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0 (16) 금문우객(金門羽客) =========================================================================
그녀는 뒷짐을 쥐고 앞장서며 말했다.
“대잠녀(大潛女)의 부탁도 있거니와, 토지신을 힘을 뿌리칠 수 있는 자는 호신(虎臣)이거나 낭신(狼臣)의 자질인데, 바라옵건대 호신이 현호(賢豪) 하길 기원하는 수밖에 없구려.”
잠녀는 해녀를 탐라에서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대잠녀라면 그런 해녀들의 우두머리 격이라 할 수 있었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 준 그녀를 심방은 그렇게 지칭하고 있었다.
호신은 말 그대로 용맹한 신하를 가리키고, 낭신은 사납고 거친 신하를 가리킨다. 현호는 호걸 중에서 어진 자를 뜻하는데 나는 그 단어에서 그녀가 나에게 부탁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용맹한 자에게 어질기를 부탁한다. 후한 시절이 양신(良臣)의 길이었다면 신은 나에게 현호가 되기를 바라는가?’
나는 그녀가 네게 말한 ‘목적이 없다.’라는 의미의 답을 더 듣고 싶었다. 몇 차례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닫아 버렸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일까?
하긴 자신의 목표를 남에게 묻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껏 주창한 목표들은 진정한 목표라고 부를 수 없을까? 악한 위정자를 징벌하고, 약육강식의 세계사를 개편할 수 있는 시금석을 마련하는 것이 어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상(理想)은 그저 이상이란 뜻일까? 산에서 내려가는 내내,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산을 내려가 해창으로 방향을 잡자, 제법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이들마다 심방을 보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의 인사에 심방 역시 일일이 답해주었고, 뜸해진다 싶으니 내게 말을 걸었다.
“이곳 남해도와 창선도 일대에는 삼심(三心)이라 하여, 백성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한다. 하나는 보다시피 보잘것없는 당집 노파이고…….”
나는 추측으로 두 번째 인물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만나러 가는 구 기관도 마찬가지겠군요.”
그녀는 내 추측이 그리 놀랍지 않았던지 그저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구가(仇家)를 가리키지.”
이 지방에서 세거(世居)하며 호장의 지위를 인정받은 가문인가? 유명한 집안은 언뜻 머릿속에 단편적인 지식이 떠올랐겠지만, 구가는 처음 들었다. 내 머릿속에 없다면 중앙 관직과는 담을 쌓았다는 이야기다.
“기관을 맡는 것은 그것이 음서로 출사할 수 있는 유일한 지방직이기 때문이다. 구가는 대대로 이 일대에 터를 잡고 외부로 나가는 것을 꺼렸다.”
그제야 기관이면서도 해창의 수뇌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갔다. 과거를 정상적으로 치르고 관직에 오르면 임지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한 마디로 그곳으로 가라고 하면 가야 한다. 거기에다 평균 3년이라는 임기까지 정해져 있다.
고향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과거를 치르지 않고 일부러 기관이라는 미관말직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입신양명을 덕목으로 삼는 명문가들이 보자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일 것이다.
기관은 정년이 없다. 미관말직을 평생 하고 싶은 사람은 없기에 적당한 연한이 되면 퇴임을 하는데, 만약 정년이 없는 것을 최대한 이용하여 지역의 실세로 군림한다면 최소한 이 지역에 한해서는 3년이 지나면 떠나는 수령보다 더 무서운 상급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넌지시 정보를 흘리면서 나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일개 기관이라고 얕봤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 그런 사고를 미리 방지하려는 것이다. 나로서는 고마운 노릇이었다.
“마지막으로 보광사(普光寺)가 있다.”
보광사? 절 이름 자체는 정말 흔하디흔한 이름이었다. 전국에 같은 이름의 절만 수십, 수백 개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이상한 것이 있었다. 현대에서 남해 인근 지역에서 출생한 것이 나다. 그래서 친척들이 남해에도 존재했고, 여러 차례 남해를 구경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남해에는 보광사라는 절이 없었다.
혹시 과거에는 있었다가 현대에는 여러 이유로 소실된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내심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싶었다. 그녀의 설명 중 보광사의 창건자를 듣고 나서였다.
“보광사는 원효(元曉) 대사가 창건했다. 초당을 짓고 수행에 전념했는데 어느 날, 관세음보살을 친견(親見)한 후, 감격하여 자신이 머물고 있던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초당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칭했다고 하지. 원효 대사가 관세음보살을 만난 후, 직접 창건했다고 알려진 만큼 백성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로 치자면 보리암(菩提庵)을 가리킨다. 보광사가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보리암으로 개칭된 것이다.
