란 것이 실은 개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개개인의 힘을 능가하는 특정한 일인의 의견으로 둔갑 될 수 있다는 현실 문제 제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고집스러운 이상주의자 개인의 노력이었다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영화에서 이상주의자가 선택한 방법, ‘의사진행방해’라는 미국 특유의 관례가 없었다면 영화를 어떤 식으로 결말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관례, 또는 법을 통해 관철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보다 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 것인지가 더 큰 화두였기 때문이다.

“이것 참……. 내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오.”

곽여의 말은 마치 주변의 동의를 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일개 빚쟁이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이 있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 장군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구려. 동료(同僚),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원하다니…….”

은혜를 베푸는 자는 한 발 빠질 수 있지만, 같은 꿈을 꾸는 자는 다르다. 그들은 이미 하나의 공동 운명체다. 편입될 것인가 아닌가는 각자의 몫이다.

곽여는 유재를 보며 말했다.

“예부시랑께서는 지공거(知貢擧, 과거 시험관)의 임기가 남아 있어 최소한 이번 일에 자의(自意)로 끼기에는 부담이 있소. 지공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치적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관습은 계속 지켜져야만 하오. 이번에 도성으로 돌아가시거든 동궁께 이 몸이 돌아가리라고 전해주시오.”

유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것을 보니 곽여가 어지간히 애를 태운 듯싶었다.

“단, 동궁께서 보위에 오르는 날이 될 것이오. 보위에 오르실 때까지 이 몸을 갈고 닦아 장차 불비불명(不飛不鳴)의 예를 본받고자 하니 그때까지 보중(保重)하시라고 말이오.”

“척 장군을 진심으로 도우실 생각입니까?”

유재의 질문에 곽여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보지 않았소? 바위에 주먹을 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했는데 그 상식을 깨트렸소. 장군은 가능함을 증명했고, 나는 믿어 주는 일만 남은 셈이지.”

“제가 지공거라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척 장군의 면모를 제 머리에서 일신(一新)했으니 이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유재가 툴툴 털며 일어났다. 그것을 기점으로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는 어느덧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칠성암에서 내려오는 내내 별다른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저마다의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다.

해창 본영에 다다르자 우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구 기관이 마중을 나왔다. 구 기관을 보자마자 곽여가 말했다.

“빠른 배를 두 척 준비해주십시오. 하나는 예부시랑께서 도성으로 돌아갈 배편이고, 하나는 제가 이 친구를 데리고, 합포로 갈 것입니다.”

구 기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부시랑의 배편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곽여와 내가 합포로 가겠다는 말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혹여 예빈경을 만나려 합니까?”

“그렇습니다.”

긴장한 구 기관과 달리 곽여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구 기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면 합포로 가도 소용없습니다.”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예빈경이 몸소 함대라도 출전시킨 것입니까?”

곽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구 기관의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그런 것을 보면 예빈경 강보가 밖으로 외유를 나가는 일이 극히 드문 것 같았다.

“이럴 것이 아니라 일단 처소로 드시지요.”

주변이 신경 쓰이는지 구 기관의 언행은 조심스러웠다. 그를 따라 해창 심처(深處)에 들어섰고, 각자 배석하자 그제야 구 기관이 이유를 말해주었다.

“예빈경께서 곧 해창에 당도하실 것입니다.”

“예빈경이 이곳에? 무슨 일로? 조운선이 운항하는 시기도 아닌데…….”

“그것이…….”

구 기관은 난처한 기색을 짓고 있었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가 한창 복잡한 것 같았다. 그러나 보통 이런 경우는 마지못해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곤혹스러운 행동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알려주었다는 면피로 쓰이기 때문이다.

“상장군 백휘직이 예빈경에게 사람을 보냈었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일로 예빈경께서 몸을 움직이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혹여 짐작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되려 곽여와 유재에게 묻고 있는 구 기관이었다. 공교롭게도 곽여와 유재가 움직이고 있을 때, 백휘직도 움직였으니 연관이 있는지 의문을 품어 볼 법도 하다.

‘백휘직이 강보에게 사람을 보냈다. 무슨 뜻일까? 자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뜻일까? 그런데 왜 강보가 해창으로 움직여야 하지?’

이 시점에서 백휘직은 내가 탐라에서 행한 일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그것과 무관하게 강보와 나눌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수병 한 명이 급히 구 기관에게 다가와 귓속말했다. 구 기관의 안색이 급변했다.

“상장군 백휘직이 일백 척의 전선을 이끌고 왔다고!”

강보가 이곳에 오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둘은 이곳에서 비밀 회담이라도 벌일 속셈이었던가? 구 기관은 잠시 이곳에서 쉬고 있으라며 수병을 따라 허둥지둥 떠나갔다. 우리만 남게 되자 곽여와 유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백 상장군과 예빈경이 만난다? 척 장군의 설명에 의하면 탐라와 관계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 싶은데, 일백 척이나 전선을 이끌고 왔다니, 회담이 끝난 후, 탐라로 바로 향하겠다는 뜻일까요?”

