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1 (9) 일룡일사(一龍一蛇) =========================================================================
우리가 지금 향하는 곳은 현대로 치자면 시마네현(島根?) 마쓰에시(松江市) 인근이었다. 그는 자의든 타의든 쓰시마에서 저지른 살인죄 때문에 당시 유배지의 대명사였던 오키 제도로 수형(受刑)되었고 곧 그곳을 탈출하여 오키 제도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로 향한다. 그곳이 바로 마쓰에시 인근으로 미호노세키(美保關)라는 작은 어촌이었다. 그는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가장 먼저 이즈모국의 태수를 죽인다. 그런 것을 보면 이미 그의 동조자들이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은 지리적으로 매우 절묘한 곳이다. 신지 호수와 나카우미 호수라는 천연의 방벽에 북쪽은 동해이고, 동쪽은 미호만이다. 바다 인근을 제외하고 대부분 산악 지형이라 소수정예로 활동하고자 할 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해상 교통을 하기에는 제법 요지에 속한 곳이라 가마쿠라 시대나 에도 시대에 크게 흥성했던 곳이기도 하니 그가 본거지로 삼을 만한 곳이다.
그가 토벌당할 당시를 보면 토벌군은 미호만을 직접 건너는 수를 쓴다. 육로는 군대가 행군하기에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신라인들이 도래한 첫 장소가 이즈모국이란 말도 있었지.”
이제 곧 미호만에 들어설 터였다. 살랑이는 해풍을 맞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일본에서 오래된 창세신화는 모두 이곳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정도로 정신적인 영향력이 큰 곳이기도 했다. 신이 이 땅에 도착했을 때,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신라의 땅 일부를 잡아당겨 붙여놓고는 그제야 살만한 땅이라고 했다는 신화의 전승만으로도 신라와 이즈모국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곧 도착합니다!”
열 척의 중선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쓰시마 인근을 거쳐 규슈 지방으로 향했다면 조금 긴장을 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전통적으로 왜적의 근거지는 대부분 규슈 지방에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배를 지키게.”
“그것으로 괜찮겠습니까? 장군께서 자칫 해라도 입으시면…….”
해라도 입으면 덩달아 피해를 볼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냐는 말을 목구멍 안쪽으로 숨기는 낭장이었다. 그는 나에 대해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해령에 속한지라 내가 세운 전공이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일 없네.”
내가 손을 내저었다. 도리어 잔뜩 긴장하는 것은 역관이었다. 중국어는 과거부터 썼으니 익숙했고, 아랍어도 능숙하게 할 수 있었지만 일어는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에 역관을 대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나는 떨고 있는 역관의 어깨를 쳐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중년의 역관은 요시치카가 머무를 것으로 추정되는 미호노세키로 향하는 내내 정말 둘밖에 가지 않는 것이냐며 불안해했다.
“그는 미호 신사를 중심으로 거점을 마련했다고 했다.”
해변에서 불과 3분 거리에 신사 입구가 있다고 했으니 그가 있다면 금세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잔잔한 푸른 물결을 감상하는 사이 뱃전은 부드러운 모래톱에 닿았다. 이방인이 온 것을 눈치챘는지, 어부들 십여 명이 잔뜩 경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육안으로도 십여 척의 고려 중선이 보였으니 혹시나 고려 해적들은 아닐까 오해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니 그들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일정 거리를 두고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는데 나는 그들의 생김을 찬찬히 살필 수 있었다. 확실히 이 시대의 일본인들은 키가 작았다. 물론 내가 일반 고려인보다 컸기에 상대적으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몰랐다.
남자들은 오랫동안 어부 생활을 했는지 시커먼 피부를 지녔고, 키는 대략 160cm는 넘지 않아 보였다. 좀 작은 사람은 150cm라고 봐도 될 것 같았는데 조선 남자의 평균 키가 160cm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닌 것 같았다. 당장 고려인과 비교해도 평균 3cm 정도 차이 날까? 지금의 내가 180cm 정도니 이들 눈에는 거인으로 비칠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관이 내게 말했다. 헤이안 시대는 문벌귀족이 우대받고 무사가 천대받던 시절이었다. 고려처럼 이곳도 무사들의 불만이 점차 커지고 있었는데 지금이 그 초기라 할 수 있었다.
문벌귀족의 흥성은 화려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다. 여인들을 보면 하얗게 분칠을 하고 눈썹이 없는 화장에 화려한 꽃무늬의 기모노를 걸치고 있는 모습이 이 시대부터 시작한 셈이다.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 시대로 접어들면서 화려한 문화와 예술이 낭비라며 검소한 미덕을 강조하게 되면서 예술과 문화가 상대적으로 억압되어버리니 참으로 역사의 상대성은 재미있다.
