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9 (13)해몽(解蒙) =========================================================================
나는 고욕에게 말했다.
“남은 부족민을 이끌고 마양도로 돌아가시오. 시급한 일을 처리하고 곧 사람을 보내리다.”
“듣자하니 요의 사신이 장군의 명운을 쥐고 있나 본 데 진실로 장군을 믿고 대사를 치를 수 있겠소?”
“내가 그릇된 판정을 받는다 해도 대사와는 무관할 것이오. 그것은 반드시 약속할 수 있소. 단지 그대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노략질을 금하고 내실을 다지라는 것이오. 고려 수군에게 전공을 바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오.”
나는 강증에게도 말했다.
“지금 대화를 그대도 들었을 것이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소. 칼을 물려 주시오.”
강증은 망설이고 있었다. 여진 해적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이대로 놓쳐야 하는지 그의 눈빛이 수시로 변했다.
“이미 이들의 근거지가 마양도라는 것을 안 이상, 그리고 이들의 배가 모두 불탄 이상 목줄은 우리가 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소? 이들의 뿌리가 발해의 유민임이 드러난 이상 살 길을 열어주고 품는 것이 아국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오.”
“소관은 아직도 미심쩍지만, 장군께서 책임지신다고 하니 일단은 따르겠습니다. 혹여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면 소관은 즉시 움직일 것입니다.”
강증이 조건부 승락을 내비쳤다. 아마도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 급선무라 타협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배가 모두 불타 이들을 싣고 갈 배가 없었는데 강증은 중선 두 척을 내주었다. 그는 이 기회에 마양도가 실제로 그들의 근거지인지 확인할 속셈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곳이 동해에서 활개치던 여진 해적의 최대 근거지라면 당분간 동해안의 평화는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고욕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떠났다. 눈빛을 읽을 수 없었지만, 감정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을 관망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뒤늦게 우야소가 다가오자 강증은 다시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이곳을 떠나오기 전에 김한충에게 실토한 바가 있어 고욕보다는 그나마 설득이 쉬웠다. 그러나 뿌리 깊은 전의까지 감추지는 않았다. 불과 반 년 전에 일어난 완안부와의 전투를 어찌 잊을까? 그런 적과 손을 잡는다고 생각하니 어색하기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용케도 백산부가 장군의 설득을 받아들였지만, 우리와 원한이 적지 않으니 언제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처지가 심히 좋지 못하니 당분간은 갈라전을 넘보지는 않으리다. 장군의 말대로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은 삼 년 뒤가 되지 않을까 싶소.”
숙여진이 완안부를 공격한 이상 우야소와 아구다는 북으로 올라가 흑룡강 일대에 흩어져 있던 완안부 전력을 끌어모으고 더욱 주변의 생여진을 복속하는 데 힘을 모을 것이다. 어쩌면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오늘의 일전이 금나라의 출현을 더 가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로서는 다행이었지만 나로서는 아쉬운 결정이었다. 본래 우야소가 함흥 일대를 점거하며 긴장감을 조성했더라면 고려 조정은 동계에 마음대로 변화를 줄 수가 없었다. 위험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야소와 아구다로서는 본진으로의 회군이 생존을 위한 당연한 결정이었기에 말릴 수는 없었다.
우야소가 떠나자 나는 강증이 붙여주는 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육로를 통해 남하했다. 배를 타고 가면 돌아서 가는 거리가 상당했기에 100리 정도의 거리라면 그냥 말을 타고 가는 것이 빨랐다.
정주성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새벽닭이 힘차게 울고 있었다. 4시 정도 되었을까? 아직 해가 떠오르려면 이른 시각이었다. 내가 나타났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김한충이 나타났는데 자지 않고 기다렸던 것인지 노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야율대석은 두 시진 전쯤 침소에 들었네. 장군이 도착하면 언제든 깨우라고 했으니 곧 나타날걸세.”
