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4 (10) 일양내복(一陽來復) =========================================================================
“나가토국?”
요시치카는 뭔가가 생각나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팔짱을 풀며 소리쳤다.
“그랬군. 나가토의 모노노베 일족은 애초부터 배불(排佛)파였지. 스오국은 대대로 숭불(崇佛)파였으니 대립이 생기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소녀를 쏘아보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몹시 격동하고 있었다. 숭불과 배불의 다툼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전히 그 갈등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겉핥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백제 성왕 시절 불교가 일본으로 전래하였을 때, 전통 신앙 고수와 불교를 받아들이자는 두 세력으로 나뉘어 다툼을 벌였었다. 단순히 종교를 받아들이는 차원이 아니라 권력의 중심이 바뀔 수 있는 사건이었으니 거대 가문들은 사활을 걸고 참여했다. 내전까지 벌였을 정도로 치열했는데 결국 숭불파가 이기게 되고 배불파의 대표 가문이었던 모노노베 일족은 몰락하게 된다. 일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중 한 무리가 나가토국까지 흘러들어 정착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힘이 세지자 슬그머니 주변 지역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악연으로 점철된 스오국의 다타라 가문을 노리게 된 것이다.
‘그들이 바로 훗날 고토(厚東) 씨의 원류가 되지. 다타라 가문과 함께 일대 해상 교통을 주름잡았다.’
대립과 협력으로 오랜 시간 혼슈 서부, 규슈 일대에 영향을 끼친 두 가문이었다.
“참으로 불쾌하군. 고려의 장수가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나 요시치카는 쇼기(일본 장기)의 보졸 노릇을 톡톡히 했겠군? 스케미치, 어디 해명을 해보시지!”
아버지 요시이에가 요시치카와 조정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자가 스케미치였다. 그렇다는 것은 요시이에의 속 모를 의중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봐야 했다. 스케미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번외로 쇼기라는 말이 요시치카의 입에서 나오니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일본 장기의 역사는 바로 헤이안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쓰시마 영주 시절 내가 인민의 목숨을 빼앗고 재물을 마구 빼앗았다고 조정에 고발한 이는 다자이노다이니(大宰大貳) 오오에노 마사후사(大江匡房)였다. 그런데 아버지와 오오에노 마사후사는 젊은 시절 인연으로 꽤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가 누명을 씌우는 것을 아버지 역시 알고 있었나? 그렇다면 스케미치 자네는 나의 감시역이 되겠지.”
다자이(大宰)는 지방에서 행정상 중요한 지역에 설치되어 인근 구니를 조정하고 다스리는 지방 장관쯤 되는 자리였다. 지방 장관은 대부분 공경이 맡지만, 교토에 머무르는 명예직이었고, 실무는 그 아래 차관급이 책임지게 된다. 그중 그가 언급하는 곳은 오늘날로 보자면 후쿠오카현(지쿠젠국, 筑前?)정도가 된다. 규슈 전 지역에서 후쿠오카현은 중국, 한반도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조정으로서는 각별히 관리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구니에 행정관을 파견하면서도 그들을 관리 감독할 광역 행정 단위를 만든 것이다. 그곳의 실무자가 바로 오오에노 마사후사라는 말이었다.
스케미치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소리쳤다.
“주군께서는 요시치카 님을 살리고 싶어하셨습니다.”
“나를 살리고 싶어하셨다고? 억울한 누명을 씌워 자식에게 반란의 길을 가도록 한 것이 살리는 행위란 말인가! 스케미치 모든 것을 거짓 없이 다 밝히게!”
“죠토쿠 2년(1098년)에 주군께서는 인(院)에 오르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당시 말이 많았지. 더러운 놈들.”
요시치카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역관을 통해 스케미치의 설명을 들은 나는 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시기는 인세이(院政)라는 독특한 정치 제도가 실행되고 있었다. 왕이 정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왕의 아버지인 상왕(上王)이 정무를 돌보는 형태로 그가 머무는 장소를 보통 인(院)이라고 표현했고, 인에 오른다는 것은 그의 측근이 된다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흥선대원군의 운현궁 정치와 비슷할까?
