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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95화 (95/257)

00095  (13)해몽(解蒙)  =========================================================================

“내가 아직 온전히 지킬 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요.”

“고려를 말인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검지로 내 가슴을 가리켰다.

“앞으로 나를 따를 자들입니다.”

아구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재주가 많고 아량이 제법 넓어 부하들에게 두둑한 신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태조가 되는 사람치고 특별한 사람이 없겠느냐마는 고려사에 전해진 그대로가 맞다면 그의 이력은 의미심장하다.

고려사절요에 보면 앞으로 11년 뒤인 1115년 금나라가 건국하자 화친을 위한 사절이 고려로 찾아왔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평주(平州, 황해도 평산)의 승려, 금준(今俊)이 여진 부락에 몸을 담았는데 그가 곧 금나라의 시조라고 적고 있다. 금준이 여진의 여인을 만나 자식을 낳았고 그렇게 대가 이어져 아구다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구다가 김씨이며 신라 왕실의 후예라는 주장이 있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윤관이 아구다를 고려에서 이주하여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그가 그토록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면 신라의 옛땅을 수복할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반란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이 일대는 보기 드물게 평야가 많고 말을 키우기에도 좋아 일국을 창업하고자 한다면 적지(適地)다. 그런 만큼 고려의 반발도 거세겠지. 우리와 연합하여 고려를 견제하고자 함인가?”

나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땅이 중요합니까?”

“그것을 질문이라고 하는 것인가? 근거지가 없다면 어찌 창업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저와는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이 우선입니다. 내 목적과 내 신념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동료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백성입니다.”

아구다는 그럴듯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런 답도 낼 수 있겠구나. 땅과 사람 어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옛말에도 천지인이 갖춰져야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대가 바라는 목적, 새로운 변화는 무엇인가?”

나는 게르의 천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붉은 수실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천 년 전에 흉노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북방을 지배했지요. 중원도 그들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중원으로 침입할까 장성을 쌓기 바빴지요.”

“확실히 그러했지.”

“그다음으로 북방을 장악한 곳은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성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돌궐이 치고 나왔지요. 돌궐 뒤에는 위구르가 새로운 패자로 등극했습니다. 그런 위구르는 키르기스에게 멸망하였습니다. 위구르의 멸망과 함께 유목민족은 동과 서로 갈라졌습니다. 동쪽에서는 거란이 요나라를 세우는 데 성공했고 돌궐 중 일부는 서쪽에 그들만의 제국을 세웠습니다.”

여운을 남기며 잠시 숨을 돌리려는 사이 아구다의 표정은 냉소를 가득 담고 있었다.

“그래서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자는 것인가?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천상 무장이라고 들었는데 하는 발언은 요 조정에 수두룩하게 널려 있는 간교한 달변가를 닮았구나. 집어치우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라.”

금나라를 세운 이유 중 하나가 거란의 차별 때문이었다는 야사가 내려올 정도로 아구다의 행보는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세력이 점차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꿈이 확장된 것은 아닐까?

“여진이 요나라를 대신하십시오. 돕겠습니다.”

나를 분석하듯 가늘게 바라보던 아구다의 눈이 반개했다.

“여진 중에 대방(大邦, 고려를 가리킴)에 뿌리를 둔 자가 적지 않습니다. 고려가 선춘령을 얻고자 하는 것은 옛 고토 중 일부라도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만약 그 마음을 헤아리실 수 있다면 고려 역시 완안부를 도울 것입니다. 최소한 남은 아니지 않습니까?”

민족의 개념을 들어 설득을 시도하는 것이 낯 간지럽기는 했다. 사실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근대에 와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국가와 전쟁이 동의어로 결합하고 민족이 생겨난 것이지 민족이란 주장 위에 국가가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처한 시대는 전쟁은 곧 국가 간 전쟁이라는 인식이 아니었다. 부족 간의 전쟁이 될 수도 있었고, 영주 간의 전쟁이 될 수도 있었으며 마을 간의 전쟁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국가라는 큰 틀에서 놓고 봤을 때 분명히 소모적인 증상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 홉스 같은 자연법주의자들은 전쟁은 국가 간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정의돼버리고 만다. 소모적인 분쟁은 분명히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 그렇다면 틀린 것인가?

