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9 (16) 금문우객(金門羽客) =========================================================================
해창에 가기 전에 먼저 들를 곳이 있었다. 바로 당집이었다.
해창에 당집이 없어 영험하다고 소문난 인근 탐라의 심방(무당)을 초빙한 것이 시작이라고 했다. 남해 일대의 조세를 무사히 개경까지 운송하는 것을 빔과 동시에 지역 주민의 안녕도 빌어주는 그런 공간이라고 한다. 그 정도라면 일대에서 존경과 위엄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해창의 지휘관을 내가 만나려면 신분을 밝혀야 하는데 현재 상황이 여의치 못하니 나를 배 태워준 해녀가 심방을 통해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뛰다 보니 어느새 창선도가 눈에 들어왔다. 섬과 섬의 폭은 대략 300m 조금 못 미치는데 이곳을 어찌 건너가야 하느냐고 해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그 정도는 자맥질하십시오.’라는 매우 간단한 답을 남겨 과연 해녀다운 답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행히 수영을 못하는 편이 아니어서 지체하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남해의 바다는 마치 몰디브나 하와이에 와 있는 것처럼 청명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종일 항해하고 뛴 피로가 수영하면서 풀림을 느꼈다.
바다를 건너기까지 나는 한 명의 인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바다를 통째로 세내서 수영을 즐긴 느낌일까? 낮시간이라 어로를 타며 생업에 종사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지금 내가 건넌 곳에서 서쪽으로 1.7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해창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해녀에게서 들은 당저리 일대의 지리를 보면 당저리 남쪽에 해창과 포구가 자리하고 있고, 북서쪽 산기슭에 당집이 자리하고 있는 형태였다. 그녀에게 전해 들은 지식을 바탕으로 산기슭 훤한 곳에 솟대를 꽂은 당집을 수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집 앞에는 해창과 마을 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단이 있었고, 마침 그 제단을 손보고 있던 심방과 마주칠 수 있었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운 그녀는 종이 술이 달린 신간(神竿, 신령이 하강하는 통로로 삼는 나무)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제단 손질을 열심히 하였는데 발소리를 듣고 하던 일을 멈추더니 제단 한쪽에 놓아둔 붉은색 부채를 지어 들고 나를 가리켰다.
“손님이 오셨구먼. 그것도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강한 손님일세.”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혼잣말인지 애매한 말투였다.
“강남(江南)에서 온 것인지, 강남으로 갈 것인지, 들고 남을 짐작할 수 없으니 이제 나의 신력(神力)도 다했는가 보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뿐이었다.
나는 인사라도 올리기 위해 손을 모았지만, 심방은 부채를 앞으로 내밀며 내가 손을 모으는 것을 방해했다.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는데 심방은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혼잣말을 내뱉었다.
“전안(田顔, 사각형 얼굴)에 관골(?骨, 광대)은 적당하고, 전택궁(田宅宮, 눈썹과 눈의 거리)은 넓다. 눈썹은 앙월미(昻月眉, 짙은 반달)에 눈은…….”
대충 내용을 들어서는 관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이것도 심방이 하는 일인가? 그녀는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 흔들며 말했다.
“사자안(獅子眼)과 용안(龍眼)이 한데 들어 있으나, 그 빛은 관안(款眼)을 띄고 있다. 참으로 신묘한 마마(??)로소이다.”
마마?
나는 그제야 그녀가 처음에 나에게 손님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마마를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천연두를 흔히 손님마마라고 부르는 것을 어릴 적부터 듣지 않았던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아직 그녀의 주절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부채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마치 굿을 하는 움직임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대민국의 귀한 손님이 고려국으로 오셨다. 두신(痘神)인가 싶었는데 치병객(治病客)이어라. 대민국의 임금은 백만 석을 기꺼이 치병(治病)에 썼는데, 치병객은 고려국에 무엇을 베풀 것인가?”
뭔가 의미심장했다. 대민국의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몰랐다. 대민국의 임금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만 석을 썼다는 이야기는 혹시 내 이야기가 아닐까? 당시 번자소의 도움으로 예상했던 백만 석까지 쓰지는 않았지만, 민간에 알려지기에는 백만 석을 베풀었다고 알려졌다.