요시이에는 처음에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아우 요시츠나가 젊은 시절 승승장구했으나 당시 승병을 사병처럼 보유하고 있던 불교계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을 염려한 시라카와 상왕이 형인 요시이에를 신임하게 되면서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인세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귀족들에게 무사란 자신들을 호위하며 영지를 지키고 더러운 일을 대신 해주는 개와 같은 존재였기에 무사가 인에 오른다는 것은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역사서에서 요시치카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그런 귀족들에 대한 반발이라고 적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주군의 장남인 요시무네님은 요절했고, 이제 요시치카님이 주군의 뒤를 이어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만 조정의 공경들은 요시치카님의 지략과 무위, 대담성이 주군 못지않음을 깨닫고, 그것이 두려워 인세이 일원 중 처음으로 하국(下國) 쓰시마로 보냈지요. 상왕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한 주군의 후계자에게 대국이나 상국은 주지 못할망정 하국을 준다니 이것은 명백한 모멸의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주군은 참았습니다. 다행히 인근 지쿠젠국에는 인세이의 유력자, 오오에노 마사후사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몇 년만 참으면 더 좋은 구니로 옮길 수 있도록 주군께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요시쿠니!”
요시쿠니는 요시치카의 동생이었다. 그는 일족 중 후계 순위가 낮아 영지를 받을 가능성이 없자 자신의 삼촌이자 히타치의 영주였던 요시미츠에게 시비를 걸고 전투를 유도했다. 아직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 일 때문에 요시이에는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참이었다.
“공경들은 이때다 싶었지요. 그들은 주군에게 제의를 했습니다. 다루기 어렵고 거친 성품의 요시치카, 요시쿠니 님보다 온화한 성품의 넷째, 요시타다 님을 후계자로 임명하면 대국인 가와치국을 주겠다고 말입니다.”
“가와치국을!”
요시치카는 눈을 부릅떴다. 하긴 그 정도니 요시이에의 마음이 흔들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와치국이면 현대의 오사카다.
“그랬구나. 그랬어.”
요시치카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니 자신은 그야말로 각 세력 이합집산의 이용물이라는 충격적인 진실 때문일 것이다.
요시이에는 가문의 발전을 위해 요시치카보다 요시타다를 선택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오오에노 마사후사와 상의 끝에 아들을 무고하였고, 믿을만한 심복, 스케미치를 요시치카 곁에 두었다. 스케미치가 다스리던 분고국은 마사후사가 있던 지쿠젠국의 인접국이니 요시이에와 마사후사의 뜻을 가장 잘 받들 수 있는 적임자였을 것이다.
일단은 벌을 받고 선처를 기다리라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오키 제도로 요시치카가 유배를 떠난 후부터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가 되었다. 그의 유배에 맞춰 이즈모국 인근의 영주, 가문들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요시이에로서는 이렇게 일이 커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적당한 때에 아들을 오키에서 풀어주고 중앙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보낼 작정이었지만 때마침 철광 소유 갈등이 이즈모국에서 불붙으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우다겐지에서 분가하여 이즈모 동부 철광의 관리자로 떠오른 자들이 그 유명한 아마고(尼子) 가문이다. 요시치카 토벌에 공을 세운 마사모리는 단바국(丹波?)을 얻었고, 두 아들은 중앙 요직을 꿰찼다. 단바국은 이즈모 동부 바로 남쪽으로 교토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요지다.’
마사모리는 일찍이 쓰시마와 후쿠오카 사이에 작은 섬, 이끼의 별 볼 일 없는 영주였다가 시세판단 끝에 모험을 감행하기로 하고 시라카와 상왕에게 영지를 통째로 바쳤다. 그 결과로 교토 인근 이세(伊勢)에 무사 장원을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갖은 궂은 일을 하며 신임을 얻었었다. 무사들을 사냥개 같은 용도로 생각했던 시라카와 상왕은 요시츠나가 권력을 쥐자 팽 시키고 요시이에를 중용했고, 요시이에가 권력을 쥐었다 싶은 순간, 그를 팽 시키고 마사모리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사모리로서는 요시츠나와 요시이에가 중앙 권력에서 밀려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바짝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고, 그 결과가 욕심나는 이즈모 동부의 철광산보다 교토를 수호하는 단바국의 영주였다. 시라카와 상왕으로서도 무사 가문에게 철광을 맡기기보다 오랫동안 아악으로 조정에 사역(使役)한 우다겐지를 관리자로 선택한 것은 여러모로 계산의 결과였을 것이다.
