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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01화 (10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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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율(二律)

개경에서 정주성으로 돌아온 지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마치 몇 개월은 지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행장을 꾸리자 요시치카와 이소, 히카리 등이 모두 따라나설 차비를 했다. 조정의 상황이 험악해질 것은 당연하기에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차라리 나았지만 막무가내였다. 히카리의 경우는 내가 생각지 못한 것을 말하면서 당위성을 설명했다.

“들은 대로라면 당쟁이 일어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요와 고려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철의 수출을 가속합니다. 그리고 최대의 교역 대상인 고려가 지는 것도 원하지 않지요. 다타라 가문은 제가 권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그런 다타라 가문과 오래도록 거래한 가문이 동래(東萊) 정가와 나주(羅州) 박가입니다. 조정에 실권자는 없으나 하나같이 지역의 호군(護軍)을 맡고 있지요. 고려에서 이들의 재력을 능가하는 이는 세도가 몇몇을 빼고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세도가들과 끈을 만들기 위해 오래전부터 개경에 사택을 마련하고 막대한 재물을 풀어 왔습니다. 제가 그들을 설득하여 주군의 편에 세우겠습니다.”

부산과 나주면 이 시기 벽란도 다음으로 성황을 누렸던 무역 거점이라 할 수 있었다. 호군은 일종의 군장을 의미하는데 호족으로서 대대로 그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해왔기에 목사나 현령 못지않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고 나라에서 인정해준 것이었다.

대토지를 소유하여 부를 챙기는 세도가가 있는 반면 이들처럼 교역을 통해 부를 쌓는 상인 세력이 많았던 것도 고려 시대의 특징인데 안정적인 상거래를 위해 세도가들과 지속적인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고 이들의 힘을 빌릴 날을 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히카리의 제안이 참으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사이 이소 역시 말문을 열었다.

“수주 이씨가 반대쪽에 선 것이 확실하다면 이 기회에 수주 이씨를 누르고자 가문에서 나설 것이 분명해. 그것이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을 거야. 경쟁자를 확실히 누를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나설 가치가 있거든. 그래서 나 역시 가야겠어.”

이소의 말은 무섭도록 현실적이었다. 경쟁자를 꺾기 위해 그 사안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반대에 서는 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소가 가서 이자겸에게 뭐라 이야기할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래서 우리 가문이 수주 이씨보다 못한 것이 뭐죠?

가문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들 간에 집안을 흥하기 위한 경쟁이 생겼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일의 경중을 따지고자 해도 자존심이 걸린 순간 감성의 영역으로 날아가 버린다.

결국, 모두가 따라나섰다. 그나마 열 명의 수족들이 정주성에 남아서 다행이었다. 그들 중 두 명에게 따로 임무를 주었다. 한 명은 마양도로 보냈고, 다른 한 명은 견도로 보냈다. 마양도는 당분간 자중하고 추스르도록 재차 확인을 받고자 한 것이고, 견도는 그곳을 다스리고 있을 역관에게 관심을 보고 지켜보고 있다는 격려의 의미였다.

도성에 도착하자 나는 본래 사용하던 사택으로 갔고, 김한충과 강증은 각자의 가문으로 복귀했다. 귀족이라면 개경에 가문의 저택 하나 둘은 반드시 존재했고, 가문에서 유력한 자들이 지켰다. 그들에게 먼저 뜻을 밝히고 동의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시치카의 호위를 받아 이소가 이자겸에게 향했고, 히카리는 다타라 가문이 개경에 개설한 상관(商館)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본 후 나 역시 고의화를 먼저 만나기 위해 저택을 나섰다.

고의화는 떠난 지 며칠 되지 않는 내가 떡 하고 나타나자 제법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표정은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묘한 표정이었다.

“항상 요와의 일전을 생각했지. 그런데 막상 코앞으로 다가오니 두렵기도 하구나. 혹여나 요의 힘을 오판하여 패전한다면 대역 죄인이 될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그보다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구나. 원리원칙에 투철한 병마사 영감이 구두에 의존해 병력을 일으킨 것은 당시 상황을 따져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변명 거리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그 사실을 백분 이해하고 힘을 쓰고 싶지만 내 발언권은 한정되어 있다. 거들어 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은 어려울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과 우리가 처벌받는 것은 별개가 될 것 같다는 고의화의 설명에 동감이었다. 그것을 염려해서 김한충이 가문의 힘을 움직이려고 한 것이 아닌가?

야율대석이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면 우리에게 너무나 불리한 상황이니 단순한 옭아매기였지만 너무나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의화와 헤어지고 이자겸에게 향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예전 방문한 적이 있던 내원으로 안내받았는데 그곳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이소가 전해온 소식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보았던 이들 중, 김경용과 김인존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자겸은 경주 김가 종친 모임에 소집되었다고 귀띔해주었다.

