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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03화 (103/257)

00103  (14) 이율(二律)  =========================================================================

나도 모르게 잠시 눈을 감았다. 보지 않아도 훤했던 탓이다.

이자위의 귀양을 풀지 않아도 이소가 나의 정실이 된다는 것은 노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신들이 그 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이소가 노비가 된 것은 조부인 이자위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소의 면천은 이자위의 실질적인 복권이나 다름 아니었다. 이것은 이자위 개인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인주 이가 입장에서도 수치스러운 기록을 완화할 수 있는 호재였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세월이 흐르면서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나를 파직하더라도 성을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합의이기도 했다. 이소와의 성대한 결합을 통해 인주 이가의 사위라는 파직의 반대급부를 주는 셈이고 평범한 자라면 불만을 삼을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언젠가 다시 복직하리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아직은 도광양회(韜光養晦) 해야 할 때다. 내 마음을 장군은 이해하리라 믿는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을 때, 썼던 방법이자, 1980년대 중국이 내세웠던 대외정책의 상징적인 구호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게는 더 그 뜻이 와 닿았다. 자신의 재능과 야망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니 시대의 영웅뿐만 아니라 난신(亂臣) 역시 이에 해당했다.

결론이 만족스러운지 장중의 인물들은 하나둘 내일을 기약하며 사라졌다.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는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자겸은 내 궁금증을 눈치채고 기다렸다.

“기껏 장군이 되었는데 다시 내려놓는 것이 아쉬운 것은 이해가 간다. 나 역시 너를 동계로 보내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이 미뤄지게 되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은 때를 알아야 한다. 아무리 무능한 사람도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이는 경계하기 마련이다. 언젠가 내 것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김한충의 정직은 오래지 않아 풀어질 것이다. 너의 복귀 역시 쉬워진다. 혼례만큼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성대하게 치러줄 것이니 마음을 풀 거라.”

내가 남은 것이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일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를 다독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만큼 내 값어치가 높다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이자겸의 반란은 척준경으로 시작했고, 척준경으로 끝이 났다. 안목이 있다면 나를 꽉 쥐고 싶었을 것이다.

“인주 이가의 성세는 감히 다른 가문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대감께서는 여전히 더 높은 권력을 손에 쥐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대감께서는 왕이 되고자 하십니까?”

“왕? 왕이라…….”

이자겸은 단어를 곱씹더니 빙그레 웃었다.

“내가 왕이 되면 어찌 될 것 같으냐? 고려 건국 전, 삼국 난세로 돌아갈 것을 걱정하는 것이냐?”

나는 쉬이 동조할 수 없었다. 그저 진중한 표정으로 이자겸을 직시하자 이자겸은 탁자에 손을 얹어 천천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소리가 실내를 휘감았다.

“신라는 애초 박, 석, 김 세 성씨가 왕을 도맡았으나 후기에 들어 김씨가 자리를 독점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냐?”

이자겸은 반쯤 남은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탁자에 거꾸로 부었다. 술이 탁자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자 돌연한 행동에 나는 움찔했다. 이자겸은 껄껄 웃고 있었다.

“술이나 물은 아래에서 위로 갈 수 없다. 오직 위에서 아래로만 갈 수 있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느냐?”

이자겸은 탁자에 입을 가져가더니 남은 술을 빨아들였다. 주위의 술이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까?

이자겸은 탁자에서 얼굴을 떼더니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았다.

“지금 내 행동이 술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방법의 하나가 아니겠느냐? 술이 아래에서 위로 갈 수 없다고 계속 생각한다면 인주 이가는 여러 유력 가문 중 하나일 뿐이다. 애초에 주상과 우리가 다투게 된 것은 서로 미는 왕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없지. 주상은 주상 나름대로 의지가 있었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주상의 결단과 의지가 앞서 승리자가 된 것이고, 우리는 재차 도전하는 것이다. 내 대답은 여기까지 하고, 나도 너에게 하나를 물어보자꾸나.”

이자겸의 대답은 그리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없었지만, 비유만은 현대 마케팅 기법을 그대로 원용하고 있었다. ‘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진다.’가 고대의 진리였다면, ‘사과는 왜 나무에서 떨어지는가?’에 대한 의문이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모 콜라 광고가 북극곰을 모델로 삼는 것과도 같다. 시원하게 마셔야 좋은 콜라의 특성상 북극을 광고의 배경으로 삼는 것은 어쩐지 위험한 발상이지만 어디서나 마실 수 있다는 꾸준한 마케팅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일전에 너는 유신의 유언을 받들어 송의 도방과 기예를 겨루기로 했다. 우연히 ‘소’가 딸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지나치다 들었는데 차기 도방을 이끌 아이를 내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듣자하니 왜국까지 가서 왜인을 부하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누구나 부임하기를 외면하던 동계를 부임지로 삼은 너를 생각하니 그런 행동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더구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앞에서 털어놓을 수 있겠느냐? 갈라전에서 독립이라도 꿈꾸는 것이냐?”