그녀는 이내 몸을 굽히더니 바닥에 흙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토신(土神)이여, 토신이여, 이 몸이 사람을 잘못 보아 두신이라면 강남(江南, 장강 이남)으로 발걸음을 밀어주시고, 선인(仙人)이면 발목을 잡아주소서. 발목을 단단히 잡아주소서.”
나는 평소 미신을 믿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생을 깨우치면서 세상은 내가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지금 그녀가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염원(念願)이 실려 있다.’
누군가 보기에는 미치광이 같은 행동일 수 있겠지만, 그녀에게서는 절실함이 묻어 나왔다. 이것이 민중의 아픔을 대변한다는 심방의 자세일까?
그녀는 흙 묻은 괘자(?子, 무녀복)를 털 생각도 하지 않고, 제단으로 가더니 메고 있던 신간을 풀어 한쪽 끝을 손으로 잡고 다른 한쪽을 내게 내밀었다. 바로 손으로 잡기에는 멀었고, 서너 발자국은 떨어진 지점이었다.
그녀의 눈빛을 살피니 나보고 그것을 잡아보라는 뜻으로 들렸다. 아까 토신을 언급한 부분의 연계일까?
잡는 것이 좋은 것인지 잡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녀의 부탁대로 신대를 잡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내 눈동자와 그녀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렸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토신에게 말하길 선인이면 잡아 달라고 말했다. 과연 그것 때문일까? 나는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영험한 무당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최면 효과를 주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기능을 제약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설마 나도 그런 환각에 빠진 것일까?
다시 있는 힘을 주었다. 여전히 발은 미동하지 않았다.
‘내가 진짜 선인이라서?’
선인이 존재한다면 토신이라고 없을 리 만무하다. 어느덧 심방의 시선은 느껴지지 않고, 나름의 의심을 전개하며 발에 여러 차례 힘을 주었다. 1분~2분 정도의 시간 동안 옮겨도 벌써 옮겼어야 할 발이 여전히 요지부동으로 바닥에 철썩 붙어 있었다.
“오오!”
심방은 점차 확신이 드는지 감탄사를 내뱉으며 희열에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선인이라는 판정을 받아서 좋다는 생각보다 내 몸 하나도 의지대로 할 수 없나? 하는 오기가 발동했다. 지금껏 내가 한 번도 내지 않았던 큰 함성을 지르며 전력으로 발을 떼기 시작했다.
미미하지만 마치 땅이 나를 따라 허공으로 딸려 오는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미동도 없는 것 같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숨을 한가득 들이마시고,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고, 활력이 극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힘껏 발을 내디뎠다.
마치 파도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의 흙이 비산(飛散)했고, 허공에 올랐던 내 발은 ‘쿵!’ 하는 소리와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심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산지를 벗어나 평지에 접어든 것처럼 내 몸은 다시 원활한 자유를 찾았고, 나는 신대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신대를 붙잡자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까 뒤집어 백안(白眼)을 드러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간질에 걸린 줄 알았을 것이다.
“용안은 기(氣)와 신(神)을 하나에 담고 있어 군주의 상이고, 사자안은 힘(力)과 절제(節制)를 담고 있어 장군의 상이다. 전안에 관골은 장군의 상이며, 눈썹은 군주의 상이다. 눈빛은 학자의 그것이니 선인의 정체를 가늠할 수 없도다. 다만, 한가지…….”
언뜻 좋은 말로 들렸지만, 일반인과 관상이 다르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미쳤다.”
아마 현대와 후한말을 모두 합쳐 ‘미쳤다.’라는 말을 앞에서 대놓고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발을 뗀 행동이 미쳤다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뜻이 또 있는 걸까? 방문 목적은 아직 이야기하지도 못했는데 자꾸 심방에게 휘말려 들고 있었다.
“관안은 정기가 밝은 눈빛을 가리키나, 사리(事理)를 담고 있지 않다. 목적이 없다. 행동만 있다. 미치광이가 그러하다.”
가슴에 화살이라도 맞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녀의 말은 그냥 흘러 들을 수 없는 조언을 담고 있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정말로 신대를 통해 신령과 교통한 것일까?