국가는 전쟁을 수행할 의무를 부여받았다는 핑계로 무력 투사를 외부와 내부를 동일하게 억압할 수 있는 유일 권력을 획득했다. 국민에게 무력을 투사한다? 그것에 의문이 든다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보면 된다.

절대 왕정이 그렇게 성립되었고 억압받는 평화에서 조금씩 성장한 시민계급은 굳건한 구체제의 모순을 고칠 방법을 찾게 된다. 그것은 곧 내전으로 연결된다. 프랑스 혁명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성공은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전파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인식을 낳게 했고 전 유럽을 불타게 하였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순기능은 어느새 변질하여 식민지 시대를 개막한 논리로 이용되게 되었다. 민족적 우월감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문명의 우열을 나눌 수는 있어도 문화의 우월은 나눌 수가 없는 법인데 어느새 모든 것이 용광로에 섞여 가장 이기적인 형태의 서열화로 전 세계인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다시 한 단계의 인식 변화, 진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테러와 국지전은 끊이지 않고 있고, 그 근거로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혁명적 내전’의 개념은 아직도 회자하고 있다.

구구절절이 이야기했지만 내 결론은 이거다.

국가를 세웠던 과거의 선택은 결코 실패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근대 사회에 이르러 같은 역사를 반복한다면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하겠는가? 나는 후인들에게 본을 보일 수 있는 제도를 선보이고자 했지만, 인간의 욕망은 인간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없어지질 않을 영구한 것이라는 것을 이미 역사를 통해 입증받았다.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신이란 존재가 실재한다면 삼국지와 달리 지금의 나에게 새로운 힘을 준 것도 그런 의도이리라 생각했다.

이게 정답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순간마다 매번 답을 맞히길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사는 삶의 주체는 나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신아라는 단어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일찍이 저는 동서양 수만 리를 횡단했습니다.”

키케로는 로마 사람들에게 지금 어느 때보다 라틴어 지식이 형편없다는 독설을 남긴 바가 있다. 그것은 마치 현대에서 신조어를 남발하는 젊은 세대를 보며 한탄하는 어느 문인의 독백으로 바꿔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동과 서의 문화가 다르고 말도 다르고 행하는 정의마저도 그 뜻이 다른 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말로 순화하자며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바꾸자고 국립국어원에서 제의했을 때, 네티즌들은 그럼 한문인 국립국어원을 한글로 풀어 나라세움우리말터로 바꾸자는 의미심장한 비판을 가한 일 있었다.

국경선이란 개념이 출현하면서 국가는 군대를 상비하기 위해 정확한 인적 정보와 막대한 세금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각지의 말이 다른 것을 하나로 규격화하기 시작했다. 바벨탑이 무너진 이유를 떠올려 보면 그 반대의 생각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칼을 들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탐욕에 찌든 침략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금도 수를 셀 수 없는 무고한 백성이 죽어나가고 있겠지요. 누군가가 그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면 제가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민나라는 한때 동아시아를 석권했던 일개 왕조로 그쳤다. 로마에도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그 변화가 너무 일시적이어서 장구한 세월이 지나자 그 영향력은 지워져 기억하는 자가 드물 정도였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전 세계가 기억하고 인식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사건이 바로 서쪽에서 벌어지고 있다. 십자군 전쟁이다.

아구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꿈이 허황하다.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지도 분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꿈 중 가장 허황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허황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남자라면 한 번쯤은 생각했던 그런 꿈이라 그렇겠구나. 위구르 제국을 다시 일으키려 함인가?”

위구르는 유목민 중 문화의 힘을 가장 잘 파악한 제국이었다. 유목과 농경 문화를 함께 공존시켰고 많은 언어를 제국표준으로 채용하여, 하나를 강요하지 않았다. 서방문화와 중원문화 역시 어느 하나를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시켰다. 강력한 군사 제국이었던 토번의 압박이 아니었다면 유목민족 중 가장 ‘언어와 기록 문명의 보존’에 앞장섰다고 평가받는 위구르의 이름은 더욱 회자하였을 것이다.

홍길동은 율도국을 세워 평화롭게 다스렸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세운 민나라 역시 시작은 같았다. 홍길동이 세웠던 나라도 언젠가 분명히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양산박을 표방하기는 했지만, 그저 단순한 의협 집단으로는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은 상대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올림피아드를 다시 열었던 것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너무나 시대를 앞서나간 발상이었다.’