우연히 엿들은 것뿐이었을까?

내가 잠시 대답을 정리하는 사이 이자겸이 다시 말했다.

“과거 중원에는 민나라가 있었다.”

이자겸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어떤 말이 나올지 두근거렸다.

“율가를 내세워 기존 사상을 혁파하고, 관리의 근면, 청렴을 강조하며 한때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결국 망했지. 부패에 의해서. 그렇게 유지한 기간이 400년이다. 한과 다름을 내세우며 거창한 대의를 내걸었던 것에 비하면 몹시 짧은 시간이다. 고구려와 신라, 백제와 비교하더라도 명백하지. 그렇다고 고구려와 신라, 백제는 이상 국가였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민은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기회의 평등함을 내세웠지만, 귀천이 없는 사회는 말 그대로 꿈일 뿐이다. 평등함에서 귀천이 생겨나고 부조리가 파생된다. 평범한 인간의 욕구가 성인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억제하느냐에 따라 국운도 결정되겠지. 지엽적인 문제로 돌아와서 주상이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내부를 통제하려 한다면 나는 욕망을 직접 이용하고자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갈라전의 예를 들어보자. 망국의 유민들과 여진이 우리에게 귀속을 요청했지만 다스리기 어렵다는 핑계로 내버려두고 있다가 이번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다. 애초에 우리 것이 분명하다면 완안부가 정주성 코앞까지 쳐들어올 까닭이 있겠는가? 나라면 처지가 어려운 호족을 선발하여 갈라전을 경작할 권리를 주고 아국의 영토로 삼았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 애착이 생긴다. 그리고 100년이 흘러보아라. 그 땅은 내륙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사고팔 수 있는 땅으로 바뀔 것이다. 영토란 그런 것이다. 그것을 전쟁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니 주상을 미덥게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너는 충(忠)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주상과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자겸은 예상했던 답이라 그런 것인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틀렸다. 기존의 충은 내 것이 아닌 것을 지켜주는 것이다. 나는 충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내심 헛웃음만 흘렀다.

“내 것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충이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나온 연유도 내 것이라는 사명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만석꾼이 불교에 심취해 전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뿌리고 중이 되었다. 그렇다면 만석꾼의 자식은 행복할까? 가난한 이웃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을까?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다. 바로 옆 고을의 만석꾼이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기존 만석꾼의 재산을 모두 사들여 더욱 부자가 되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선인의 선행이 있다면 그 과실을 가장 많이 따먹는 이는 악인이라는 말이 있다. 염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에 뛰어든 순간 우리 모두 악인이다. 한정된 자산과 권력을 놓고 겨루는 것이기에 누군가 이익을 보면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극도의 이기적인 전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자신이 원하는 정책과 노선을 결정할 수 있게 되지. 신념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밖에 없다. 선인은 일개 좋은 관료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자겸의 설명에 스코트 니어링이 생각났다. 그는 자생적 사회주자라고 자신을 칭했는데 1900년대 초반 반전 운동의 핵심인사이기도 했다. 그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욕망에 심취하여 타락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본인부터 무소유 운동을 한 바가 있다.

그에게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사람도 많았지만, 오히려 그런 열풍을 부추겨 돈을 번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자연으로 돌아가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땅을 사야 했고, 생산한 농산물은 판로가 필요했다. 그런 일체의 행위를 대행해주는 업자들이 성행한 것이다.

이자겸은 바로 그런 업자들의 행위가 지금의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민나라가 계급의 차이를 허물기 위한 시도였고 소통을 강조했다면, 이자겸은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없다고 보고 유력자 간의 경쟁을 통해 승자가 되어 왕정제와 같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나라를 이끄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서양 사학자들의 예를 들어 보면, 근대 이전의 인류 역사는 빵의 역사였다고 한다. 빵을 지키려는 자들과 빼앗으려는 자들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왕조가 바뀌는 것은 생존 도구인 빵을 정상적으로 수급을 받지 못해서이다.