“토신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의 힘있는 미치광이는 자칫 탐라와 고려에 해악이 될 수 있다.”
힘있는 미치광이라니…….
쓴웃음이 가슴에서부터 올라왔다. 흔히 독재자를 가리켜 우리는 그런 대명사로 치환하곤 했다. 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왔는데 목적이 없다고 비난받는다면 이것은 작은 틀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통해 이루어야 할 큰 목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비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용안은 과거의 나를, 사자안은 현재의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기와 신, 힘과 절제. 언뜻 듣기로는 좋은 말들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기와 신인지, 무엇을 위한 힘과 절제인지가 빠져 있다는 뜻일까?
“아니다!”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이렇게 불쾌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들이 목적 없이 이뤄온 성과란 말인가? 그때그때의 상황을 따져보면 분명히 오락가락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 더 나아가 최선을 지향하는 고민이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현대 사회의 물질적인 번영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답게’란 하나의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걸음 내디뎠다. 둘 사이는 아무 말도 담고 있지 않았지만 마치 선문답을 나누는 것처럼 시선이 교차했다.
-이것은 꿈일까? 못 깨어나면 어떻게 하지?
[꿈의 끝은 깨어남이다.]
-꿈이라서 통제력을 상실한 적은 없는가?
[꿈이라서 통제력을 상실한다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겠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본의 아니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는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시키는 대로 한 것이 아니라…….]
시선은 잠시 침묵했다. 눈이 한번 깜박였고, 나는 그녀에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 내 할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눈도 깜박였다. 그녀의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말투는 아까와 달리 고승의 설법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사람은 참을 수 없이 불안하면 몰입경(沒入境)에 든다. 나를 이해시킬 이유를 만들기 위함이다. 원래 가진 습관이나 행동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데 그 습관과 행동으로 낳은 결과이면서 때때로 자신이 뜻대로 한 일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자에게 귀신이 달려든다.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을 때야 후회하게 된다.”
목적이 없는 행동은 바로 지금의 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유 없는 행동, 남과의 형평성, 차이점을 생각하지 않은 채, 스스로 합리화시키는 행동. 권력과 힘을 가진 자가 그러하다면 고통받는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깨우쳐 주려는 것일까? 그녀가 나를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고개를 숙이며 조언을 준 것에 감사했다.
그런 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손님이 강남에서 압록을 넘어 고려국 한 마을에 당도했다. 당집 노파(老婆)는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손님이 보답하려고 하니 당집 노파는 애초에 마을 부자와 약속한 것이 있어 부자의 독자가 무병할 수 있기를 부탁했다. 그런데 부자는 당집 노파가 못 미더워 독자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피신시켰다. 손님은 부자의 아내로 변해 독자가 있는 곳을 알아냈고, 병을 주었다. 부자는 후회하고 손님에게 융숭한 대접을 전제로 빌었고, 손님은 독자의 병을 회수했다. 독자가 병이 낫자 부자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은 그 자리에서 독자를 죽였다. 액운을 쓴 부자는 망했고, 당집 노파가 마을의 부자가 되었다.”
무엇을 비유한 것일까? 현 탐라 또는 고려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삶을 비판한 것일까? 고려의 영험한 심방은 다들 이런 것일까? 이제는 신기함마저 느껴졌다.
“두신(痘神)은 오면 반갑기보다 두려운 존재이고, 공경하기는 하나,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제단을 정비하던 일을 이어 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어쩌면 이것조차도 그녀의 시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진 정도를 서 있었을까? 제단의 정리가 다 끝났는지 그녀는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토신마저 뿌리친 그대가 당집 노파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답이라 나는 냉큼 탐라의 사정을 알렸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해창 지휘관을 은밀히 만나보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구(仇) 기관(記官)을 아무도 모르게 만나게 해달라?”
그 명칭에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기관은 쉽게 말해 조선 시대로 치면 이방(吏房) 같은 존재였다. 그 정도라면 지방행정의 실권자라고 할 수 있지만 한정된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고, 해창 같은 주요한 장소의 책임자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너무 도성과 북방에만 있었던 것일까?
내게 목숨을 빼앗긴 백창직이 말했던 것처럼 남부 지방은 고려가 아닌 또 다른 나라를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