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14) 이율(二律) =========================================================================
그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다른 이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어색한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갑론을박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이자겸이 내게 웃음을 지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이(利)와 략(略)을 논하고 있으니 서운하냐?”
이자겸이 일부러 나한테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른 이들의 관심도 함께 샀으니 말이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이 있었지. 성인(聖人) 부부와 상인(商人) 부부가 난을 피해 깊숙한 동굴에 은신했다. 전쟁이 끝나고 십 년이 지나 한 나무꾼이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는데 소년 한 명이 그곳에 살고 있지 않겠는가? 오직 그 소년만이 발견되었을 뿐인데 그렇다면 그 소년은 누구의 아이이겠는가?”
철학 시간에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는 문제로 나는 이자겸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알아챘다. 이자겸답다고 해야 하나?
“십 년 전, 너를 처음 보았을 때가 아직도 생각나는구나. 그때의 너는 지금의 너보다 생각은 깊지 못했지만,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는 뚜렷했지. 어느덧 나이를 먹으니 잔뜩 품었던 독기로 많이 사라졌고, 말도 생각도 많아졌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숨길 것이 많은…….”
이자겸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확실히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차이를 이자겸은 정확히 집어냈다.
말이 장황해지고 잡념이 많아진다는 것은 내심과 다른 방향을 선택했기에 합리화하는 과정이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인들의 회동은 진실을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합리화를 위한 것이라는 촌평도 생각났다.
“소년은 상인의 아이였다. 준비한 식량이 다 떨어지자 전쟁이 끝난 지도 모르고 동굴 안의 사람들은 고심했지. 성인은 누구라도 살아야 하니 기꺼이 자신의 살점을 내어놓겠다고 했고, 상인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인은 후손을 남길 수 있었지. 상인이 거절했어야 한다고 보느냐? 나는 네가 현명한 이기(利己)를 품기를 원한다.”
이기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이기주의자란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사실은 그 쓰임새가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혼란한 시대에서 이기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자겸은 내게 현명한 이기를 요구하고 있다. 권문세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처신이 바로 그런 것이겠지만 훗날 전횡의 극을 보여주었던 그가 이런 충고를 하다니 어떤 일을 계기로 독하게 변하게 되는지 그것이 궁금해질 따름이었다.
“어리석은 이기는 언제나 세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만이 살아남고자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현명한 이기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까놓고 말하자면 내가 편안하고 풍족하기 위해서 다른 이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다른 이를 돕고자 한다. 만약 그 한도를 벗어나면 돕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의 처세였다. 지금의 경우를 놓고 보자면 나는 너를 계속 안을 수 없다. 그러나.”
이자겸의 눈이 빛났다.
“세상은 내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난감한 선택에 봉착한 경우 어리석은 이기라면 내 것을 버리기보다 남의 것을 버리는 선택을 통해 이득을 얻겠지만 현명한 이기라면 스스로 유익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따져 내 것을 먼저 버려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의 상황이 너를 내쳐야 내게는 괜찮은 상황이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얻고자 한다.”
이런 걸 무엇이라 해야 할까? 달라이라마는 생각의 선악이 아니라 행동의 선악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가 있다. 행동을 통해 어려운 자가 도움을 얻는다면 불순한 이기심도 용납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한 선행이란 없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공감을 떠나 이자겸의 말은 내게 경종을 울렸다. 말이 많고 생각이 많다는 것은 내 생각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생의 역사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과 행동은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삶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어.’
기억하는 이가 남아 있고, 그때를 그리워하는 이가 남아 있는 이상, 아예 그런 기억조차 없었던 때보다 세상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천년만년 가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뿌리를 심는다면 누군가는 꽃을 피워주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했던 일이다. 퇴비와 물을 충실히 주었다면 벌써 만개했겠지만 시대는 아직 꽃의 개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뿌리는 아직 살아 있다.
“숙부님이 남부로 귀양가신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다. 역모 가담자들은 대부분 죽었고, 남은 자는 몇 없으니 노령을 이유로 재청(再請)한다면 구명할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이자위(李子威)의 구명이 거론되고 있었다. 이소의 조부인 이자위의 귀양 철회는 평상의 조정이었다면 뜨겁게 달굴 좋은 소재였다. 상대였던 숙종이 병환 중이기는 하지만 버젓이 살아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이번에 폐하께서 어떤 결심을 하든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인주 이가는 무조건 편을 들겠다고 전하겠다. 그렇다면 그 하나의 사안이 남경 천도가 될까? 아니면 요와의 일전이 될까? 폐하께는 절묘한 패가 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 사안은 모두 묻힌다.”