“탐라는 무척 큰 섬이라 소리소문없이 접수하기에는 탈이 날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다고 강직한 예빈경이 그들의 뜻대로 순순히 움직일 리도 없지요. 오히려 상황만 알려지면 백 상장군이 낭패를 보게 될 것인데 무슨 꿍꿍이인지 이 몸도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당장에라도 밖에 나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밖을 나가보니 병사 십여 명이 호위를 위한 것인지 감시를 위한 것인지 심처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뚫고 나갈 수는 있었지만,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모험을 걸 수는 없었다.

“기다리세.”

곽여가 팔짱을 끼며 느긋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서성대는 모습에서 초조함을 읽었던 모양이다.

“만약 탐라를 걸고 이권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백 상장군은 예빈경을 설득할 수 없네. 더구나 구 기관이 예빈경에게 우리가 머물고 있다는 것을 미리 귀띔한다면 더더욱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 시간이 촉박한 것을 알지만 모든 것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니 앉아 차나 들게.”

세 사람 모두 강보의 강직함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듯 변심에 대해서는 추호도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헌데 그것을 백 상장군도 잘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백 상장군이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닐까요? 예빈경은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백 상장군의 움직임을 저지하고자 오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

곽여가 잠시 내 질문을 되새기더니 이내 탁자를 양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돌연한 행동에 곁에 있던 김리가 깜짝 놀랐다.

“그렇군. 일리가 있어. 합포는 영동도(嶺東道)에 속해 있다. 경상 지역에 존재하는 도는 모두 세 곳. 그중 수군을 보유하지 못한 곳은 오직 하나지. 그래서 계속해서 수군 기지 설립을 요청했으나 합포와 관할이 겹친다며 기각된 곳이 있다.”

내가 알기로 경상 지역의 수군은 합포 하나로 알고 있었다. 그것을 말해준 사람은 탐라까지 나를 실어다 준 박현이었다. 그런데 곽여는 두 곳이 있다고 말한다. 나로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의문을 풀기 위해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었다.

“자네에게 알려준 이는 서해는 잘아도 동해 사정은 잘 몰랐던 모양이군. 명주(강릉) 김가의 수군은 사실 경주에 본영을 두고 있다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천 년이 넘는 고도, 경주의 해안선이 허술할 리가 있겠는가? 단, 명주 수군은 여진 해적을 막기 위한 일환인 만큼 조정의 재원이 투입되고, 경주의 수군은 경주 귀족들의 사비로 유지되는 사병이지. 간헐적인 왜구의 침략에서 경주를 보호하는 것이 주 임무인 만큼 그 규모는 명주 수군보다 크지 않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네. 조정에서는 경주 수군의 규모가 비교적 작고, 그럼에도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눈감아주고 있지.”

일리가 있었다. 경주와 합포에 수군 기지가 있고, 다른 지역 역시 그것을 본떠 수군 기지를 갖고 싶다는 것인데 대체 어디가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을까? 김리가 그 해답을 말하고 있었다.

“산남도(山南道)가 숙원이었던 수군 기지 확보를 위해 백 상장군에게 호응할 것이란 말입니까? 현 진주목(晉州牧)이 누구였더라…….”

바로 생각이 나지 않는지 김리는 말끝을 흐리고 있었다. 그것을 유재가 받았다. 곽여도 그에 대해 잘 아는지 주거니 받거니가 이어졌다.

“홍관(洪灌), 그 사람이지.”

“홍관이라면 백 상장군과 교감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군. 본관이 당성(당항성, 唐項城, 수원, 화성 일대)이었던가?”

“당 태종이 교류를 위해 고구려에 파견했던 팔학사(八學士) 중 한 사람인 홍천하(洪天河)의 직계라 그런지 자부심이 강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지. 어쩌면 귀화 가문이라는 공통점이 통했는지도 모르겠네.”

“양도와 합포 사이에 끼인 터라 수군을 가지기에는 모호한 지리였지. 어쩌면 백 상장군은 합포 기지 이전을 미끼로 진주목을 끌어들였을지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역사적 사실을 여럿 떠올리게 되었다.

예종이 즉위 1년 차에(1106년) 상주, 경주, 진주로 대변되는 세 개 도를 하나로 통합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것이 경상진주도(慶尙晉州道)라 하여 오늘날 경상도와 거의 유사한 형태를 이루게 된다. 예종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어쩌면 그 의문이 풀리게 되는 계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주목의 관할지는 10주 37현으로 그중에는 거제도와 하동, 사천, 고성 등의 해안가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진주가 육상 교통의 요지라고 하지만 욕심이 있는 자라면 자연 해상 운송도 탐낼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미끼로 산남도의 토호들을 끌어들였다면 이미 그 세력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예빈경 강보는 과연 백휘직을 설득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 답답한 마음만 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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