“이제 어쩔 텐가?”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기다리지 못하고 나섰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가 결론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예전 성격과 기억에 영향을 받는지 참을성이 전보다는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만약 이곳에서 사라진다면…….”
나에게 해답을 구하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사라진다면 당황할만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당신을 지원하고 있는 중소 제철 가문 정도가 되겠지. 공경이야 조정에 단단한 지지 기반이 있기에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는 정도이고, 신관 역시 마찬가지지. 철광의 관리자를 노리고 있는 아악의 우다겐지는 경쟁자인 공경, 신관보다 열세였던 세력을 키울 기회이니 기뻐할 것이 틀림없고, 그런 우다겐지와 손을 잡은 다타라 가문 역시 철광 사무역을 독점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당신과 조정의 압박 때문에 이즈모 서부로 근거지를 옮긴 쿠니노미야츠코 가문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있는 가문이니 동쪽으로 인접한 이와미국과 나가토국은 긴장하게 될 것이고, 나가토국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릴수록 다타라 가문에 대한 압박도 줄어들겠지. 그리고 또 하나, 분고국의 영주였던 스케미치가 당신 아버지의 명으로 당신을 섬기기 위해 찾아왔으니 분고국은 공백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곳은 지금쯤 당신 아버지의 친구라고 했던 오오에노 마사후사의 직할지에 포함되었을 수도 있겠군. 마사후사는 조정에서도 제법 고위 공경이니 그 공을 바탕으로 당신의 동생이자 미나모토 가문의 새로운 후계자, 요시타다에게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지.”
상식적으로 중소 제철 가문의 뒤에는 이즈모를 지배했던 쿠니노미야츠코 가문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부에는 아직 미개발 철광이나 은광이 남아 있었기에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동부의 중소 제철 가문들이 옮겨간다면 사실상 크게 손해를 입을만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그런 점이 요시치카가 죽음을 가장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나가세.”
요시치카는 몸을 돌려 료칸 입구로 걸어나갔다. 그의 표정이 단단히 굳은 것으로 보아 모종의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이마에 피가 흥건한 스케미치가 허겁지겁 그를 쫓았다. 나는 풀어두었던 월도를 허리에 찼다.
“이제 모든 것을 아셨으니 저를 어쩌실 셈인가요?”
소녀, 다타라 히카리는 월도를 챙기는 나를 보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집안의 이득을 위해 우다겐지와 손을 잡고 선물로서 이곳에 온 그녀였지만 이토록 많은 세력과 진실이 얽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당분간 없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도 가문은 위협을 벗어나 오히려 발전만이 남았음을 이해했을 그녀였다. 그런데도 미련이 남았는지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두고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장군, 저를 버려두고 가지 마십시오.”
역관은 혼자 있기 무서운지 종종걸음으로 바짝 내 뒤를 쫓았다. 조금 있으니 발걸음 소리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히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말이 위안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고려 수군의 힘을 빌리고자 애를 쓰는 것이라면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오래도록 흥성할 다타라 가문이었다. 그러니 조선 정종에게 사신을 보낼 정도였지 않은가?
내가 쪽배를 타고 처음 도착한 백사장에 요시치카가 장도를 가슴에 품고 서 있었다. 어쩌면 그는 운명을 시험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대략 이십 보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마주 보는 상황이 되자 그가 고개를 숙였다.
“먼저 고려의 장수,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그대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진실을 알기 위해 바보 같은 행동을 몇 년이나 더 했을지 모르겠다.”
그는 감사의 인사가 끝나자 품고 있던 장도를 검집에서 서서히 빼들었다. 날카로운 예기로 번쩍이는 장도가 검집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검집을 멀리 던져버리고 장도를 양손으로 꽉 잡고 나를 주시했다.
“지금의 나는 분통이 터져서 닥치는 대로 베고 싶은 심정이다. 분노에 가득 차서 칼을 휘두르는 나에게 아버지는 세이메이가 부리는 시키가미(式神)도 능히 베어버릴 수 있다고 감탄했다. 이런 나를 이길 수 있겠는가.”
세이메이라는 이름을 여기서 들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음양사, 세이메이가 활약하던 시기는 헤이안 초기 시대였다. 나는 월도를 허리춤에서 풀러 오른손에 가볍게 쥐었다.
“물론.”
그렇다면 나는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를 퇴치한 스사노오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