사건에는 사건으로 대응한다는 것인가? 그렇더라도 외부 사건과 내부 사건의 충돌은 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너는 소와 아직 정식 혼례를 올리지 않았다. 내가 숨겨진 패로 쓰고자 했던 탓이나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도록 하자. 아주 성대하게.”
나와 이자겸의 관계가 표면으로 떠오르고 혼례 소식까지 나돌게 되면 숙종이나 다른 중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자의의 난에 이자위가 가담하면서 이소는 노비 신세로 전락했다. 노비는 정실로 인정해주지 않는 관례를 봤을 때, 혼례를 강행한다는 것은 숙종이 애초에 내렸던 명을 번복해달라는 시위와 같다. 그래서 이소의 친조부, 이자위의 복권 또한 함께 추진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김한충이 십만 금이라면 야율대석의 발언도 무시하고 요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했다. 요로서도 계획에도 없던 전쟁을 치르자면 부담이 된다. 갈라전을 얻겠다는 것도 잘 해봐야 숙여진의 세력만 불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완안부라는 늑대를 물리치고 또 다른 늑대를 불러들이는 꼴이지. 직접 경영한다고 방침을 정해도 완안부를 방비하기 위해서는 후방에 자리한 우리를 감히 무시할 수 없다.”
이자겸은 계속된 설명에 목이 타는지 술을 한 잔 들이켰다.
“폐하께서 남경 순행을 이미 계획하고 계시고, 송으로 보낼 정기 사은사 인선도 결정해야 한다. 곧 추수철이니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도 못한다. 말장난으로만 끝날 것이다. 경주 김가가 한목소리로 들고 일어나면 전쟁을 말리기에 급급한 신료들은 배상으로 끝내자고 할 것이다. 배상으로 끝내자는 것은 경주 김가의 설명을 받아들여 준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경주 김가로서도 요에 맞서 자존심을 지켰다는 명분을 가지게 되지. 또한, 숙부의 복귀 문제는 일전에 일어난 실정(失政)을 언급하면 수주 이가 같이 요에 사대하는 가문은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 복귀 반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한층 줄어들게 되지. 폐하의 고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누가 없었다면 그 설명을 이해한 후, 입이 딱 벌리고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얽혀 있었다. 서경파나 개경파니, 화친파니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당파가 아니라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합쳐지다 보니 이 사안에 대해서는 대략 어느 인물들이 찬성하고 반대하겠구나 하는 교집합 모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자겸은 성질이 다른 사건을 부각해 서로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어 입을 다물게 할 작정이었다.
이자위는 송나라에 보내는 국서에 요나라의 연호를 써서 보내는 바람에 파직된 전력이 있었다. 요를 지지하는 가문들 처지에서 이자위의 행동은 은근한 지지 또는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그는 요나라에 자주 사은사로 다녀오곤 했다. 이자위의 복귀가 반가울 법도 하다. 수주 이가는 이자위의 복귀가 인주 이가의 힘을 키워주는 행위로 볼 수 있지만, 김경용과 김한충, 김인존의 예를 보듯이 같은 경주 김가였지만 정말 중차대한 일이 아닌 이상 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이자위의 복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또한 분명히 있다. 요와의 전쟁보다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는 자들이다. 대표적으로 한안인 같이 과거를 통해 선발된 신흥 귀족을 꼽을 수 있다.
서경 귀족들은 어떤 생각이 있을까? 고구려, 발해 출신 귀족이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니 이자위의 복귀보다 북벌을 통한 실지(失地) 회복을 더 우선시할 것이다. 그럼 화친파가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화친파에는 요에 사대하는 가문 더하기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지닌 관료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남경 순행과 송으로 보내는 사은사 일행을 결정해야 한다. 왕을 보좌하며 따르는 것이나 송으로 가는 사은사에 포함되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이니 그 자리를 놓고서도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보통 대국으로 가는 사은사가 돌아오거나 왕의 순행이 끝난 시점에서 대규모 승진이 벌어지는 예가 많았다. 내가 알기로도 올해 벌어지는 남경 순행과 송으로 가는 사은사가 돌아오는 시점에서 고위급 승진이 발표되었다.