그러다 근대가 열리면서 이념이란 것이 등장했다. 힘을 가진 자가 빵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눠갖자는 세력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산과 무산 계급 간 갈등, 이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피를 흘리며 치열하게 투쟁한 결과는 현대에 이르러 어느 정도 결실을 보게 되었다. 계급 간 이동이 어느 정도 자유로움이 보장되었고,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사람들은 계급 투쟁의 본질에 회의하게 되었다. 누구든 부자가 될 수 있고, 한순간에 빈민이 될 수도 있는 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새로운 계급 사회가 열리고 있음을 다들 느끼면서 언제고 터질 불만을 어떤 방법으로 잠재울 것이냐가 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주상은 매년 법회를 성대하게 열며 넉넉했던 곳간을 탕진했다. 그리고 그 짐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럼 우리는 다시 소작인을 짜냈지. 그러자 유랑걸식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주상은 그런 자들을 끌어모아 갈라전을 개척하려고 생각했지만, 귀족의 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는 까닭에 되려 지방 토호들의 반발만 더 불러일으켰다. 모두가 반대했던 남경을 건설한 것은 어떻고? 소모된 예산으로 병력을 키웠다면 그 병력으로 벌써 요나라와 자웅을 겨뤘을 것이다.”

일견 맞는 말로 들렸다. 귀족에게 예산을 부담시키는 것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정자들이 몰랐을까?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일까? 단호한 성품의 숙종이었지만 부정부패를 빌미로 귀족을 처리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그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을 내세우는 것은 그저 하나의 명분에 불과한 것이다. 언뜻 보면 현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인 대다수는 항상 국민을 외치지만, 기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다.

배고프면 먹던 빵 고물이라도 던져줘서 달래주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이 과거나 현재 정치인들에게 동시에 느껴지는 것을 보면 보편적인 가치를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던 선각자들이 그저 미안할 뿐이다.

‘누군가가 처음이 되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미풍에 그쳤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이 동조하는 시대적 변화가 뒤따라 한다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아시아의 유럽화를 통해 해결할 생각을 품었다. 금, 원, 청 같은 외인들의 중원 국가가 중원의 문화에 흡수되어 하나의 역사에 편입된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중원을 지배하는 역사적인 날이 오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민족의 정체성 자체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군과 겨루며 역사에 변혁을 이끌어낼 계획도 세웠다. 과연 그것이 완벽한 해답인가 하던 참에 이자겸은 비록 내가 완전히 수긍하지는 못할지언정 새로운 해답을 내놓았다.’

인간의 다수는 함께 나누길 싫어한다. 내가 다 갖길 원한다. 누군가 독차지하면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를 한다. 내가 가장 위에 서길 원하고 내가 가장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다수를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한 자가 있었다. 바로 마키아벨리다.

‘이자겸은 큰 도덕을 위해 작은 도덕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는 결과라는 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고려에서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과정에 충실했던 민나라의 방식을 버리고 변혁의 결과를 낳으려는 방법들이다. 기존의 방법이 실패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민의 개국은 주변에 영향을 주어 이념이 계승되어가기를 원했다.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나 이후에 누군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길을 계승할 사람이 분명히 존재했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바로 이 자리에.

“현실과 이상은 다른 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바꾸는 자는 현실을 아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굳게 믿고 있는 꿈 꾸는 자들이었습니다. 갈라전을 얻어 독립하고 싶으냐고 질문하셨지요?”

이자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현실을 중시하는 그로서는 뜬금없는 꿈 이야기가 거슬렸던 모양이다.

“네, 독립하고 싶습니다. 제 고향인 곽주는 국경 인근이라 항상 시끄럽고 불안했습니다. 저는 발해 유민을 비롯해 여진, 거란뿐 아니라 가진 것 없는 고려인들도 포함하여 함께 공존하며 살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고려의 국경이 편해져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 태조는 일찍이 그런 이상을 선보인 바가 있는데 남아로서 같은 뜻을 품지 못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여러 할 말이 있었지만 가장 직설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솔직한 답변을 선택했다. 찌푸렸던 이자겸의 표정은 묘하게 변하더니 이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갈라전을 얻어 소국의 왕이 되고 싶다는 말을 그리 돌려 말할 필요는 없다. 일찍이 정안국이 갈라전에 터를 잡았던 것을 상기하면 너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고 싶다는 뜻일 터, 남아가 일국이 왕이 되고 싶다는 욕심 정도는 흠이 아니니라.”

내 뜻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단절된 역사의 복구가 시급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고 송으로 건너가 민국실록과 기타 사료들을 수소문해야 했다. 경주에 없었던 것이 그저 애석할 따름이다.

“정안국이 있었기에 거란의 고려 침공이 10년을 지체했다. 정안국은 우리와 통교하고자 했으나 거란의 기세가 매서워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만약 그들을 도왔다면 우리로서는 여진과 거란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하나 약속하마. 나를 힘껏 돕는다면 너는 정안국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서 네가 외적을 방비하고 내부에서 내가 정치를 꽉 휘어잡는다면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자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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