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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94화 (9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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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해몽(解蒙)

여름의 절정이었다. 북부 지역 역시 그 더위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아구다가 머무르고 있다는 게르까지 대략 100리 정도 되었는데 그 길이 그늘도 없는 노천(露天)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내 곁으로는 요시치카가 수행원으로 따르고 있었다. 여럿을 거느리라는 김한충의 제안을 뿌리친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고, 심각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추측이기도 했다.

그런데 몇 날 며칠을 달려 정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출발해서 그런지 슬며시 피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저녁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제 간다고 따로 통보한 것도 아니니 노숙을 할까요?”

“아니다. 이대로 간다.”

내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고 요시치카 나름대로의 배려였겠지만 아구다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구가 먼저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말 위에서 지낸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달리면서도 꾸벅꾸벅 조는 경지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말에서 떨어질까 기겁하던 요시치카도 떨어질 것 같으면 교묘하게 중심을 잡는 모습을 보더니 감탄만 할 뿐이었다.

달리면서 느껴지는 진동은 묘하게 수면 욕구를 자극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도 결국에는 눈을 감고 말았다.

-국민 여러분, 단 한 주의 주식을 가지고 있어도 오르면 기분이 좋고, 내리면 기분이 나쁜 법입니다. 자신의 자산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곧 대한민국의 주주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가가 내려간다는 것은 곧 여러분의 재산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투자 가치가 있는 회사를 찾기 위해 꼼꼼하게 실적과 공시를 점검하는 마음으로 국정을 감시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재산을 늘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국회가 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고 의원들은 또 무엇을 하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말해봐야 입만 아픈 것이 국민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스스로 만든 회기조차 못 지키면서 뼈를 깎는 고통 분담에 대해서는 선거 때마다 되풀이될 뿐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국민이 국회에 얻고자 하는 것은 미소이지, 울화(鬱火)가 아닙니다.

저는 제안합니다. 제가 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지금처럼 국민 대다수가 외면하고 있는 재미없는 국회방송을 공중파로 끌어 올리고, 야구처럼, 축구처럼 전문가와 해설자를 앞세워 국회 의사 진행을 생중계로 열고 국회의원들의 언행에 따라 SNS,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 평점과 코멘트를 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회의에 부치겠습니다. 반대가 심할 것 같다고요?

한류는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데 그 한류 안에 선진화된 국회 문화는 있으면 안 됩니까? 전문적이라 신뢰받고, 진지하여 존중받는 의사 결정이 전 세계 토픽으로 나가면 안 됩니까?

자신의 아이들에게 국회에서 고성을 지르고 욕하고 몸싸움하는 것을 보게 하고 싶은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그렇다면 공감대는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까?

뿌리 깊은 당리당략 때문에 안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한민국의 정치는 정당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당리당략을 따지는 것은 매우 옳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애초 당을 만든 목적이 독재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면 당리당략은 민리민략이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지금의 한 표가 소중합니다.

바꿀 수 있습니다!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구호에 넘어가 번번이 실망하셨다고요? 지금까지 그랬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열 번을 시도하여 한 번을 성공하면 우리는 한 발 전진한 것입니다. 한 번의 전진은 두 번의 걸음을 이끌어 낼 것이고, 세 번째 걸음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국가는 여러분의 재산이기도 하지만 여러분의 아이이기도 합니다. 관심이 없으면 아이는 어긋납니다. 딴짓을 저지릅니다. 자신의 아이라면 아이에게 조금 실망했다고 하여 포기하시겠습니까? 관심을 주십시오. 재산이 늘어날 것입니다. 애정을 주십시오. 아이는 성장하여 바른 어른으로 클 것입니다!

양복을 입고 있는 내가 높은 단상에 서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다. 참 이상한 꿈이다 싶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정년까지는 천상 회사에 목메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런 꿈을 꾸었다니 어색했다. 그러나 묘한 기분도 들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거주하던 오피스텔이다.