그런데 그에 더해 한 가지 특징적인 일이 곧 벌어진다. 남경 순행에 나선 숙종이 지지부진한 화폐(泉貨) 정책을 개선하고자 주(州), 현(縣)에 명해 술과 식료품을 사고팔 수 있는 일종의 가게를 열어 매매를 유도하도록 한 것이다. 즉, 정부가 직영하는 가게에 쌀을 팔면 그것을 화폐로 돌려주고, 나중에 쌀이 필요하면 그 화폐로 사라는 것이다. 화폐의 편리함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두고도 관리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애초 만들 때부터 화폐 가치를 높게 만든 터라 뇌물, 축재 용도로 전용(轉用)되었는데 보다 못한 청렴한 관리들이 그냥 화폐 제도 자체를 폐기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기 때문이다. 화폐 단위를 낮추면 해결될 문제기는 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화폐를 만드는데, 필요한 은(銀)을 수입에 의존했던 탓도 있었고, 일부에서는 구리를 섞어 위조 화폐를 만드는 수법을 선보인 탓에 가치를 떨어트리면 위조가 더 만연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이 시대에 위조 방지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요와의 전쟁, 이자위의 복귀, 화폐 제도의 개선, 남경 천도까지 하나하나만 논해도 몇 개월은 걸릴 소재가 일시에 터져 나오면 같은 배를 탄 이들 중에서도 이익에 따라 한목소리를 맞추기 어려웠고, 그 뒤에 따를 대대적인 승진이 누구에게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극렬한 반대로 적을 늘릴 필요는 없다.
“남경 순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길일을 잡아 일찌감치 예고했던 터라 연기하기도 쉽지 않다. 모든 사안이 중하지만 정해진 기한 내에 처리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낮에는 조회가 들썩이고, 밤에는 유력가의 집이 붐비겠지. 이런 상황에서 제 목소리를 가장 빨리 낼 수 있는 이는 유신과 같이 세력을 이루지 않았으면서도 소신 있는 자들이다. 위계정, 정문, 최홍사, 손만 등이 대표적이지. 내가 직접 그들을 설득할 것이다. 숙부를 모시는 것을 포기하겠다. 다만, 혼례에는 혼주의 자격으로 참가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또한, 이번 송의 사은사로 요와의 전쟁 여부를 두고 시끄러운 무리를 보내 좋을 것이 없으니 중도에 선 그대들이 나서주었으면 좋겠다는 뜻도 전달할 것이다.”
이자위의 복귀라는 없던 일을 만들어 그것의 양보로 자신의 패로 삼고, 그 패로 중도파를 설득한다. 중도파로서는 인주 이가의 양보를 얻어내는 정치적 성과를 거둘 뿐만 아니라 승진이라는 실질적 이득도 손에 넣게 된다. 무엇보다 송으로 떠나게 되면서 화폐 개혁이나 전쟁 논의 같은 첨예한 문제에서 한발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이자겸의 조치가 고려에서 49명밖에 없는 장군을 집안에 들이게 되는 방편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무과가 없는 고려는 공신 가문의 후예나 유력가의 추천을 통해 무관이 선발되었다. 기존 세력이 계속 공고화될 수 있었던 것은 사병이나 다름없이 관병을 부릴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자겸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고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해달라고 하는 것이 이자겸의 노림수로 여겨졌다.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아직은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런데 이자겸의 이어진 발언은 내 예상을 조금 벗어났다.
“이제 결론을 냅시다. 위위경 김덕진을 동계 병마사로 발령내는 것은 고우(古友)들의 뜻대로 우리가 먼저 제안합시다. 경주 김가의 입장을 헤아려 병마사 영감은 정직(停職)으로 그치고, 척 장군에게 책임을 얹어, 파직을 우리 쪽에서 먼저 제안합니다.”
요와 전쟁을 하든 배상을 하든 일은 벌어졌으니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다. 이자겸은 그것을 나에게 돌리려 하고 있었는데 이자위의 복귀를 미끼로 무마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예측한 나로서는 어리둥절하기는 했다.
“파직당한 척 장군의 혼례에 맞춰 10년간 유배당한 숙부가 혼주의 자격으로 참가한다면 그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하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혼례가 가지는 의미를…….”
나는 그제야 진정한 이자겸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일견 몰락한 집안의 혼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앞서 벌인 정치적 양보를 통해 여러 명사가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모인 면면이 가문의 위세를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다.
“일전에 장군이 각희에서 기개를 보이고 동궁에게 활을 내려달라고 청한 일이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동궁은 반드시 장군의 혼례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송의 사은사, 남경 순행…….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날…….”
뒷말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아이를 선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