*1660년(현종 1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액(改額) 했다.
나는 원효 대사의 이름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화쟁(和爭), 융다이불일(融多而不一)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백성이 알아듣기 쉽도록 내 주장을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 핵심 단어에 골몰했던 나로서는 화쟁이야말로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시대나 복잡한 정치의 의제를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정치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나의 성공도 반쯤은 시대가 요구한 의제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원효 대사가 과연 ‘화쟁’이란 단어를 다시 사용했을지 그것이 궁금했다. 내가 이미 써먹은 단어였기에 원효 대사라면 다른 단어로 치환했을 가능성이 컸다.
모르는 척 원효 대사에 대해 묻자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내용을 말했다. 그러나 원효의 화쟁과 내 화쟁에는 차이점이 있었다.
‘화쟁(和爭)이냐, 화쟁(和諍)이냐.’
미묘하지만 그 차이는 컸다. 쟁(爭)은 보통 다툼이 물리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행동의 다툼이라고 본다면, 쟁(諍)은 말이나 글로서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효 대사는 다양한 불교 이론들 사이의 다툼을 화해시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비록 두 가지의 의미는 다르지만, 민국이 멸망하고 원효가 그 개념을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그것이 시대를 초월하는 갈등의 공통적인 해결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민국이 기존 정권과 별다를 것 없이 멸망하면서, 화쟁, 융다이불일의 이상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이념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철저히 잘못된 것이었다.
이념의 잘못이 아니라 옳은 이념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없는 그릇된 사회 풍조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그릇된 사회 풍조는 위정자와 기득권의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되었고,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절대 힘의 등장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절대 힘의 등장은 민의 400년 만큼의 영속성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인가? 일대에 한하더라도 강력한 충격을 주는 것이 과연 세계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나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척준경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온전한 역사 속의 척준경인가? 아니다.
지금의 역사가 실제 역사와 다른 평행 역사라면 나는 이미 내가 역사서로만 알고 있던 척준경이 아니다. 그런데도 역사 속의 척준경으로 살고자 했다. 그의 삶을 모방하려고 했다.
민국을 세웠음에도 역사가 본래 역사와 큰 차이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민국을 세운 방식을 지금에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흔한 대체 역사물들이 복원력 운운하며 역사가 바뀌었음에도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이 어이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 경우는 그런 흔한 대체 역사물의 주인공과 별다를 것 없는 상황에 부닥쳤고, 그들의 행동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름대로 목표를 설정했던 것이 오히려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중2병’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가 싶었다.
‘역사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대로 복원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된 것이다.’
어쩌면 현대와 후한말, 지금의 내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를 맹신하며 상대의 지식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틀렸다는 증거를 들이밀어도 그 증거를 어찌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한다. 사서마다 사관의 시각이 개입되고, 오류가 들어가기 때문에 틀린 주장이라 할 수 없지만, 반대로 자신의 증거가 맞는다고 확신할 수도 없게 된다.
현대에서 내가 보고 배운 자료들도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그 시대와 역사의 흐름을 온전히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재단해버리는 우를 범했다.’
화쟁, 융다이불일의 믿음을 지키고 있었다면 범하지 않을 잘못이었다. 결국, 이 시대의 정답은 이 시대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그 정답을 말함에 누구의 편견이나 억압에 속박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민국의 시작이 그러했다. 그렇게 120년의 태평성대가 이루어졌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애초 목표가 내가 지킬 수 있는 태평성대의 최대치까지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면 이미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을 갈고 닦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후인들의 부단한 노력일 것이다.
‘민국의 이름이 희미해진 것도 결국 내가 옳다는 방증이 아닐까?’
내 방식은 전통적인 성군과는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구식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주나라처럼 선양의 미덕을 부르짖었고, 대외적으로는 계절존망을 기치로 삼아 이웃을 핍박하지 않고 더불어 살고자 했다. 옛 정치는 위정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평화로움이 선정이라 했는데, 세월이 가면서 성군의 의미는 없을 때, 빈자리가 큰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한 중소기업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퇴사했다. 그는 평소에 두 명, 세 명 몫을 혼자 해낸 인재였기에 후임이 들어와도 예전 그만 못한 성과를 보였다. 사장은 후임을 다그치면서 예전 직원을 그리워했다.