나는 급히 곁에 있던 폴더폰의 액정을 열었다.

2011년 4월 11일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월요일이다.

“일요일 근무하고 대신 오늘 쉬는 것이었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대략 2시간 정도를 잠들었을 뿐인데 하루 내내 잔 것처럼 몸이 뻐근했다. 오디오에서는 여전히 베토벤의 영웅이 몇 번째를 반복한 것인지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 참, 공교로운데.”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가볍게 씻으며 조금 전 꾸었던 꿈을 생각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여 내가 생각했던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그런 통쾌한 꿈이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치러졌다. 오늘은 2011년 4월 11일 월요일. 앞으로 정확히 일 년 후다.

얼굴을 씻으니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온다.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 혹시나 싶어 차기 국회의원 선거일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19대 국회의원선거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차기 선거 날짜를 일부러 외우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꿈을 꾸었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로또라도 사야 하나.”

천성이 낙천적이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꿈은 꿈일 뿐이니까 말이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몇 권의 책이 머리맡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하나하나 책장에 꽂기 시작했다. 정사 삼국지가 가장 마지막에 보던 것이라 맨 위에 있었다. 그 밑에 고려왕조실록 상편이 있었고, 다시 그 밑에는 프로이트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분석학자로 널리 알려진 칼 구스타프 융의 ‘사람과 상징’이 놓여 있었다.

책의 두툼함이 좋은 나는 평소에도 보던 책 위에 또 다른 책을 쌓아놓고 보는 습성이 있었는데 많게는 열 권도 넘게 쌓아두는 경우가 있었지만 세 권 다 내용이 워낙 길고 방대한지라 열 권이 아니라 수백 권은 읽은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사람과 상징까지 마저 집어넣으려는 찰나 나는 문득 책에 접힌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밖에 보지 않으니 내가 했을 것이다. 책 내용이 워낙 어려워 자세한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럴 때 살짝 접어놓기는 했었다.

-상징적인 삶에는 독특한 가치가 있다. 호주의 원주민들을 예로 들고 그들의 생을 90년이라 가정하면 잠을 자는 시간은 30년, 30년은 살아가기 위한 생산활동과 여가. 나머지 30년은 희생 제례(祭禮)다.

융은 그들의 일상을 통해 현대 문명의 폐해를 말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재례를 통해 집단 무의식을 체험하고 정신적인 연대감을 가지게 된다. 현대 문명이 침투하면서 재례는 미개하고 원시적인 풍습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들은 토착민의 풍습을 선진문물이라며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한 영혼의 손상을 입혔다고 융은 지적했다. 정신적인 연대감이 깨지면서 온갖 범죄가 생겨났고, 우울과 불안, 불면을 앓기 시작했다. 서로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비단 호주뿐만 아니라 미국 등을 비롯한 전 세계적 현상으로 번졌다. 융은 이런 사례를 통해 합리와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한다.

그런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체 무엇이 있을까?

-꿈은 우리에게 방향성을 제시하지만 뚜렷하게 목표를 지정해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사회 통념상의 선악과 자아의 비합리적 충동 심리 사이의 방황은 목표와 목적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극(對極)을 중재할 수 있는 초월 신념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양심의 향방이고 자기실현이다.

다시 보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접어두었다는 것은 나중에 차분히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마저 책장에 꽂아두고는 나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친구라도 만나서 한잔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통신사를 알려주는 연결 음이 귓가로 들리기 시작했다.

“주군! 주군!”

누군가 내 몸을 심하게 흔들었다. 힘겹게 눈을 떠보니 요시치카가 말에서 떨어지려는 나를 간신히 받치고 있었다. 졸면서도 전방은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대체 무슨 꿈이었지?’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정도였다. 오피스텔에 있던 것이 진짜 나이고 지금이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을 상상하며 꿈을 꾸는 것인지 헷갈렸다.