김한충과 차를 들며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산부가 발해 유민이라는 것과 그들을 설득하여 마양도에 있는 본거지로 돌려보냈다는 말에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고구려와 발해 유민들은 자존심이 세지. 어떤 이유에서건 약속하면 지키는 사람들일세. 또한, 제국이 되살아나 옛 영화를 다시 누리기를 원하고 있기도 하지.”
그는 먼 곳을 응시했다.
“발해라……. 발해의 몰락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었네. 백두산이 폭발하고 인근 수천 리가 그 손해를 입었는데 그 와중에 속신(束臣)이었던 거란이 배신의 기치를 들었네. 복구에 여념이 없어 활짝 열려 있던 발해의 도성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공격했지. 단 삼 일, 어려움을 틈탄 도적들에게 도성이 함락되었다. 그래서 발해 유민들은 요나라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완안부가 백산부의 사적(私敵)이라면 요나라는 불구대천의 공적(公敵)이라 할 수 있지.”
나는 김한충의 설명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한 가지 가설로만 전해지던 발해 멸망설이 김한충의 입에서 설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해가 갑자기 멸망한 원인이 백두산 폭발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는 방송과 서적을 통해 여러 차례 알려진 바가 있었지만, 이 시대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요사에 보면 발해의 민심이 멀어져 싸우지 않고 이겼다고 적고 있다. 해동성국이라는 명성이 그토록 허망하게 기울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백두산 폭발설을 지지하던 학자들은 발해가 멸망하기 전(前) 해부터 멸망 몇 달 전까지 고려가 발해유민을 대규모로 받았다는 기록에 주시한다.
더구나 발해는 926년 1월에 거란에 의해 멸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후 9년 동안 당나라에 매년 발해의 이름으로 사신단을 파견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거란은 발해의 항복을 받았지만, 나라를 세우고 실제 수도는 요양에 둔다. 요양은 발해 영토의 극서(極西)나 마찬가지다. 발해의 도성을 함락시켰고, 왕의 항복도 받았지만, 거란이 발해를 대신해 온전하게 다스리기에는 무리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요사에 또 다른 기록이 있는데 발해는 중원에서 너무 동쪽이고 오지라 통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10만여 호에 달하는 발해인을 요양 인근으로 강제 이주시킨 적이 있다.
너무 동쪽의 발해 영토는 발해 멸망 후 10년 정도는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하고 있었고, 백두산 인근은 폭발, 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면서 그 일대의 복구를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가설이 김한충의 입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니 한 꺼풀 덮여 있던 진실에 근접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김한충은 그런 사실을 통해 백산부가 말갈을 뿌리로 삼고 있는 여진 계열이 아닌 발해 유민이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거짓으로 약속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내게 심어주었다. 어찌 보면 뿌듯하기도 했다. 그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해 일제 강점기에는 같은 민족끼리도 불신하고 다퉈야 했다.
야율대석이 등장했다. 그 뒤에 익숙한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각희에서 상대로 만났던 바야르와 칼둔이었는데 그들은 나를 보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를 보였다.
“생각보다 멀쩡하군.”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야율대석이었지만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의 8대손이라는 꼬리표는 그가 상석에 거리낌 없이 앉을 수 있는 배경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나의 안다가 될 생각은 없는가?”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여전히 ‘안다(의형제)’를 얻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커르(수하에 가까운 동료)’를 원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저를 안다로 삼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가 ‘안다’를 얻고자 한다고 직접 밝혔는데 그대는 계속 내가 ‘너커르’를 원하고 있다고 하니 내 마음을 나보다 잘 안다는 뜻인가? 어찌 그리 확신하지.”
“저를 불러들이기 위해 병마사 영감께 뭐라 하셨습니까? 저뿐만이 아니라 동계의 수뇌부 전체의 운명이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이상한가? 내가 그대를 생각해 음모를 막아주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내 말을 끝으로 정적이 감돌았다. 여유롭던 야율대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기 때문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경직된 어투로 야율대석이 말했다.