잠시 후 신사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산길에서 이십여 명의 무장병이 뛰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지형이 지형이라 그런지 말을 탄 자들은 하나도 없었고, 하나같이 창을 들고 있었다. 유일하게 선두에 선 이는 자신의 키만 한 장도를 들고 있었다.
마흔으로 보이는 그 무장은 요시치카 본인이라고 보기에는 기백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요시이에가 요시치카의 난동을 막기 위해 보냈던 노토(종자, ??)가 아닌가 싶었다. 설득을 위해 보냈던 그들이 오히려 요시치카의 부하로 활약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무슨 일로 왔는가?”
숫자가 많아지자 그래도 한결 여유를 찾았는지 어부들은 병사들 틈에 끼어 죽창을 이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나는 고려의 장무장군 준경이라 한다. 미나모토노 요시치카를 만나고 싶다.”
역관이 내 말을 통역하자, 선두에 선 이는 흠칫한 기색이었다. 그는 칼을 뽑아들며 거칠게 외쳤다.
“조정의 부탁을 받고 온 것인가!”
헤이안 조정의 요청으로 고려의 수군이 출병한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이 육지의 적을 막는 데 천혜의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지만 바다에서 오는 강대한 적은 막기가 어려웠다. 눈앞의 중년인은 헤이안 조정이 고려에게 경제적 이득을 약속하고 약간의 수군을 빌리는 정도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시치카를 잡기 위해서라면 대화를 나눠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왔다.”
“대화? 조정에서 고려에 중재를 요청했는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 독단으로 왔다.”
“그게 무슨.”
“요시치카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왜상(倭商)에게 들었다. 나 역시 본국에서는 제법 칼질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터라 어느 쪽이 우위에 있는지 알고 싶어 찾아왔다.”
“검술을 겨루고자 고려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말인가?”
그는 믿지 못했다. 나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역관을 대동하고 쪽배로 해변에 다다른 것이 그 증거다. 만약 이곳을 공격할 생각이 있었다면 해상에 정박하고 있는 열 척의 전선이 지금처럼 가만히 있었을까?”
그는 내 손끝을 따라 열 척의 전선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모두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인지 칼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말했다.
“나는 후지와라노 스케미치(藤原資通)다. 정 그대의 방문 목적이 그러하다면 나를 이기지 못하고서는 감히 주인을 뵐 자격이 없다.”
지금은 무사 계급이 점차 성장하면서 무사도라는 의식이 생성되는 초기시대였다. 낭만이 흐르던 시대라고 생각하면 될까? 칼을 부여잡고 비장하게 대사를 내뱉는 모습이 어쩐지 대하소설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내 소개는 이미 했으니 다시 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월도(月刀)를 뺐다. 본래는 곡도였지만 이소가 내가 차고 있던 곡도를 보고는 월도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며 그렇게 하라고 강권하는 바람에 월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목숨을 앗아간 칼임에도 광채가 나도록 닦을 때면 차가운 소슬바람 아래 시린 달빛처럼 아름답다고 했다.
“이야압!”
기합성을 한껏 넣으며 내게 달려오는 무사를 보며 나는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너무 틈이 많아서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망설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의 발목을 가볍게 발끝으로 찼다.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모래에 풀썩 얼굴을 박고 말았다. 나는 느릿하게 그에게 월도를 들이댔다.
“이건 무사의 싸움이 아니다! 칼이 아니라 발을 쓰다니!”
그는 성을 내고 있었다. 나는 칼끝을 치우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다시 해보지.”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나더니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제법 신중한 표정으로 짧은 기합성과 함께 수직으로 칼을 내리그었다. 나는 칼등으로 칼의 옆면을 바깥으로 후려치고는 그대로 칼끝을 그의 얼굴에 들이댔다.
“가…… 강하구나!”
너무나 간단하게 제압당하는 자신이 믿을 수 없는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호쿠(東北)의 난을 평정하는데 일조한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지다니.”
도호쿠의 난이라면 후3년의 역(後三年の役, 1083년~1086년)을 가리키는 것이다. 요시이에가 조정의 명을 받아 도호쿠의 호족을 토벌한 것으로 그때부터 그를 견제하는 조정 때문에 아무런 공도 인정받지 받지 못해 요시치카가 불만을 품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켜보던 어부들이나 병사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는데 내가 그토록 쉽게 무사를 제압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정말 딴 마음은 없는가?”