반면, 한 대기업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퇴사했다. 그는 두 명, 세 명 몫을 혼자 해내는 인재였다. 후임이 들어와서 그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사장은 관련 부서 직원을 모두 모아 각자 자신이 하는 업무를 적어내라고 했고, 한 사람이 여러 사람 몫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의 문제점을 토의했다.
‘생산적인 활동’은 그것을 운용하는 집단, 또는 구성원의 자발적인 개선 참여만이 불합리한 요소를 적시(摘示)하고 제거할 수 있는 해답이 있다는 소신에 의해서였다. 서로 머리를 맞대서 자발적인 결과를 도출하자 불필요한 업무가 줄어 업무 효율이 향상되었다.
결국, 뛰어난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가? 아니면 구성원의 협조를 얻어 제도적인 장치를 합리적으로 마련하는가가 차이점이다. 과거 나는 어떠한 선택을 했고, 어떠한 결과를 바랐던가?
그때 늙으수레한 목소리가 내 생각을 깼다.
“여간해서는 당집을 벗어나지 않는 심방이 이곳까지 어인 일이오?”
전면을 주시하니 심방보다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노인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 심방도 더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저 노인이 구 기관인 것 같았다. 심방은 대뜸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 좀 데리고 가시구려.”
“청탁인가? 내 성미를 알면서 그러는가?”
구 기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심방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한두 해 본 것도 아닌데 무슨 청탁이란 말입니까? 청년의 힘이 토신의 지박(地縛)을 풀 정도로 강해, 쓰임새가 있겠다 싶어 데리고 왔습니다.”
“토신의 지박을 풀어?”
아마도 나를 속박했던 주술 행위가 지박에 해당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말하는 본새가 나를 낙하산으로 취직이라도 시키려는 기색이 역력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주변에 지켜보는 자들이 많아 아마도 그것을 의식한 것 같았다.
구 기관은 대뜸 내 허벅지를 손으로 만져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토신의 지박은 말 여섯 마리가 동시에 끄는 힘 정도가 있어야 풀 수 있다고 알려졌다. 타고난 신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지박을 풀기 어렵지. 허벅지가 이리 실한 것을 보니 지박을 풀었다는 것도 영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겠구나. 마침, 힘쓸만한 자가 필요했던 참인데 잘 되었다.”
“힘쓸만한 자는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전(前)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곽여가 망경암(望景庵) 인근 칠성암(七星岩)의 영험함을 듣고 기도를 올리겠다고 통보를 해오지 않았겠는가? 당도할 때가 코 앞인데 준비가 지지부진하여 애를 먹던 참일세.”
곽여의 이름이 나오자 귀가 솔깃했다. 귀빈의 방문을 준비하느라 애를 먹는지 한동안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기에 상황을 알게 되었다.
대방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고, 동쪽으로 명득곡(明得谷)이란 협곡이 있다고 했다. 그곳에는 남해 보리암보다는 못하지만, 창선에서는 꽤 유명한 망경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인근에는 칠성암이라는 좌선대가 있다고 했다. 문인 또는 무인을 가리지 않고 조용히 수련하는 장소라고 하는데, 도인(道人)들 사이에서도 고행하기 좋은 장소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도인으로 알려진 곽여가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겠다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한 달 전, 폭풍이 불어닥쳤는데 칠성암으로 가는 협곡 좌우의 바위들이 굴러떨어지면서 길이 막혔다고 했다. 복구 작업을 하는 와중에 곽여가 그곳에서 기도를 올리겠다는 통보를 보내온 것이다.
“동궁과도 매우 절친하다는 곽여지만, 일방적인 청이야 사정 이야기하고 거절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부친인 곽상 대인의 체면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겠더군. 사람을 더 써야 하나 하던 차였지.”
주요 공직을 두루 거친 곽상이 비록 윤관과의 마찰로 은퇴했지만 불과 일 년도 채 안 된 일이어서 그 영향력에 피해를 볼까 무리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이어진 구 기관의 이유는 뜻밖이었다.
“곽상 대인의 성정이 순박하고 곧아서, 비록 남다른 재주는 없으나 청빈(淸貧) 하나만큼은 감탄할 정도지. 미관말직이라 큰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나,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아들에게나마 선업(善業)을 쌓으려 하는 것뿐이네.”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지만 나는 구 기관의 성정 역시 남다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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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는 삭제하고 설정으로 돌렸습니다. 많은 조언 감사드립니다. 코멘트도 모두 복사하여 붙여 두었으니 잊지 않고 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