“그대는 일개 장군으로 있기에 아까운 자다. 고려는 그대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느꼈다. 그대라는 자를 내 곁에 두고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만약 적이 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대적(大敵)이 될 것이란 두려움도 생겼다.”
야율대석은 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접힌 장계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읽어 보아라.”
나는 접힌 장계를 펼쳐 김한충도 볼 수 있도록 늘어놓았고, 잠시 똑같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김한충은 몹시 분노한 기색이었다.
“이게 대체 무엇인가! 처음 내게 말했던 정보와 완전히 반대의 내용이 아닌가!”
홍로경 장직의 이름으로 작성된 장계는 완안부의 섬멸을 담고 있었다. 이를 위해 동계가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고려 조정에 알리고 조치하기에는 늦어 동계가 잘 판단하여 뜻을 따라줄 것을 권고하고 있었다. 월권이 될 수 있겠지만, 만약 완안부 섬멸의 공을 세운다면 일전에 큰 치욕을 당한 고려 조정은 동계 수뇌부가 세운 전공을 크게 칭찬할 것이고 요나라 역시 더 큰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사신을 보내 뒷받침하리라고 적고 있었다.
우야소와 아구다가 전력을 남겨둔 채, 남하한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이번과 같은 적기가 아니면 커지는 세를 누를 기회가 없어, 그동안 완안부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동여진 삼천도 참가한다고 밝히고 있었다. 야율사부의 명령으로 숙여진의 두 개 부족이 일만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했고, 동여진 삼천에 고려의 병력까지 합쳐지면 우야소와 아구다를 물리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전공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어서 참여하라는 재촉으로 끝맺고 있었다.
나는 적게나마 얄팍한 음모의 주재자가 야율대석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개경에서 나를 품고자 하는 자들은 있어도 적대시하는 자는 겪지 못했다. 있다 해도 이자겸이 알아서 손을 써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다.
나를 고려에서 떼어내 자신이 쓰고 싶어하는 자. 야율대석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야율사부 같은 이가 완안부를 목적으로 삼고 나를 곁가지로 삼았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나를 죽이고 싶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각희에서 내가 활약하긴 했지만 이후 김경용이 보여준 신위가 더 뇌리에 꽂혔으면 꽂혔을 것 같다. 그의 성격이 진짜 쪼잔하여 나를 죽이거나 곤란에 처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김경용 역시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그 정도로 나를 신경 쓸 가치가 있을까?
“병마사 영감에게는 숙여진의 남하를 알리지 않고 여진 해적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며 그들을 섬멸할 좋은 기회라고 말씀하셨겠지요. 지금 이 장계에는 홍로경 장직의 수결이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진본이겠고, 아마도 병마사 영감은 그대를 통해 구두로 전달받았겠지요.”
야율대석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는지 딱딱했던 표정이 점자 풀어지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홍로경 장직의 명령에 반했으니 요나라는 조만간 사신을 보내겠군요. 어찌 고려의 적을 우리가 되려 도와주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진 해적을 토벌한 것이지만 이미 그런 사실은 없었던 사실이 되지요. 완안부를 공격하기 위해 요나라에 합세한 동여진을 쳤다는 그 과실만이 주목받겠지요. 야율대석, 그대의 지위와 명성을 병마사 영감이 믿었기에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정보도 당신이 ‘그런 일은 없었다.’ 한 마디면 끝나 버릴 일이 아닙니까? 병력을 조정에 동의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인 것도 분명히 오르내리겠지요.”
무서운 사람이 화를 참고 차분히 이야기하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야율대석은 그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내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겠지. 그만큼 장군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야율대석이었다. 십 대의 치기인가? 나는 피식 웃었다.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나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이대로 흘러가면 내가 생각했던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짜야 했다.
“이제 본심을 보이시는군요. 안다를 맺자면서 내 사람이라니, 결국 원한 것은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호위 외에 한 명을 더 늘리고 싶었던 것입니까?”
야율대석은 실수를 했다고 여겼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본심을 밖으로 내보내 당황스러웠던 것일까? 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