염려가 담긴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요시치카님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교호쿠(橋北)로 원정 중이시다.”
교호쿠라면 현대 일본에서 마쓰에 시의 북쪽을 가리킨다. 마쓰에 시는 신지 호와 나카우미 시에 가운데 끼어 있으며 시 가운데를 오하시 강이 관통하기 때문에 다리가 없으면 왕래가 어려운 곳이다. 그중 북쪽이 교호쿠이고, 남쪽이 교난이었다. 미리 그곳을 쳐서 원정군이 교두보로 삼는 것을 막을 속셈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대략 30km 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온통 산이라 평지의 30km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배를 이용했다. 우리가 이곳을 근거지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순순히 자신들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이 근처에서 그래도 가장 번화한 포구였기에 배를 얻기 용이했고, 그것은 곧 인근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떠난 지 3일 정도 되었다.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서 내일쯤이면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겠는가?”
“그러지.”
“성이 있지만 당장 그곳으로 당신을 데려갈 수는 없다. 주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료칸(旅館)에 유숙할 수 있도록 하겠다.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전통 여관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우리를 제외하고 다른 자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혹시나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허름하고 작은 료칸이었다. 나는 일단 목욕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역관의 방은 나보다 안쪽으로 정했는데 그가 하도 두려워하여 내가 그렇게 정했다. 요시치카 때문에 여행자가 끊긴 곳이라 그런지 한가하기만 했다. 목욕을 마치고 할 일도 없어 료칸 입구에 나와 한적한 어촌의 풍경을 감상했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나와 눈을 마주치기를 꺼렸고, 간혹 동네 아이가 호기심으로 나를 빤히 쳐다볼 때면 아낙이 호들갑을 떨며 아이를 안고 사라졌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근접하는 이가 있었다. 인형처럼 하얗게 분을 칠하고 무미(無眉)에 분홍색 기모노를 걸친 작은 소녀였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미소라도 지어 보이려는 것인지 붉은 입술을 살짝 열었는데 흰 이가 아니라 흑치(黑齒)라서 마치 공포물의 등장인물을 보는 것 같았다. 창백한 얼굴에 눈썹은 없고 미소라고 짓는 것이 검은색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시대 일본에서는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여 여자들의 일상 화장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내가 가진 심미안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라 나도 모르게 인상이 구겨졌다.
‘겐지 이야기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벌써 시작인가?’
이 시기의 성문화는 왕 이외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성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이혼과 재혼에 제약이 없었고, 정조 관념이란 것 자체가 없었기에 불륜이란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혼이란 것 자체가 남자가 밤에 한 여자를 자주 찾아오기 시작하면 그 집안에서는 의중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교섭에 들어갔다고 하니 말이다. 그건 여자가 남자를 찾는 경우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러니 한 여자가 남편이나 애인을 여럿 두는 경우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저는 헤이안쿄(平安京)의 요보(女房)로 처녀(處女)입니다. 그리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색하지만 고려어가 소녀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소녀의 소개를 들으며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 소녀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린 것이 궁벽한 어촌의 질 낮은 유녀(遊女)가 대접을 와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헤이안쿄는 교토의 옛 이름으로 현 헤이안 조정이 수도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요보는 고위귀족의 시중인을 뜻하는데 비서, 유모, 가정교사 등의 주요한 직책을 맡았다. 주인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첩이나 다름없는 지위인 경우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처녀는 한문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 머무를 곳이 있는 여자라는 뜻으로 이 당시 처녀의 개념은 순결의 유무가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여자를 뜻했다.
요시이에나 요시치카는 겐지답게 헤이안쿄에 자신의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저택의 고용인이거나 또는 왕궁에서 일하던 요보일 것이다. 그 정도라면 고려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자세한 설명은 그대가 목욕하고 난 다음에 듣기로 하지.”
“과연 요시이에 님의 믿음직스러웠던 노토, 스케미치 님을 일수에 이기셨다고 하더니 성격도 화통하시군요.”
그녀는 나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러자 분 냄새가 역하게 밀려왔다.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나와 한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먹물 같은 시커먼 이를 깨끗이 소제(掃除)하고, 코끝을 마비시키는 하얀 분도 말끔하게 지우게.”
“네?”
그녀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치장을 모두 지우라는 것은 민낯을 보여달라는 말과 같았다. 현대에서도 하기 어려운 요구인데 지금 시대라고 여자가 다를까? 내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그녀는 매우 수치스러운 표정을 지었다.