신라 왕실의 후예들답게 직계, 방계의 힘이 모두 합쳐지면 당대의 세도가 인주 이씨도 감히 어쩌지 못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들이 김한충의 설명을 어찌 해석할지는 몰랐지만, 이곳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색다른 해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요가 아무리 쇠락했다고 하나 전력을 동원하면 강동 6주를 빼앗기는 시간문제요. 요양에서 출병한다고 가정하면 기존처럼 강동 6주로 향하는 병력이 주공이 될 것이고, 동북 9주는 숙여진과 속부를 동원할 것이 자명하오. 요새 들어 목에 힘주고 있는 서경파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경이 점령당하면 치명적인 손해를 입게 되니 우리 뜻대로만 된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오. 그러나 역시 전쟁은 달갑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오.”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남부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었다. 가장 북쪽이라고 해봐야 인주 이씨였고, 그래서 남경 천도를 생각하고 있던 숙종의 마음을 돌리고자 이런저런 노력을 한 것이 아닌가? 잘 먹고 잘살고 있던 기존 구도가 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으니 참으로 헛웃음이 나올만했다. 이것이 현재 세도가들의 평균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하니 내심으로 한탄이 흘렀다.

이자겸은 마시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전쟁이 일어났다, 치고, 일이 잘못되어 개경까지 요가 밀고 내려온다면 폐하께서 남경 천도로 굳힐 가능성이 있소. 그 일만은 피해야겠지. 즉,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동강 이북으로 한정되어야 하오.”

이자겸이 주변을 둘렀다. 세 명이 있었는데 그중 최사전을 제외하고 두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자겸이 명호를 차례로 알려주었는데 첫 번째로 인사 나눈 이는 추밀원동지사 임의(任懿)라고 했다.

임의라면 동북 9성이 지지부진하자 윤관의 실책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동북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자고 주장하고 그것을 직접 실행에 옮긴 인물이었다.

그랬다면 국경을 튼튼히 하는 조치라도 하고 돌아왔어야 하는데 여진의 일방적 약속에 근거해 변방 수비에 대한 장기 조처를 하지 않는 바람에 식견 있는 자들에게 비웃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인주 이씨가 왕실 혼례를 통해 세도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면 그가 속한 정안(定安) 임가는 고위 관리를 다수 배출하면서 권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당대 문벌과도 교류를 소홀히 하지 않아 또 하나의 숨은 권력자라 칭할 만했다.

“도성을 근거로 삼고 있는 개경파를 압박하여 그들이 가진 밑천을 털어놓도록 해야 할 것이오. 서경파와 개경파가 입을 손해를 생각하니 전쟁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한 번쯤은 상상대로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구려. 어찌 되었거나 일이 이렇게 벌어진 이상 동계 병마사가 얌전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으니 조회에 앞서 가부를 결정해야 하오.”

“참 난감하오이다.”

쉰 정도로 보이는 임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그가 인상을 찌푸리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임의의 아들, 임원후(任元厚)가 수주 이씨와 혼례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위의 외손녀가 인종의 비, 공예태후였다면, 임원후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사돈 집안이 엮여 있으니 정안 임씨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의 중대사인 만큼 속례는 잠시 접어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집안 어른들의 의향은 묻지 못했으나, 동계 병마사가 겪은 일이 사실이라면 요의 방자함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내세울 것입니다.”

임의 다음으로 소개받은 중년인은 최림(崔琳)이라고 했다. 정안 임씨 못지않게 고위 관료 다수를 배출한 경주 최가 사람이었다. 최치원을 시조로 삼고 있는 경주 최가는 고려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낸 명문가로 최치원, 최언위, 최승우, 최제안, 최항, 최승로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그들의 성향은 최승로가 성종을 통해 시무 28조를 발표한 것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는데 쌍기 같은 귀화인이 국정에 관여하는 것을 배척하고 기존 공신과 귀족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개인의 인품, 명망과는 관계없이 가문으로만 보자면 보수적인 권문세가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이자겸과 손을 잡는 것도 이해가 갔다.

숙종 다음 대 임금인 예종이 유학에 관심이 많아 전문적으로 경적(經籍)을 토론하기 위해 청연각(淸?閣)과 보문각(寶文閣)이라는 학사(學舍)를 만들게 되는데 초대 보문각(寶文閣) 학사(學士) 중 최림의 이름도 들어 있다. 최치원의 4대 손답게 유학자의 풍모가 철철 흘러 넘쳤다.

현 중앙 관료 중 정안 임씨와 경주 최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아서 이자겸이 이들과 먼저 상의할 생각을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윤관이 여진을 치기 위해 별무반 결성을 주장하자 그 사이 요나라가 공격하면 어찌하느냐며 반대에 나섰던 것을 생각하면 그 이유의 배경을 떠나 요나라에 대한 반감은 일정 부분 많은 신료에게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봐야 했다.