평소에는 그래도 현실과 타협했던 정책을 냈지만, 자신감이었는지 그때 처음으로 불협화음을 냈다. 차라리 회맹에 중점을 두었다면 났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금을 개국하고 아구다는 이름을 민으로 개칭했지. 완안 아골타에서 완안 민으로…….’

세상은 참으로 스치는 묘한 인연들이 숱하게 있었다.

“출신 성분이 그리 좋지 않다고 들었지. 자수성가했다고 들었는데 고려에 대한 반감이라도 있는가? 고려의 힘으로 그대가 바라는 뜻을 이루면 되지 않겠는가?”

고려에서 물론 그 꿈을 이룰 수는 있다. 중원을 손에 넣고, 얄미운 일본도 손에 넣고, 발해의 고토와 시베리아, 중동, 동남아 못 갈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의 대제국이 이루어졌다 치자. 그다음 순서는 언제고 반드시 있을 제국의 해체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원에서 인물이 나타나 제국을 하나로 통일했다고 쳐보자. 그다음에는 일본에서 인물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그럼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어떤 역사를 배우게 될까? 한민족이라는 자각은 그때쯤은 없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민나라를 세웠던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심중에 담겨 있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그 안에 담긴 ‘민족’이란 함의(含意)가 일정부분 가공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남의 나라, 남의 정의에 참견하는 꼴이라니 지금 내가 뭐하자는 것인지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 가지 이유는 확실했다. 언제고 돌아갈 익숙한 공간을 남겨두고 싶은 귀소 본능의 작용이었다.

나는 아구다의 대답에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떤 의미로 해석할까?

“서하 너머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지. 요나라를 상대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대의 생각을 들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만약 그대의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비단길을 계속 이용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매우 흡족한 일이지. 헌데.”

아구다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세상이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명분이야 어쨌든 그대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지 그 자격을 시험해보자.”

아구다의 말에 오히려 막혔던 숨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변명을 붙였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아구다가 요나라를 치고자 하는 것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숙종이 동북 9성을 얻고자 하는 것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제 생각보다 더 단순한지 모르겠습니다.”

내 솔직한 대답에 아구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목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격언이 하나 있다. ‘풀이 없이는 가축이 있을 수 없고, 가축이 없이는 먹을 것도 없다.’ 그런데 그런 풀을 우리는 키우지 않는다. 드넓은 초지에서 일천 마리의 말을 방목하는 것은 숙련된 목동 한 명이면 충분하지만, 농부 한 명이 일천 마리를 감당할 초지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뭔가 단순하지만, 삶의 성찰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아구다는 의자 옆에 놓아두었던 대도를 어루만졌다. 요시치카는 이 상황이 몹시 긴장되는지 주변을 세밀히 살피며 만전을 기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격언도 있다. 말의 힘은 멀리서도 알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은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다.”

아구다가 휘파람을 불자 순식간에 게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발걸음 소리로 봐서는 경계를 서고 있던 무리 외 다수가 추가되고 있었다.

이들에게 말이란 단어는 곧 전사와도 같다. 나를 시험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한 것이다.

“내게 수족 같은 맹안(猛安)을 소집했네.”

맹안은 여진의 군사 체제를 특징 하는 말로 천호장(千戶長)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300가구를 기준으로 1모극(謀克)이라 하고, 10모극이 모여서 1맹안이 된다. 300호당 100명의 병사를 뽑아내는데 그렇게 일천 명이 모이면 1맹안인 것이다. 일천 명의 여진 기병이면 일만의 고려군이 모여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데 수족이라고 자처할 정도의 맹안이라고 하니 내 밑천을 속속들이 지켜볼 모양이었다.

“이기라고 하지 않는다. 손님을 죽일 마음도 없다. 그대들이 타고 온 말을 통해 정주성으로 무사히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우리의 동맹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포위를 뚫어내는 실력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슨 제의를 했건 일단은 받아들여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설사 고려가 그대를 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그대를 동맹으로 인정하겠다. 나는 척준경 자네를 에르킨(Erkin)으로 인정할 것이다.”

============================ 작품 후기 ============================

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며칠을 고민하고 본문글을 수정하고 그래도 결국은 챗바퀴더군요. 고민은 그만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별다른 공지가 없다면 매일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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