“괜찮으십니까? 쉬어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전방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엄폐물도 없는 평야인데다가 눈도 좋은 자들이니 멀리서부터 우리의 출현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깊은 잠에 빠졌던 것이 도움되었던 모양이다.

열 명의 여진 기병은 다가오자마자 정체를 물었다. 우리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주변을 순찰 중이었던 모양이다. 정체를 밝히자 그 중 한 명이 먼저 진영으로 달려갔고 나머지의 경계를 받으며 천천히 나갔다.

십 년이 흘렀지만, 그의 얼굴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는 쉰에 가까운 나이로 전사로서는 노인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인데 패기는 예전보다 더 짙어졌다.

“그 담비털은 예전에도 본 것 같군요.”

더운 날씨임에도 담비털이 자신의 상징인 것 마냥 머리에 덮고 있었다. 우야소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략 일백 명이 이상이 눈을 번뜩이며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칼이라도 뽑는다면 일제히 달려들 기세처럼 보였다.

‘선택인가?’

어떤 것을 강요, 또는 선택하기 위해서 불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친선을 나누기 위해서 일백 명의 호위를 곁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야소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을 봐서는 아구다의 발언권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으로도 해석했다.

안내를 받아 일백 명이 들어가도 족히 자리가 남는 큰 게르에 들어서자 위기감보다 시원함을 먼저 느꼈다. 지쳤던 몸도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권해주는 의자에 앉자 아구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형님에게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누구도 두려워 마지않는 요 어전에서 서하의 대신, 양을포를 눈치 보지 않고 단숨에 죽였을 때부터 싹수가 보였거늘, 이제는 나도 감당하지 못할 전사가 되었군.”

“겨뤄보지도 않고 어찌 아십니까?”

“요나라가 고려를 망신주기 위해 각희를 제의한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각희는 일반 싸움과는 운용이 달라서 나라도 그 중 두 사람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스무 명 모두 꺾었다고 하니 이미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지경은 벗어난 셈이지.”

너무 쉽게 자신의 열세를 인정하기에 오히려 긴장했다. 이런 이야기일수록 후속 대화는 쉽지 않은 이야기로 흘러갈 공산이 컸다. 게다가 아구다는 무예가 뛰어난 장수라기보다 지휘와 협상력을 인정받아 금 태조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래도 그 무예 실력은 스무 살 전의 나를 압도하기에는 충분했다.

“형님에게 들었다. 가까운 장래에 고려가 대군을 일으켜 우리를 공격하리라고 말이다. 그것이 사실인가?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이지.”

아구다에게 있어 무척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자칫하면 고려와 싸우다가 정작 요나라를 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도 한 가지 묻죠. 요나라를 치고 싶습니까?”

아구다의 안색이 변했다. 야심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진족 중 완안부가 제일 잘 나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지만 그 힘이 고려나 요나라와 전면전을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요나라가 여진을 달래기 위해 절도사 자리까지 주면서 그를 챙겼지만, 사실은 알게 모르게 자행된 차별에서 그가 폭발했음을 잘 아는 나다.

“먼저 질문하셨으니 대답하지요. 고려가 대군을 일으켜 완안부를 공격할 것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선춘령(先春嶺, 공험진) 이남까지 존재하는 여진을 몰아내고 고려의 영토로 만들고자 합니다. 두 번째 질문, 왜 그대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는가? 우야소 추장에게도 말한 바가 있지만, 다시 한 번 이 자리에서 확인해 드리지요.”

사실 우야소에게 무력을 과시하며 장군의 직함으로 존대를 받았으니 아구다에게도 하대를 해야 하겠지만, 확실히 우야소와 아구다의 존재감은 달랐다. 내가 말을 하는 내내 우야소가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도 내 말투에 책임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인사치레였다. 이것이 앞으로 서로 공대가 될지, 하대로 이어질지는 이제부터 논의 결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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