동북 9성 출병이 왕권 강화의 목적이 있다고 보고 반대했다면 요나라의 침입은 곧 나라의 안위가 관련이 있고,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전쟁을 막기 위해 김한충, 강증, 그리고 나를 내쳐서 요나라에게 협상을 요청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미 그 방법은 수주 이씨가 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에 동조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인주 이씨로서는 참을 수 없는 결과였다. 정국을 주도하는 것은 수주 이씨가 아니라 자신들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쟁으로 나타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자신들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를 줄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덜컥 전쟁을 벌였다가 만약 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러나 이자겸은 방어전으로 가면 고려가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내심을 털어놓았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요는 지금까지 3개월 이상 원정을 나선 전례가 없소. 건초를 공급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간만 원정에 나섰지요. 3개월을 버티면 기존처럼 화의 사자가 올 것인즉 적당히 자존심을 세워주면 요도 우리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오.”

“대감의 뜻은 충분히 알아들었소. 그러나 수주 이가를 비롯한 화친파가 병마사와 척 장군을 파직하고자 한다면 반대할 명분이 마땅치 않소. 병마사가 구두로 위보(僞報)를 들었다고 주장하나, 야율대석이 그 주장을 증언해주지 않는 이상 무작정 그 사실을 믿어주기도 모호하거니와 이미 결과는 아국의 수군이 요나라가 완안부를 공격하는 것을 훼방 놓았다는 것이기 때문이오.”

임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기면 못할 것이야 없겠지만 놓인 결과만 보면 요나라의 행사를 우리가 방해한 것이니 요가 처벌과 사죄를 요구한다면 치사하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반년 전 완안부를 상대로 처참하게 패배하여 파직당한 이들이 수주 이가에게 복직을 도와달라고 빌붙어 있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의 복직을 내세워 우리와 적당한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들이 복직하면 요나라를 대변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니 앞으로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야율대석을 앞세운 요의 노림수도 거기에 있는지 모르지요. 애초에 고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면 조정과 먼저 상의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상황이 급박하다고 동계의 병력이 먼저 나설 것을 주장한 것은 이유를 만들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만약 이대로 그들의 뜻에 따른다면 참으로 치욕적인 결과입니다.”

최림은 유학자로서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유학의 본고장 송과의 교류는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요나라는 한낱 북방 오랑캐에 불과하며 그들과의 교류는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차원에 불과했다.

이자겸은 좌탁에 손가락을 몇 번 두들기다가 말했다.

“병마사 영감과 척 장군을 만약 우리 손으로 먼저 끌어내린다면 어찌 될 것 같소?”

“사신이 도착하기 전에 대국에 범한 죄를 물어 먼저 끌어내리면 수주 이가가 우리를 공격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말이 아닙니까?”

임의는 그러면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내 앞에서 죄를 묻겠다는 의견이 나왔으니 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원군 파견을 요청할지도 모르지요. 요와 고려가 완안부를 함께 공격하면 혹여 서로 힘을 합칠까 두려워하던 요로서는 매우 좋은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송도 의혹의 눈길을 던질 것입니다.”

임의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최림의 목소리가 커졌다.

“요의 시선이 온전히 고려로 향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원군 제의에 승낙하는 것은 우리 목을 우리가 조르겠다는 뜻과 다름없지요. 저는 절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주먹을 좌탁에 올렸다.

“병마사 영감과 척 장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임간 등의 복직과 교환하는 거래 역시 경주 최가로서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요와 마찰을 빚은 병마사 영감을 동계에 유임시키는 것은 요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그 자리를 만일 임간 등이 꿰찬다면 요가 갈라전을 얻는 것을 방관하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요가 갈라전을 일부러 손에 넣지 않았던 것은 개마산(蓋馬山, 백두산)이 폭발하여 일대 수백 리를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던 탓인데 세월이 흘러 사람 살만한 곳이 되니 군침을 삼키게 된 것이 아닙니까? 야율대석이 자신만의 기반을 얻고자 치졸한 음모를 계획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순순히 따를 수는 없습니다. 병마사 영감의 후임으로 내정되어 있던 위위경(衛尉卿) 김덕진(金德珍)을 예정대로 발령하고 병마사 영감과 척 장군은 사신이 오기 전에 파직하여 고향으로 보내 쉬도록 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순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번 기회에 갈라전을 적극적으로 아국에 편입시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주 이가는 폐하께서 갈라전을 얻고자 하는 것이 남부 귀족들의 목을 조르는 행위로 보셨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그렇게 커진 영토는 우리에게도 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가 완안부를 공격하면서 갈라전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이상 우리가 나설 수 있겠소?”

최림의 호기에는 동조하지만, 임의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어느새 김한충과 강증, 나의 처리는 뒷전으로 밀린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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